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23일 로동신문

기행

 인민은 영원히 잊지 않으리

선군혁명령도의 상징으로 빛나는 철령을 넘으며(2)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병사들을 찾아 넘고 오르신 철령과 오성산, 사나운 파도를 헤치며 찾으신 초도를 비롯한 조국수호의 전초선들은 선군장정의 길에 바치신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증견자로 남아있을것입니다.》

삿갓봉을 떠나 다시금 령길을 재촉하느라니 도로량옆에 세운 띠모양의 위험방지구조물을 볼수 있었다. 그 어느 산턱에도 의지한데가 없는것으로 하여 도로의 량옆이 다 벼랑쪽으로 개방되여있었다. 이쪽에도 천길벼랑, 저쪽에도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단행하신 18차례의 철령행이 얼마나 간고하고 위험천만한 길이였는지, 그이께서 선군의 길에서 얼마나 준엄한 시련과 난관을 헤치시였는지 사무치도록 절감하게 하는 철령이였다.

주체85(1996)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직접 운전대를 잡으시고 차를 몰아 전선으로 달리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고사령관이 전선길을 알자면 직접 차를 몰아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의 만류를 밀막으시였다.

때늦은 진눈이 많이 내린 뒤여서 차에는 흙탕물이 튀여 형체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되였고 진창길에 차바퀴가 지치기까지 하였다. 그날의 철령길은 정녕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의 련속이였다.

선군장정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철령을 넘고 또 넘으시였다.

진달래가 다투어피는 봄날에도 넘으시였고 무더위에 소뿔도 휘여진다는 삼복철에도 넘으시였으며 사나운 비바람과 무릎치는 눈길을 헤치면서도 넘으시였다. 한해에 네차례 넘으신적도 있고 또 언제인가는 한달동안에 두번이나 넘으시였으며 이틀동안 련이어 넘으신적도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철령에 울리신 야전차의 동음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승리를 향해 전진해가는 우리 조국의 숨결이고 맥박이였다.

오늘의 철령도로에는 하얀 석비레가 두텁게 깔리고 옹벽과 위험방지구조물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다. 그 옛날 땅이 너무 질어 《진고산》이라 불리우던 때의 모습도, 가슴을 섬찍하게 하는 그런 차바퀴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 장군님께서 철령에 남기신 애국헌신의 자욱자욱은 인민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비가 멎은지 얼마 안되여 령길에는 도로관리에 떨쳐나선 고산군인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령길을 10년가까이 넘어다닌다는 한 운전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철령도로관리에 정성을 바쳐가는 고산군인민들의 마음은 어느때 보아도 한결같다고, 한겨울에도 이길에는 눈이 쌓일새가 없다고 감동어린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인적드문 곳이라고 생각했던 령길에 펼쳐진 인파, 철령도로관리에 떨쳐나선 사람들의 그 끝간데없는 행렬이 결사옹위의 성벽처럼 안겨와 가슴이 뜨거워났다.

인민의 마음을 그렇듯 소중히 간직하시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그 누가 감히 건드릴수 없게, 우리 조국을 하루빨리 천하제일강국으로 일떠세우시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사생결단의 전선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신것 아니던가.

문득 주체87(1998)년 5월 어느날의 줴기밥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날 이른새벽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철령을 넘으시여 최전연의 인민군군부대를 현지시찰하시였다.

전방지휘소에 오르시여 지척에 도사리고있는 적진을 주시하시며 적정을 료해하시고 험한 산중초소들을 돌아보시면서 군인들과 고지의 전호가에서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으신 위대한 장군님,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의 공연까지 보아주시느라 점심식사시간을 훨씬 넘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때늦은 점심식탁을 마주하시였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군부대를 현지시찰하러 가는 시간이 늦어질가봐 이른새벽에 떠났는데 이제야 돌아왔다고, 줴기밥을 싸가지고 떠났지만 군인들이 기다릴것 같아 그것마저 들지 못하였다고 흔연하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어쩌면…》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목이 꽉 메여와 무어라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하건만 우리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좋아한다면 한끼가 아니라 열끼를 건는다고 해도 배가 부를것 같다고 하시며 해빛처럼 환하게 웃으시였으니 물어보자 철령이여,

끼니까지 번져가시며 헌신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야전차를 맞이할 때 너의 굽이굽이, 말 못하는 초목도 얼마나 뜨거움에 설레였더냐.

산골을 울리는 무성한 숲의 설레임은 마치도 우리 장군님을 그리며 철령이 터치는 격정의 메아리인양 흉벽을 세차게 두드렸다.

철령이 안고있는 만단사연, 하많은 그 이야기들은 그대로 절세위인의 위대한 선군혁명업적을 전하는 감동적인 서사시이다.

우리 장군님과 인민들, 우리 장군님과 병사들사이의 뗄래야 뗄수 없는 혈연의 뉴대는 이 령길과 더불어 더욱 굳건히 이어지였다.

어느해 태양절을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보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령길에서 차를 세우시고 떠나온 부대쪽을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안색은 흐려져있었다. 부대의 직속구분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실 때 치마를 입고있던 녀성군인들을 생각하고계시였다. 날씨가 아직 찬데 그들이 긴양말도 안 신고 서있자니 얼마나 추웠으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우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간곡히 이르시였다.

규정이 그렇게 되였다 하여도 날씨가 추울 때에는 녀성군인들에게 양말을 신겨야 한다. 추울 때에는 녀성군인들이 바지를 입게 하여야 한다. …

자애로운 어버이의 그날의 사랑은 우리 혁명무력건설사에 또 하나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수놓았으니 최전연의 녀병사들은 오늘도 장군님의 은정을 못 잊어 눈시울 적신다.

철령은 자강도 고풍군에 사는 산골사람들의 가슴에도 남다른 자랑으로 간직되여있다.

고난의 행군시기 철령을 넘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령마루에 있는 혁명사적비를 배경으로 평범한 인민군병사를 곁에 세우시고 찍으신 기념사진은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다.

해가 서산너머로 사라진지도 이슥하고 찬바람이 기승을 부려 손발이 시려드는 그 추운 령마루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병사를 기다려 무려 20분동안이나 서계시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 자기의 이름과 함께 자강도 고풍군이 고향이라고 씩씩하게 대답올린 여돌찬 병사, 자강땅의 산골내기가 받아안은 영광을 두고 온 고풍군이 경사로 설레이였다.

그런데 이런 희한한 일도 있는가. 30여년전 봄날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병사도 자강도 고풍태생이 아닌가.

놀라운 력사의 일치는 처음에는 경탄을, 다음에는 세찬 격정의 파도를 일으키며 만사람의 가슴을 대를 이어 천출위인들을 모신 무한한 긍지와 행복감으로 젖어들게 하였다.

우리 장군님의 전선길,

그이께서 이길에 오르시면 강철의 근위사단들이 백배의 힘과 용기를 장약하였고 조국의 방선이 철벽의 요새로 더욱 억세게 솟구쳤다. 필승의 신심에 넘치신 그이께서 손길을 펼치시면 사회주의대지가 젊어지는 눈부신 변혁이 일어났고 결사옹위의 함성이 진감하는 우리 조국엔 비약의 나래가 돋치였다.

철령은 바로 그 위대한 력사의 증견자인것이다.

 

글 본사기자 한영민
사진 본사기자 리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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