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서 《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권 정 웅
(제 10 회)
×
승용차가 정부청사 앞길로 해서
칠성문쪽에 접어들었을 때 수령님께서는 앞자리에 앉으신
김정일동지에게 물으시였다.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100년간의 사상총화는 어떻게 되였소? 짐작에
한두해로는 안되겠지?》
《앞으로 한
2∼3년 걸릴것으로 보입니다.
예상외로 신중해지면서 판을 벌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풀기 어려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한번 해볼만한 일이요.
우리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온 인류에게 공헌한다는 의미에서도 좋을것
같소. 우리가 공산주의로 가는 길안내자가 된다고 해도 나쁠거야 없지 않소.》
승용차는 어느덧 대성산어구에 들어섰다.
승용차가 멎어서자 이미 대기하고있던 이곳 일군들과 시당위원장과 몇명의 력사학자들 그리고
정치위원들이 수령님을 맞이하였다.
키가 크고 목이 기름한 력사학자 리희준은
대성산과 관련된 력사자료를 거침없이 펼쳐놓았다.
그에 의하면 대성산은 이 아근에서 제일 높은 산마루를 가지고있고 다섯개로 이루어진 봉우리와
산릉선이 오붓이 하나의 골짜기를 감싸안고있다.
우리 고구려의 선조들은 묘하게 생긴 이곳
지형을 리용하여 산성을 구축하였으며 여기서 문무를 발전시키고 외래침략자들을 격퇴하였다.
그러는 동안 20개의 성문이 생기고
150여개의 우물과 물주머니를 만들고 또한 식량저장도 할수있게 하였다.
서력 427년 고구려가 수도를 여기로 옮긴
이후에는 대성산성은 보다 큰 의의를 가지게 되였다.
《그럼 우리 같이 한바퀴 돌아볼가.》
하고 수령님께서는 안내차가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차에 오르시였다.
일행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나가며 처음에
소문봉 그다음은 을지봉,
장수봉, 주작봉의 순서로 나갔다.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이끼덮인 옛성곽과 우물터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전설도 또한 많았다.
주작봉에 이르렀을 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희준의
력사자료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한걸음 나서며 말씀하시였다.
《하나 요청이 있습니다.
여기서 끝내고 이밑에 내려가면 사슴못이 있는데 그 기슭에 잠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미리부터 생각해둔것은 아니였지만 불쑥
떠오른대로 말씀올렸던것이다.
추석이 가까와온다고 생각하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젖어들어 이대로는 발걸음을
돌려낼것 같지 않으시였다. 추석은 추석대로였지만 그것이 곧 9월의
그날과 또한 뗄수 없이 결합되여있었다.
《그래그래 가봐야지.》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기미라도 느끼시였는지
인츰 그 제의를 받아들이시였다.
그런후에 미소를 지으시고 손을 들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평양일경을 가리키며 계속하시였다.
《오늘 우리가 나와보기 잘했습니다.
지금 상태로서는 유원지라고 말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옛날 성터라고 부르기도 곤난하게
되여있습니다. 현재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뿐이지 그외는 자연상태그대로
내버려둔데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 먼저 유원지로서 체모를 갖출수 있게
놀이터도 꾸리고 봉사시설도 들여와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자동차로도 한바퀴 돌기 힘들 지경입니다.
길도 잘 닦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강성대국이였던 고구려의 옛성터를
본래대로 복구해야 하겠습니다. 성돌이 마구 굴러다니지 않게 다 수집해서
원상대로 성을 쌓아놓고 우물이나 늪도 다 찾아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평양일경을
쭉 둘러보시였다.
사동벌로부터 반원을 그리며 남포쪽 그다음에는 룡악산쪽을 한눈으로 바라보느라면 실로 평양은 예로부터 알려진 명승지이며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것이 가슴흐뭇하게 안겨온다. 글자에 적은그대로 평탄하고
비옥한곳으로 되였다. 한껏 무르익은 초목들은 하나의 대도시를 푸른색으로
물들이였는데 군데군데 일어난 고층건물들은 마치 수정궁을 련상할만치 찬란한 빛을 뿌리고있다.
한쪽에는 현대적대문화도시, 또 다른 한쪽은
수천년세월을 헤아리는 옛성터, 어쩌면 그리도 과거와 현재가 한점에
맞붙어있는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도 역시 평양을 보기 위해서는 여기
대성산에 올라야 한다는 말이 옳다.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서 옷깃을
흔들어놓는다.
흠뻑 무르익은 과일내같은 들향기가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잠시
자연을 바라보신 수령님께서는 장쾌한 기분에 잠기여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애국전통을 자랑해야 합니다.
애국전통이 굳건해야 그후 공산주의자들이 이룩한 혁명전통이 더욱 값이 있게 됩니다.
조상도 없고 선렬도 없는 백지판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했다 하면
그것은 력사를 외곡하는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비속화하는것입니다. 때문에
여기를 유원지이기전에 먼저 선조들의 피땀이 스민 고구려의 수도라는것을 잘 나타내게 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우리
선조들에 대하여 매우 큰 긍지를 가지며 또한 우리 시대에 와서 그것이 빛을 뿌리게 되였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히며 성밑에서 자그마한
돌을 하나 집어들고 앞으로 내드시였다.
《동무들,
이것을 보시오. 어느 시인이 말한것처럼 이
성돌밑에 우리 선렬들의 넋이 깃들어있는지 어이 알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밟고 다니지 않습니까. 다 찾아냅시다.
연개소문도 좋고 을지문덕도 좋습니다. 김응서나
계월향이도 좋습니다. 애국적소행을 다 찾아냅시다.》
앞에 서있던 리희준은 력사가로서의 사명과 그
긍지에 젖어 거듭 허리를 굽혀 사의를 표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윽한 눈길로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리고 동무네와 같은 력사학자들은 글을 많이
써내서 모두 알게 하고 후대들에게 물려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애국의 전통이 대를 이어 흘러내려가게 될것입니다.
해방직후에 우리가 남조선에서 들어온 동무들을 여러명 만났는데 그들의 말이 오늘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남조선의 서울은 참말 이상한데라고 하였습니다.
서울의 많은 지식인들이 자기 나라 력사는 잘 모르는데 중국이나 유럽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더라는것입니다.
나이 좀 먹은 사람들도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의사 박제상이나 방랑시인 김삿갓은 잘 모르지만 중국의 리태백이나 백이숙제는 잘 알고있다는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브라함 링컨이요, 쉑스피어요,
카이제르요, 괴테요 하고 열손가락이 모자라게
꼽아댄다는것입니다. 그래 내가 그것은 하나도 이상할것도 신기할것도 없다,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일제의 간악성은 령토를 강점했다거나 자원을 략탈했다는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죄악은 우리 조선사람들의 넋과 민족성을 빼앗으려 한것입니다.
민족성!》
이 대목에서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올려
정수리를 쭉 뽑는 시늉을 여러번 해보이시였다.
《사람이 어느때 죽는가. 숨이 끊어졌을때?
아닙니다. 심장이 멎는 때?
그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넋을 빼앗기면 그때
죽는것입니다. 그러니 숨을 쉬고 심장이 뛰여도 넋을 잃으면 죽습니다.
이 넋! 민족이 어느때 망하는가.
령토를 잃었을 때? 아닙니다.
역시 민족의 넋, 민족성을 빼앗겼을 때
망하는것입니다. 일제는 바로 그것을 노린것입니다.
성을 갈고 <일어 상용>을 하게 하고 조선을 <내지화> 한것이 그때문인것입니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보천보전투를 하게 된것도 그때문이였습니다.
국경지대의 경찰관주재소를 하나 쳤다는것이 군사행동으로서는 극히 작은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동조동근>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을 고칠수 없다, 조선의 넋은 살아있다!
이것을 위해 국내진공작전을 했던것입니다. 지금
우리 당에서는 사상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예봉을 사대주의를 반대하는데 돌리고있습니다.
제나라것이 없거나 부실하면 자연히 남을 넘겨다보게 되고 남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는것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강성대국이였던 고구려의 수도 여기를 잘 꾸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시조 단군도 찾아보아야 합니다.
단군은 신화적존재에 불과하다는데 그것도 왜놈들의 말이니 믿을것이 못됩니다.
한때 평양에 기자묘라는것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 선생이 잘
알고있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수첩에 받아적느라고 여념이 없는
리희준쪽으로 돌아서면서 손짓을 하시였다.
리희준은 고개를 숙여 동의를 표시하고 말씀을
올리였다.
《정전이 된 이듬해인데 저 모란봉에서 좀
내려가 칠성문밑에 있는것을 파보았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자묘가 틀림없다면 거기에 무슨 유물이 다문 얼마라도 있어야 할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깨진 벽돌장 몇개가 나왔을뿐입니다. 그래서
기자라는 인물도 그 사람이 중국에서 나왔다는것도 모두 거짓이라는것이 판명되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미루어보아 무엇을 알수 있는가.
사람은 자기 넋으로 살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속담에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잃지 않으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혁명에서 의연히 가장 큰 위험은
사대주의에 있습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주되는 위험인 현대수정주의도
사대주의가 끌어들일수 있는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수령님께서는 옆에 서있는
김정일동지를 쳐다보시였다.
방금전에 렬사들의 묘에 가보자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선렬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피여올랐던것이다.
하여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시였다.
《선렬들을 잊지 맙시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우리
공산주의선렬들은 개개의 사람들모두가 옛장수들에 비교가 안됩니다. 사상의식과
희생정신, 그 리념에서 월등한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말씀을 끝내신 수령님께서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왔다갔다 하다가 무엇을 문득 생각하셨는지 그만하고 헤여지자고 하시였다.
안내원들과 헤여진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께 아까 말하던 거기에 가보자고
하시였다.
곧추 질러가면 한 반km도 되나마나한
거리인데 오던 길을 되잡아가다보니 시간이 퍼그나 걸리였다.
평지에 내려서니 길은 괜찮았다. 사슴못으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항일혁명투사들의 묘지가 있었다. 소나무숲속에 터를 잡고
봉분들을 지어놓았다.
돌층계를 오르고나니 누가 비질을 하였는지
비석이나 상석의 두리를 말끔히 쓸어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안내하여
묘소를 한눈으로 바라볼수 있는 언덕에 올라서시였다.
어느덧 숙연한 감정에 잠겨 서로 대화도 나눌수
없게 되였다. 갑자기
해일처럼 밀려든 비애와 착잡하게 일어나는 추억으로 해서
가슴이 쩌릿해날뿐이였다.
한동안
침묵한채로 서있다가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말씀하시였다.
《누가 보건대도 여기는 항일혁명투사들의 넋이
깃들만한곳이 못됩니다.
구석지고 초라합니다. 제가 알아보니 그때는 이 근방에 하나둘 널린 묘를 한군데
모이게 하자는 생각뿐이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한군데 모이지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혜산에 몇십구가 있고 또 여기저기 지방에 모두 널려있습니다.
제생각에는 세상사람들이 다 볼수 있는곳에 보란듯이 렬사릉을 하나 만들어 거기로 옮겨가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생각해봅시다.》
두분의 대화가 차츰 축축히 젖어들고 시선은
점점이 자리잡은 분묘들에서 떨어지지 못하였다.
대화는 더 계속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인적기가 났다. 김정일동지께서
뒤를 돌아다보니 허담이 화환을 들고 따라오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오전중에 우정
찾아와서 대성산에 가보자고 하던 생각이 나시였다. 화환을 맞들고 올라오는 그의
눈에는 비애의 처절한 빛이 어려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순간 가슴이 찡
울리는것을 느끼시였다.
어쩌면 그리도 남의 심정을 신통히 알아맞히는가싶었다. 누구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9월 22일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날을 하루 앞둔 오늘 그이의 심정은 매우 괴로우시였다.
화환이 옆으로 지나갈 때 꽃향기가 진하게
풍기였다. 온통 하얀
국화꽃인데 맨 웃도리에 붉은꽃이 몇송이 달려있고 내리드리운 붉은 댕기에는 《김정숙어머님을 추모하여》라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화환을 따라
봉분이 줄지어선 맨 웃단까지 천천히 올라가시였다.
자그마한 비석이 서있었다.
《항일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묘》라고 씌여있는 그앞에 화환이 놓이였다.
눈앞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모든 사물이 물에 뜬
그림자처럼 느물느물 흔들리였다.
깊숙이 머리를 숙이였는데 어깨가 알릴듯말듯 떨리였다.
때마침 무심한 산새 한마리가 가지에서 날아올랐다.
그바람에 나무가지가 가볍게 흔들리였다.
얼마간 지체한후 걸음을 돌리였다.
층계를 내리는데 몇명의 녀인들이 꽃다발들을 안고 올라오고있었다.
여겨보니 김명화를 비롯한 항일혁명에 참가한 녀투사들이였다.
×
대성산에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동안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시였다.
책상에 앉아 신간도서나 문건을 뒤지기도 하셨지만 어느 하나도 손에 잡히는것이 없었다.
비감에 감겨있던 걸음이여서 그런지 가슴속깊이 묻어두었던 아픈 추억들이 새라새롭게
떠오르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린 시절의
그날을 회상하시였다.
… 밤을 자고 일어나니 어머님께서는 침상에
누워계시였다. 여직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기때문에 어리신 그이께서는 깜짝 놀라 다가가시였다.
《어머니!
편찮으세요?》
이불밖으로 내놓인 어머님의 팔을 가슴에
가져다대며 물으시였다.
《아니 일없다.
좀 피곤해서 그런다.》
어머님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어깨를 잡아주시는데
그이께서는 한층더 의문이 생기시였다.
피곤하시다는것은 알수 없는것이다. 이 며칠동안은
줄곧 방안에 계시지 않았는가. 이전에는 어느 하루 빠짐없이 집안팎을 손수
거두시였다. 그리고는 평양학원이나 그밖의 여러 군부대들을 찾아가시였다.
결국 군건설을 도우시자는것이였다. 올해에
들어서서는 만경대혁명학원에 자주 나가시였다. 사방에 흩어졌던 유자녀들을 데려다
공부를 시키는것인데 그 일이 여간만 품이 들지 않는다고 하시였다.
《어머니!
다리를 주물러드릴게요.》
어리신 그이께서는 낯이 흐려져서 이불밑으로
손을 밀어넣으신다.
《아니 일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곧 기운이 나겠지.》
《내 주물러드릴래요!》
고집을 쓰신다.
오래전부터 들어온것인데 어머님께서는 산에서 자주 몸을 얼구었기때문에 그 후과로 무릎이
쏘군한다는것을 알고계신다. 그러나 벌써 어머님께서는 그이의 팔을 붙잡으시였다.
그리고는 아드님의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시는것이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한사코 침대에 올라가시여
무릎을 주무르기 시작하시였다.
더이상 지체해낼수 없다고 생각하신 어머님께서는 자그만 손이 무릎에 닿고 진심으로 병이
덜어지기를 바라시는 순박한 아드님의 얼굴을 쳐다볼 때 정말 병이 덜릴것만 같은 기분에 잠기시는것이였다.
그렇지만 어머님의 선량한 마음과는 달리 병마는 참아낼수 없을만큼 몸에 아픔을 주었다.
몇분 간격으로 온 내장을 비틀어짜는것 같은 고통을 주었고 그중에서도 심장은 밖으로
튀여나올만치 세찬 박동을 일으키는것이였다.
《음!》
방금전까지 무릎을 주무르니 한결 아픔이 덜린다고 하던 어머님께서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내시는것이였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이께서는 또 어디를 주물러야겠는가고 물으며 당황해하시였다.
《일없다.
그만하고 공부하러 가야지.》
어머님께서는 짐짓 태연해지려고 애를 쓰시며
식당칸에 밥을 차려놓았으니 빨리 세수를 하라고 재촉하시였다.
어머님께서 이때 먼저 생각하신것은 아드님께 시름을 주어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어머니!
나 오늘 하루 어머니를 돕겠어요. 그럼 안돼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빨리 가거라.》
어머님의 대답은 단호하시였다.
그렇게 되자 그이께서는 《그럼 가겠어요.》 하고
침상에서 물러나 옆방으로 나가시는것이였다.
서둘러서 세수를 하고 밥상에 마주앉으시였다.
밥맛이 없어 몇술 뜨다말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학습장과 필갑을 넣은 가방을 메시였다.
《어머니,
갔다오겠습니다.》
마루에 내려서자 그이께서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이시였다.
《오냐,
잘 갔다오너라!》
다른 날과 다름없는 어머님의 음성인데 왜
그런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였다.
마당에 나섰지만 걸음을 떼지 못하시였다. 우리에서
달려나온 털이 복실복실한 검둥이가 발목에 감겨들면서 가지 말라고 붙잡는것 같았다.
《들어가라.
검둥이!》
그이께서는 강아지를 쫓으며 몇걸음 내짚으시였다.
그때 담장밖에서 풍을 씌운 승용차가 삐익
소리를 내며 멎어서더니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원 두셋이 급히 걸어들어왔다.
인사를 하고 길을 비키시였는데 그들은 현관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가는것 같았다.
어리신 그이께서는 《검둥이》를 쫓는척하면서 마당안으로 되돌아와 방안동정을 살피시였다.
별로 다른 기색은 느낄수 없었는데 이따금씩 들려오는 의사의 목소리가 어덴지 모르게 불안한
감을 주었다.
《병원으로 곧 자리를 옮기셔야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다.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진정시켜야지요.》
이것은 보초장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계속되였다.
《아무래도 장군님께 알려드려야 하지 않을가요?》
뒤이어 어머님의 음성이 들리였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오래전부터 벼르시다가
현지에 나가셨는데.》
《지금 토산지방에 나가셨다고 하니까 잠간
오셨다고 해서 사업에 큰 지장이…》
《아닙니다.
그래선 안됩니다. 이제 좀 진정이 되겠지요.》
그다음에도 대화는 한참이나 계속되였지만 잘
알아들을수 없었다.
이윽해서 의사들이 현관으로 나왔다. 그들은 올 때처럼 급히 풍차에 앉아 곧
창광산쪽으로 멀어져갔다.
어리신 그이께서는 마당에 그냥 서계시였다.
온몸의 느낌으로써 불안을 받아안으셨던것이다.
부엌쪽으로 문이 드르르 열리더니 보초장아저씨가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그이의 손목을 잡고 현관쪽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어머님께서 부르셔요.
들어갔다 가자요.》 혹시 공부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와 불안을 가진채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이리 오너라!》
어머님께서는 다정하게 부르며 허리를 안아
침상에 가까이 다가세우더니 말씀하시였다.
《네가 어머니 걱정을 해서 공부하러 못가는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누구나 앓는 때가 있기마련이다.
어머니병은 큰것이 아니다. 좀 지나면 인차 낫는다.
오늘만은 내가 아파서 마당밖까지 바래주지 못하겠다.
그러니 너혼자 떠나거라.》
여기까지 말씀하신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의 어깨를
쓸어만지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네가 왜 하루도 빠지지 말고 공하러 가야
하는가…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기때문이다.
너는 아버님의 뜻을 꼭 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아는것이 많아야 한다. 우리 나라는 아직
절반밖에 해방되지 못하였다. 그러니 우리는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 아버님께서는 산에서 싸우실 때처럼 해방이 되였어도 밤이고 낮이고 먼길을 걸으며 일을
하고계신단다.… 명심해 듣거라.
공부를 잘해서 아버님의 기대에 꼭 보답해야 한다. 네가 나라에 충신이 되고
아버님앞에 효자가 되겠거든 어머니의 이 부탁을 명심해두어라. 알겠느냐?》
분명 어머님께서 울며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셨는데
정작 쳐다보니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고 여느때처럼 인자한 빛이 어려있었다.
《어머니!
알겠습니다. 공부하러 가겠습니다.》
다시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린 그이께서는 현관을 거쳐 마당으로 나와 꼿꼿이 한길쪽으로 사라지시였다.
몇시간후,
정오무렵에 집으로 돌아오시였다.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습관대로 인사를 하였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머니!》
방문을 열어제끼였지만 어머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까지
누워계시던 침상은 말끔히 정돈되여있었고 방은 휑하니 비여있었다. 웃방문을
밀어제끼며 《어머니!》 하고 좀더 크게 불러보시였다.
역시 텅 빈 공간이 허무하게 고함소리를 삼켜버리고만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어- 머- 니 -》 하고 기운껏 불러보시였다.
응접실에도 서재에도 부엌에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마당으로 뛰여나와 또 불러보시였다. 그제서야 복순이네 어머니가 동생 경희를
업고 마당에 들어서는것이였다.
《우리 엄마 어데 갔나요?》
《어머님께서 병원에 다녀오시겠다고 가셨다.》
《나 병원에 갈래요.》
《나와 같이 기다리자.
경희야, 오빠 왔다.
자 내려서 놀자요.》 경희는 오빠를 보자
업어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병원에 가겠다는 소리를 더 못하고
경희를 안아서 마루에 내려놓으시였다.
《경희야,
뭘 하면서 놀가?》
《나 오빠하구 노래부를래.》
《응,
그러자.》
그늘지고 서느러운 마루에 오누이가 나란히 앉아
노래를 부르시였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창을
떼시고 경희는 포동포동한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따라부른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마리
…
제법 박수장단이 멋들어지다.
그럭저럭 저녁때가 되였다. 저녁해가 마당에 선
백양나무가지에 붉은 노을을 걸어놓았고 신비로울만치 길어진 그림자를 담장끝까지 가로질렀다.
경희가 보채기 시작하였다.
어린 넋이란 아침은 가리지 못해도 저녁에는 반드시 자기를 안아 잠재울 어머니품을 그리워하는
법이다.
어리신 그이께서는 재미난 놀이감을 이것저것
주어대기 시작하시였다.
《경희야,
우리 말타기 할가.》
목마를 가져다놓고 신이 나서 타는 시늉을
해보이시였다.
《싫어,
싫어.》
경희는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도리를 젓는다.
《그럼 경희야,
오빠하구 쌍그네 뛰자.》
그네터로 갈 때까지만 해도 그럴사했던것인데
정작 올려놓으니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몸을 흔들면서 땅에 누우려고 한다.
《경희야,
너 정말 이러면 오빠 성낸다.》 단호하게
위협하건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끝까지 말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것을
내놓게 되시였다.
《그럼 엄마한테 갈가?》
순간 경희의 흑진주같은 눈이 빛을 뿌리였다.
《오빠야,
엄마한테 가자!》 이렇게 되여 경희의 울음은
씻은듯이 가셔지고말았다.
병원에 이르니 현관을 지키고있던 부관아저씨가
장군님께서 돌아오셨다는것을 알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슬픔속에서 시간은 정지된듯하다.
조객들이 모여왔다.
그중에는 항일혁명투사들이 많았고 그밖의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영결하는 시간이 왔다.
장군님께서는 관을 그러안고 울음을 터치시였다.
《산에서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별일없던 사람이
이게 웬일이요.》
관을 안은 두팔이 우들우들 떨었다.
《나에게 극진하던 사람이 왜 이렇게 가느냐말이요.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 끼니를 이어주던 사람이 이렇게 가다니. 분하오.
원통하단 말이요. 한당대 고생으로 살아온 정숙에게
내가 푸짐한 밥 한끼 먹여보지 못하고 옷 한벌 변변한것을 걸쳐주지 못하였는데… 아 한스럽소.
이제 조국이 통일되면 그때 가서 마음껏 한을 풀어보자던 정숙이가 왜 이렇게 벌써 가는가…》
모란봉중턱 소나무숲이 벼랑턱까지 나앉아
사동벌과 그것을 거쳐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내다보이는
잔디언덕에 봉분을 지었다.
눈물겨운 고별사가 있은후에 모두 명복을 빌어 묵상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어리신 김정일동지와
함께 고개를 숙이시였다.
일단 장의식이
끝났을무렵 총알처럼 그이께서 무덤을 향해 달려나가시였다.
《어머니!》
봉분을 한아름으로 안을듯이 팔을 벌리고 푸른
잔디우에 쓰러지시였다.
《엄마!》
처절한 웨침소리는 숲을 흔들고 음산한 하늘로
치달아올랐다가 사정없이 내리꼰지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회상에서 깨여나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던 창턱을 놓고 뒤로 물러서시였다.
바람이 불어 창가림이 날리였다. 부드러운 창가림의
자락이 어깨를 스치였다.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