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6월 24일 로동신문

 

기 행 

 황금산

영광의 땅 창성군에 새겨진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자욱을 따라서 (1)

 

우리를 태운 뻐스는 높은 령을 굽이굽이 돌아내려 어느덧 영주천기슭에 펼쳐진 읍거리에 접어들었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산중도시를 방불케 하는 창성군에 대한 우리의 취재가 시작되였다.

6년전 6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돌아보신 거리,

넓고 시원하게 뻗어간 도로며 키돋움하듯 즐비하게 늘어선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

민족적색채가 짙은 창성각과 창성국수집은 물론 우리 원수님의 은정속에 새로 일떠선 은덕원은 그 외형부터가 도시사람들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얼마나 변모된 창성군인가.

황금산! 절세위인들의 열화같은 인민사랑과 숭고한 조국애, 불면불휴의 로고가 어려있는 이 말과 더불어 창성의 전변사는 얼마나 격동적으로 흘러왔던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높이 메아리치는 황금산서사시의 한구절이나마 목청껏 웨치고싶어 기행길에 나선 우리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창성땅에 황금산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황금산〉탑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영주천을 건너서니 높고 가파로운 문지령이 눈앞을 가리웠다. 군소재지와 서쪽 약수리와의 경계에 문지방처럼 놓여있는 이 령의 정점에 《황금산》탑이 솟아있다고 우리와 동행한 군산림경영소 지배인이 말하였다.

문지령, 오랜 세월 무서운 가난과 고생을 숙명으로 알아온 산골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령을 넘고넘으시며 황금산력사의 년륜을 아로새기시였으니 문지령이야말로 창성이 맞이한 천지개벽의 증견자가 아니겠는가. 하많은 사연을 안고 반기는 문지령의 숲길에 성큼 들어선 우리의 마음은 어느 사이에 멀리 흘러간 수십년전 그 나날에 가닿았다. 령길을 톺으며 지배인이 시작한 이야기가 전후시기인 주체44(1955)년에로 우리를 이끌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해에도 우리 고장에 오시였댔습니다. 우리 수령님께서 창성사람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마음쓰신 이야기로 말하면 이 문지령의 초목을 다 합한것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눈물을 자아내지요. 어느 리상점매대에 놓인 산복숭아를 보시고도 산골농민들의 부수입을 높일 생각을 하시고 한 농가마당에 널어놓은 도토리를 보시고도 이 고장에서 산열매를 따서 팔아도 수입이 대단하겠다고 하시며 속구구도 해보시였습니다. 창성의 산들을 인민생활에 이바지하는 보물산, 황금산이 되게 하시려고 산에도 자주 오르시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는 일군들도 모르게 아득한 벼랑턱에까지 오르시였습니다. 밤알같이 큰 도토리며 머루, 다래 그리고 여러가지 풀잎들을 안고 내려오시여서는 방금전에 오르시였던 곳을 가리키시며 저기 벼랑턱밑에만 해도 이렇게 여러가지 산열매들과 집짐승들이 잘 먹는 풀들이 많더라고 하시면서 기뻐하시였습니다.》

하루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래동안 산짐승잡이와 약초캐기를 해온 한 로인과 함께 이른새벽 또다시 산에 오르시였다. 험준한 릉선과 깊은 골짜기를 톺으시며 머루, 다래덩굴도 만져보시고 싸리밭속에 한참이나 멈추어서시여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시였다. 그러시다가 머루따는 아이들이나 도토리줏는 녀인들을 만나시면 얼마나 땄는가, 몇시쯤부터 주었는가 물으시고 머루는 어느 골짜기에 많으니 그쪽으로 가보라, 도토리는 어느 바위 웃쪽에 가면 하루에 10가마니도 주을수 있겠더라고 일러도 주시였다.

우거진 덤불을 헤치기도 하시고 앞을 가리는 나무가지를 휘여가르시며 이끼덮인 미끄러운 산비탈길을 톺아오르신 위대한 수령님,

새벽이슬을 차시며 몸소 걸으신 험한 산골길, 초신을 신으면 먼길을 갈 때도 발이 부르트지 않는다고 하시며 초신을 신고 걸으신 그 길은 이 고장 토배기들도 밟아보지 못한 감탕돌밭길이였다. 그렇게 로고를 겪으시며 찾으신 곳마다에서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산골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도를 구수하게 말씀해주시였다.

산을 잘 리용하여 양, 염소, 소와 같은 풀먹는집짐승들을 많이 기를데 대한 문제, 산열매를 많이 따고 산나물도 많이 뜯고 싸리를 베여다 광주리와 다래끼, 의자도 결으며 좋은 나무를 골라 망치자루, 도끼자루, 곡괭이자루 등을 만들며 물고기도 잡고 과일나무도 심고 누에치기도 많이 할데 대한 문제…

참으로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고 앞길이 환히 내다보이게 하는 가르치심이였다.

《이 산골에 인적이 깃들기 시작한이래 대를 물려 살아오면서 눈을 뜨면 보이는것이 산이였지만 그 산을 리용하여 잘살아보자는 생각은 누구도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방전에 이 고장 사람들은 대대로 굶주리고 헐벗고 천대받으며 사는것이 모두 산때문이라고 한탄했으며 그 산을 볼 때면 조상들까지 원망했었습니다.》

지배인은 목멘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민을 위해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며 걸으신 위대한 사랑의 길이였다. 인민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살게 하시려 우리 수령님께서 심혈과 로고를 바치여 내신 첫길이 이 나라 방방곡곡에 얼마나 많은가. 그날의 길을 마음속으로 따르느라니 어버이수령님의 천만고생이 너무도 눈물겨워 눈앞이 뿌잇해졌다.

스무해 긴긴 세월 눈보라만리, 혈전만리를 헤치시고 가렬한 전화의 불길속을 뚫고오시고도 인민의 행복을 위해 그렇듯 험한 길을 또다시 걸으신 우리 수령님,

눈앞에 둔 복구건설, 사회주의건설때문에 그처럼 바쁘신 우리 수령님께서 산골군인민들이 벌방 못지 않게 살게 하시려고 어뜩새벽부터 산판을 톺으시였으니 인민의 행복을 위한 우리 수령님의 로고는 끝이 없었다.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그 새벽길을 따라 산골사람들에게 복리를 안겨줄 황금산이 창성사람들의 눈앞에 다가온것이다.

어느새 령마루에 다달았는지 우리의 눈에 사연도 깊은 세 글자 《황금산》을 새겨안고 서있는 력사의 기념비가 안겨들었다.

《6년전 우리 창성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여기에 차를 세우시고 〈황금산〉탑을 한참이나 바라보시였습니다.》

지배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탑에 새겨진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한자한자 읽어나갔다. 그럴수록 뜻깊은 교시들을 자자구구 더듬으시며 뜨거운 감회속에 위대한 수령님들과 마음속대화를 나누시였을 경애하는 원수님의 영상이 안겨와 치미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척박하고 궁벽하기 그지없던 창성땅에 행복과 번영을 안아오시려 우리 수령님 이 령은 몇십번이나 넘으시였고 사방으로 련련히 이어진 창성의 골마다, 릉선마다에 흘리신 땀은 또 얼마였던가.

정녕 창성의 황금산들은 우리 수령님의 황금산이라고, 거기에 주렁진 열매들은 우리 수령님의 가슴치는 로고와 헌신의 결정체라고 하면서 지배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체44(1955)년 9월 어느날 성골령을 넘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산열매를 힘겹게 이고지고 삭주시장으로 가는 창성녀인들을 보시고 차를 멈추시였다.

광주리며 베자루에 넣은것을 손수 만져보신 수령님께서는 팔데가 없어서 이렇게 힘들게 이고가누만라고 하시고는 늦기 전에 빨리 가서 장을 보라고 그들의 등을 떠미시였다. 그러시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바람부는 령길에 오래도록 서계시였다.

녀인들의 모습이 사라진 고개길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심중에 한없이 무겁게 실리였던 광주리와 베자루들,

그후 산골농민들이 부수입을 많이 얻고 녀성들이 무거운 짐을 이고 령길을 넘나드는 일이 없도록 산열매를 상업망에서 직접 사주는 수매체계가 세워졌다. 그리고 주체47(1958)년 6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지방산업공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할데 대한 방침이 제시되였다. 그것은 언제나 인민들의 생활의 한복판에 계시며 인민들의 소박한 말과 평범한 생활속에서 인민을 위한 정책의 실마리를 끌어내시고 인민의 리익에 맞는 정치를 펴나가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시책이였다.

온 나라에 소문난 창성식료공장도 그때 생겨났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창성식료공장에서 세세년년 원료걱정을 모르게 하시려 회령특산 백살구나무를 몸소 심어가꾸시며 창성땅에 풍토순화시켜주시였고 군안의 농촌마을들을 찾으시면서 재배방법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인민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그런 지극한 사랑속에 늘어난 황금산의 보물이 어찌 백살구뿐이겠는가. 창성군의 옥포리와 금야리에 가면 양, 염소가 떼지어 흐르고 산들에 조성된 원료림에 튼튼히 의거하고있는 지방산업공장들은 군안의 인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있다. 지난날에는 산에 흔하지만 산골녀인들의 용돈감으로도 시원치 않다고 했던 도토리, 돌배가 이름난 창성술이 되고 찔광이, 산딸기, 머루, 다래 등이 창성의 맛좋은 단졸임, 단묵이 되여 이 고장 사람들의 행복을 더해주게 된것도 다 우리 수령님의 구상과 로고의 덕이다. 황금산의 새 력사는 바로 그렇게 시작되였다. 지방원료에 의거하여 지방경제를 발전시킬데 대한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있게 구가하는 지난해와 또 다르게 창성이 변했다는 행복의 노래도 산나물을 찾아 벼랑길을 톺으시고 산딸기밭을 찾아 골짜기의 칡넝쿨을 헤치시며 우리 수령님께서 걸으신 그 길에서 첫 가락을 뗐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자그마한 접시에 담아 돌배와 잣밖에 올리지 못했던 창성군인민들에게 황금산, 보물산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영원히 전해가자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림을 가꾸는데 한생을 고스란히 묻어가는 군산림경영소 지배인과 같은 이 고장의 수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정신세계도 다름아닌 그 길에 뿌리를 두었다.

산천도 사람들도 자랑거리인 창성,

우리 원수님께서 이 두메산골군의 산림을 본보기로 하여 나라의 모든 산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꾸리실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로고를 바치시였기에 창성, 이 고장은 온 나라에 또다시 큰 소문을 내게 된것이 아니랴.

문지령을 내리는 사이에 저녁노을은 어느새 주위를 온통 금빛으로 단장시켜놓았다. 황금산의 자태를 더욱 눈부시게 하는 그 빛은 온 강산에 퍼져가고있었다.

 

글 본사기자 한영민

사진 본사기자 최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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