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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4회) 제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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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하의 조직원들집에 나누어들어 대충 몸도 녹이고 저녁요기도 한 일행이 다시 길을 떠났을 때는 초생달이 이미 지고 하늘에 별들만 차겁게 여물어가던 한밤중이였다. 네개의 백하가 이도송화강에 모여들어 송화강 본줄기로 흘러들뿐아니라 대사하, 소사하, 이도강, 서문강 등 수많은 강줄기가 가지를 뻗치고있는 송강언저리에 조선사람들이 개척한 논이 도처에 널려있고 동네도 많았다. 대사하에서 다시 남쪽으로 20리나 걸어 소사하지경에 나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람받이쪽에 서서 걸으시며 옥섬의 이야기를 들으시였다. 박훈이와 계영춘이는 썩 앞에 나서서 걸어가고 김정삼이는 말고삐를 쥐고 강영진이는 채찍을 들고 둘이 함께 달구지를 끌고가며 무엇인가 수군수군 쉼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달구지뒤에는 최만득이와 길림공청원이 따라가고 차광수와 김정룡은 뒤전에 처져서 따라온다. 두사람 다 입이 무거운데다 후위격으로 따라오다나니 조심하느라고 말을 삼가는것이다. 옥섬은 오빠의 비보를 전해듣던 그 얼어붙은 목단강기슭에서부터 여기까지 줄곧 무정한 세파속에 부대껴오다가 따뜻한 어버이품에 안긴듯 마음이 풀어졌다. 가슴에 맺혀있던 말을 다 터놓고보니 무언지 모르게 눈물이 미음돌기도 하였다. 다행히 어둠속이라 바람에 헝클어져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척하면서 눈언저리를 슬쩍 훔치였다. 그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사실 떼를 써서 여기로 오면서도 차광수동지가 너무 엄엄하게 굴기때문에 도로 쫓겨갈가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나더러 쫓아보내지 말라는 말이구만.》 김일성동지 역시 가슴이 찡하니 젖어드는것을 느끼시며 겉으로는 쾌활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우리 혁명의 새벽길을 헤쳐가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전우 최효열의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요구하는것이라면 옛날사람들의 말과 같이 눈속에서 딸기도 찾아낼것이고 얼음구멍속에서 잉어도 잡아낼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바라는것이 그의 오빠가 그랬듯이 목숨을 내놓고 달려가야 하는 무장투쟁의 길에 나서겠다는 청이고보니 아무래도 섬약한 처녀에게 선뜻 그러자고 말씀하시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오빠의 뜻을 이어 원쑤를 갚겠다는 그 불같은 지향을 꺾을수야 없지 않는가. 《차광수동무를 빌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해놓고 승인을 받아내자는것인데 그렇게 간단히는 안될걸.》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둠속에 흰 이새를 드러내보이며 웃으시였다. 《전 아무데도 가지 않겠어요. 저도 제 총이 있는데 저 혼자라도 싸우겠어요.》 《옥섬동무가 대단하다는것을 이제는 다 인정할거요. 그러나 우리는 조직을 뭇고 조직적인 투쟁을 해야 하는거요. 하여간 이제 가서 어머니와 한번 만나보오. 어머니가 동무편을 들어주시면 되는거고 어머니가 퇴를 놓으시면 다지.》 《그래요?》 옥섬은 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반석어머님께서 부녀들의 조직을 지도하고계신다는 말은 이미 차광수를 통해 여러번 들었고 그 인자하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이 들었다. 그가 처음 고유수에 갔을 때 조선혁명군대원들중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기에 모두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가부다 생각했는데 후에 알고보니 그것은 모두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어머님의 품이 얼마나 인자하시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고 남몰래 자기도 그 품에 안겨보고싶은 생각을 품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어머님을 만나뵈옵게 될 시간이 박두하고 바로 그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운명이 결정된다니 긴장되지 않을수 없었다. 여태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일수록 무장투쟁의 길에 나서는것을 말려왔다는것을 생각할 때 어머님께서 남달리 인자하신것이 오히려 걱정스럽기조차 하였다. 소사하동네의 불빛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야산기슭에 달구지가 멎어서있었다. 두런두런하는 목소리가 울리더니 무장한 청년 다섯사람이 허재률이를 둘러싸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 부강촌으로 떠나신 소식을 계영춘이한테서 듣고 한낮부터 긴장해서 소식을 기다리고있는 소사하의 공청원들이였다. 밤은 이미 깊었고 사람들도 지쳤기때문에 소사하에서 지체한김에 조직원들의 집에 몇사람씩 나누어들어 밤을 묵기로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청책임자의 집에 지휘성원들을 따로 부르시여 제기된 문제의 토의를 시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여기서 차광수와 허재률이 룡정과 길림에서 진행한 공작과 부강촌의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를 들으시고 전반적으로 일을 정확하게 처리했다고 하시면서 오늘저녁은 당면한 부강촌문제에 론의를 집중시키자고 하시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끝에 차광수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돈화에서도 적들이 부강촌에 무슨 음모를 꾸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동자경동무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건 결코 하나의 시골반동이 우연히 부강촌에 박혀서 야기된 사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기때문에 문제를 심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연길과 화룡, 왕청에서 추천된 동무들이 틀림없이 부강촌을 거쳐서 올것 같고 길림쪽에서 오는 동무들도 부강촌을 경유할수 있는데 그 동무들에게 련락을 띄워야 할것 같습니다.》 《그건 뭘 그런 군색스런 놀음을 한단말이요.》 하고 박훈이가 대바람에 얼굴이 시뻘개서 맞받아쳤다. 《그까짓 조그만 동네 하나가 반동을 한다고 해서 무장투쟁에 지장을 받을게 뭐란말이요. 그런 동네 하나도 요정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와 어떻게 싸워이기겠소.》 《그게 어째 작은 동네 하나의 문제겠소? 적들이 계통적으로 음모를 꾸민다고 하지 않소? 나는 아무래도 박훈동무가 문제를 너무 쉽게 보는것 같구만.》 구당비서 김정룡이 펄펄 뛰는 박훈을 달래듯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쉽지 않으면 무엇이 어렵단말이요. 여보, 거 괜히 신중신중 하다가 언제 혁명을 하겠소. 구데기 무서워 장 못담그겠소!》 《허허-》 김정룡은 어처구니없다는듯 김빠진 웃음소리를 내더니 아까보다는 퍽 여무진 어조로 박아서 말했다. 《구데기는 무섭지 않다 하더라도 독깨질가봐 쥐를 못치는 경우도 있단말이요. 이제 박훈동무가 우리 사람들을 여라문명 데리고가서 부강촌을 친다고 합시다. 그건 물론 어렵지 않게 쓸어버릴수 있겠지요.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건 부강촌자체에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우사령부와도, 안도경찰과도 관련되여있고 그뒤에 또 왜놈특무기관이 틀고있는것만큼 더 악질적인 특무를 박아넣을것은 뻔하지요. 그다음 또 박훈동무가 가서 들이친다고 합시다.》 《여보, 어째 매번 박훈이만 친다고 하오. 여기 허재률이나 계영춘이는 손발을 붙잡아맸소?》 박훈이 어쩐지 자기 혼자 궁지로 몰려들고싶지 않은지 말허리를 자르고 나섰다. 《그럼 두번째는 허재률이가 치고 세번째는 계영춘이가 치고 그 다음은 또 김정룡이가 치고 이렇게 차례차례로 쳐봅시다레.》 김정룡이 이처럼 무슨 물건흥정이나 하듯 말꼬리를 눙치자 다른 사람들은 빙그레 웃고 박훈이는 소태씹은 상이 되였다. 김정룡은 그런것은 상관없다는듯 주근주근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사령이 거기다 한개중대쯤 주둔시키자고 할수 있고 경찰에서는 분서를 내오자고 하지나 않겠는지. 그래도 그건 별게 아니지요. 나중엔 차광수동무가 나머지 인원들을 통털어 데리고가서 그걸 답새겨버리면 될테니까. 그러나 결국 그렇게 되면 김일성동지의 유격전쟁구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유격대를 조직하자는것은 한개 부강촌이나 쓸어버리자는것은 결코 아닌데 결과적으로 부강촌을 치다가 말게 되지 않겠는가요.》 《거 말을 시시나하게 하는군. 뒤가 어떻게 되겠는지야 쳐놓고봐야 알지 미리부터 부들부들 떨건 뭔고.》 박훈이 속이 내려가지 않아 두덜거리자 차광수가 엄하게 쏘아보았다. 《여보, 동지의 의견이 옳으면 접수할줄 알아야지 왜 두덜거리오?》 《말도 못하겠소?》 박훈은 얼굴이 벌개가지고 외면하면서 다시한번 두덜거렸다. 차광수는 그에는 더 개의치 않고 김정룡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정룡동무는 어떻게 하자는거요?》 《나도 지금 당장 뾰족한 수는 없는데 우선 내가 그 동네 반동두목인 안윤재를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잘 타일러봐서 들으면 좋고 안들으면 누구 한사람 박아넣어서 외부로부터 허물어내자는겁니다.》 《그건 무슨 타산이 있어서 하는 소리요? 아니면 답답한김에 해보는 소리요? 김정룡동무가 안윤재를 만나봤대야 결과는 뻔한거요. 안도구당비서가 찾아왔다 하면 그자리서 잡아넣고 쏘아죽이자고 하겠지. 사람을 박아넣는다는것도 그렇소. 그전에 안도조직에서 두번이나 사람을 들이밀었다가 다 실패했지요. 명월구에서도 몇차례나 사람을 보냈다가 다 실패했기때문에 부강촌의 오정혁동무문제가 크게 취급되였단말이요. 설사 사람을 박아넣는데 성공했다고 합시다. 그럼 그 사람이 부강촌문제를 원만히 풀 때까지 우리는 외부와 련계를 끊고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겠는가? 안도는 직접 김일성동지의 지도를 받을수 있으니 별일 없다쳐도 안도이외의 조직은 어떻게 하라는거요? 나날이 변화발전하는 복잡한 정세속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투쟁속에서 핵심을 키워서 무장대오를 꾸리고 총을 빼앗아 메워야 하는 어려운 과업을 아무런 경험도 없는 동무들이 직접 김일성동지로부터 받아가지고 나갔는데 그 동무들에게 그때그때 지도를 주지 않고 방임해도 일없다는거요?》 김정룡과 박훈의 론쟁을 중재하는것처럼 온건하게 시작된 차광수의 말은 내용이 심화됨에 따라 어조까지 격렬해졌다. 사람이 소박하고 솔직한 김정룡은 벌써 자기의 의견이 정황에 맞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고 사과하듯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지으며 고개를 기웃하였다. 박훈이도 펄펄하던 기상이 저으기 꺾이였다. 차광수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사태의 엄중성이 뚜렷이 느껴져서 함부로 입을 벌리게 되지 않았다. 《그 너절한놈의 자식만 아니더면 내가 부강촌에 들어가보겠는데…》 허재률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니까 이제는 문제의 요점이 상당히 명백해졌습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라앉으려는 론의를 부추기시듯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부강촌을 혁명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 요점입니다. 그러자면 누군가가 부강촌에 침투해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한편 부강촌이 혁명화되기를 기다릴 사이없이 우리는 안도에서 유격대오를 꾸리는 사업과 함께 동만일대에서 유격전쟁을 준비하는 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도와 간도사이에는 장백산줄기와 영액령산줄기의 대원시림때문에 오직 부강촌을 거쳐야만 안도와 간도의 다른 지구들을 련결할수 있습니다. 돈화를 거쳐 오게 되는 길서지구와의 련계도 목단령산줄기때문에 부강촌을 거치게 됩니다. 자, 이런 조건에서 부강촌의 혁명화와 간도지구전반에 대한 지도를 보장하는 이 두가지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한꺼번에 풀수 있겠는가 서슴없이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그러나 아무도 입을 벌리는 사람이 없었다. 차광수는 물집이 잡힌 입술을 짓씹으며 머리를 움켜쥐였다. 입귀에서 가는 피가 배여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숨만 가쁘게 쉴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좋습니다. 그럼 밤도 깊었는데 오늘은 이만하고 각자 연구를 했다가 래일 다시 토론해봅시다. 모두 피곤하겠는데 우리도 눈을 좀 붙입시다.》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자 차광수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한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슨 말이냐는듯 그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차광수는 말을 이었다. 《부강촌의 혁명화문제와 전반적인 지도를 보장하는 문제를 반드시 하나로 련결시켜보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차광수의 눈길에는 절절하고 안타까운것이 그렁하게 고여있었다. 《차동무.》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하며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혁명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에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한가지 묻겠는데 차동무가 부강촌앞에서 총질을 할 때 부강촌의 보위단원들이 동무를 보았습니까 못보았습니까?》 차광수는 대답을 못했다. 《사태는 어느 정도 명백한것입니다. 차동무자신이 이 문제의 요점을 다 파악하고있는것만큼 무엇보다도 부강촌에 지도적성원이 들어가야 한다는것은 부인하지 못할것입니다. 누가 들어가는가 하는것도 어느 정도 륜곽을 그을수 있습니다. 적들이 부강촌을 병모가지처럼 틀어쥐고 안도와 다른 간도지방을 격페시켜 새로 탄생하는 유격대를 조롱박같은 안도오지에 가두어넣자는 조건에서 우리는 안도에서 시범적인 유격대를 조직하는 사업과 간도의 전반투쟁을 지도할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결절점인 부강촌에 나가야 하는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건 래일 다시 토론해봅시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듣고서야 차광수가 무엇때문에 그처럼 절절하게 최초의 자기 의견과 모순되는 제기를 하였는가 하는것을 깨달은 다른 사람들은 낯빛이 긴장되여 벌떡벌떡 일어났으나 김일성동지는 이미 바라지를 열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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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 동무들이 나누어든 집들을 한바퀴 돌아보시고 마감으로 옥섬이가 끌고온 달구지곁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시니 동쪽하늘이 휘연히 밝아왔다. 새벽바람이 터지면서 잠시 잠잠했던 눈보라가 다시 설레이고 그우에 희뜩희뜩 새로운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어깨에 쌓이는 눈도 볼을 쳐갈기는 눈보라도 느끼지 못하시고 아무 질정없이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지금쯤 부강촌에서 또 누가 잡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이께서는 주먹을 움켜쥐시고 걸음을 다우치시였다. 무장을 잡으라는 호소를 받들고 사방에서 동무들이 찾아온다. 그들에게 당장 메워줄 총도 없거니와 우선 거처할 자리부터가 문제이다. 오가자에서 떠나 간도에 나오신후 지하에서 조직을 꾸려나가는것도 힘드는 일이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약과다. 맨몸으로 다니기도 힘드는 때 조선사람이나 공산주의자라면 덮어놓고 잡아죽이는 반동경찰과 구국군부대가 점거한 지역에서 무장을 가지고있다는것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두사람이 아니라 일제를 반대하여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벌릴만큼 무장대오를 꾸려야 하는것이다. 부강촌을 적들이 주목하고있다는것은 이미 여러모로 징후가 드러나있었다. 그러나 그사이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겹치다나니 이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해보실 여유가 없었다. 최만득이의 운명을 무지한 인간들의 손아귀에 내맡길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때문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시였을 때까지도 부강촌이 가지고있는 문제점의 전모를 생각해보시지 않았다. 강영진의 급보를 받고 집을 나서실 때 어머님께서는 수심이 비끼신 얼굴로 말씀하시였다. 《10리 방뚝이 개미굴때문에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앞뒤를 잘 살펴가며 조처해라.》 그때는 그 말씀이 단순히 몸을 조심하라는 당부로만 생각하시였다. 푸르하기슭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계영춘의 정찰보고를 기다리실 때야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단지 몸을 조심하라는 당부가 아니라 부강촌문제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이였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오늘 지도성원들의 회의에서도 다 밝혀졌지만 만일 적들이 안도에서 유격대가 조직되고있다는것을 알고 아직 군사작전을 벌리지 못하는 조건에서 그것을 파탄시키자는 생각이 있다면 첫째로 안도땅을 가로타고앉은 반일부대와 공산주의자들사이에 쐐기를 박자 할것이고 다음으로는 이 부강촌에 반공요충을 꾸리자고 할것은 너무나 당연한것이였다. 겉보기는 하나의 보잘것없는 산골동네지만 그것은 일제가 조선혁명의 불길을 꺼버리기 위하여 내쏘는 독소의 뿌무개구멍같은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방임하다가는 앞으로 조선혁명의 책원지이며 당면한 무장투쟁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안도와 광활한 지대, 모든 조직과의 련계를 끊기우고 수많은 혁명가들을 희생시키며 나아가서 초미의 문제로 나서고있는 반일부대와의 관계문제를 더 악화시킬수도 있다. 그러나 부강촌을 혁명화하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것으로 알려져있다. 안도에서도, 명월구에서도 기왕에 여러번 부강촌에 조직을 꾸리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안윤재의 지반이 너무나 강한데다 그에게 총까지 대준 우사령의 영향이 계속 뻗쳐오기때문에 결과는 조직을 꾸리자는 시도자체만 좌절된것이 아니라 인명손실까지 적잖게 냈던것이다. 오늘 최만득이는 가까스로 죽음에서 건져냈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혁명을 해보겠다고, 총을 들고 일제와 맞서 한번 싸워보겠다는 열망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찾아오던 열혈청년들이 붙잡혀죽어가는지 어떻게 알랴. 김일성동지께서는 볼을 쳐갈기는 눈보라에 숨이 막혀오시여 잠시 걸음을 멈추시였다. 캄캄한 어둠속에 우-우- 소리를 치며 이리떼같은 눈보라가 가로 비껴 달려간다. 그와 함께 여태 생각에 잠겨 걸으실 때는 못느끼시던 피로가 한꺼번에 덮쳐들었다. 저 눈보라를 맞받아 걸어낼것 같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하기는 어제 첫새벽에 무주툰에서 떠나 부강촌으로 달려가던 그때부터 줄곧 한지에서 몸을 얼쿠시고 종일 걷다싶이 하셨으니 피곤이 몰릴수밖에 없었다. 이제 새로 걸음을 떼놓는다는것이 엄청난 일같이 생각되시여 어둠과 눈보라에 묻혀있는 길을 멀리 내다보시였다. 소사하에서 이쯤 나서면 무주툰의 불빛이 바라보일 때도 되였는데 아무리 살펴봐야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낭댄지 수수댄지 모를 낟알그루가 산산이 뒤엉켜서 서로 매질하듯 몸부림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힘겹게 뒤를 돌아보시였다. 소사하의 불빛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무주툰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것은 멀어서가 아니라 눈보라때문인것 같다. 빨리 가자.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마음을 놓게 해드린 다음 곧 부강촌문제를 풀어야겠다. 어떻게 풀것인가? 우선 오정혁이를 들어보낼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자기 마을을 혁명화할 생각은 단념해버린 사람이지만 어쨌든 그를 통해야만 안도조직과도 통하고 외부조직과도 통하는 련락망을 조직할수 있고 겸하여 부강촌자체의 혁명화를 위한 발판을 만들수 있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가 아프시였다. 아무리 더듬어보아야 혁명전반을 령도하는 거점을 반동의 초점과 같은 가장 악질적인 벽촌에 정한 전례를 생각해내실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혁명의 요구가 그것을 바란다면 전례가 있건없건 가야 할것이다. 문제는 전례가 있고 없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그 산골동네에 박혀서 어떻게 광활한 땅에서 각이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혁명의 전국면을 장악하고 신속민활한 령도를 보장하겠는가 하는것이다. 아무튼 빨리 가야지…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생각하시며 걸음을 옮겨놓으시는데 눈보라밖에 보이지 않던 앞길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긴장되시였다. 이런 때 길우에 사람이 나선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누굴가? 급한 병자라도 생겼는가? 찬찬히 살펴봐야 어슴푸레 륜곽이 그려지는것은 한사람이였다. 그 사람도 눈보라때문에 앞을 가려볼 경황이 없는지 머리를 깊이 숙이고 걷는다. 점점 다가오는것을 보니 녀자였다. 목도리를 단단히 돌려감은 형상이 떠올랐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혹시 하는 생각을 하시였다. 그래서 마주 걸어가며 눈정기를 모으시는데 어느새 저쪽에서 《성주가 아니냐?》하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김일성동지의 가슴은 확 하고 달아오르시였다. 어머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이 사나운 눈보라속에서 추위를 느낄새도 없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괴롭게 모대기시던 그이의 답답한 가슴에 따뜻한 불을 지펴주는듯하였다. 《어머니.》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달음에 달려가시였다. 어머님께서도 마주 달려오시다가 거의 손을 맞잡게 됐을 때 비칠하고 한쪽발이 지쳐서 위태롭게 몸을 가누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급히 어머님을 부축해드리며 《웬일입니까?》하고 숨가쁘게 물으시였다. 《아이구, 숫눈길인데 왜 이렇게 미끄러우냐. 이제는 됐다. 눈을 수태 맞았구나.》 하고 어머님께서는 부축하시는 아드님의 어깨우에 쌓인 눈을 털어주시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로 가십니까?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소사하에 가는길이다.》 《소사하에는 왜요?》 《부녀회에 보내줄 책도 있고 또… 아무래도 네가 혼자 올것 같길래 밥을 지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 사람들을 데리러왔다.》 《누구 말입니까?》 《김정룡동무가 한발 먼저 왔더구나. 그 사람 말을 듣자니 온것이 최만득이뿐이 아니라 옥섬이도 오고 차광수도 왔다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옥섬이만은 그애 오래비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무심히 있을수 없지 않느냐?》 《참, 그렇다고 이렇게 날도 밝지 않은 눈보라속에 나오실것까지야 있습니까? 어련히 데려가지 않을라구요.》 《에미 마음이란 그렇지 않단다. 네가 부강촌으로 떠난 다음 그냥 가슴이 진정되지 않더니 이런 일이 있자고 그랬나보다. 김정룡동무 말을 들으니 그애가 총을 뺏어가지고 왔다면서? 녀자몸으로 그런 일을 하자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니, 나는 그애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짐작이 간다. 그걸 생각하니 그애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수 없더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쩐지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셨다. 《어머니, 그럼 돌아가십시오. 내가 그 사람들을 데리고가겠습니다. 철주를 저한테 보냈으면 될것을 그러지 않았습니까?》 《철주는 사하촌에 연예대공연을 하러 나가고 없다. 내 마음이 급해서 그런데 그애를 보내서는 뭘하겠니. 너나 피곤하겠는데 한걸음 먼저 가서 기다려라. 내 인차 뒤따라갈게.》 《참 어머니도… 내가 어머니를 이런 벌판에 두고 어떻게 혼자 갑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니의 한쪽팔을 부축하시며 소사하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그럼 같이 가자. 내가 너하고 같이 길을 걸어보는것도 참 오래간만이구나.》 어머님께서는 목도리를 끌러 아드님의 목에 둘러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건 왜 이러십니까? 나는 춥지 않습니다.》 《그래도 써라. 나는 이렇게 또 두르고있지 않니, 사람앞에 나설 때라면 몰라도 에미하고 같이 인적없는 길을 가는데 목도리를 좀 둘렀다고 뭐라겠니.》 하고 어머님께서는 목도리를 꼭꼭 여며주시며 측은한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무송에 있을 때 네가 겨울방학에 돌아오면 한방학에 한두번은 이렇게 같이 길을 걸을 때도 있었던것 같은데 이제는 네 얼굴을 보기도 힘이 드는구나. 앞으로는 더 힘이 들테지…》 하고 어머님께서는 어둠속에서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머님의 말씀은 아드님과 함께 걸으시는 즐거움때문에 앙양되여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시련을 예감하시는듯 그 어떤 긴장에 떨리고있었다. 《어머니.》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의 손을 꼭 싸쥐시며 말씀하시였다. 《내가 방금 어머니를 이런 벌판에 두고 어떻게 떠나느냐고 했지만 실상 여태 내가 그렇게 해온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얼핏 아드님을 돌아보시였다. 《네 마음이 약해지는것이 아니냐? 재작년 여름 최효열이가 조선으로 나갈 때 가지고온 네 편지를 보고 나도 마음을 다시한번 굳게 다졌다. 나는 네가 효성스러운 자식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라일이 중해서 에미곁을 떠나간다면 나도 오히려 기뻐할것이다. 다행히 무장을 잡는 일을 여기 안도에서 시작한다니 우리 모자가 이렇게 함께 걷는 일도 있게 되는것이지 우리가 사사로운 모자간의 정에 끌려 함께 있어가지고야 되겠느냐.》 《어머니의 굳센 마음은 나도 압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안타까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어머니 마음이 그렇기때문에 나도 나다니기는 했지만 여기 와서 일을 보게 되여 잠시나마 어머니를 모시고있게 되는것이 여간만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과중한 부담이 되는것만 같아 마음이 편안치 못한데 그나마 오래 있을것 같지도 못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다시 아드님을 말없이 돌아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될수록 눈보라를 막아주시려고 어머님보다 한걸음쯤 앞서나가군하시였다. 《어디로 가게 되느냐?》 한참이나 침묵이 흐른후에 어머님께서 조용히 물으시는 말씀이였다. 《아직 확고한 결심은 못했고 동무들과 토론도 더 해봐야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내가 부강촌에 나가야 할것 같습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차츰 길우가 희붐해지고 바람은 더욱 앙칼진 소리를 내였다. 《김정룡동무의 말을 듣고 나도 이런 일이 있겠구나 대개는 짐작했다. 그래 동무들과 의논하면 그 사람들이 너를 보낼것 같으냐. 김정룡동무도 그리고 김정삼이 그사람도 말하는것이 네가 이번에 대사하까지 나간것도 그리 탐탁해하는것 같질 않더라. 그 사람들이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이 에미도 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크지 않은 동네에 그럴듯한 명목으로 들어박혀서 독자적으로 모든 문제를 판단하고 처리해야겠는데 차광수동무가 들어가겠습니까, 계영춘동무가 들어가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동네 초입에서 잡히고말것입니다. 그렇다고 농촌냄새가 나는 사람을 들여보내자니 그 동무들가운데는 아직 간도쪽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독자적으로 풀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가지 않고는 풀리지 않을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선 명월구에 나가 부강촌에서 온 우리 동무를 만나 토론해보겠습니다. 부강촌에서 온 오정혁이라는 동무가 지금 명월구에 있습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어머님께서는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휘몰려왔으나 자욱한 눈보라뒤로 밝아오는 새벽기운이 력력히 느껴졌다. 길을 걷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머님은 어두울 때보다 자주 발이 미끄러져 위태롭게 비칠거리군하시였다. 어머님의 마음속을 생각하실 때 김일성동지께서도 더 말씀을 하시기가 주저되시였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깜빡깜빡 지새는 소사하동네의 불빛이 바라보였다. 어머님께서는 문득 어깨에 쌓인 눈을 터시였다. 《내가 부녀회장을 잠시 만나고 올테니 그사이 그사람들 길차비를 얼른 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그 집에서 조반차비를 할지 모른다.》 너무나 범상하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신 어머님께서는 아드님께서 부축해드리는 팔을 뽑으시고 좀 엄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부강촌에 네가 들어가야 한다면 가야지. 어떻게 하겠니. 그런데 네가 떠나가면 여기 일은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나도 쉽게 질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 일만이라면 믿을만한 동무들이 많으니까 큰 문제가 없겠는데 다른 지방에서 올라오는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것이 큰 걱정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실제조건이 좀 어렵더라도 내가 부강촌에 나가앉아서 이쪽저쪽 일을 다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것입니다. 게다가 공연히 토기점골로 이사할 차비를 시작해서 그것도 걱정됩니다.》 《이사는 아무 걱정 말어라. 그까짓 3간집 세간을 옮기는것이 하상 무슨 걱정이란말이냐. 내가 철주를 데리고 다할수 있다.》 《어머니가 몸만 성하시다면야 내가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김정룡동무가 제기하는대로 해동할 때까지는 기왕 토기점골에 있는 그 동무의 집을 거점으로 정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눈보라속에 서계시는 어머님의 얼굴에는 측은한 정과 수심이 감출수 없이 비껴있었으나 눈빛은 엄하시였다. 《아무래도 에미때문에 네 마음이 흔들리는것 같구나. 내가 네하는 일을 돕자고 힘껏 뛰느라 하는데 그래도 짐만 되는것 같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말이냐. 네가 설마 이 에미의 마음을 모르지 않겠는데 이런 중한 고비에 무엇때문에 탕개를 늦추고 잔걱정에 사로잡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느냐. 남자가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한번 뜻을 가다듬고 일어났으면 바다를 건느는 새와 같이 저쪽 기슭에 가닿기전에는 어디에도 깃들일 생각을 말아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어머님의 팔을 부축하시였다. 언제 다시 어머님을 모시고 이런 길을 함께 걸을 날이 있을것인가 생각하시니 얼마 남지 않은 소사하길이, 그리고 점점 밝아오는 새벽이 안타깝게 느껴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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