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22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소나무말살책동에 미쳐날뛴 간악한 일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지배의 력사속에는 우리 인민이 절개와 의지의 상징으로 사랑해온 소나무를 말살하고 우리 나라의 산림을 황페화시키려고 한 범죄적책동도 들어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산과 들에 자라는 나무들을 가꾸어오는 과정에 소나무를 남달리 사랑하고 생활에 널리 리용해왔다.

우리 인민이 소나무와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면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속에서 살다가 소나무속에서 죽는다.》라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이것을 잘 알고있는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감행한 전기간 소나무를 람벌하고 그와 관련된 문화마저 말살하려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일제는 소나무의 열매가 식료품의 원료로 된다고 하면서 그것을 략탈하는 과정에 소나무들을 무참히 람벌하였다.

일제가 편찬한 《일본지리풍속대계》에서도 《소나무열매의 수요는 근년에 격증하여 내지에로의 이출도 진행되여 과자원료 또는 약용으로서 널리 쓰이고있다. 조선의 5잎소나무는 양양, 강릉, 통천 3군의 국유림에 많다. 솔방울이 떨어지는것을 기다리지 않고 큰 나무를 도벌하기때문에 산림을 황페화시키는것이 많다.》고 저들이 소나무를 무참히 도벌한데 대하여 자인하였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아시아에 대한 침략에 광분하면서 부족되는 연유를 송탄유로 보충하기 위하여서도 소나무를 람벌하였으며 이 과정에 우리 나라의 소나무를 멸종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일제는 조선농민들에게 송탄유의 원료인 소나무가지, 솔방울, 소나무뿌리, 소나무토막, 광솔 등을 공출할것을 강요하였다. 특히 일제는 1942년이후 조선농민들과 부녀자들, 아이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소나무를 찍도록 함으로써 해마다 300만t의 송탄유를 생산략탈하였다.

송탄유 1t을 생산하자면 막대한 량의 소나무가 요구되였다. 일제는 순수한 광솔만으로는 소요되는 송탄유를 보장할수 없게 되자 소나무들을 마구 찍어 송탄유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마련하였다.

일제가 송탄유를 대대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던 1940년대 이전에 우리 나라의 원생림들을 마구 람벌하였기때문에 산들은 거의나 벌거숭이가 되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다 자라지도 못한 소나무들은 물론 우리 인민들이 대대로 집뜨락에서 심어가꾸어오던 나무들과 명산의 고목들까지 마구 베여갔다.

일제는 또한 우리 인민들의 자주정신을 말살하기 위하여 력사적인 유래가 깃든 소나무들을 베여버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일제는 명산이 명인을 배출한다고 하여 명산들에 쇠말뚝을 박듯이 이름난 소나무들도 베여버리거나 악랄한 작간질로 죽게 만들었다.

이전에 대원군이 살던 운현궁뒤에 크고 멋있는 늙은 소나무가 서있었는데 일제는 이 나무가 큰사람을 낸 나무라고 하여 베여버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 일본인은 《집뒤에는 가지가 늘어져 굉장한 고목의 소나무가 있어 이전에 고종이 왕으로 되기 전에 이 나무에 올라가 놀았다. 고종이 국왕으로 되자 소나무도 정2품으로 추봉되여 집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그 소나무에 절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본 일본인들은 소나무를 신목으로 오해하고 소나무를 베여버리였던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소나무의 무참한 도벌과 람벌로 인하여 우리 나라의 자연경치는 무참히 파괴되였으며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이 기본자연경치로 여겨오던 소나무림은 없어져 그것을 보며 즐길수도, 정서를 키울수도 없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일제의 탄압으로 민족적기상이 담긴 문학작품도 제대로 창작할수 없다보니 소나무와 관련한 문학작품은 출판할수 없게 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의 소나무를 모조리 략탈하는 동시에 저들의 사꾸라나무를 조선에 해마다 수십만그루씩 심게 하였다.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후 궁궐안에서부터 사꾸라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게 하였다.

또한 1907년부터 1909년 봄까지 각 관청과 학교, 대신들의 집은 물론 수원의 《모범농장》과 농림학교에까지 사꾸라나무를 보내주어 심게 하였다.

일제는 우리 인민의 자주의식을 말살하기 위하여 《왜왕》의 제사일을 식수절로 정하고 이날에 사꾸라나무를 심도록 강요하였다.

이처럼 일제는 우리 인민이 오랜 세월 절개와 의지의 상징으로 여겨온 소나무까지 말끔히 없애려고 한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우리 인민은 소나무를 말살하려고 한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으며 그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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