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2회)

제 1 편

 

19

 

돈화거리에는 여전히 왜놈군대들이 차넘쳤다. 날씨가 차츰 더 추워지니 정거장에서 차시간을 기다리는놈들이 인가쪽으로 게바라나와서 위태롭기가 짝이 없었다.

옥섬은 아무래도 혼자 련락소의 빈집을 지키고있기가 어렵게 되였다. 차광수는 길림에서 돌아오는길에 잠시 들려서 자기는 명월구까지 나갔다가 여기에 볼일이 있어 다시 올것 같은데 그사이 진한정동무가 올테니 그가 권하는대로 주서향의 집에 가있으라고 하였다.

자기를 안도로 데려갈데 대해서는 문제로 삼지부터 않았다.

옥섬은 주서향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안다 해야 그런 집에 가있고싶지 않았다. 정 안도로 갈수 없다면 차라리 이 집에 그냥 배겨있으면서 조직의 일을 보는편이 훨씬 나을것이다. 전번 차광수가 하던 말과 같이 무장투쟁을 벌린다 하지만 아직은 무장대를 비밀리에 꾸리는 단계인것만큼 자기같은 녀자가 엇섞여돌아가기 어려운 점도 있을것이다. 그렇다고 안도땅 넓은곳에 내 몸 하나 의지할데가 없을것인가.

그냥 대답을 안하니 차광수는 사흘 있다가 다시 오겠으니 그때까지 옮기라고 하였다. 이 집에 있을 사람은 자기가 명월구에 갔다가 올 때 함께 데리고 온다는것이였다.

기대가 허물어진 옥섬은 사흘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오빠의 원쑤를 갚겠다는데 그는 무엇때문에 이 심정을 알아줄 대신 무슨 불쌍한 아이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줄 생각만 하는가. 내가 녀자이기때문일가? 아니다. 고유수에서 들은 소리만 해도 얼마나 용감한 처녀들의 이야기가 많았는가. 나를 아직 농사밖에 모르는 녀자로 아는것이다. 그리고 오빠가 왜놈들의 감옥에서 처형되여도 눈물이나 흘리고있을 그런 무맥한 인간으로 아는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눈물만 쥐여짜고있을수 없다. 내 오빠에게 그런 불행이 없다 해도 온 겨레가 왜놈치는 무장로선에 준비하라고 호소하고있는데 그 첫 싸움길에서 피를 휘뿌리며 쓰러진 오빠를 둔 내가 왜 뒤전에 밀려나서 남의 집 신세나 지고있단말인가.

옥섬 빨래를 삶느라고 한아궁이 장작을 쓸어넣은 부엌바닥에 앉아 부지깽이 쥔 손을 턱에 받치고 생각에 잠겼다. 어룽어룽 너울거리는 불길을 바라보느라니 세차게 타번지는 무장투쟁의 불길이 바로 눈앞에 뒤설레이고있는듯하였다.

옥섬은 초조하여 치마말기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장을 꺼냈다. 김일성동지의 지시로 각 조직에 내려보내는 선전물이였다. 련락원에게 전하면서 하도 내용이 제 심정과 비슷하여 한장 뽑아둔것이였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나, 아우를 잃은 무산청년들아! 금강석같이 굳고굳은 투지로 이를 갈고 주먹을 쥐고 무산계급 총전선마당으로 나와 판가리싸움에서 원쑤를 복수하자!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피끓어 넘치는 청년들아! 신을 든든히 신고 오라, 무장로선으로 준비하라.

동무들아! 단결하라! 준비하라! 무장로선에 총동원하라!

옥섬은 등사물을 가슴에 꼭 대고 그러쥐였다. 이거야말로 제 심정이 아닌가. 왜놈때문에 부모를 다 잃고 오빠를 왜놈의 교수대에 보낸 내가 총을 잡지 않고 어느 부자집 뒤고방에 가앉아있다니… 김일성동지는 무장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무장, 어떻게 하면 무장을 해결할것인가. 내가 총만 들고나서면 차광수도 나를 연약한 녀자로만 보지 못할것이다.

마당쪽에서 뚜걱뚜걱하는 발자국소리가 났다. 옥섬은 소스라쳐 선전물을 치마말기에 도로 집어넣고 부엌문을 빠끔히 열어보았다.

개털외투에 개털모자를 쓴 왜놈군대 두놈이 팔장을 낀 두팔사이에 총을 그러안고 발이 시리다고 강둥강둥 뛰며 땔나무를 뒤적거리고있다.

여기는 강기슭이라 돈화역과는 퍼그나 떨어진곳인데 웬놈들이 여기까지 왔는가 해서 좀 더 먼곳을 살펴보니 길가에 가려놓은 짚낟가리옆에 몇놈이 벌써 불을 질러놓고 빙 둘러앉아있다. 아마 짚으로는 불담이 좋지 못하니 어디서 장작이나 섶나무를 끌어가자고 여기까지 바라나온것 같았다.

옥섬은 공연히 가슴이 활랑거려 부엌문을 살그머니 닫고 돌아섰다. 나무가리를 헐어내리는 소리가 난다. 나가서 소리를 칠것인가? 그 짐승같은놈들이 처녀가 소리치는것쯤 띠끔해하기나 할것인가, 그렇다고 저놈들이 나무를 다 헐어가도록 버려둘수도 없지 않는가.

어쨌든 인기척을 내여 저놈들이 함부로 로략질을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옥섬은 와당탕 소리나게 빨래함지를 부뚜막우에 내려놓고 삶은 빨래를 빨래방치로 끄집어냈다. 이런 빨래는 가지수는 많지 않지만 귀한 손님들을 위한 홑이불이요 베게잇, 방석잇따위가 돼서 깨끗이 빨아야 한다는 《나고야려관》의 당부였다. 그래서 양재물을 두고 삶아냈다.

옥섬이가 이 빈집에 거처하면서 《나고야려관》의 빨래를 맡아하게 된데는 조직의 심중한 고려가 있었다. 돈화에 령사관분관이 정식으로 서기까지는 《나고야려관》이 왜놈들이 동만지구에서 음모를 꾸미는 모의터로 리용되였다. 후꾸다 특파원이라는자가 돈화에 오면 령사관분관이 선 지금도 의례 《나고야려관》에서 묵었다.

려관에 어떤놈이 드나드는지, 그자들이 어디로 가며 무엇을 쑥덕거리는지 이런것도 알아내야 하였다.

물론 그런것을 알아내는것은 직접 려관에서 객부심부름을 하는 순옥이라는 소선대원이 하지만 그것을 조직에 전하는것은 옥섬의 임무였다.

이래저래 옥섬이가 하는 일도, 그가 지키고있는 이 빈집도 언제나 팽팽한 긴장속에 살아갈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지나가는 왜놈들까지 진짜 무슨 빈집이라도 헐어가듯하자고 드니 빨래방치로 상판이라도 후려갈기고싶었다. 더구나 그 왜놈들이 오빠를 학살했다는 생각이 들자 입술이 앙다물려졌다.

부엌에서 와당탕거리는 소리가 나니 나무단을 끌어가던놈들이 부엌문을 열어보았다. 김이 자욱히 서린속을 기웃거리던놈은 《호-》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질렀다. 또 한놈은 《꾸냥까?》하고 김빠진 소리를 내였다. 처녀인가 하고 묻는 소리 같았으나 옥섬에게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뭐예요?

옥섬은 야무지게 소리쳤다.

《모에?

두 왜놈졸병은 옥섬의 말을 받아외우더니 별안간 킬킬 웃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뚜벅뚜벅 들어왔다. 한놈은 등디목에 올라서서 방안을 살펴본다. 아무리 살펴봐야 옥섬이가 덮고자는 헌 담요 한장이 절반 접힌채 바닥에 깔려있을뿐 옷가지 하나, 궤짝 하나 없는 휑한 방이였다. 두놈이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한놈은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아궁이에 두손을 펼쳐댄다. 그놈은 어깨에 걸친 총이 건사하기 말짼지 부뚜막에 기대세우더니 옥섬을 돌아보고 제딴에는 아양스럽게 웃으며 두손을 싹싹 맞비볐다. 따끈따끈한게 기분이 좋다는 수작이였다. 그사이 다른놈이 길가까지 달려가더니 짚낟가리앞에 모닥불을 피우고있는 무리들에게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옥섬은 그쪽에 있던놈들마저 불을 내쳐두고 으슬렁으슬렁 걸어오는바람에 긴장되였다. 저놈들이 다 모여들어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 비록 환한 대낮이기는 하지만 처녀 혼자라는것을 알면 본시 포악한 무리들이라 얌전하게 굴 까닭이 없다.

《나가라요!

옥섬은 빨래방치를 들고 부엌문을 가리키며 야무지게 소리쳤다.

두 왜놈은 옥섬이가 만만찮게 나오니 좀 뗑해졌는지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무언가 지껄였다. 눈치로 보아 이 녀자가 뭐라고 하는가, 나가라는것은 아닌가? 설마 일본군대를 나가라고 하겠는가 하는 소리같았다. 결국 어떻게 합의를 보았는지 한놈이 눈을 딱 부릅뜨고 제깐에는 제법 위엄차게 꿱 소리쳤다. 보매 두놈 다 무식하고 어리석은것들인데 총을 쥐고보니 천하가 다 제것인듯싶은 모양이다. 옥섬은 그 순간에도 총생각을 하였다. 이런 인간같지 않은것들도 총을 잡고는 남의 집 부엌에서 주인행세를 하자고 들지 않는가. 그사이 바깥에서 세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왔다.

옥섬은 차라리 몸을 피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얼른 빨래함지를 이고 일어섰다. 만약을 생각하여 빨래방치를 함지에 찌르지 않고 아예 한손에 움켜쥐고 걸었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가는 옥섬을 왜놈들은 뗑해서 바라보았다.

늘 빨래를 하던 강가에 나오니 얼음구뎅이는 다시 얼어붙었다. 집에서 철장대를 가지고나와야 할걸 덤비노라고 부엌앞에까지 내놓고는 그만 잊어버렸다.

다행히 머지않은곳에 빨래를 나온 아낙네가 있어서 도끼를 빌려가지고 다시 얼음구멍을 냈다.

이제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여 앞으로 빨래를 계속하기는 어렵게 되였다. 옥섬은 만일 이 강가에서 련락임무를 수행해야 할 과업만 아니라면 강가에까지 나오지도 않을것이다.

김을 문문 피워올리던 빨래는 어느새 동태짝처럼 꾸등꾸등 얼었다. 한감씩 뜯어내면 막대기부러지는 소리가 나군한다. 그래도 물에 헹구면 얼음이 녹고 때국과 재물기운도 빠져나갔다.

그대신 물속에 손을 담그면 예리한 칼로 손목을 잘라내는것 같았다.

왜놈들만 아니더면 부엌에서 대충 주물러가지고 나오면 훨씬 수월하게 빨수 있는것을 오늘은 큰 신고를 하게 되였다. 하기는 오늘 차광수가 오겠다고 했는데 언제 오겠는지… 그가 올 때가지 기다리자면 일감이 오히려 모자라지 않겠는지 모르겠다.

옥섬은 어느새 살얼음이 잡히기 시작하는 구뎅이를 빨래방치로 두들겨까놓고 전날 모닥불을 놓던 자리에 왔다. 바람에 날린 검부레기들을 주어모아쌓고 치마말기에서 성냥을 꺼냈다.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고있으려니 저 웃쪽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네도 몸을 녹이러 왔다.

한시간 남짓 걸려서 빨래를 다 해가지고 돌아오는데 저만치 순옥이가 숨을 헐썩거리며 달려왔다.

《아니, 웬일이냐? 어디로 가니?

《언니, 야단났어요. 집에 가지 말아요.

하고 순옥은 꽁꽁 언 옥섬의 한손을 부여잡았다.

《왜 그러니?

옥섬은 순옥이가 손을 잡아흔드는바람에 위태롭게 기울거리는 빨래함지를 가까스로 가누며 물었다.

《언니네 집에 왜놈이 있어요. 난 그런것도 모르고 달려갔다가 하마트면 잡힐번했어요.

《그놈들이 아직 있더냐?

《아니 그럼 언닌 알아요? 여러놈이 왔어요?

《내가 빨래하러 가자고 하는데 다섯놈이나 쓸어왔더구나. 집에서 뭘하더냐?

옥섬은 걸음을 옮겨놓으며 물었다.

《안에서는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순옥이도 따라걸으며 대답했다.

《한놈이 부엌앞에 짚을 깔고앉아 졸고있어요. 집안에서는 조용한게 아무 소리도 못들었어요.

《그럼 모두 잠든게로구나.

옥섬은 차츰 걸음이 떠졌다. 이대로 집에 갔다가 무슨 일을 겪을지 알수 없다. 어디 이웃에 가서 몸을 녹이고있다가 그놈들이 다 없어진 다음에 들어갈수밖에 없을것 같았다.

《넌 어떻게 왔니?

《저, 차광수동지가 마호로 나가는 큰 길가에서 기다리겠대요.

옥섬은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같이 머리속을 스치였다. 딴사람이 듣기에는 마호로 나가는 큰 길가라는것은 너무나 막연한것이지만 옥섬에게는 목단강의 흐름이 바투 다가붙은 백양나무 늘어선 그 강기슭이 선명하게 안겨왔다. 진주캐는 배들이 오르내릴뿐 인적드문 그 강기슭까지 어떻게 걸어가게 됐는지 그건 딱히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도 처음엔 지금의 빨래터에서 만났었다. 고유수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는 때라 옥섬은 아직 돈화의 분위기에 익숙되지 못했다. 강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도 많았고 가까운곳에 나루터도 있었다. 그래서 아마 둘이 강기슭을 따라 걷기 시작한것이 그 큰길이 갈라져나가는곳까지 걸어갔던것 같다.

그때 차광수는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안도가 있다고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께서 편찮으시기도 하고 또 형편을 미리 알아보고 장차 벌어질 무장투쟁의 지반을 닦기 위하여 안도로 나가시였다고 했다. 차광수는 그때 우리가 총을 잡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일성동지를 사령관으로 모신 혁명무력이 태여나면 일제를 때려부시고 오빠를 구원할 날도 멀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옥섬은 늘 근엄한 표정에만 잠겨있던 차광수의 얼굴이 소년처럼 순진하게 변하는것을 보고 놀랐다. 옥섬이 역시 철부지소녀처럼 세상 모든 시름을 잊고 차광수의 희망에 넘친 얼굴을 황홀해서 바라보았다. 그때도 두사람사이에 혁명밖에 유난스러운 말은 한마디도 오고간것이 없었다. 굳이 말한다면 차광수는 미래에 속하는 모든것을 복수로 말했다.

《조국이 해방되고 오빠도 구원되면 우리도 고향에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게 될거요. 그때 옥섬동무는 뭘하겠소?

《저야 뭘 할게 따로 있어요, 농사를 짓지요.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같이 평양 만경대에 찾아가면 김일성동지가 얼마나 기뻐하겠소. 하기는 조국이 해방되면 김일성동지는 더 바빠서 고향에 들릴 짬도 없을거요.

《그야 차선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가요?

《나? 나야 뭘 그렇게까지 바쁘겠소. 우리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만경대에 가봅시다. 동무의 오빠도 나도 강반석어머님한테서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모르오.

사실 그 말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인가. 그가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했다 해서 특별히 다른 뜻을 부여한것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워낙 옥섬이가 느끼는 차광수의 사람됨됨이가 그런 말마디에 롱간을 부려 그 속에 다른 뜻을 감추어둘 사람이 아니였다. 그러나 어쨌든 차광수의 사색속에 언제나 자기의 존재가 비껴있다는것을 느낄 때 옥섬은 행복하였고 그의 투박한 말속에 깃들어있는 정에 믿음이 가는것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험한 싸움길로 떠나면서 두사람사이를 싹 갈라놓았다. 마호로 가는 갈림길에서 그가 하자는 말은 뻔한것이다. 자기는 안도로 떠나가고 나는 주서향네 집에서 편안히 지내라는 말을 되풀이할것이다.

《언제까지 오라디?

옥섬은 순간에 입술이 바싹 말라들어 입술이 버시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물었다.

《오늘 오라는 말만 하고 시간은 말하지 않았어요. 거기 어떤 집에서 묵고 래일 새벽에 떠나는게 아닐가요?

그럴수도 있다. 진한정이도 같이 갈수 있고 지방조직에서 부른 동무들을 데리고 갈수도 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하여 그 어방에 무슨 련락소같은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강가에서 만나자면 짧은 겨울해가 저물기전이여야 할것이다.

옥섬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단성있게 말했다.

《얘, 나하고 같이 우리 집에 가자. 가보구 그놈들이 아직도 있으면 이 빨래를 네가 려관으로 좀 가지고가렴. 난 이제 거기 가봐야겠다.

순옥은 말없이 뒤를 따라왔다. 옥섬의 말투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캐여물을 생각을 안한것은 조직에 대한 일이든 개인에 대한것이든 자기가 끼여들 일이 못된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다만 방금 왜놈들이 있는것을 보고 왔는데 그 집에 다시 들어간다는것이 께름직하였다.

달구지길에서 스무나문걸음 떨어져있는 외딴 초가마가리는 아까 왜놈군대들이 불을 피우던 짚가리에 붙어서면 빤히 바라보였다.

《아직 있어요. 부엌앞에 앉아 졸고있지 않아요.

순옥이가 먼저 집쪽을 살펴보고 말했다.

옥섬은 말없이 빨래함지를 내려놓았다.

《들어갈래요?

순옥은 긴장때문에 해쓱하게 질린 옥섬의 얼굴을 바라보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옥섬은 대답없이 빨래함지에서 방치만 찾아들고 도로 순옥의 머리에 함지를 이워주며 말했다.

《어서 가. 난 집안에서 뭘 꺼내가지고 갈게 있어서 그래.

《일없을가요?

《일은 무슨 일? 내가 집주인인데 아무리 왜놈들이라도 설마 주인을 어찌겠니?

순옥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기웃하였다.

옥섬은 그때까지도 무슨 구체적인 계획이 있은것은 아니였다. 다만 운명적인 그 무슨 전환이 자기에게 다가오고있다는 막연한 예감과 불안하고 겁이 나면서도 그 무서운것을 향하여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절박하게 느끼고있었다.

옥섬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몇걸음 걷다가 무엇인가 미진한것을 느끼기도 하고 또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운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는 어떤 해방감같은것을 느끼며 서둘러 순옥에게로 도로 왔다. 그의 뒤모습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고있던 순옥이도 서둘러 마주 다가왔다.

《이것도 가져가.

하고 옥섬은 긴숨을 내쉬며 빨래방치를 내밀었다.

《어찌려고 그래요?

순옥은 기계적으로 빨래방치를 받으며 물었다.

옥섬은 그 말에는 대답않고 왜놈군대가 졸고있는 부엌문앞을 지켜보며 말했다.

《순옥아, 너 다시 이 집에 오지 말아.

《아니 왜 그래요?

《난 차광수동지랑 같이 떠나게 되였어.

《그래요?

순옥은 눈을 커다랗게 흡떴다.

《네가 혹시 모르게 왔다가 적들에게 뒤를 밟힐가봐 귀띔해주는거다.

《다 토론이 있었어요?

순옥은 이상하다는듯이 물었으나 옥섬은 대답을 피했다. 사실 그런 말은 캐물을것도 아니였다.

부엌문앞에 앉아서 잠이 든놈이 몸이 불편한지 허리를 비틀다가 흠칫해서 눈을 떴다. 그리고는 두릿두릿 사위를 살핀다.

옥섬이와 순옥은 소스라쳐 짚낟가리에 몸을 꼭 숨겼다.

보매 다른놈들은 집안에서 잠이 든 모양이고 한놈이 부엌앞에서 보초를 서는 모양이다. 그놈들도 강점지역의 주민들이 자기들을 적대시하며 어느때 죽이려 접어들지 모른다는것을 아는만큼 주의도 들었을것이고 저희들딴에는 조심을 해야 한다는 자각도 없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워낙 심한 추위속에 한지에서 시간을 기다리자니 너무 베차서 인가로 기여든것이 분명했다. 그러고보면 왜놈군대들이 돈화역주변에 넘쳐났지만 9.18당시는 물론 추위가 시작된후에도 정거장마당이나 강가에 총을 엇갈아 세워놓고 야영을 했으면 했지 인가에는 들 생각을 못했다. 인민의 원쑤로 등장한놈들이 인가에 들려 다리를 펴고 잠들지 못할것은 뻔한 일이다. 저놈들은 무리가 많지 못한것으로 보아 어디서 락오했거나 몰래 기여나온놈들일것이다.

《저놈들이 간 다음에 들어가면 안돼요?

보초놈이 다시 턱방아를 찧기 시작하자 순옥이가 옥섬의 치마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언제 갈지 알고 기다리겠니, 너나 어서 가거라.

옥섬은 순옥을 떠밀고 또다시 문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자신의 말과 같이 차광수와 함께 안도로 떠날 결심이였다면 이 집에 들어가서 기어코 가져가야 할것이 무엇인가? 이빠진 사발, 대접 몇개밖에 부엌세간이라고는 없다. 밥도 끓이고 국도 끓이는 중국식솥을 뽑아갈 생각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밤이면 한자락은 깔고 한자락은 덮고 자는 담요가 그중 요긴한 물건이지만 지금 당장 그것을 꼭 가져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고 그런 담요가 있다는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이때 옥섬은 자기가 무엇때문에 무시무시한 왜놈군대가 네댓놈이나 득실거리는 집으로 기어이 들어가야 하는지 그 목적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섬은 발소리를 죽이고 확신성있게 걸어갔으며 보초를 서는 모양인 잠든 왜놈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문을 비죽이 열어보니 부엌은 란장판이였다. 부엌바닥에다 불을 피우고 야전밥통으로 밥을 해먹은 모양이다. 가난하지만 알뜰하게 매질을 하고 물행주를 놓군하던 부뚜막에 그을음이 까맣게 끼고 재가루가 지저분하게 날렸다. 바닥에는 불타다 남은 삭정이에 물을 끼얹어서 숯과 물이 벌창이 됐다. 방안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얼었던 몸이 녹아난데다 밥까지 배불리 먹고나니 식곤이 와서 곯아떨어진 꼴이였다.

옥섬은 특별히 조심하는 빛도 없이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서 신을 신은채 누린내가 풍기는 털외투며 진흙이 게발린 털가죽구두며 군용모포를 말아붙인 네모반듯한 배낭이며 야전밥통이며 하는것들이 얼기설기 뒤엉킨속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모두 군화를 신은채 총을 그러안고 잔다.

옥섬은 방 맨 웃목에 밀어내친 담요를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한방 가득찬듯싶은 왜놈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잠에 곯아떨어진 가운데서도 한놈이 그중 불쌍한 꼴을 하고있었다. 웬 털보놈한테 한절반 깔리여 끙끙 신음소리를 지르면서도 식은땀만 발발 흘릴뿐 눈을 뜨지 못한다.

옥섬은 총을 한손으로 그러안은채 옆의놈을 깔아뭉개다싶이하고있는 털보의 팔을 잡아당겨 저쪽벽으로 돌려놓았다. 팔에 안긴 총이 절컥하고 넘어가면서 비뚤서하게 얹혀있는 털모자를 쳤다. 털보는 상을 찌프리고 뭐라고 욕설을 중얼중얼 하더니 이번에는 반대쪽놈에게 다리를 올려놓았다. 총은 가슴우에 놓여 숨이 쉴 때마다 방바닥에 떨어지려고 위태롭게 건들거린다.

옥섬은 아무 주저도 없이 총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났다. 올라올 때는 발을 옮겨짚을데가 넉넉한것 같았는데 별안간 걸음만 내떼면 넘어질것 같고 그 어떤놈의 팔이나 다리라도 밟아놓을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행동은 시작된것이다. , 바로 이 총이 있어야만 나는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안도로 차광수와 함께 갈수 있으며 이 총이 있어야만 오빠의 원쑤를 갚고 오빠가 이룩하지 못한 혁명승리를 이룩할수가 있는것이다.

옥섬은 다리가 떨리였지만 결코 덤비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런 일을 무수히 해본 사람처럼 침착하게 부엌바닥에 내려서서 담요를 펼치고 총을 둘둘 말았다. 그래놓고봐도 어쩐지 겉모양이 총같이 보일것 같아서 빨래할 때 얼음구멍을 까군하던 철장대와 곡괭이를 가지런히 놓고 나무단매끼를 끌러 칭칭 동였다. 이 아근 사람들은 옥섬이가 그런 잡은것들을 들고다니며 강에 나가 빨래를 하는데 익숙되였다. 이렇게 강가에 나가면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을것이다.

옥섬이가 부엌문을 열고 나오니 짚을 깔고 불쌍하게 앉아있던 놈이 또 눈을 번쩍 떴다. 옥섬은 등줄기로 식은땅이 쭈룩 하고 미끄러져내렸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길쪽으로 걸어갔다. 보초놈은 집주인이라는것을 확인하자 중얼중얼하며 긴장되였던 눈을 다시 게슴츠레 감았다.

옥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짚낟가리옆을 돌아섰다.

《언니, 어델 가요? 그게 뭐예요?

순옥이가 어데 숨어있었는지 따라섰다.

《너 여태 여기 있었니? 어서 려관으로 가! 날 따라왔다간 나도 죽고 너도 죽는다.

옥섬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냥 걸음을 다우쳤다.

순옥은 옥섬이가 들고가는것이 무엇이라는것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리고 옥섬이가 말하는것이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순옥이도 서문쪽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20

 

 

차광수는 달구지저고리의 깃을 헤치고 안에 둘렀던 목수건을 풀어냈다. 세찬 강바람이 그의 손에서 수건뿐아니라 팔목까지도 뽑아가려는듯 사납게 울부짖었다. 이 바람이 멎으면 틀림없이 눈이 쏟아질것이다. 저녁으스름이 밀려드는 얼어붙은 목단강우에 매연이 낀듯 눈구름이 침침하게 드리웠는데 사나운 강바람은 얼어붙은 먼지와 모래까지 긁어다 꽁꽁 언 살에 휘뿌려준다.

옥섬은 어깨를 스치는 목수건을 본체도 않고 자꾸 걷기만 했다. 그까짓 인정은 고맙지도 않다는것이다.

《글쎄 가고 안가는것은 딴문제고 몸이야 얼굴 필요가 있소? 난 안도로 가겠다는것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이 추위에 먼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목도리도 장갑도 없이 집을 나선단말이요?

옥섬은 원망스럽게 돌아보았다.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도 무정할가, 왜놈들이 득실득실하는 방에서 길 떠날 차비를 하고 나오라는 말인가. 물론 차광수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다. 총은 환한 대낮에 들고다닐수가 없어 오는 도중 이삭을 잘라낸 길가의 강냉이밭에 깊숙이 감추어두고 왔다. 차광수를 만나서는 그런 말을 일체 비치지 않았다. 사실은 자기의 심정이랑 결심이랑 다 말하고 오늘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것도 낱낱이 알린 다음 꼭 함께 데려가달라고 사정할 작정이였다. 그런데 정작 만나니 웬일인지 서러운 생각이 앞서고 마음이 꼬여지면서 제가 듣기에도 억지스러운 말만 하게 되였다. 차광수는 처음 만났던 갈림길의 버드나무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헤여질 생각이였으나 옥섬이가 통 말을 하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강가로 데리고 나왔다.

그는 요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초긴장상태에 있었다. 시간의 여유도 없었다.

길림에 도착하니 공청의 핵심들은 저마다 안도로 떠날 생각에 골몰하여 조선인정치범석방음모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었다. 차광수가 길림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자기들을 데리러 왔다고 생각하고 당장 함께 떠나겠다고 덤볐다. 실상 그들중 적당한 사람들을 무장성원으로 선발해서 안도로 보내는것도 절박한 문제였다. 차광수는 아예 북산공원 약왕묘 지하실에 틀고앉아서 제기된 공청원들을 한사람한사람 만났다. 안도로 보낼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리 김일성동지와 토론이 있었기때문에 그로서는 견해가 확고하였지만 찾아오는 조직원들은 모두가 자기야말로 안도에 가야 한다고 내우기는것이고 그 근거 또한 차광수로서는 물리치기 어려운것들이여서 그런 동무들을 지방조직에 고착시키고 당면하여 조선인정치범석방음모에 대처한 분공을 주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차광수는 사흘밤을 붙박이로 밝히며 이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가지는 정치적음모인가 하는것을 강조하고 김일성동지께서 길림공청에 기대를 걸고계시는데 대해서 목이 쉬도록 열을 올려 설복하였다. 공청이 중심이 되여 모든 혁명조직을 발동해서 조선인정치범석방음모의 흉계를 짓부실 선전사업을 포치하고 그중 중요한 사람들의 명단을 장악하여 모든 대책을 세우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며칠사이에 길림감옥과 심양감옥에서 석방된 적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자료가 종합되였다. 녕안현당비서 김책이 육문중학교의 한 조직원을 통해 김일성동지를 안타까이 찾다가 어딘가로 떠나갔다는 보고도 있었다.

차광수는 김책의 뒤에 틀림없이 적의 밀정이 달려있을것이기때문에 길림조직을 총동원하다싶이해서 그를 찾았지만 간곳이 묘연하였다. 아무튼 그의 집이 룡정에 있기에 동만으로 나갔으리라는 판단밑에 뒤일을 부탁해놓고 필요한 동무들과 함께 일단 돈화로 돌아왔다. 그는 돈화에서 대기하고있는 동무들을 데리고 곧장 안도로 떠날 작정이였으나 그사이 동자경이가 석방되여 나왔다는 련락을 받고 명월구에 가서 그를 만나고 오는길이였다. 만일 옥섬이문제가 아니더면 명월구에서 일을 마치는 길로 곧장 황구령을 넘어갔으면 빠를것이지만 떠날 때부터 아무래도 옥섬이가 하던 말이 마음에 걸리여 다시 오지 않을수 없었다.

처음에 두사람이 야릇한 추억이 얽혀있는 그 버드나무밑에 옥섬이가 숨을 헐썩거리며 나타났을 때 차광수는 그를 데리러 공주령에 가서 모험을 하던 생각을 했다. 그때 옥섬이는 가지 않겠다는것을 억지로, 그야말로 팔목을 움켜잡고 끌어내다싶이하여 고유수로 데려갔었다. 그런데 이제는 왜 저렇게도 반갑게 달려오는 사람을 떼놓고 가야 하는가. 돈화에 처음 나와서 강가를 걸어 이 나무밑까지 왔을 때 옥섬이도 자기도 영원히 함께 최효열이가 그랬듯이 김일성동지가 이끄는 조선혁명의 길을 걸어가자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때 버드나무에는 잎이 무성했고 두사람의 머리우에서 까치도 우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무는 흐린 하늘에 바람소리만 아우성친다. 혁명의 길은 간고하고 곡절도 많은것이다. 만주를 단숨에 집어삼킨 강대한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정면대결을 하자는 이 마당에 인정을 돌아볼 겨를이 있는가.

차광수는 고개를 떨구고 그냥 걷기만 하는 옥섬의 어깨우에 목수건을 걸쳐 앞으로 넘겨주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효열동무, 용서하오. 우리는 피를 흘리게 될거요. 그 처절한 싸움판으로 옥섬이를 끌어낼 용기가 나에겐 없소. 물론 혼자 낯선곳에 있는것이 외롭겠지만 우리 싸움이 지금 외로움까지 돌볼 형편은 못되지 않소.)

옥섬은 비로소 어깨에 걸쳐준 목수건을 슬쩍 당겨서 잡아맸다. 차광수의 손길은 어느정도 거칠고 역증도 섞여있는듯하지만 그 역시 속이 상해서 그런다는것을 옥섬이도 모르지 않았다.

《왜 저는 못간다는거예요?

옥섬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목소리로 봐서는 그렇게 토라진것 같지도 않았다.

《글쎄 몇번을 말해야 알겠소? 안도에 간다고 무슨 집이 있는것도 아니고 큰 부대가 있는것도 아니요. 김일성동지가 명월구회의에서 밝힌것처럼 앞으로는 유격전쟁을 할 근거지도 생기고 그걸 꾸려나갈 정권도 나오겠지만 아직은 그런 로선과 방침이 있을뿐이요. 이제부터 우리는 김일성동지의 그 로선과 방침을 받들고 우선 사람과 무기를 해결하여 유격대를 꾸려야 한단말이요. 그런데 당장 옥섬이가 가서 어떻게 한단말이요.

《저도 김일성동지의 로선과 방침을 받들고 싸우고싶어서 그래요.

《지금 하는 일은 그게 아니요? 기어이 안도에 가서는 어떻게 하자는거요?

《전 누구의 신세를 지러 가자는게 아니예요. 저한테도 무기가 있어요. 모두 총을 들고 무장로선으로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고유수에 있을 때 뭐라고 말했어요? 녀자도 혁명을 할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조선사람의 반수가 넘는 녀자들이 혁명에 각성하면 큰힘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차광수는 허거프게 웃었다. 이건 생억지를 쓰는판이다.

《그래, 그렇게 말했소. 그렇다고 혁명을 하는 방식이 꼭 한가지뿐인것은 아니지 않소?

《그건 다 저를 얼리는 말씀이예요. 지금은 모두 무장을 빼앗아 들고 왜놈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김일성동지가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저를 못데리고 가겠으면 그만두세요. 그러나 저는 부자집에 가서 편안히 얹혀살지는 않겠어요. 그리고 제가 한가지 전할게 있는데 그게나 가져다주세요.

옥섬은 이렇게 말하고는 강가에 나타난 강낭밭고랑으로 들어갔다.

차광수는 영문을 몰라 멍청히 서서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잠시후 옥섬은 허름한 담요에 둘둘 만 길다란것을 꺼내여왔다. 철장대와 곡괭이도 함께 새끼로 묶어놓아서 무슨 농쟁기같기도 한데 옥섬은 그 철장대와 곡괭이를 풀어내치더니 담요에 싼것만 내밀었다.

《이게 뭐요?

《풀어보세요. 총이예요.

《뭐, ?

차광수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바람부는 강가에는 인적기라곤 없었다. 차광수는 강낭밭고랑에 다가가서 담요의 한끝을 풀어보았다. 신식보총의 번쩍거리는 격발기를 본 그는 다시한번 놀라서 서둘러 담요를 도로 감싸며 옥섬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어디서 났소?

《저도 김일성동지께서 명월구회의에서 밝히신 방침을 받들고싶었어요.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래 어떻게 하면 총을 구하겠는가 하고 속을 태웠지요. 그런데 마침 오늘 총가진 왜놈들이 우리 집에 제발로 찾아왔더군요.

옥섬은 쌀쌀한 어조로 자기가 그 총을 구하게 된 경위를 대충 말했다. 그놈들이 한방 드러누운 틈으로 발을 옮겨디딜 때 가슴이 떨리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만 개털외투며 신에서 몹시 역한 냄새가 나더라는 이야기만 곱씹어 말했다.

차광수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떨구었다. 자기는 아직 옥섬의 아픔도 슬픔도 리해하지 못하였다. 그를 그저 안온하게, 편안하게 해주는것만이 최효열에 대한 의리를 다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놈들이 모두 잠에 취해 곯아떨어졌으니망정이지 그중 한놈이라도 똑똑한놈이 있었던가 무슨 우연이 작용해서 자던놈중 한놈이라도 눈을 떴다면 어떻게 될번했는가, 물론 무장을 탈취하자면 모험을 하게도 될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전투력이 없는 연약한 처녀에게 그런 모험을 시키는것은 옳은 방법일수 없다.

《옥섬동무.

차광수는 심각한 어조로 입을 벌렸다.

옥섬은 차광수가 어떻게 나올가 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대답은 않고 강낭그루의 묵은 잎사귀를 손가락에 감았다폈다하며 서있었다.

《나는 옥섬동무가 이런 철부진줄은 몰랐구만. 옥섬동무는 오빠생각을 해서 이런짓을 한것 같은데 만일 효열동무가 옆에 있었다면 내 당장 일러바쳐서 종아리를 치라고 했을거요.

날이 이미 저물어서 말만 들어가지고는 정말 차광수가 성이 났는지 어떤지 알수 없었다. 그래서 옥섬은 머리를 숙이고 안보는척하면서 앉아있는 차광수를 흘끔흘끔 돌아보았다.

차광수는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제 그 집에 무슨 소동이 나겠는지도 모르겠고 돈화거리에 무슨 바람이 불지도 모르겠소. 동무를 당분간 돈화에 그냥 둬두고 안착시키라는것은 김일성동지의 말씀이였소. 나는 부득불 처음으로, 내가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혁명을 시작한이래 처음으로 조직의 지시를 그대로 집행할수 없게 됐소. 옥섬동무, 동무때문에 김일성동지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나 하오? 동무는 오빠의 복수를 하겠다는 장한 마음을 먹고 한 일이지만 만일 동무가 실수하면 나는 어떻게 되고 김일성동지는 어떻게 되오? 동무를 김일성동지나 우리 혁명전우들이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하는지 알기나 하는가말이요?

차광수의 열기띤 목소리가 가슴을 쳤다. 옥섬은 강낭대를 비틀며 돌아섰다. 소리없이 눈물이 슴새여나왔다.

《그럼 전 어떻게 해요? 전 오빠대신 오빠가 못다한 일을 하고싶어요. 오빠대신 오빠의 전우들속에서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혁명을 하고싶어요.

옥섬의 흐느껴우는 소리를 못듣는듯 차광수는 멍하니 컴컴해진 강을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다시 총과 곡괭이, 철장대를 한군데 묶었다.

《갑시다. 몸을 싹 얼구겠소.

옥섬은 말뜻을 잘 모르겠다는듯 선자리에서 바재였다.

《안도로 간다고 무슨 혁명을 시키려 데리고가는것은 아니요. 돈화에 혼자 둬두면 또 무슨 재구를 칠지 모르기때문에 가서 김일성동지의 비판을 받고 딴곳에 보내기 위해서 데리고간단말이요. 참 한심하군.

차광수는 걸음을 옮겨놓으며 혼자말처럼 중얼중얼 말했다.

옥섬은 오늘아침 왜놈이 들이닥칠 때부터 하루종일 조일대로 조인 마음의 탕개가 불시에 끊어져나간듯 아래도리가 매시시해지면서 인차 걸음을 옮겨놓을수 없었다. 그가 비틀비틀하며 주저앉자 《웬일이요?》 하고 차광수가 돌아왔다.

《어디 다친건 아니요?

《괜히 그래요. 종일 서있었더니 다리가 아파서…》

옥섬은 차광수의 입에서 혹시 다른 말이 나올가 겁이 나서 더듬거렸다.

차광수는 옥섬의 마음속을 짐작하였다. 내가 왜 이렇게 뚝뚝하고 모진 인간이 되였는가. 어린 처녀가 짐승같은 왜놈군대의 총을 빼앗아메고 김일성동지께로만 달려가는 그 마음을 왜 리해하려고 안했던가.

쓰거운 자기회오에 잠긴 차광수는 말없이 돌아와 옥섬이옆에 묵은 강낭대를 쓸어눕히고 앉았다.

《여기에 앉소. 기왕 늦어진걸 좀 쉬였다 가기요. 여기다 불을 피울가?

《아이, 그만두세요. 누가 보면 어떻게 해요.

《그럼 이거나 껴입소.

차광수는 달구지저고리를 벗었다.

《싫어요.

《입으라는데…》

《차선생은 춥지 않아요? 싫어요.

《난 일없소. 어깨에 걸치오. 정 말 안들으면 안도에 갈 생각은 하지도 마오.

《참 별스럽게…》

옥섬은 원망스럽게 차광수를 돌아보았다.

목단강너머 저편 골짜기쪽에서 승냥이소리가 울렸다. 쩡- 하고 강 한복판에서 얼음이 갈라졌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될 모양이다.

옥섬은 달구지저고리의 깃을 잡아당기며 몸을 옹송그렸다.

《왜 무섭소?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옥섬은 어린애처럼 천진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차광수는 그것이 진실이라는것을 느끼고 혼자 빙그레 웃었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