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24일 로동신문

 

    일편단심 충성의 한길을 걸어온 위대한 인민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펼쳐보며

 새 조선 인민의 참모습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세대는 무엇을 물려주었는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세대는 어떻게 살았는가.

매 세대가 시대앞에, 후세앞에 보여준 모습, 남긴 이야기는 각이하다.

공화국의 력사에서 제일 어렵고 복잡했던 새 조국건설시기 위대한 수령님만을 순결하게 받들어 간고한 초행길을 헤쳐온 우리 인민의 충성의 세계는 오늘 새 세대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귀중한 정신적자산으로 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투철한 수령관과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고 당과 수령을 대를 이어 충성으로 받들어나가는 우리 인민, 이 훌륭한 인민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당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풍요한 가을의 기쁨이 일렁이는 김제원리를 찾았다.

우리 수령님께서 애국미헌납운동의 선구자였다고 그토록 잊지 못하시던 농민영웅 김제원, 그의 해방후 5년은 과연 어떻게 흘러갔는가.

김제원농민의 발자욱이 많이도 새겨졌을 마을길을 따라 우리는 오늘도 서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조국이 해방된지 두해후인 1947년 4월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다녀가신 그의 집에 들어서니 금시라도 김제원농민이 문열고 반길것만 같았다.

어딜 보나 그대로였다.

그가 마을의 당원들과 모여앉군 하던 사랑채도, 땅이 꺼지게 애국미를 쌓아놓던 마당가도, 해방의 기쁨 안고 덩실하게 지었던 소우리도…

김제원농민의 체취가 스민 집에서 수십년세월 살아온 최흥철부부는 대대로 전해지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김제원영웅은 일찌기 부모를 잃고 소작살이를 하다가 60살이 다 되여서야 해방을 맞이했지요. 사실 그가 분여받은 토지는 좋지 못한 땅이였답니다. 바로 그 땅을 옥답으로 만든 그는 마을에서 첫해농사를 제일 잘 지어 선참으로 애국미를 바쳤답니다.》

그는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난 첫해에 희생되였다. 원쑤들은 그에게서 사랑하는 혈육들을 깡그리 앗아갔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자기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고향땅에서 근 70년전의 그 모습으로 영생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속에 리에 세워진 김제원농민의 반신상앞에서 리당위원회일군은 참으로 뜻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제원농민이 30가마니의 애국미를 싣고 평양길을 걷게 된데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습니다.》

사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1946년 10월이였다. 제손으로 지은 옥백미를 드리고싶어 찾아온 김제원농민을 따뜻이 맞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먼길에 시장하시겠다고 하시며 그를 댁으로 이끄시였다.

그런데 마주한 밥상에는 뜻밖에도 수수밥과 풋고추, 고추장이 놓여있는것이 아닌가.

그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장군님, 어찌하여 수수밥을 드십니까. 나라를 찾아주시느라 고생하신 장군님께서 수수밥을 드시게 한 우리 농민들의 죄가 큽니다.》

목이 꽉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형편에서 수수밥도 괜찮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에게서 가장 부족되는것이 식량이라고, 식량이 넉넉해야 산업도 부흥시키고 사람들이 잘살게 되겠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근심을 거두지 못하시였다.

(수십성상 온갖 고생 다하시며 나라를 찾아주신 장군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서도 인민들생각으로 수수밥을 드시는데 우린 쌀낟가리를 놓고도 제 집재산 불굴 생각만 했으니 이 어찌 백성된 도리인가.)

집으로 돌아온 김제원농민은 30가마니의 쌀을 달구지에 싣고 그해 12월에 다시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게 되였다. 그것은 우리 당의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정신을 깊이 체득한 로동당원의 애국충정의 발현이였다.

김제원농민의 뒤를 이어 전국의 농민들이 애국미헌납운동에 떨쳐나섰다.

그것은 누가 시키거나 추동하여 시작된 운동이 아니였다. 결코 국가에 쌀 몇가마니를 바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였다. 제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려던 평생소원을 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싶은 이 나라 농민들의 진심이였다.

90년대 농민영웅으로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김제원협동농장 작업반장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대성동무는 고난의 행군시기 제일 뒤떨어진 작업반을 맡아 첫걸음을 내디디던 그날 이렇게 맹세했다고 한다.

(김제원농민은 비료도 비닐박막도 없이 농사를 지었지만 2배의 알곡소출을 내지 않았는가. 김제원농민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자. 김제원농민처럼 뼈심을 바쳐 쌀로써 당을 받들자!)

1947년 그 봄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교시를 하나하나 관철해나가며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수많은 애국미를 바쳐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김제원협동농장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가슴속에 김제원농민은 늘 살아있었다.

김제원농민과 재령군농민들에게 우리 수령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감사편지의 글줄을 새겨볼수록 생각이 깊어진다.

제 이름 석자조차 쓸줄 몰랐을 때에도, 제 이름을 쓸줄 알게 되였을 때에도 우리 인민이 고마움과 기쁨, 전변과 행복 그 모든것을 선참으로 아뢰고싶어한분은 우리 수령님이 아니였던가.

해방후 5년의 어느 갈피를 번져보아도 우리 수령님과 인민사이에 오고간 편지가 있고 수령님의 마음속에, 인민의 가슴속에 깊이도 간직된 그 정이 무궁무진한 창조와 건설의 힘으로 폭발하군 했다는 새삼스러움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평강땅의 리계산녀성이 글을 열심히 배워 위대한 수령님께 올렸던 편지의 한 구절이 되새겨진다.

김일성장군님, 오늘에야 겨우 편지를 올리게 되였습니다. …

이제는 신문도 조금씩 볼수 있게 되였습니다. 장군님, 저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재미납니다. …

앞으로도 저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일하겠습니다. …》

위대한 수령님께 그가 편지를 올린 그날 평강군에서는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전국에 문맹퇴치를 호소하였다.

그의 서투른 편지를 받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제날 머슴군이였던 한 녀성의 성장을 두고 무척 대견해하시며 친히 회답편지까지 보내주시였다. 그 편지를 하루에도 몇번씩 읽어보며 리계산녀성은 그이께서 당부하신대로 마을사람들의 앞장에 서서 농사도 짓고 학교도 꾸리고 집짐승도 길렀다. 일편단심 당을 따라 보답의 길을 걸어왔다.

다시금 돌이켜보게 된다.

한마음한뜻으로!

사실 해방후만큼 이 말이 그토록 소중한 때는 없었다.

형형색색의 사상과 주의주장이 범람하던 그때 각당, 각파들은 저마다 자기편에 대중을 끌어당기려고 감언리설을 일삼았다. 갓 창건된 우리 당안에 기여든 종파분자들과 지방할거주의자들은 당을 내부로부터 좀먹고있었다. 반동분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은 반동적인 단체들을 조직해가지고 새 민주조선건설을 방해해나섰다.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북조선의 민주건설은 종이우의 건설이라고 악선전하며 갖은 음모책동을 다했다.

모든것이 혼탁되고 혼란스러웠던 그때 한마음한뜻으로 한길을 간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였겠는가.

해방된 이듬해 7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철도종업원들에게 공개편지를 보내시였다.

렬차운행이 제시간에 보장되지 않고 1분이라도 늦어지면 위대한 민주건설사업의 전 궤도가 바뀌여진다고 하신 그이의 절절한 호소는 철도의 엄혹한 파괴상에, 반동들에게 속히워 갈팡질팡하던 철도종업원들을 산악같이 일떠세웠다. 그 앞장에는 어느 한 철도국의 리문복동무도 있었다.

그는 모든것이 파괴되고 부족했던 그때 렬차운행의 안전성을 보장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페색기에 필요한 건전지를 자체로 생산하여 전국도처에 공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그 한걸음한걸음은 실로 헐치 않았다.

건전지연구가 실패를 거듭하던 어느날 로동자들이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구장동문 맨주먹밖에 없는 이런 형편에서 무엇을 믿고 장군님께 할수 있다고 선뜻 대답을 올렸는가요?…》

조용히 그러나 열정에 넘쳐 그는 말했다.

장군님께서 우리 로동계급에게 바라시는것은 곧 새 조선이 바라는것이요. 그러니 영명하신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새 조선을 건설하는 우리 로동계급은 장군님 말씀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집행해야 하는것이요.

사실 난 그때 그이께서 더 벅차고 어려운 과업을 주셨다고 해도 〈장군님 념려마십시오! 우리가 꼭 해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것이요.》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새 조선건설의 한길로 한걸음의 탈선도, 순간의 주저와 답보도 없이 대오를 힘차게 이끌어온 리문복동무, 그가 32살의 애젊은 나이에 순직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친필로 된 애도문까지 보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값높은 삶을 안겨주신 한 철도일군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처럼 어렵고 복잡하던 해방직후에 벌써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심장으로 접수하고 절대적으로, 충성으로 받든 새 조선 인민의 군상이다.

해방된 우리 인민이 처음으로 한 대자연개조사업인 보통강개수공사, 일제가 300만명이나 강제로 동원하여 10년동안 걸려서도 하지 못한 그 일을 해방된 평양시민들은 자원적이며 열성적인 로동으로 단 55일만에 끝냈다.

그 기적의 원동력은 무엇이였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뜨신 보통강개수공사의 첫삽이였다. 어리신 아드님과 함께 매일같이 공사장에 나오시여 건국사업에 떨쳐나선 수도시민들과 녀성들을 로력적위훈에로 끝없이 고무하여주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이신작칙의 모범이였다.

지나간 긴 굴욕의 날들을 돌이켜보며 시민들은 환희에 넘쳐 이렇게 웨쳤다.

언제 시민의 진정한 사명을 이렇게 우리에게 호소해준 때가 있었던가.

우리 언제 이렇게 유쾌한 동원을 하여본 때가 있었던가.

의례히 장마때가 되면 홍수의 위협을 받을줄 알면서도 왜놈들의 발굽에 억눌리여 떠날수 없었던 토성랑사람들, 홍수바람에 초가집도 부모처자도 다 떠내려보내고 너무도 억이 막혀 통곡조차 못하던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저 우리 김일성장군님이 제일이지요. 김일성장군님께서 하시는 일에 어디 조금이라도 틀림이 있겠소.》

보통벌의 대자연은 변화되였다. 사람들도 변하였다. 남자들이 피곤하여 비틀거릴 때면 가마니를 이고 나르던 녀성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목도를 메여날랐다.

과연 어느 누가 조선녀성들이 넓은 들판에서 남성들과 같이 목도를 하며 밤을 샐줄 알았으랴.

남녀칠세부동석, 남존녀비는 우리 인민의 힘으로 쌓는 애국제방과 더불어 옛말로 되여갔다. 로동법령이 발포되자 공사장에서는 이를 경축하는 돌격전이 벌어졌다.

그무렵 보통강개수공사장에서는 류다른 일행이 수십만 사람들을 울렸다.

비록 눈먼 장님이지만 공사장에 서있을수는 있지 않겠느냐며 수십명 맹인들이 아침저녁 달려나와 시민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제손으로 흙 한삽 뜨지 못해도 한쪼각 마음만은 언제나 공사장에 두고 산다며 맹인들모두가 한푼한푼 지성을 모아 보통강개수공사에 헌금하였다.

우리 나라 민주건설력사에 아름답고 가치있는 한페지를 남긴 보통강개수공사, 진정 그것은 우리 인민들이 오직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안고 무비의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한 혼연일체, 자력갱생의 산 화폭이였다.

우리 인민이 수천년 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우러러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이를 모시여 치욕의 력사를 밀어던지고 거연히 일떠선 조선, 이제 세계를 향하여 울려갈 조선의 발구름은 또 얼마나 장엄할것인가.

한없이 고마우신 해방의 은인, 영원히 받들어갈 위대한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인민의 첫 대의원으로 모시던 첫 민주선거의 날 삼등면인민들은 그이께 무명필을 정히 펴드렸다.

그앞에서 걸음을 멈추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천으로는 인민들에게 옷을 해입혀야 한다고 하시며 무명필을 거두라고 하시였다.

하지만 인민의 마음속에서 진정 그날의 무명필이 거두어진적 있었던가.

그날에 무명필을 펼쳐드렸던 사람들도 이제는 우리곁에 없다. 그 자식들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렸다.

그러나 해방의 첫 기슭에 지울수 없이 새겨진 그 이야기는 세대가 바뀔수록 퇴색을 모르고 더욱 선명해지고있다.

무명, 생각도 깊어진다.

백의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건만 망국의 하늘아래서 과연 그 흰빛을 지켜낼수 있었던가.

인민의 수령을 모시지 못한 탓에 그 무명천에 슴배이던 피눈물은 또 얼마였던가.

진정 우리 수령님께 인민이 펼쳐드린 그 무명필은 단순히 천이 아니였다.

그것은 온갖 유혹과 권력도, 종파와 반동의 무리도 어지럽힐수 없었던 우리 인민의 때묻지 않은 마음이였다. 열백번 부서져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오직 우리 수령님만을 지지하며 끝까지 받들 인민의 백옥같은 일편단심이였다.

새 조선 인민의 일편단심이 씨실과 날실로 엮어진것만 같은 영원히 덞지 않을 그 무명필에서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우리 세대의 가슴을 끝없이 울려주는 살아있는 글발을 보았다.

후손들이여,

변함없는 충성과 순결한 마음으로 수령을 높이 받들어모시라!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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