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19일 로동신문

 

산골농사에서 혁신을 일으키기까지

덕성군당위원회 사업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군당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기 군에서 농사를 잘하도록 하는것입니다.》

후치령기슭 덕성군의 농사에서 혁신이 일어나고있다. 몇해전까지만 하여도 하늘의 별을 따오는것만큼이나 아득하게 생각되던 국가알곡생산계획수행이 해마다 현실로 되고있다.

그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패배주의관점을 깨버린 돌추기

 

새로 임명되여 농업생산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분석하는 과정에 석덕환군당위원장은 농사가 안되는 중요한 원인을 주인들의 옳지 못한 관점에서 찾았다.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조건이 불리하니 할수 없다고 우는소리만 하고있었다. 오래동안 굳어진 이런 관점을 뿌리빼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군당책임일군은 그 첫걸음을 돌추기로 뗄것을 결심하였다.

리유가 있었다. 농장들을 돌아보니 첫눈에 걸리는것이 돌이였다. 돌이 얼마나 많은지 돌과 관련한 고장이름도 많았다. 중돌리, 상돌리…

돌추기가 힘들다고 소극적으로 내민 결과는 심각하였다. 농사일을 기계화하기 어려운것은 물론이고 일이 힘든데 비하여 정보당 알곡소출은 좀처럼 오르지 못하였던것이다.

모내기철을 앞두고 군당책임일군이 돌추기를 선포했을 때 적지 않은 일군들이 아연해했다.

(부지깽이도 뛴다는 모내기철이 다가오고있는데 어떻게 돌추기까지 한단 말인가?)

어떤 일군들은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고 했고 언어도단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날 임자협동농장에 나간 군당책임일군은 돌이 제일 많은 작업반에서 농장원들과 함께 돌추기를 하였다. 쉴참에 농장원들과 마주앉은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돌이 많은 땅에서 어떻게 높은 소출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하던 초급일군들과 농장원들은 함께 방도를 찾아보자는 군당책임일군의 말에 활기를 되찾고 저마다 의견들을 내놓았다. 휴식하러 포전머리에 나올 때, 일을 끝내고 나올 때 매 사람이 돌을 두개씩만 들고나와도 많은 돌을 추어낼수 있다. …

대중이 발동되면 모내기, 김매기와 함께 돌추기를 능히 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된 군당책임일군은 농촌지원에 동원된 공장, 기업소근로자들까지 총동원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짜고들도록 하였다. 당초급일군들로 돌격대를 조직하여 땅에 묻힌 커다란 바위돌까지 다 파내면서 논밭을 정리하는것과 함께 직동리당위원회를 비롯하여 앞선 단위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사업도 내밀었다.

그해에 군에서는 백수십정보의 논밭에 대한 돌추기를 하면서도 모내기와 김매기일정을 보장하였으며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하게 되였다.

돌추기로 전변의 서막을 열어놓은 군당위원회의 작전은 좋은 결과를 안아왔다. 알곡생산량이 늘어난것은 물론 논밭에서 추어낸 돌로 제방을 쌓아 강하천을 정리하니 큰물피해를 막게 되였다. 산골군이니 할수 없다는 패배주의관점이 깨여지고 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된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제땅에 발을 붙인 명중포화로

 

무슨 일이나 대중의 사상이 발동되여야 성과를 거둘수 있다.

어느해 겨울 군적으로 거름생산과 반출실적이 제일 높은 사과농장의 분조를 찾았던 군당위원장은 녀성선동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우리 농장의 자랑인 한만히영웅은 한해에 1천t의 거름을 생산하여 정보당 생산량을 다섯배나 올렸는데 그에 비하면 분조실적은 아직 낮다고 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1차전원회의에서 공산주의의 선구자, 농민영웅으로 높이 평가하여주신 한만히영웅!

그를 통한 교양으로 사람들의 심장에 불을 지필것을 결심한 군당책임일군은 사과농장 초급당위원회에서 한만히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작품으로 형상하여 기동예술선동대공연에 포함시키도록 하였다. 그 실효가 대단했다.

제땅에 발을 붙인 교양의 위력을 절감한 군당책임일군들은 선전선동공세작전을 더욱 짜고들었다.

군안의 모든 농장에 1천t거름생산세대들을 조직한 군당위원회는 그들의 경쟁심을 발동하는데서 한만히영웅의 투쟁자료를 적극 활용하도록 하였다.

군당위원회는 군기동예술선동대의 집중경제선동에도 해당 단위의 혁명사적자료, 력사자료 등을 반영하도록 하였다.

4년전 도, 시, 군, 협동농장들사이의 단기풀베기경기에 함경남도를 대표하여 직동협동농장이 참가하게 되였을 때였다.

군당위원회는 직동리의 력사와 현실에 발을 붙인 참신한 경제선동공연을 준비하였다. 직동땅에 깃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가슴뜨겁게 새겨주는 설화며 직동리의 전쟁로병의 선동연설과 노래는 농장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직접 방송선전차의 마이크를 틀어잡고 영광의 땅에 기어이 풍요한 가을을 안아오자고 호소하는 군당위원장의 선동연설도 위력한 정치사업으로 되였다. 단기풀베기경기에 참가한 직동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은 높은 실적을 기록하고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땅에 대한 농업근로자들의 애착심은 날로 높아졌으며 이것은 알곡증수로 이어졌다.

 

농업지도기관이 제구실을 하도록

 

군의 농사를 통일적으로 틀어쥐고 지도하는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가 제구실을 하여야 군의 농사에서 혁신이 일어날수 있다.

군당위원회는 경영위원회의 권능을 높여주기 위하여 각방으로 노력하였다.

몇해전 가을 어느 한 농장에 나갔던 군당위원장은 가을밀, 보리씨붙임이 일정보다 처지고있는 원인을 알아보았다. 농장을 담당한 군당일군이 가을걷이실적을 올린다면서 두벌농사씨붙임에 배치하였던 로력까지 다 동원하도록 하였다는것이였다.

이 일을 계기로 군당위원회는 당일군들의 그릇된 사업방식에 경종을 울리였다. 당일군들이 농사실무에 밝아야 행정대행을 없애고 당적지도를 바로할수 있다고 본 군당위원회는 조직부 책임지도원, 선전선동부 담당지도원들이 경영위원회일군들과의 문답을 통하여 해당 시기의 농업기술적문제들을 충분히 파악하도록 하였다.

이것만으로는 안되였다. 경영위원회가 제출하는 자료에 기초하여 농사총화를 진행하는 등 농업생산에 대한 당적지도에서 농업부문 일군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규률을 세워나갔다. 이에 따라 경영위원회일군들의 발언권이 서게 되고 권능이 높아지게 되였다.

군당위원회는 경영위원회일군들의 작전과 발기가 좋은 결실을 맺도록 적극 밀어주면서 키잡이를 바로해나갔다. 3년전 가물피해막이를 위하여 경영위원회가 우물, 졸짱, 굴포파기계획을 세우고 내밀 때였다.

경영위원회를 통해 일부 농장들에서 이 사업을 형식주의적으로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된 군당책임일군은 군당일군들을 해당 단위들에 집중적으로 파견하였다.

자신부터 임자협동농장, 덕우협동농장의 구석진 포전들에까지 다 가보면서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경영위원회의 지령을 철저히 집행하도록 그곳 일군들을 각성시켰다. 그리하여 보름내에 군적으로 200여개의 우물과 졸짱이 생겨나게 되였다.

이뿐이 아니다. 린비료문제를 허천군에서 나오는 록반수로 해결할 작전을 경영위원회일군들이 세웠을 때 리당위원장들이 책임지고 내밀도록 한 사실, 읍협동농장을 과학농사의 본보기단위로 정하고 일반화하기 위한 사업을 조직부 책임지도원들을 발동하여 추진시킨 사실도 좋은 실례이다.

이 과정에 경영위원회일군들의 사업권위가 올라가고 그들의 자각성과 책임성이 더욱 높아졌으며 군의 농사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게 되였다.

 

*     *

 

우리 당의 말단지도단위인 군당위원회의 주되는 사업대상은 농촌이다.

군당위원회가 군의 실정에 맞게 당의 농업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바로세우고 수시로 장악총화하면서 편향을 바로잡아나갈 때 농사에서 혁신을 일으킬수 있다는것을 덕성군당위원회 사업은 실증해준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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