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피로 물들인 일제의 극악한 조선학생탄압만행

 

(평양 11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난지 90년(1929. 11. 3.)이 되였다.

광주학생사건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인 1929년 10월 30일 광주-라주사이의 기차칸에서 일본인중학생이 한 조선녀학생을 희롱하며 모욕적인 행동을 한것이 동기가 되여 일어났다.

11월 1일에는 일본중학교의 교직원, 학생 수백명이 광주역에서 조선인통학생들을 불의에 습격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였으나 일본경찰들은 조선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감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광주시안의 전체 조선학생들이 11월 3일 일제의 민족적차별과 부당한 탄압행위에 항거하여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대중적인 반일투쟁에 떨쳐나섰다.

이에 질겁한 일제는 광주지역에 계엄상태를 선포하고 시위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구금하였으며 11일까지 파쑈폭거를 계속하였다.

광주학생들의 투쟁은 평양, 신의주, 함흥, 개성,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도처에로 급속히 확대되였다.

일제는 경찰무력을 총동원하다싶이 하여 조선각지의 학교들을 봉쇄하고 조선학생들의 대중적투쟁을 진압하는 한편 그들을 체포처형하는 극악무도한 탄압작전을 벌렸다.

조선학생들이 길거리에 나다니거나 몇명씩 모여있기만 하여도 닥치는대로 잡아가두었으며 사격을 가하여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여 온 나라는 애국적청년학생들의 피로 물들여졌다.

광주학생들에 대한 폭압은 3. 1인민봉기후에 있은 가장 큰 대중적탄압학살사건으로서 1920년대에 《민의창달》이요, 《교육의 쇄신》이요 하면서 식민지통치를 미화분식하려고 한 일제의 《문화통치》의 기만성과 범죄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력사는 흐르고 세대와 세기가 바뀌였지만 90년전 광주학생사건은 오늘도 조선인민의 대일적개심을 격발시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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