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24일 로동신문

 

정은 세월을 이긴다

23년전 한 인민군병사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3살 난 소녀의 그후 이야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군민일치는 군대와 인민이 한덩어리가 되여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도와주는 기풍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23년전 당보에 소개되였던 한편의 기사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락랑구역 승리1동의 한 25층아빠트밑으로는 삽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뜻밖에도 18층의 한 집 베란다에 어린이가 가까스로 매달려 아우성을 치고있었던것이다.

사람들이 급히 18층까지 승강기로 올라가 손을 쓰자고 해도 너무나 긴박한 정황이였다.

한초 또 한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급한 비명을 질러대는 어린이의 몸은 점점 아래로 처져내리였다.

모여선 사람들의 눈앞에 생각만 해도 끔찍한 환영만이 떠오르던 그 순간, 어디선가 비호같이 달려온 한 인민군병사가 비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아빠트밑으로 뛰여들었다. 떨어지는 아이를 한몸으로 받아내자는것이였다.

그러한 순간에 맥이 진한 어린이가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베란다를 붙잡았던 손을 놓아버렸다. 돌덩이처럼 떨어지는 어린이, 저도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는 사람들…》

이렇게 3살 난 어린애는 용감한 한 인민군병사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당시 이 소행은 신문과 방송, 텔레비죤을 통하여 온 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과연 그들의 이후 생활은 어떻게 흘렀는지.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로 되고있다. 하여 우리는 그날의 주인공들을 찾기로 하였다.

락랑구역 승리1동 102인민반(당시) 아빠트밑, 바로 인민군병사가 어린애를 구원한 그곳이다. 때마침 현관앞에는 손자, 손녀들을 이끌고 나온 로인들이 여러명 있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23년전의 그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지금도 두손을 펼쳐들고 억척같이 서있던 병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네.》

《신애네가 우리 마을에서 이사를 간지도 10년이 넘었다오. 이젠 다 커서 공장에 다닌다는 소릴 들은적도 있긴 한데.》

이렇게 이야기를 펼쳐놓는 로인들의 얼굴에는 회억의 빛이 어리였다.

23년전 그날 기적적으로 구원된 신애와 인민군병사는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였다. 신애의 부모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인민군병사를 기어이 자기들이 회복시키겠다고 떨쳐나섰지만 병사는 인민군대의 병원으로 후송되였다고 한다.

리신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그를 위해 바치는 지성은 갈수록 커갔다. 인민군군인들도 침상에 누워있는 신애에게 보약재며 식료품을 쉬임없이 보내왔다.

그속에는 이런 편지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하루빨리 신애의 웃는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차경수동지가 회복되면 함께 신애에게 달려가겠습니다.》

하지만 신애와 그 병사와의 상봉은 인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병사는 몸이 회복되기 바쁘게 조용히 부대로 떠나갔던것이다. 신애가 앞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란다는 짤막한 내용의 편지 한장을 신애네 집에 부치고.

차경수동무는 그후에도 신애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계속 썼다. 그와 리신애는 위대한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10돐을 맞으며 평양에서 열린 어느 한 무대에서 감격적으로 상봉하였다.

그들의 상봉은 사람들로 하여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날의 사연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되새기게 하였다.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인 조선인민군 군관 차경수동무와 소녀 리신애, 그들사이에는 그후 혈육의 정보다 더 뜨거운 정이 흘렀다. …

이것이 우리가 신애가 살던 아빠트주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전부였다.

첫 상봉이 이루어졌던 때로부터 몇해후 신애의 가정이 이사를 갔던것이다.

그후 신애와 차경수동무사이에는 또 어떤 가슴뜨거운 정이 흘렀는지.

끝없이 끌려들어가는 군민의 정에 대한 이야기에 심취된 우리는 그때의 주인공들을 끝까지 찾아 그후 이야기를 듣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 하여 신애를 찾기 위해 락랑구역인민보안부를 찾았다.

우리는 해당 일군들의 도움으로 리신애의 어머니를 선교구역 대흥동에서 만났다. 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안 그는 23년전의 추억이 되살아나는지 한동안 아무 말없이 눈만 슴벅이였다. 잠시후 그는 우리앞에 한장의 사진을 내놓았다.

《신애네 가족사진입니다. 이 사람이 신애의 남편이고 이 애가 신애의 아들이라오.》

이튿날 어머니에게서 우리가 찾아왔던 사연을 안 리신애동무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잊을수 없는 그 병사의 안부를 연방 물었다.

몇해전에 원호물자를 가지고 경수삼촌이 있는 부대에 갔더랬는데 그후에는 제대되여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는것이였다.

10년, 15년을 계속 이어온 그들사이의 정, 그것은 정말 감동없이는 들을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리신애동무에게 차경수동무의 소식을 꼭 알려주겠다는것을 약속하였다. 과연 그들의 상봉은 얼마나 감동적일것인가.

우리는 리신애동무가 마지막으로 찾아갔댔다는 부대의 일군과 구성시당위원회의 한 일군의 사심없는 방조로 마침내 차경수동무와 그처럼 고대하던 전화통화를 할수 있었다.

《신애가 어머니가 되였다구요? 그 3살 난 소녀애가 벌써… 제대된 후에 무척 찾았는데…》

신애의 안부를 전해듣고 너무 반가와 펄쩍 뛰는 차경수동무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신애와 마을사람들도 그를 몹시 찾고있다고 말해주었다. 잠시후 다소 마음을 진정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디선가 신애도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신애와의 련계는 끊어졌지만 전 늘 이런 생각으로 신애를 그려보군 했지요.》

우리가 이 말을 전해주자 리신애동무는 너무도 큰 충격에 아들애를 품에 꼭 안은채 눈물만 흘리였다.

리신애동무는 평천구역의 한 살림집에서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아들애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있었다. 우리가 무랍없이 안기는 신애동무의 아들에게 몇살이냐고 묻자 손가락 세개를 펴보이였다.

3살! 바로 그 나이에 리신애는 한 인민군병사에 의해 이 땅에 다시 태여났다.

그의 행복한 생활을 화폭에 담아 남포시에 살고있는 그날의 병사 차경수동무에게 전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평범하나 가슴뜨거운 군민의 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세월의 흐름속에 모든것이 퇴색되고 조락해버린다지만 우리 군대와 인민사이에 맺어진 정, 그것만은 절대로 어쩌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들의 추억속에 더 또렷이 새겨지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 진하게, 더 뜨겁게 흐른다.

바로 그것으로 하여 우리 조국이 강하고 우리 혁명이 승승장구하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오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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