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5회)

제 2 편

 

1

 

오별장의 아들 오정혁이가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안윤재는 처음에는 심상히 생각했는데 보위단에 나가는 길에 그 집앞을 보니 굉장한 호화마차가 세워져있어서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저게 웬 마차냐?

안윤재는 숨이 가쁜 목소리를 내였다.

뒤따르던 상범은 개털모자의 채양너머로 한번 돌아보더니 시답잖게 대답했다.

《오정혁이가 타고온 마차지요.

《이놈아, 그 집에 저런 마차가 있었다더냐?

《그사이 정혁이가 명월구나 룡정에서 한밑천 잡았는지 압니까?

《미친놈!

안윤재는 눈을 딱 부릅뜨고 쏘아보다가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러나 전처럼 걸음걸이가 활기롭지 않았다.

 (정혁이가 한밑천 잡아? 쓸개빠진놈!)

안윤재는 속으로 상범이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고실고실 속을 썩였다.

 (저런 마차는 안도현장에게도 없다. 우리 마차나 말 같은것은 세곱으로 쳐도 저런 마차를 꾸미지 못할것이다. 그런데 오정혁이가 그걸 사들여? 말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말아라.)

속으로는 이렇게 뇌까렸으나 어쨌든 마차는 현실적으로 오별장네 집앞에 세워져있었다. 안윤재는 아무래도 그냥은 궁금증을 묵새길수가 없었다.

그가 가던길을 되짚어 돌아서니 상범이가 의아쩍게 바라본다. 안윤재는 모른체하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먼저 보위단에 나가서 영호를 들여보내라. 내가 돋보기를 잊어버려서 좀 들어갔다나와야겠다.

《내가 제꺽 가져오지요. 어디에 있나요?

미련한것이 이런 때는 혀바닥처럼 삽삽하게 군다. 불편한놈은 하는수가 없다.

《괜찮아. 가서 네일이나 보라구.

안윤재는 호령기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범은 눈이 둥그래서 멍하니 서있다가 《넨장, 네가 저런 마차를 탈 재비가 돼?》 하고 침을 탁 내뱉었다.

안윤재가 오별장네 집 마당에 들어서니 안방쪽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울려오고 가끔 녀자들의 웃음소리가 새여나올뿐 자기네 집에 아들 영호가 돌아왔을 때처럼 들썽거리는 분위기는 전혀 느낄수 없었다. 안윤재는 속으로 고개를 끄떡거렸다.

(오별장이 큰 배경이야 없지. 친구도 별로 없고… 그러니 늘 호젓이 사는판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런 때야 좀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음직한 일이 아닌다. 내가 오기를 잘했군. 영호가 돌아왔을 때는 오별장이 우리 집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이 집 아들이 온데는 안윤재가 코끝도 내밀지 않았다고 하면 경우가 몰릴판이지.)

안윤재는 사랑채앞에 서서 어흠어흠 군기침을 하고나서 틀스럽게 말했다.

《이 집 주인 계시오?

사랑방 문이 열리더니 오별장이 움쭉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온다. 다시 닫기려는 문짬으로 컴컴한 방안을 기웃해보니 딴사람이 있는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 집 정혁이가 돌아왔다면서?

《예, 돌아왔지요. 시절이 하도 소란스러우니 대처에서 배겨나기가 바쁜 눈치웨다.

오별장은 섬돌우에 서서 안윤재를 안으로 청하며 말했다. 반백이나 된 머리를 점잖게 갈라넘기고 숱기있는 코밑수염을 기른 오별장의 풍채는 어디라없이 무게가 있었다. 이것 또한 안윤재의 은근한 반감을 자아냈다.

안윤재는 문지방에 걸터앉아 털신끈을 끄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웃간의 정의로 봐서라도 무슨 연통이 있어야 할게 아니요?

《허, 아이들이 가고오는 일이 무슨 큰일이라고 동네어른에게 다 알리겠소.

하고 오별장은 가벼운 웃음에 얼버무려넘겼다.

때마침 안채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처녀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뚜렷하게 울려왔다.

신을 다 벗고 방안으로 들어가려던 안윤재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 그쪽을 살폈다. 정혁의 오누이가 성장한 한 처녀를 데리고나오는데 그뒤에 오별장의 늙은 로친이 치마자락에 손을 훔치며 따라나온다.

《가면오면 자주 들리라구. 이제는 정혁이도 집에 있겠다, 또 우리 정란이도 집에 붙들어두겠네.

처녀는 그저 고개를 끄떡거리며 미소를 짓는데 정혁이가 어머니의 말을 중국말로 되받아넘긴다. 그제야 처녀는 로친의 손을 잡고 거듭거듭 절을 하며 중국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안윤재는 골이 뗑해져서 오별장을 돌아보며 무슨 일이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중국처녀요. 거 돈화에 있는 주대감네 딸이라는데 송강에 우사령을 만나러 가는길이라는군.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되여 이 집에 나타났는가 하는 말이다. 사실 안윤재는 처음 그 처녀가 주대감의 딸이라는 말을 듣자 숨이 후- 나갔다. 그런즉 문앞에 세워놓은 호화로운 마차는 오별장의 아들이 한밑천 잡아서 구해들인것이 아니라 주대감네 마차라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 처녀가 우사령을 만나러 간다는것도 어쩐지 께름직하게 느껴졌고 그보다 더 머리속을 무겁게 하는것은 주대감의 딸이 어떻게 되여 저처럼 이 집식구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였는가 하는 의문이였다.

그러나 오별장은 《그런데》 하는 그 말이 담고있는 의문이 그처럼 복잡한 감정을 나타내고있다는 눈치를 전혀 못채고 그저 심상하게 대답해버리는것이였다.

《우리 집 정혁이라는 아이와 가까운 사이라오. 간밤에 와서 하루밤 묵고나더니 모두 한식솔이 된것처럼 저 야단 아니요. 내가 보매도 처녀가 이목구비도 깨끗하고 법도가 있는 집에서 자랐다는것이 느껴지는군요.

그러니 어쨌단말인가 하고 다시 묻고싶었으나 안윤재는 차마 그럴수가 없어서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얘 정혁아, 보위단장님께서 나오셨다. 얼른 인사여쭙고 나가거라.

하고 오별장은 아들을 부르면서 한편으로 안윤재에게 량해를 구했다.

《저 처녀가 송강으로 나가는것을 바래주고와서 인사를 가겠다기에 내버려두었더니…》

《거 뭐 한동네사람끼리야 인사를 서두를게 있소. 손님을 먼저 바래라고 하구려.

안윤재가 이렇게 점잖은 티를 내였으나 그때 이미 오정혁은 사랑방앞에 다가왔다.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 후리후리한 몸집에 유약해보일만큼 부드러운 인상을 한 오정혁은 안윤재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넙적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새 기체 편안하셨습니까?

《오, 난 잘 있네. 자 일어나라구. 요즘같이 개명한 세상에 젊은 사람이 이런 구식인사를 차릴게 있나.

그래도 오정혁은 무릎을 꿇고앉은채 공순한 투로 윤재네 집안안부를 물었다.

《영호 자당께서도 편안하신가요?

《그래 잘 있네.

《영호도 부금이도 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됐네. 우리 그 사람은 정혼을 했네.

《아버님께서 기쁘시겠습니다.

《기쁘다마다, 난 이제는 한시름 놓이네. 임자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저도 집에 돌아오려고 합니다. 아버지도 년로하시고 해서 이제는 아무래도 제가 농사를 지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사이 집에 못와봤더니 머슴도 내보내고 아버지 혼자힘으로 재우리까지 거두시는데 자식되여 차마 볼수가 없군요.

《글쎄, 내가 머슴을 내보낼 때부터 임자네 아버지보고 망녕이 들었다고 했네. 새경이 들면 얼마나 들겠다고 한사람밖에 없는 머슴을 내보내겠나.

안윤재는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끌어서 다시 오정혁이 그 주대감의 딸과 어떤 사이에 있는가 하는것을 캐보고싶었으나 이때 주서향의 인사를 받고 그를 바깥마당까지 바래준 오별장이 어흠하고 방안에 들어서더니 두사람이야기에 끼여들었다.

《거 뭐 아이들보고 실없는 말씀을 하시오. 우리집 농사야 안주사네 터밭만도 못한것인데 겨울에 머슴을 두어서는 뭘하겠소.

《아버지는 또 저러십니다.》 하고 오정혁이 안윤재의 훈수를 바라듯 말했다.

《아무튼지 내가 머슴을 하나 데려오겠습니다. 래년농사도 농사지만 벌써 눈이 강산같이 쌓였는데 집에 땔나무를 넉넉히 장만해놓았습니까, 낟알을 다 성안으로 실어내기를 했습니까. 달구지라는것은 기름 한방울 안쳤지, 바퀴살은 부러졌지 이제 해동을 하면 농사가 제절로 지어집니까?

《허, 이것보시오. 제법 농사군이 다 된것 같이 애비를 책망하오그려.

하고 오별장은 안윤재를 향하여 어처구니없다는듯이 웃어보이더니 아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주제넘은 수작 작작하고 어서 나가봐라. 서향이가 기다리겠다.

그래도 정혁은 여유있게 앉아 웃더니 아버지와 안윤재사이에 이야기가 동강난 틈을 타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제 좀 나갔다오겠습니다. 저녁에 만나잔다고 영호에게 전해주십시오.

《그러게, 잘 다녀오라구.

오정혁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간지 얼마가 못되여 문전에서 워낭소리가 울리더니 마차가 떠났다.

안윤재는 내친김에 주대감네와 이 집사이를 끈끈히 캐고싶었지만 오별장자신은 주하림도 그 딸도 모른다는것이였다. 하기는 오별장이 주하림을 알리가 없지. 주하림으로 말하면 린근에 널리 알려진 세도가의 후손으로 우사령도 그 사람앞에서는 머리를 못쳐든다는 소문이 떠도는데 부강촌의 오별장이 그런 사람과 면식이 있을리 없다. 그런즉 오정혁이가 그 처녀와 련애라도 한다는 소린가? 가령 련애를 한다고 하면 그 아버지의 승낙을 받았는가. 아니면 시체 젊은것들이 떠드는 그 자유련애라는것인가- 이런것이 다 궁금하였으나 점잖은 체면에 그런것을 꼬집어 물을수도 없고 해서 빙 에둘러 물어보면 오별장의 대답은 한모양으로 《글쎄, 내니 알겠소.》 하는것이였다.

안윤재는 별로 심기가 좋지 못해서 오별장네 집을 나서는수밖에 없었다.

후날 부강촌이 뒤숭숭해진 다음에야 안윤재는 이날 오별장네 문전을 나설 때의 인상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역시 그때 무엇인가 께름직하게 느껴지던것이 다 쪼간이 있어서 그랬구나 하는 판단을 내렸던것이다.

 

 

2

 

 

오정혁은 이튿날 낮경에 송강에서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돌아왔다. 그가 주하림네 마차를 타고 굉장한 미인인 그 집 딸과 함께 돌아왔다는 소문이 이미 동네에 쫙 퍼져있어서 은근히 기다리던 참이라 지쳐빠진 걸음으로 마을에 들어서는 그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좀 기대가 허물어진 느낌이였으나 어쨌든 그날밤에 모두 오별장네 사랑방에 모여들었다. 안영호도 오고 보위단의 소대장을 하는 기득이며 무슨 구경거리만 있으면 아이들싸움판에도 끼여드는 상범이는 말할것 없고 투전방외에는 통 동네출입을 안하는 남칠이까지 나타났다. 정혁이가 성의있게 청하기도 했지만 호기심이 작용하였던것이다.

오별장은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놀게 하려고 마실을 나가면서 아들을 슬쩍 불렀다.

《머슴을 정 데려올 생각이냐?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정혁은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명월구에서 이미 김일성동지와 면밀히 이 일을 짜고 떠난만큼 이제부터는 작고 큰 모든 일을 그이의 활동과 관련시켜 실수없이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차있었다. 사실 자기가 이 동네에서 공청원구실을 똑똑히 했더면 온 겨레와 총잡고 일어서 싸우자는 명월구회의결정을 전국적판도에서 총섭하셔야 할 김일성동지께서 이런 벽지에까지 몸소 나오시게 되지는 않았을것이라고 혀를 깨물고 자기의 무능과 뜨뜨미지근한 성격을 스스로 타매하고있는중이였다.

이제 김일성동지께서 돌어오시게 되면 부강촌은 혁명의 책원지가 될것이다. 여기에는 단 한명의 호위원도 없으며 무지한 반동보위단이 있을뿐이고 그보다 더 무지한 반동경찰과 구국군이 들락날락하고있다. 오정혁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면밀히 부강촌공작의 준비를 하였다. 우선 그이를 따라 돈화로 갔다.

처음에는 돈화로 가시는 그이의 의도를 잘 몰랐다. 주하림의 으리으리한 집앞에 섰을 때는 더구나 놀랐다. 의문은 주서향과 인사를 나누고 그가 진한정의 애인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진한정이가 큰 부자인 세도가의 딸과 사랑에 빠져 번민하고있다는 말은 그도 들은바 있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진한정의 소식을 전하시면서 우리 일을 도와달라는것을 부탁하시였다. 오정혁이가 보매 혁명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어보이는 호강하며 자란 처녀가 그 부탁을 선뜻 받아들일뿐아니라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글썽해지는것을 보고 다시한번 놀랐다.

그길로 김일성동지께서는 명월구로 다시 돌아가시고 자기는 주서향의 마차를 함께 타고 부강촌으로 왔다. 두사람을 동행하게 한것은 우사령의 위세에 등대고 날뛰는 안윤재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해두자는것이고 만일의 경우에는 주서향을 통하여 조직과 련계를 짓자는 그이의 판단이 깔려있는것을 주서향도 오정혁이 자신도 다는 몰랐지만 그러루한 짐작은 갔다.

오정혁은 부강촌을 혁명화하는 문제가 되면 좋고 안되면 집어던져도 무방한 그런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만일 여기서 그이의 사업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여 아차 실수하는 날이면 하늘땅에 자기 일신을 용납할곳이 없다는것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아들의 단호한 태도에 아버지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였지만 그렇게 기분이 상한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내자식이 너무 얌전하고 대차지 못하다고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아들이 이처럼 드세게 나오니 대견스러워하는 눈치조차 엿보였다.

《그렇다면 그 남칠이를 데려오는것이 어떻겠느냐? 네가 송강에 간 사이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변죽을 좀 울려보았다.

《그런 건달을요?

오정혁은 긴장을 느끼며 이 장애를 또 어떻게 물리칠것인가 궁리하였다.

《그건 사람의 깊은 속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대포시하 목재판에서 객사할 때까지는 그 사람도 얌전한 젊은이였다. 그 사람이 갑자기 그런 술부대가 되고 투전방출입을 하는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것이다.

오정혁은 잠시 생각하였다. 지금 부강촌의 젊은축들은 대개 보위단에 다 망라되여있다. 이제 동삼이 지나고 봄씨붙임을 하게 될 때면 아무래도 농사를 지으러 나오겠지만 지금은 마호나 대포시하같은 산판에 벌목을 가는것보다 보위단제복을 얻어입고 거들먹거리며 돌아가는것이 몸도 편안하고 벌이도 훨씬 낫다고 생각들 한다. 남칠이만이 아버지가 객사한 산판에 가지도 않지만 보위단에도 들지 않았다. 가뜩이나 험한 세상에 모두 총들을 들고 돌아치는 판이라 투전판같은데서 싸움이라도 붙으면 아슬아슬할 때가 많았지만 사납기로 소문난 소대장 기득이도 남칠이만은 괄세하지 못했다. 워낙 단오날 씨름판에 나서면 소는 의례 남칠의것으로 치부되여오던 힘장사인데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부터는 성미가 거칠어져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팔다리도 성해나지 못한다는것을 알고 모두 비실비실 피해다니였다. 그렇게 거칠지만 본시 성미는 무던하고 협기도 있어서 동네 젊은이들속에서 영향력이 있었다.

《그래 그 사람이 뭐라고 합디까?

《그저 웃더구나. 그 사람도 살림이 궁한 판이니 정 생각은 없지도 않는 모양같더라. 오늘저녁에 잘 말을 붙여보아라. 기왕 머슴을 데려올바에는 그런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저 안주사네 등쌀에 기를 펴고 살겠느냐.

《알겠어요. 그러나 이 일은 아버지께서 너무 걱정하지 않는게 좋겠어요. 내가 좋은 사람을 하나 봐두었어요.

오별장은 아들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더 말을 않고 덜썩덜썩 대문으로 걸어나갔다. 고개를 기웃하는 모양이 뒤에서도 알려졌다.

정혁이가 사랑방에 들어가니 이미 술판이 벌어져있었다. 남칠이가 가운데 들어앉아서 주인행세를 하고있었다.

《자, 영호도 한잔 들라구. 자네 봐하니 우리같은 따라지인생들과 한자리에 앉은게 좀 마땅찮은 모양인데 어찌겠나. 주인이 량반 상놈 가리지 않고 한방에 청했으니 여기서는 자네나 상범이나 나나 다 같은 손님이야.

남칠이는 처음부터 바르잖은 생각이 있었던지 큼직한 김치보시기에다 독한 배갈을 남실남실 따라서 영호의 코앞에 들이댔다.

남칠이가 말한대로 그닥 편안찮은 마음으로 이자리에 와앉은 영호는 눈꼬리가 까부장해서 남칠이를 맞바라보더니 술잔을 단숨에 기울였다. 이때 오정혁이가 방안에 들어섰는데 술잔을 기울이는 영호의 비수같은 눈길이 그대로 정혁의 얼굴을 벨듯이 스쳐지났다.

《야- 대단하다. 상범이 이놈아, 네따위들이 영호의 뒤소리를 한다는게 말이 돼? 여기서 그래도 총을 차고 거드름을 피울만한 사람은 영호밖에 없다. 샌님이라니, 어림없는 소리, 영호는 어느모로 보나 대장재목이고 너같은것들은 다 따라지란말이다, 따라지.

남칠이는 영호의 어깨를 툭툭 치며 환성을 질렀다.

영호는 슬그머니 남칠의 손을 비켜놓으며 싸늘하게 웃었다. 차츰 해쓱하게 질려가는 그의 눈에는 무엇인가 스산한것이 불타고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술자리는 점점 흥을 띠여갔다.

《야, 사람값을 술잔으로 단단말이냐. 그럼 나도 한잔 다구. 나도 대장이 좀 돼보게.

상범이가 남칠이한테 대들듯이 손을 내밀었다.

《이것봐라. 상범이도 대장이 될 생각이 있어? 그럼 어서 한잔 하라구.

남칠이는 아낌없이 술상에 놓았던 보시기를 집어들고 한잔 가득 채웠다.

그러나 상범은 그 잔을 절반나마 기울이더니 그만 개켜서 목구멍을 넘어갔던 술을 방바닥에 내뿜으며 벌떡 일어나서 쩔쩔맸다.

《허허허, 이놈아 대장노릇하기가 그렇게 쉬운줄 알았냐?

온 방안이 떠나갈듯이 웃어댔다. 정혁이 어머니가 딸과 함께 새 안주상을 들고 마당을 건너오다가 방안에서 터져오르는 웃음소리에 놀라 주춤 멎어섰다.

정란이는 상을 섬돌우에까지 날라다놓고는 란장판을 이룬 떠들썩한 목소리에 얼굴을 찌프리며 종종걸음을 쳐서 안채로 돌아갔다.

《술잔으로 대장을 정한다면 응당 남칠이를 내세워야지. 이번에는 자네가 한잔 하게.

하고 영호가 상범이 내던진 보시기의 술을 제절로 다 마시고 탁탁 털어보인 다음 술을 따랐다.

《흠- 이제사 사람을 알아주는군. 이 집 오별장령감은 나를 머슴감으로밖에 보지 않는데 영호가 역시 대처바람을 쐬고 류치장신세도 져본 사람이라 다르단말야.

《가만 가만.

보위단의 소대장 차기득이가 안영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대장, 대장하는 소리를 함부로 하지 말게. 이놈은 제아무리 술부대라도 제 녀편네 궁둥이에 깔려지내는놈인데 아무리 명색만이라도 대장자리가 당하나?

그러자 또다시 방안이 떠나갈듯한 폭소가 터져올랐다.

《너 이놈!

하고 남칠이가 정색하고 말했다.

《혀바닥을 바로 놀려라. 정 내 색시를 건드리면 다 갖다 일러바치겠다. 그럼 그 학실이란 아주머니가 이 대소한머리에 네놈을 발가벗겨서 푸르하강에 집어넣고 목욕을 시키지 않나 보아라.

그러면서 남칠이는 영호가 따라주는 술잔을 쭉- 들이켰다. 몸매나 얼굴생김이나 다 사내답게 생긴 남칠이는 말은 거칠게 하였지만 실상 순하고 인정이 있어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다. 단지 그런 그가 요즘에 와서 왜 술에서 헤여날줄을 모르고 밤낮으로 투전장을 주무르는지 알수 없다고 동네에서도 뒤소리들을 하고있었다. 남칠이의 안해 학실이 역시 사내에게 짝지지 않는 걸걸한 성미와 훤칠한 자색을 타고났고 동네의 젊은 아낙네들과 처녀들을 쥐락펴락하였지만 워낙 남편앞에서는 꼼짝을 못하였다. 그러던것이 남칠이가 술과 도박판에 미쳐돌아가자 그 녀자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반면에 남칠이는 누구앞에서도 굽어들지 않던 드센 성미를 안해앞에서만은 남이 보면 면구할지경으로 굽히고 슬슬 기여돌아갔다. 그런것을 남한테 숨기지도 않았다.

오정혁은 처음부터 롱이 너무 거칠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그가 이런 모임을 차린것은 오래간만에 돌아온 아들이 반가와서 어쩔줄 몰라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빌어 그지간에 멀어졌던 동네사람들과의 정을 회복하고 겸해서 자기 집에 머슴을 데려온다는 소문을 미리 놓아두자는 타산에서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남칠이에게 그런 귀띔을 먼저 해버렸고 그것을 또 남칠이가 술좌석에서 다 토설했으니 일이 잘돼간다고 볼수가 없었다. 그런 가위에 처음부터 거칠게 번져가던 롱이 점점 더 독을 풍기기 시작했다.

《야 이자식아, 더럽게 굴지 말아라.

하고 남칠이가 보위단 소대장 기득이의 얼굴앞에 바싹 턱을 들이대고 빈정거렸다.

《늙다리단장한테 단장님, 단장님 하고 괴여올리는것도 보기흉한데 이제 그 아들한테까지 굽실거리며 돌아가는것 눈꼴사나와 정 못보겠다. 그렇게 빌어먹을데가 없어서 더럽게 구니?

《아니 이자식이 어디다 대고 함부로 수작질이냐? 너 보위단이 뭔지 알기나 하구 이래?

차기득이가 한쪽 무릎을 일으켜세웠다.

《저리 비켜!

하고 안영호가 차기득이를 한쪽으로 밀치고 나앉으며 차거운 어조로 말했다.

《남칠이, 너 아까부터 나한테 자꾸 트집을 거는데 왜 그래? 할 말이 있으면 애매한 사람 건드리지 말고 나한테 직판 말해라! 되지 못한놈의 자식!

《뭐야?

남칠이는 대번에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목침 하나를 움켜쥐였다.

《흥, 이자식아, 나한테 목침을 집어던질테냐? 어서 집어던져라! 네가 오별장령감네 집에서 머슴을 살겠으면 똑똑히 굴어야 해!

안영호는 입가에 랭소를 띠고 이기죽거렸다. 남칠이는 말떨어지기 무섭게 목침을 집어던졌으나 옆에서 팔을 비틀어올리고 그 자신 적지 않게 취했기때문에 목침은 허공에 날아가 쌍창 하나를 마사놓았다.

영호가 벌떡 일어났다. 술상 한귀가 무릎에 걸려 들썩 쳐들리면서 안주접시들이 와르르 밀려났다.

《이자식! 일어나라! 네놈이 술을 처먹더니 하늘이 돈짝만해보이는 모양이구나!

남칠이는 제옷에 덮씌워진 남비탕국물이며 콩나물을 내려다보더니 기가 막힌듯 영호를 올려다보았다. 불그레 주기가 오른 눈에 증오가 류황불처럼 이글거리고있었다. 그는 어지러운것들을 탁탁 털고 천천히 일어나더니 영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일어났다. 어찔테냐?

《쏘아죽이고말겠다.

영호도 한걸음을 물러서며 권총을 뽑아들려고 옆구리에 찬 목갑에 손을 가져갔다.

《이사람! 정신있나.

정혁이가 당황하여 영호의 손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상범이와 기득이는 남칠이의 앞을 막아섰다. 말리는 사람이 나지자 두사람은 더 길길이 뛰였다. 술상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면서 온 방안에 안주와 안주접시를 늘어놓고 당장 불이 달릴것 같은 강한 술냄새를 풍겼다.

안방에서도 사랑채의 소동을 듣고 정혁이 어머니와 정란이가 마당에 나섰다.

이때 《계시나요?》 하고 대문을 살그머니 열고 학실이가 들어섰다.

그제야 정란의 모녀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반가이 마주다가갔다.

《이사람 마침 잘 오네. 또 붙었구만.

하고 정란이 어머니가 학실의 손을 잡고 혀를 끌끌 찼다.

《내 이맘때쯤 되면 그럴것 같아서 오는 길이예요. 그런데 누구하고 또 저 야단이나요?

학실이는 덤빌것도 없다는듯이 방안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영호하고 저러는것 같구만.

《그래요? 별로 사납게 구는것이 꼴보기 싫다고 벼르더니…》

하고 학실은 두겨드랑밑에 팔을 엇갈아찌르고 사랑방앞에 가더니 뜻밖에 상냥한 목소리로 불렀다.

《순애 아버지, 순애 아버지 있어요?

방안에서 떠들썩하던 소란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잠시후 살그머니 문이 열리더니 상범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무슨 귀띔이라도 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여기 있소. 어서 끌고가시오.

《빨리 내보내라요. 집에 손님이 왔어요.

그러자 상범은 다 알만하다는듯이 히죽이 웃더니 안에 대고 소리쳤다.

《남칠이 이사람, 집에 손님이 왔다고 자네 색시가 찾아나왔네. 가서 매맞지 않도록 조심하게.

경우에 맞지 않는 롱담이였지만 상범의 말 한마디가 팽팽했던 방안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모두 한바탕 웃는데 남칠이만은 뚜- 해서 영호를 돌아보다가 저도 하는수 없는지 시무룩이 웃었다.

영호는 남칠이가 자기에게 트집을 거는것이 말말결에 기분이 상한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품은 감정이 있다는것을 느끼였다. 그것도 흔히 이웃간에 있을수 있는 비위에 맞고 안맞는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더 좀 깊은곳에 원인이 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남칠이 아버지가 대포시하의 목재판에 나간데는 자기 아버지와 개간지건때문에 싸움을 한것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되였다. 땅을 떼운 화김에 대포시하에 나갔다가 불행을 만나게 되니 영호의 아버지도 립장이 장히 옹색하여 그 집에 대해 동정도 하고 위자료겸해 개간지도 좋은걸로 떼주었지만 그때 맺힌 마음이 여태 풀어지지 않고있는것이였다. 그런것을 느끼는이상 영호로서는 남칠이가 별안간 너스레를 피우며 눙치려 해도 어쩐지 놀림을 받는것 같아 마주 웃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깥에서는 동네아낙네가 찾고 이 집 안주인의 목소리까지 나는데 자기 혼자 목청을 돋구기도 안되여 입가에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눈꼬리는 까부장해서 서있었다.

《졸장부같이 토라져있지 말라구. 임자도 이제 장가를 든다니 색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걸세.

남칠이는 비칠거리며 영호의 어깨를 툭 치더니 방문을 더 열어젖히고 어두운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디 있소? 아직 술기운이 간에 기별도 안갔는데 벌써 찾으러 나왔소?

《빨리 나와요. 술을 먹겠으면 곱게 먹을것이지 싸움은 왜 해요?

학실은 신을 찾아신느라고 더듬거리는 남편을 내려다보며 마치 아들다루듯 나무랐다.

《글쎄 보위단에서 나를 자꾸 들볶지 않아.

《에그, 못난 소리. , 그까짓것들한테 수모를 당하면서 왜 어울려다녀요. 어서 나서라요.

학실이는 일부러 들으라고 목청을 높이더니 남편을 앞세우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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