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따라서는 마음들

한 정 아

(제 2 회)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손을 흔드시였다. 그러시고는 묵묵부답인 녀인을 타내지 않으시고 다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형님, 내 노래 하나 부르겠어요. 일이 힘들 때 노래를 부르면 한결 힘이 난답니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

 

부드럽고 청아한 그이의 음성이 봄하늘에 조용히 울렸다. 선금도 따라불렀다.

그의 집에 오실 때마다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던 그에게 노래로 글자를 체득하도록 이끌어주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부르시는 노래의 선률에는 그 녀인을 위해주시려는 뜨거운 인정이 담겨있었다.

《형님, 이 노래는 임진년때 녀인들이 전장나간 남편들을 그리며 불렀던 노래랍니다.》

그이께서 이렇게 노래의 내용을 친절히 이야기해주는데도 녀인은 그냥 머리를 푹 숙이고있었다. 수집어서 내우를 하는것인지 아니면 아직 마음의 경계를 풀지 않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다음날도 호미를 드시고 그 녀인네 밭으로 가시는 김정숙동지께 선금은 이렇게 간청했다.

《저, 옥순언니, 반제청년동맹원들을 좀 동원시키면…》

그이께서 머리를 흔드시였다.

《저 형님의 마음속에는 슬픔의 얼음덩이가 꽉 차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혼자 삭이려 한답니다. 그러니 우리 둘이서 조용히 도와주자요.》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했던 선금은 그이의 다심하신 마음에 그저 감동될뿐이였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그 녀인의 태도였다. 둘째날부터는 경계하는듯 한 눈빛이 다소 풀린듯 했으나 속을 드러내놓기 몹시 저어하는것이였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내여 도와주시는 그이께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할줄 모르니… 인간의 모든 감정이 말라버린 나무등걸같았다. 시어머니가 천덕꾸러기라고 박대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을 매기 시작하여 사흘이 되던 날 마지막이랑이 남았을 때는 산판에 황혼이 비끼고있었다. 그 녀인의 얼굴에 미안해하는 표정이 어렸다. 그는 무엇인가 말할듯 머리를 들었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이 가엾게 생각되시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태여났다. 그런데 이 녀인은 한생 그 어떤 압박에 짓눌려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며 눈도 바로 들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얼마나 불행한가. 정이나 사랑이란 그에게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있다. 그저 천대와 멸시를 숙명처럼 여기는 체념만이 그의 넋에 타성처럼 굳어져있을뿐이였다. 숨쉬는 화석과 같은 인생을 살아온 불쌍한 녀인.

지하공작의 나날, 불행한 사람들을 수많이 만났어도 이 녀인처럼 자신을 잃고사는 녀인은 처음인것 같다. 한시바삐 그가 지금의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여야겠는데…

그에게 다소나마 즐거움이 될 일이 무엇일가. 사흘동안 함께 일하면서 녀인이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지만 노래소리에는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인다는것을 감촉하셨다. 어려울 때 노래는 마음의 위안으로 된다.

《형님,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나라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사는 녀인들이 한둘이 아니예요. 벌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녀인들이 있는가 하면 뜻을 품고 떠난이를 그리며 날을 보내는 녀인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수난받는 우리 민족의 감정을 노래한 〈아리랑〉노래도 나오지 않았어요? 같이 불러보자요.》

그래도 녀인은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저 기계적으로 호미만 놀릴뿐이였다.

그이께서는 선금에게 눈짓했다. 함께 부르자는 뜻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때였다.

별안간 듣는지 마는지 잠잠히 호미질만 하던 녀인이 갑자기 얼굴을 싸쥐고 흐느끼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선금은 아연해졌다.

녀인이 눈물을 흘리다니, 무시로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구박속에서도 눈물조차 내비치지 않았던 녀인이다. 동네사람들의 비방도 묵묵히 감수하기만 하던 기죽은 녀인, 눈물마저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에서 눈물의 샘이 터질줄이야.

조용히 느끼던 울음소리가 점점 더 비통하게 울렸다. 몇년동안 쌓이고쌓였던 슬픔이 마침내 곬을 만나 터져나오는것 같았다.

그 울음소리는 자기의 불행한 운명을 하소하는듯 매우 처량하게 들렸다.

선금은 그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선금은 그를 말리려 했다.

《놔두세요. 지금껏 울음을 쏟고싶어도 참았을거예요. 마음껏 슬픔을 터치게 해요.》

그이께서는 이렇게 선금이에게 이르며 녀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따뜻이 잡아주셨다.

녀인의 흐느낌이 잦아들무렵,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시며 말씀하셨다.

《저도 가까운 혈육들을 다 잃고 고생과 슬픔을 많이 겪어보았어요. 정 참기 힘들 땐 친지들에게 속을 털어놓았어요. 그러면 슬픔이 한결 덜어지더군요.》

이윽고 울음을 그친 녀인이 그이를 올려다보며 무엇인가 말할듯 간절한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입이 열어지지 않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형님, 저에게도 형님이 있었어요. 부지런하고 근면한분이였는데… 그만 왜놈들의 〈토벌〉에…》

그이의 음성도 갈리시였다.

《제가 늘 바쁘게 다니다나니 생존해계실 때 형님에게 따끈한 밥 한끼 해드리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려요. 이제라도 형님을 친형님으로 모시고싶어요. 그러니 동생처럼 여기시고 힘들 때마다 부탁하세요.》

그이의 말씀은 녀인은 물론 선금의 마음도 뭉클하게 울렸다.

나는 이 녀인을 친혈육처럼 생각하기는커녕 《궁》살있는 녀자라고 멀리하지 않았던가.

《저… 방금… 부른 노래를… 다시 불러주지 않겠어요?》

가는 모기소리로 그가 띄염띄염 말하자 선금은 더더욱 놀랐다.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하는 말을 난생처음 들은것이다.

《형님이 불러달라면 열번, 백번이라도 부르겠어요. 그런데 내가 방금 부른 노래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나라잃은 슬픔에 겨워 부르던 눈물의 노래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리랑〉노래도 많이 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눈물속에 부르던 〈아리랑〉이 나라를 찾기 위한 싸움을 벌리면서 투쟁의 노래로 되였답니다.》 하시고는 아까보다 더 힘주어 불러주시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섣달에도 꽃만 핀다

 

노래를 부르시는 그이의 눈앞에 전투때마다 힘찬 노래를 불러 대원들에게 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던 녀대원들의 얼굴들이 떠오르셨다.

그 녀대원들의 대오에 여기 장백현부녀들도 따라세우게 하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시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이날 밭머리에서 선금은 처음으로 녀인에게서 그의 집안래력을 듣게 되였다.

광숙의(녀인의 이름이였다.) 시어머니는 그가 시집온 첫날 남편이 출생하게 된 래력부터 들려주었다고 한다.

《저 앤 내가 신령님께 백날동안 불공드려 난 아들이다.》

망국 전해에 내리내리 딸만 다섯을 본 시어머니는 어떻게 하나 아들을 보려고 한다하는 점쟁이들은 다 찾아다녔다.

어떤 협잡군이 시어머니의 저고리고름끝에 매단 동전잎을 탐내고 산에 올라 백일불공을 드리라고 말했다. 아들출생을 목마르게 바라던 시어머니는 그 말을 곧이듣고 승냥이가 무리지어 싸다니는 마을뒤산 높은 봉에 밤마다 오르군 했다.

오를수록 어둠이 내려앉은 잡관목사이로 승냥이들이 휙휙 싸다니는것이 헨둥하게 알렸다.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러나 오직 아들을 보려는 한가지 욕망이 그 모든 공포와 무섬증을 몰아냈다.

백날이 지나 낳은 자식이 또 딸이였다. 점쟁이를 저주하며 욕설을 퍼붓는 어머니에게 마을녀인들이 아들출생은 팔자에 없는것 같으니 바라지 말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로부터 이태후 그처럼 고대하던 아들을 보게 되였다.

이렇게 생긴 아들이 시어머니에게는 장중보옥이였다.

그는 물고기장사를 하여 번 돈으로 아들만은 공부시키려 했다. 어쩌다 물고기찬을 하게 되면 대가리와 꼬리는 딸들에게 주고 가운데토막은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밖에 모른다는 딸들의 지청구가 시어머니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해 마을에 쓸어든 몹쓸 열병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어머니의 남편과 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슬픔속에 목놓아울면서도 시어머니는 아들의 목숨을 남겨준 신령님께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어머니의 지성의 덕인지 아들은 육체가 름름한 청년으로 자랐다. 동네에서는 그를 《항우》라고 불렀다. 웬만한 장독도 한손으로 들어올렸다.

쩍 벌어진 어깨, 마디진 근육이 어느 권투선수단을 운영하던 왜놈감독 가꾸다의 눈에 들었다.

권투를 배워준다는 그놈의 꼬임에 빠져 선수단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차례진것은 멸시와 학대뿐이였다. 유독 한명뿐인 조선사람인 그에게 왜놈선수들은 쩍하면 발길질이였고 갖은 너절한 심부름은 다 시켰다.

반항하는 눈치가 보이면 달라붙어 모두매를 안겼다.

그러나 이 모든 지긋지긋한 학대보다 더 참기 힘든것은 조선사람이라는 리유로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것이였다. 기본선수가 아니라 그저 왜놈선수들의 대상선수로만 그를 써먹으려 했다.

분이 치민 아들은 감독놈에게 항의했다.

왜놈감독은 뱁새같은 눈에 경멸의 빛을 띄우며 너털웃음을 쳤다.

《조선놈이 신성한 우리 대일본제국의 기발을 달고 경기장에 나가고싶단 말이지? 망한 나라의 찌꺼기가 말이야.》

《찌꺼기?》

극심한 모욕을 참을수 없었던 아들은 돌처럼 굳어진 주먹을 감독놈에게 안기고 선수단을 뛰쳐나오고말았다.

하지만 갈길이 없었다.

그는 고향마을에 새로 세워진 정어리가공공장에 취직했다. 왜놈이 운영하는 공장이였다. 소학교나마 겨우 마친 학력이 있어서 수리공이 되였다. 일은 헐치 않았다. 왜놈들은 돈을 벌려는 목적밑에 로동자들에게 하루 열다섯~열여섯시간의 로동을 강요했다. 하지만 수리기술이라도 착실히 배워 삶을 유지해보려는 본능이 그 모든 고역을 이겨내게 했다.

장사같던 육체도 하루하루 쇠진해갔다. 그러나 청년은 팔려온 녀공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위로했다. 하루 세끼 멀건 죽물을 먹으며 해종일 부르터진 손으로 정어리배를 가르는 그들보다는 좀 나은 처지가 아닌가.

광숙은 여기서 청년을 알게 되였다.

부모를 잃은 광숙을 머슴으로 써먹던 지주놈이 나날이 허약해지는 그가 더는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자 이 공장에 녀공으로 팔아먹었던것이다.

다른 처녀들보다 훨씬 몸이 약한 광숙은 자주 허기로 쓰러지군 했다. 그래서 놈들의 채찍도 많이 받았다. 그것이 청년의 동정을 사게 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공장에 공장주놈이 내려왔다. 대리인놈은 재벌에게 잘 보이려고 신새벽부터 로동자들을 달구었다.

이때 광숙은 심한 페염에 걸려 자주 줄기침을 하고있었다. 그렇다고 작업에 빠진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날이 밝자 공장주놈이 대리인놈을 앞세우고 작업장에 나타났다. 현장을 돌아보던 놈들이 광숙이앞에 이르렀을 때 발작적인 기침이 터졌다.

안될 때라 가래 한점이 공장주놈의 검은 구두에 떨어겼다.

잠시 허둥대던 대리인이 악이 올라 공장주놈의 구두를 가리키며 다짜고짜 기고만장하여 소리쳤다.

《이년아, 빨리 혀바닥으로 핥아내라.》

놈은 공장주앞에서 조선처녀들을 어떻게 노예처럼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는지 자랑이라도 할 심산인것 같았다.

어쩔바를 몰라 머리를 푹 숙인 광숙에게 놈은 재차 고함질렀다.

《빨리!》

주변의 처녀들은 가련한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을뿐 누구도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이때였다.

《야, 왜놈쪽발이들아.》 하고 웨치며 달려드는 청년이 있었다. 수리공이였다.

순간에 공장주놈과 대리인놈이 청년의 주먹찜에 나가너부러졌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놀라 굳어졌던 주변놈들이 청년에게 왁 접어들었다. 그러나 모두 바닥에 나자빠지고말았다. 정말 힘이 장사였다.

청년은 광숙의 손을 잡아끈채 공장뒤마당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시커먼 하수도뚜껑이 있었다. …

그후 청년과 그의 어머니, 광숙은 왜놈들의 눈을 피하여 북부조선 내륙지대로 피신해갔다.

대낮에도 해를 보기 힘든 이곳에 몇 안되는 화전민들이 살고있었다.

모두 왜놈들의 등쌀을 피해 모여온 사람들이였다.

여기서 광숙과 청년은 맹물 한사발을 놓고 성례를 치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내놓고 칭원했다.

《네 아버지와 누이들을 다 잃고 그래도 너 하나만은 살아남았기에 락을 볼가 고이고이 길렀더니 어쩌면 넌 저런 궁상을 만나 신세를 망쳤느냐.》

《어머닌 저에게 늘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광숙인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고말았을거예요.》

광숙은 남편이 자기를 사랑보다 동정으로 살아준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천대와 멸시를 공기처럼 마시며 살아온 그에게 난생처음 받아본 그의 동정은 어둠속에서 별빛을 본듯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그에게는 생명의 은인처럼 여겨졌고 시어머니의 칭원조차도 별반 가슴아프게 들리지 않았다.

곧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고 씨뿌릴 준비를 하였다. 불과 한달밖에 안되는 이 나날들이 광숙의 인생에서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런데 왜놈의 마수가 또 뻗쳐올줄이야.

세식구가 화전의 돌을 쳐내고 땅을 갈아 한창 씨붙임을 하고있을 때 왜놈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이놈이 여기에 배겨있었구나. 살인을 치고 무사할줄 알았느냐?》

놈들은 다짜고짜 남편의 손에 수갑을 채우려했다.

하지만 순간에 너부러들졌다. 남편의 배지기에 걸린것이였다.

《얘야, 어서 피하거라.》

뜻밖에 벌어진 정황앞에 어쩔줄 몰라하던 시어머니가 황황히 아들의 잔등을 떠밀었다. 이렇게 헤여진 남편이였다.

그후 광숙은 놈들의 화풀이에 허리를 상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더는 그곳에서 살수 없어 두만강을 건너 이곳에 왔던것이다.

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금은 자책되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와 한마을에 오래 살았어도 광숙의 집래력을 처음 알게 된것이였다. 그는 자책어린 눈길로 김정숙동지를 보았다. 누구보다도 왜놈들의 학정과 피해를 많이 입은 이들을 생각해줄 대신 《궁》살있는 녀자라고 멀리했던 자신의 실책이 가슴아프게 뉘우쳐지고있었다.

《얼마나 간악한 왜놈들인가요? 놈들은 우리 조선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요. 소나 말처럼 부려먹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고… 조선사람의 넋과 존엄을 피의 진창속에 죄다 묻어버리려 날뛰고있어요. 그러나 그렇게는 안될거예요.

형님, 형님이 겪은 불행은 그 어떤 팔자탓도 아니고 바로 그 악독한 왜놈들때문이예요. 그 왜놈들이 아니였다면 형님과 시어머니가 아들과 남편과 갈라지는 불행을 겪지 않았을거예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김정숙동지의 가슴은 저리고 아프시였다.

침략자들이 강요한 불행을 《운명》으로만 감수하며 압제자들과 싸울 대신 오히려 자신을 저주하고 비관과 우울속에 시들어가는 이들을 생각하니 분하고 안타까우시였다. 이런 녀성들이 어찌 한두명이랴.

문득 자신을 지하공작원으로 파견하시며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다시금 되새겨지셨다.

《…아직 우리 나라가 왜놈들에 의해 어떻게 망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깨우치는 일이 총을 잡고 싸우는 일보다 더 어려울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집에 간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친혈육처럼 대해준다면 인민들이 따르게 될것입니다.》

그날의 가르치심을 되새겨보는 그이의 가슴에 억척불변의 힘이 솟구치고있었다.

 

3

 

약묶음을 가지고 광숙의 집을 찾아가는 선금의 머리에 오늘 아침에 김정숙동지께서 일러주시던 말씀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선금이, 이제부터 일이 있어 며칠동안 광숙형님의 집에 갈것 같지 못해요. 대신 찾아가 그 집 시어머니를 치료해주어요. 이 약은 욕창에 효험이 있다기에 내가 달여 만들었어요. 꼭 알콜로 상처부위를 소독하고 발라주어요.》

하루도 아니고 며칠동안 마을에 못 오신다니 선금은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이와 함께 마을에 있으면서 많은것을 느끼고 깨달은 선금이였다. 무엇보다 큰 성과를 거둔것은 부녀회핵심육성방법을 체득한것이였다.

더구나 마을사람들에게서 따돌리웠던 《궁》살 박혔던 광숙이가 자기를 깨닫고 눈이 튼것은 더없는 성과였다.

그런데 어디 가신다는것일가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혹 아침에 있은 일때문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때일이 생각히웠다.

새벽에 김정숙동지께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남편이 그동안 어딘가 련락갔다온 내용을 보고드리는것 같아 뜨락으로 나온 선금은 토방에 앉아 감자를 깎으면서 망을 보고있었다. 그런데 웃방에서 새여나오는 그이의 심상치 않은 음성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귀를 도사리게 하였다.

《이번에 갔던 길에 모든 집을 다 찾아보았어야 했을걸 그랬어요.》

《예. 그런데 밀정놈이 너무 집요하게 따르는 바람에…》

남편의 변명하는 목소리가 있은 후에는 침묵이 계속되였다. 선금은 그 대화가 무엇을 념두에 두었는지 알수 없었다.

지하사업은 비밀사업인지라 아무리 부부사이라도 모르는것이 많다.

그러나 김정숙동지로부터 약묶음을 넘겨받고나니 그이의 이번 걸음이 아침에 있은 일과 련관되는것 같았다. 물론 짐작이지만 왜 그런지 그렇게 감촉되였다.

원래 오늘은 광숙의 시어머니를 치료해주고 부녀회원들과 신파장에 가서 유격대에 보낼 지하족을 사오기로 했었다.

나루터에서 단속이 심하여 한사람이 한컬레밖에 사올수 없다.

《오늘 장에 갈 때 광숙형님도 함께 가도록 해요.》

《일없겠습니까?》

선금은 미타하여 이렇게 되물었다.

그동안 김정숙동지께서 광숙의 시어머니허리병을 치료해주시면서 여러모로 그에게 영향을 주신것을 선금은 잘 알고있다.

하지만 유격대원호물자구입에 인입시키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 미소를 지으시였다.

《마음놓으세요. 그 형님은 아마 남 못지 않게 해낼거예요.》

낯익은 찌그러진 삽짝문앞에 다가와서야 선금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였다.

《옥순아기 오나?》하는 밝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은 시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고있었다. 어제보다도 더 좋아진 얼굴이다.

시어머니의 밝은 얼굴을 보니 김정숙동지와 함께 처음 이 집에 들어서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광숙의 집안래력을 알게 된 저녁 김정숙동지께서는 시어머니의 병문안을 가자고 하시였다.

련사흘째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일한 선금은 어깨가 뻐근하였다. 그러니 김정숙동지께서 얼마나 힘드시겠는가 하는 생각에 다음날로 미루었으면 하는 의향을 비추었다. 김정숙동지의 신상이 몹시 념려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들까지 잃고 몇년째 자리를 일지 못하고 앓고있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불쌍해요. 피곤해도 우리가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가보자요.》 하고 간곡히 이르시는 바람에 선금은 더 우기지 못하고 따라섰었다.

일행이 찌그러진 삽짝문에 거의 당도했을 때였다. 삽짝문사이로 시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새여나오고있었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내 아들 박기업의 혼백이 편히 잠들게 잘 살펴주옵소서.》

거듭 반복하는 목소리가 그냥 울려나왔다.

선금은 아연한 눈길로 광숙을 보았다.

《저의 어머니는 매일 저녁마다 아들을 생각하며 저렇게 빈답니다.》

조용히 뜨락에 들어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시어머니를 향해 다가가셨다.

한겨울 추위에 틈이 갈라진 방안의 흙벽밑에 애기손바닥보다 작은 사진을 놓고 시어머니는 두손모아잡고 그린듯이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얼마나 아들이 보고싶고 그리웠으면 저러랴 하는 생각에 눈굽이 젖어드셨다.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기른 아들을 영영 저세상에 보냈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심정이 오죽 아프랴.

이윽고 흑흑 느끼는 울음소리. 그것은 밭머리에서 울던 광숙의 울음보다 더 서럽고 슬프게 들리였다. 허구한 나날을 매일처럼 저렇게 슬픔으로 보냈으려니 그가 며느리에게 때없이 설분을 쏟군 하는 심정도 리해되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관념에 기대를 걸고 삶을 지탱해나가는 시어머니의 허무한 인생관이 그이의 가슴을 몹시 아프시게 하였다.

아들을 빼앗고 집안에 재앙을 준 원쑤를 가려 못보고 죄없는 며느리만 탓하는 무지와 몽매성이 극치에 닿은 시어머니.

그이께서는 시어머니에게 다가서며 공손히 머리 숙이시였다.

《어머니, 전 아래마을에서 사는 엄옥순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뒤늦게야 문병 온 저를 용서하세요.》

눈물에 젖은 시어머니의 얼굴이 의아한 표정을 담고 그이를 보고있었다. 마을에 이사와서 처음 들어보는 인정깊은 목소리가 이상하게 생각되는지 며느리에게 묻는듯 한 눈길을 돌렸다.

《어머니, 제가 말하던 옥순아지미예요. 우리 밭김매기를 도와준… 어머니의 허리병을 치료해주겠다고 오셨어요.》

두볼이 훌쭉 빠져 광대뼈가 두드러져나온 시어머니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쳤다.

《치료는 무슨 치료? 난 곧 죽겠는데… 아들을 따라가겠다.》 하고 웨치는 엇드레질소리는 선금에게 놀람에 앞서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자기를 위해주는 그이앞에 그처럼 인사불성일수 있는가.

마음같아서는 앞에 계시는분이 누구인줄 아는가고 괴벽한 로친을 꾸짖고싶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광숙에게 물을 끓여달라고 이르시고나서 시어머니곁에 다가서시였다.

《어머니, 힘이 장사인 아들이 그렇게 쉽게 세상을 하직할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언젠가는 어머니앞에 장한 아들이 되여 꼭 나타날것입니다.》

확신어린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시어머니는 도리머리를 했다.

《아닐세. 그는 죽은 앨세. 내 꿈에도 그 애 죽은 모습이 여러번 나타났네.》

시어머니의 미신적인 관념이 보통 완고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 벽에 놓인 아들의 사진에 눈길을 주시였다. 둬살가량 나보이는 사내아이가 웃고있는 모습이였다.

비록 어린아이이지만 짙은 눈섭과 잘생긴 어글어글한 두눈이 인상깊게 안겨왔다. 다만 왼쪽눈섭우에 생긴 쌀알만 한 기미가 얼굴의 미모를 약간 손상시키고있었다.

그이께서 자기 아들에 대해 관심하시자 시어머니의 기분이 좀 풀리는듯 했다.

《우리 애를 낳았을 때 친척들은 물론 동네사람들도 하나같이 부러워했수다, 끌날같은 장수감을 낳았다고 말이우. 그래 돌생일사진만은 돈이 없어도 빚을 내여 저렇게 찍어주었지우. 내가 아들애의 눈섭우에 있는 기미가 보기 싫어 의원에게 떼버리자고 하니 사람들이 복김이라 말리는게 아니겠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김이 화난을 가져온것 같기도 해서 후회막심하우.》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이 아프시였다. 모든 현상을 미신적인 사고로만 보는 로인을 보니 우리 인민을 무지몽매한 민족으로 만들어버린 일제에 대한 증오의 불길이 사무치게 타오르셨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