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22일 로동신문

 

자력갱생대진군의 척후에 청년전위들이 있다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송남청년탄광에 달려온 청년전위결사대원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 공화국의 건국과 발전의 위대한 년대기들에는 청년, 이 두 글자가 뚜렷이 아로새겨져있다.

얼마나 무수한 기념비들이 그 부름과 더불어 빛나고 얼마나 자랑찬 승리들이 그 힘에 받들려 이룩되였던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은 당과 혁명의 요구, 조국의 부름에 언제나 피끓는 심장으로 화답하여온것처럼 오늘의 력사적진군에서 청춘의 힘과 지혜, 열정을 다 바쳐 당의 청년전위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여야 합니다.》

투쟁전역은 넓지 않다. 아직은 요란한 성과도 없다. 하지만 크지 않은 송남탄전의 지하막장에서 우리의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이 바쳐가는 피와 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탄광은 경제발전의 척후전구라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뜻을 받들어 한몸바쳐 부강조국건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력갱생을 체질화하고 애국의 열의로 피끓는 영웅적인민의 군상을 본다. 혁명의 피줄기, 충정의 대가 꿋꿋이 이어지는 우리 국가의 강대성과 창창한 미래를 확신한다.

 

결사대 앞으로!

 

지난해 11월,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송남청년탄광 문화회관에서는 온 나라 청년들의 드높은 열의속에 청년전위결사대조직모임이 있었다.

송남청년탄광의 침수된 갱들을 최단기간에 복구하고 새 탄밭을 마련할데 대한 당의 호소를 심장으로 받들고 전국각지에서 달려온 200여명의 청년들, 60여년전 탄광의 첫 개발자들이 불렀던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는 그들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제1차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빛나게 완수하기 위한 투쟁에 온 나라가 떨쳐나섰던 1957년, 그때 어디서나 요구되는것이 석탄이였다. 석탄더미우에 앉아서 남을 쳐다볼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대담하게 새 탄광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평남지구에 굴지의 탄광을 일떠세울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혈기왕성하고 용감한 청년들이 전국각지에서 떨쳐나섰다.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을 이끄시고 몸소 평양역에 나오시여 송남청년탄광개발지로 떠나는 청년들을 뜨겁게 환송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는 또 얼마나 뜨거운것이였던가. …

청년전위결사대기발을 엄숙히 받아안고 결사대 대장 김청송동무는 이렇게 열변을 터쳤다.

《침수갱복구는 자연과의 엄혹한 전투이기 전에 우리 나라의 첫 청년기업소인 송남청년탄광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신념의 결전입니다. 죽으나사나 당의 믿음을 지켜 우리 원수님께 기어이 승리의 보고를 드립시다!》

청년개발자들의 땀이 어디라없이 스며있는 송남땅에 고향의 부모처자들과 청년동맹조직의 당부를 가슴에 안고 들어선 결사대원들의 직업과 나이, 경력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부름은 꼭같았다.

청년전위결사대원,

그 말의 참뜻을 온몸으로 절감하기까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시련과 난관을 헤쳐야 하는지 아직 그들은 다는 알수 없었다.

땅우에도 새 길을 내기 어려울진대 해빛도 없고 공기도 희박한 천길땅속에서 때없이 붕락되는 침수된 갱을 복구해야 할 결사대원들의 앞에는 얼마나 무수한 위험들이 도사리고있었을것인가.

갱을 꽉 채운 감탕, 금시라도 덮쳐내릴것만 같은 암반들…

복구의 첫걸음은 각오했던것보다 더 힘겨웠다.

한마대에 기껏해서 감탕 다섯 초롱, 한 광차를 채우자면 마대 50개… 미끄러져내리는 감탕마대를 떨구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감탕판을 헤치며 한치한치… 그렇게 수백 광차, 결사대원들이 등짐으로 나른 감탕은 그 얼마이랴.

수십년세월 침수되였던 갱이라 웬만한 진동에도 붕락이 뒤따랐다. 앞길을 가로막는 담벽같은 암반들은 오직 정대와 함마로만 까내야 하였다. 함마질에 암반이 쩍쩍 갈라져나가면 그들은 뒤질세라 먼저 앞에 나섰다. 남보다 먼저 큰돌을 메여나르려고.

그것은 황금덩이도 쌀마대도 아니였다.

내가 힘이 들면 들수록 그만큼 조국에 실린 짐이 가벼워진다, 이 한생각으로 그들은 손끝에 피가 나고 등어리에 멍이 져도 더 무거운 짐을 찾았다. 한 광차라도 더 하기 위하여 회수동발로 떼를 무어 버럭을 실어날랐다. 젖은 옷 한번 말릴새없이 감탕속에 서서 말뚝잠을 자며 막장에서 맞고 보낸 날은 그 얼마였던가.

간난신고를 다하며 한달나마 복구구간을 열어제꼈을 때였다.

잠시 땀을 들이며 서있던 결사대원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지뢰원을 해제하듯이 한치한치 복구해온 구간이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것이 아닌가.

그들은 저도 모르게 풀썩 주저앉았다.

바로 그때 청년전위결사대 참모장이며 김진청년돌격대 대장인 김동철동무의 결패있는 목소리가 얼어붙었던 공기를 깨뜨렸다.

《김진청년돌격대원들은 앞으로!》

그들의 앞을 내각소대 소대장이 막아나섰다.

《청년동맹초급일군들인 우리부터 결사대의 기수가 되겠소.》

황해북도소대 소대장의 목소리도 강경했다.

《우린 다같이 청년전위들이요. 앞서고 뒤서는 사람이 따로 있을수 없소.》

조금도 앞자리를 양보하려 하지 않는 결사대원들에게 김동철동무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청년갱의 갱장이고 우린 이 갱의 주인들이요. 우리 돌격대가 김진동지의 이름으로 떳떳이 불리울수 있도록 해주오.》

사실 막장일을 많이 해본 김진청년돌격대 지휘관들은 다시 붕락이 있을수도 있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하기에 그들의 가슴은 진격의 돌파구는 다름아닌 바로 자기들이 열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로 높뛰고있었다.

무너져내린 버럭더미우에 올라서 한m 또 한m 다시 동발시공을 해나가던 그때를 돌이켜보며 김진청년돌격대의 한 소대장은 말했다.

《정말 온몸에 진땀이 났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말입니다. 그때 대장동무가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습니다. 〈척후가 휘청거리면 대오가 전진 못해.〉》

선뜻 손을 댈 엄두조차 낼수 없었던 그 붕락구간이 불과 며칠만에 복구되였을 때 탄광사람들은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라는 진리를 체험했다고 한다. 당의 믿음이면 지구도 들어올릴수 있다는 신념을 지닌 우리 청년들의 무한대한 힘을 보았다.

뼈를 묻을수는 있어도 물러설수는 없다!

오직 이 하나의 각오로 더운 피 끓이며 결사대원들이 열어간 막장길, 그것은 첫 육탄영웅 김진동지와 함께 헤친 돌격의 길이였고 경제건설의 전초선을 지켜 사회주의를 결사수호해가는 애국의 길이였다.

진정 불꽃튀는 결전은 지하막장에서만 벌어졌던가.

동발생산을 맡은 평양시소대의 결사대원들중에는 송남땅에 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나무를 끌어본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산판일에 경험이 없어 처음엔 발을 상하는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오에서 떨어지는 대원은 한명도 없었다.

동발, 그것은 목숨걸고 막장을 복구해나가는 결사대원들의 탄약과도 같았기에, 동발생산이자 굴진속도였기에 그들은 퉁퉁 부어오른 발에 신발을 신고 피나게 입술을 깨물면서도 수십리 산발을 톺았다. 내가 끄는 동발의 무게가 당을 받드는 내 량심의 무게라고 웨치며 가다가 쓰러지면 지팽이를 량손에 짚고서라도 동발나무감을 찾았고 촉살의 련결고리가 끊어지면 신발끈으로, 그것마저 끊어지면 바지단을 찢어서라도 동발나무를 끌고 왔다. 폭약이 떨어지면 시한탄과 불발탄을 해체하여 부족되는 폭약을 보충하며 병기생산을 진행하던 군자리로동계급을 그려보며 매일 전투계획을 기어이 넘쳐 수행하였다.

2019년 새해를 한주일 앞둔 날이였다.

그날 김진청년돌격대 대원 채국진동무는 소대원들과 함께 가장 위험한 구간에서 동발시공을 하고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 서서 동발을 드리는 그에게 한 대원이 같이하는것이 어떤가고 물었을 때였다.

《저도 같이하면 헐한줄 압니다. 하지만 여긴 위험합니다.》

이것이 그가 남긴 생의 마지막말로 될줄 누가 알았으랴.

쿵하는 소리와 함께 금시까지 웃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집채같은 암반이 불쑥 솟아났을 때 결사대원들은 억이 막혀 울지도 못했다.

위험한줄 알면서도 그 위험한 곳에 서슴없이 한몸바쳐 대오의 앞길을 개척한 척후병, 우리 원수님께 떳떳하게 새해인사를 드리겠다고 막장을 떠나지 않던 탄부, 그는 26살의 애젊은 청춘이였다.

그의 안전모와 안전등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막장으로 처억처억 들어가는 결사대원들의 가슴속에서는 전화의 나날 판가리싸움터에 메아리치던 노래가 울려퍼지고있었다. 나가자 동무여 결전의 길로!

평범한 청년탄부의 고귀한 희생은 경제발전의 척후전구에서 기발들고나아가는 육탄결사대를 낳았다.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은 채국진동무의 이름을 자기 소대명단의 첫자리에 명예대원으로 새겨넣었다. 그가 희생된 자리에 서서 마음속으로 하루일을 총화지을 때면 결사대원들은 그가 자주 행복에 젖어 외우던 이야기를 눈물겹게 되새겨보군 하였다.

《글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돌격대의 수십명 청년들을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불러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으실줄이야.

경애하는 원수님께 꽃다발을 드리는 돌격대 대장동지를 보며 우린 목이 메여서 만세도 못 불렀습니다. 그날 저는 우리 원수님께로 막 달려가 그이의 손을 잡아보았습니다. 지금도 이 손을 쓸어보면 우리 원수님께서 꼭 내곁에 계시는것만 같습니다.》

언제나 전우의 그 목소리를 가슴에 안고 결사대원들은 천길지하막장으로 한m한m 더 깊이 들어갔다.

 

위훈은 미덕으로 더욱 빛난다

 

소대간의 차이를 가늠하기 힘든 사회주의경쟁도표앞에서 청년전위결사대 정치지도원 리명찬동무는 말했다.

《어느 소대가 일을 제일 잘하는가, 어느 소대가 좋은 일을 제일 많이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가 힘듭니다. 모두가 전렬에 서있고 모두가 미담의 주인공들이랍니다.》

송남땅에 달려온 결사대원들의 욕망은 한결같았지만 사실 대오의 선두에서 달린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벌방지대에서 나서자란 황해남도소대의 결사대원들에게는 막장의 모든것이 말그대로 생소하였다. 눈앞의 공구도 이름을 몰라 한참 찾아헤매야 하였던 그 나날 소대장은 대원들에게 불같이 호소했다.

주먹구구식으로는 일할수 없다. 다같이 따라배우고 따라앞서자.

황해남도소대에 학습열풍이 일어번지던 그무렵 자강도소대는 한교대더하기를 발기해나섰다. 전천탄광의 끌끌한 골간들로 조직된 자강도소대의 결사대원들은 남보다 기능이 높을수록 응당 더 많은 일감을 찾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속에서도 그들은 다른 소대의 결사대원들과 마찬가지로 황해남도소대를 도와주는데 품을 아끼지 않았다.

1등이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기능공이 되고 다같이 혁신자가 되면 우리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는 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지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집단주의정신을 체질화한 결사대 소대장들의 꼭같은 심정이였다.

전차가 번쩍번쩍하며 지나갈 때면 막장벽에 붙어서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던 황해남도소대의 막내대원이 전차운전까지 하게 된 사연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차를 세워두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전차가 쉬임없이 달려야 석탄산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어제날 막장생둥이들이 오늘은 혁신자가 되고 뒤떨어졌던 소대들이 앞선 소대와 자리다툼을 하고있다. 스스로 운반선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불량개소를 퇴치하고 로반정리를 해놓는것은 결사대원들의 례사로운 일과로 되였다. 누구나 다음교대를 위하여 두몫, 세몫으로 일하고있다.

기술혁신에서 한몫 단단히 하는 재간둥이들이 많은 량강도소대에는 탄부들이 두고두고 외우는 미담이 있다.

언제인가 일을 마치고 막장길을 걷던 한 분대장과 대원은 무심결에 밟히는 석탄덩어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보는 사람도, 시킨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한듯이 한줌 또 한줌 흘린 탄을 정히 쓸어담았다. 수평갱을 따라 또 사갱을 따라 걸으며 그렇게 멈춰서기를 그 몇번…

수십㎏의 짐을 진것과 같은 지압을 받는 막장에서는 맨몸으로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하물며 교대를 잊고 일한 그들이 오죽이나 힘들고 잠이 그리우랴.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위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4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그 두배가 되는 시간이 걸려서야 갱입구에 이르렀지만 그들은 마대에 담긴 석탄을 쏟아놓고는 누가 이름조차 물을새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십일을, 한두명도 아니고 온 소대가 석탄마대를 메고 매일같이 걸은 그 소행을 탄광의 어느 누구인들 모르랴.

그들이 등짐으로 쌓아놓은, 보석같은 량심들이 비낀 그 석탄무지앞에서 조국의 재부를 더없이 귀중히 여기는 청년들의 산같은 마음을 안아보며 탄광사람들은 생각했다.

한g의 석탄도 자기 살점처럼 아낄줄 아는 그 불타는 애국심이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는것이라고.

그 마음으로 그들은 청년갱의 주인들이 되였다.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결사대원들을 위해서라면 사심없이, 가식없이 친혈육의 진정을 기울이는 송남청년탄광과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일군들 아니 송남인민들모두의 친자식이 되였다.

어느 봄날 깐진 살림군들로 소문난 평안북도소대의 대원들은 짬짬이 일군 땅에 남새씨앗을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금방 호미를 땅에 박던 소대장의 일손이 주춤 멈추어졌다. 자기들을 친손자처럼 돌봐주는 옆집할머니네 터밭은 아직도 겨울을 난 그대로였다.

그 터밭을 시원하게 정리해놓고보니 《올해엔 여기에 시금치를 심어볼 작정이네.》 하던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기들이 심으려던 시금치씨앗을 할머니네 집 터밭에 먼저 쭉쭉 뿌렸다. 결국 모자라는 남새씨앗을 구하러 다시 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기쁘기만 하였다. 유치원의 넘어진 롱구대를 다시 세워준 그날 반기며 달려와 인사하던 꼬마들을 품에 안던 그때처럼.

평안북도소대에만 꽃피는 미담이 아니다.

송남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결사대원들은 누구나 다 아름다운 소행의 주인공들이다.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소대의 누구였던지 이름도 미처 기억할새없이 잠시 만났다 헤여졌지만 금방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였다던 한 결사대원이 스스럼없이 하던 말이 때없이 귀전에 들려온다.

《소대에서 제일 자랑하고싶은것 말입니까? 우리 소대장동지입니다.》

식사도 보장할래, 작업복도 빨아줄래, 대원들을 대신하여 근무도 설래 소대의 맏누이구실을 하느라 누구보다 힘들건만 매일같이 어린 대원들에게 자기의 밥을 통채로 덜어주군 한다는 강원도소대 취사원처녀 역시 얼굴을 붉히며 먼저 한 이야기는 지휘관들에 대한 자랑이였다.

《우리 결사대 대장동지는 200여명 대원들의 생일을 다 기억했다가 아무리 바빠도 꼭꼭 찾아가서 축하해주군 하는데 우리 지휘관동지들을 따라서려면… 전 아직 멀었습니다.》

기특한 강원도처녀와 더불어 모두가 콩국처녀라고 정담아 부르는 또 한명의 처녀가 떠오른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따끈따끈한 콩국을 출갱하는 탄부들과 결사대원들에게 안겨주군 하는 내각소대의 최예송동무, 그가 자기보다 먼저 소개해줄것을 부탁한 사람들은 탄광일을 제 집일처럼 여기며 온 가정의 지성어린 마음을 안고 변함없이 막장길을 걷는 내각소대가족지원대원들이였다. 자기 남편만이 아닌 함경북도소대의 결사대원들을 위해 마련한 지원물자를 안고 천리길을 달려온 북변땅의 두 녀인이였다. 천연암반을 함께 밀어가는 심정으로 결사대원들과 한전호에 서있는 미더운 청년동맹일군들이였다.

얼마나 돋보이는가.

지휘관들은 대원들을 아껴주고 대원들은 지휘관을 따르고 존경하며 자기보다 동지를 먼저 내세우고 자기들의 수고보다 남의 수고를 더 크게 헤아릴줄 아는 그 갸륵하고 뜨거운 마음이.

얼마나 훌륭한가.

당의 부름을 받들어 달려간 곳이라면 그 땅을 자기 고향처럼 여기고 그 고장 인민들을 한식솔처럼 사랑하며 새 기술의 개척자, 새 문화의 창조자, 대비약의 선구자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해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부강조국건설의 들끓는 전구마다에서 당중앙결사옹위의 성벽이 되고 사회주의수호의 성새가 되는 우리 청년들의 위훈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조선로동당의 품속에서 형성된 순결하고 열렬한 정신세계, 고결하고 훌륭한 미덕이다.

 

전진하라 청춘탄전이여

 

혁신자로 이름난 김진청년돌격대의 한 굴진소대장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이렇게 시작되였다.

《전 이제야 진짜 굴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굴진실적이 뛰여오르던 어느날 그는 말없이 자기를 지켜보는 돌격대 대장의 엄한 눈빛에 굴진을 멈추었다. 대장의 손에 이끌리여 그가 이른 곳은 하루전에 복구한 침수갱의 붕락구간이였다.

《보시오. 탄광의 첫 갱장이였던 동무의 할아버지, 소문난 굴진공이였던 동무의 아버지가 어떻게 일했는가를.》

높고 넓고 견고하게 굴진한 막장은 척 보기에도 시원하였다. 순간 그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채탄공들에게 불편스러운 협소한 자기들의 막장이 너무도 대조되게 안겨왔던것이다.

더우기 그를 놀라게 한것은 수십년세월이 흐르도록 막장에 그대로 보존되여있는 할아버지세대들의 초소공구함이였다. 공구 하나하나를 얼마나 애용했던지 정대며 정알은 당장이라도 쓸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에겐 문득 탄광의 연혁소개실에서만 보아왔던 할아버지가 눈앞에 서있는듯 하였다. 그날 그는 할아버지의 숨결이 들려오는것만 같은 착암구멍을 오래도록 쓸어보면서 많은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복구전투가 시작되였을 때 평안남도소대 소대장은 청년개발자였던 한 로인과 초급일군들과의 상봉모임을 조직했었다.

그때 로인은 《송남청년탄광개발자》휘장과 《1957년 7월 11일》이라는 개발년월일이 뚜렷이 새겨져있는 갱앞에서 깊은 감회에 젖어 막장의 암질조건으로부터 석수가 많이 터지는 구간에 이르기까지 한m한m를 생생히 더듬었었다. 오랜 세월 막장의 모든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잊지 않고 살아왔다는 그자체가 조국에 바친 개발자들의 땀이 얼마나 뜨겁고 순결했는가에 대한 말없는 증명이였다. …

굴진소대장은 새로운 각오를 안고 막장으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게 굴진을 하자.)

그 시각 황해북도소대에서는 끊어진 레루를 어떻게 이을것인가 하는 문제가 진지하게 토의되고있었다.

첫 세대 개발자들은 참나무를 다듬어 레루와 탄차바퀴도 만들었다는데 우리도 한번 해보자.

마침내 힘을 합쳐 만든 참나무레루우로 광차가 기운차게 지나갔을 때 그들은 합창하듯 웨쳤다. 《자력갱생 만세!》

청년들은 당이 부르는 혁명초소들에서 척후대의 영예를 빛내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신년사를 막장에서 받아안은 결사대원들의 심장은 더욱 달아올랐다. 그이께서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그날에는 너나없이 교대를 잊었다. 한걸음한걸음의 전진에 불같은 그리움을 쏟으며 그들은 불사신처럼 일했다. 자기의 총번호를 착암기에 새겨넣고 송남탄전을 개척하던 탄광의 첫 청년개발자들처럼.

전투가 시작되여 37일째 되던 날 량강도소대의 전투기록장에는 이런 글이 새겨졌다.

《…어머니당의 믿음을 지켜 의식을 잃으면서도 막장을 떠나지 않는 김동철동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량강도청년전위결사대원들도 당을 따라 위훈의 한길로 끝까지 가리라 결의다지였다.》

정든 집 대문도 선뜻 열고 들어설수 없었던 그에게 참된 청춘시절을 주시고 앞가슴에 김정일청년영예상이 빛나도록 해주시며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대표로까지 불러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의 수백명 청년동맹일군들과 청년탄부들에게 한날한시에 당 및 국가표창을 수여하도록 해주신 그 믿음과 은정은 또 얼마나 많은 청년불사조들을 키워냈던가.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두번다시 받아안은 인생이기에 보답의 길에서 결코 쓰러질수 없는 김동철동무였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하군 했다.

《석탄에는 버럭이 있어도 못난 자식, 상처입은 자식일수록 천만자루 품들여 내세워주는 어머니당의 품속에선 버럭같은 청춘이란 있을수 없소. 당의 믿음, 조직의 믿음을 떠나선 한시도 살수 없는것이 바로 우리 청년들이요.》

누가 보는이 없는 천길막장에서 순간순간이 결사전의 련속과도 같은 그 나날 결사대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힘든것은 자신을 이겨내는것이였다.

결사대원들에게도 자기를 지탱하기 힘든 그런 순간이 있어 동요도 주저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혁명가요 《적기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 막장에 걸어놓은 붉은기앞에서 이렇게 물어보며 용기를 가다듬고 새힘을 얻군 했다고 한다.

내가 비겁해지지 않았는가, 붉은기앞에서 다진 맹세를 저버린적은 없었는가.

어느날 현장치료를 위하여 막장에 들어갔던 황해남도소대 군의는 불시에 무너져내리는 탄더미에 통채로 묻히게 되였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꽃나이처녀, 과연 다시 일어날수 있을가 너나없이 걱정하며 후송준비를 서두르던 그때 구사일생으로 구원된 처녀는 무엇을 생각하고있었던가.

사람들이여, 우린 여기에 나어린 처녀의 말을 한자도 더하지도 덜지도 않고 그대로 적는다.

《살았구나 하는 순간에 소대에서 나를 집으로 보낼가봐 정말 걱정스러웠습니다. 마지막까지 일을 잘하고 오겠다고 청년동맹조직앞에 맹세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키고 수치스럽게 갈가봐 두려웠습니다.》

소나무처럼 그 푸름 변함없고 대나무처럼 그 곧음 잃지 않는 이렇듯 고지식하고 투철한 청년들을 과연 어떤 바람이 유혹할수 있단 말인가. 백두의 혁명정신을 만장약하고 당의 믿음을 명줄처럼 간직한 이런 강철의 청년대오를 무슨 힘으로 굴복시킬수 있단 말인가.

전세대들의 고귀한 헌신의 삶으로 마련된 이 제도, 이 땅에서 오늘의 새 세대가 조국을 떠받들 거목으로 자라나고있다.

함경남도소대의 한 대원은 공민이 되여 처음으로 선거에 참가하고 그달음으로 막장에 들어가 일하던 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하였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더라고, 아마도 그날에 일을 제일 많이 한것 같다고.

한 교대만이 아니라 두 교대, 세 교대를 더하는 압축기운전공인 19살의 처녀결사대원에게 김진청년돌격대 당세포위원장인 김성남동무가 힘들지 않은가고 물었을 때였다.

《오늘 물러선 한치가 래일엔 수십자욱 뒤걸음으로 된다고 늘 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네 남매가 평양을 떠나서 탄전으로 탄원해온것은 당중앙의 불빛을 지키고싶어서였습니다.》

부모잃은 그들을 한명한명 데려다 애지중지 키워 집단을 알고 조국을 아는 새 세대로 내세운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커갈수록 김성남동무는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에게 삶의 자양분을 안겨주고 인생의 넋을 심어준 위대한 조선로동당에 대한 감사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하기에 깊은 밤, 이른새벽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상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를 찾아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지하막장으로 들어가는 결사대원들은 언제나 어느때나 심장으로 듣고있었다.

나를 부르는 소리-어머니당의 목소리를!

뜻깊은 태양절을 앞둔 어느날 나어린 한 대원을 억다짐으로 작업에서 떼내여 휴식시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그가 《만세!》 하고 웨치며 벌떡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는 결사대원들에게 그가 울먹울먹 아쉽게 터치는 꿈이야기-《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청년갱에 찾아오셨댔습니다!》

꿈을 꾼 그 대원보다 더 아쉬워 눈물을 삼키며 결사대원들은 더 힘껏 정대를 틀어잡았다. 그 선두에는 송남탄전의 첫 개발자의 후손인 김진청년돌격대의 참모장 오철룡동무가 서있었다.

그 시각 결사대원들을 한명도 남김없이 철수시킨 어느 한 갱에서는 청년전위결사대의 지휘관들이 생명을 내대고 위험한 구간을 열어가고있었다.

청년전위결사대의 대장 김청송동무와 정치지도원, 참모장 세 지휘관은 손과 손을 굳게 잡고 언제 죽음이 닥쳐들지 모를 곳으로 한치한치 전진했다. 첫 사람이 공기배관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를 조금 들이마시고 뒤사람에게로 넘기면 그것은 이내 또 다음사람에게로 넘겨졌다.

천길막장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탄부들이 늘 즐겨읊는 한편의 시가 절절히 울려퍼지고있었다.

태양같이 환하신 원수님 미소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 살기에 갱에 들어서면 하늘은 사라져버려도 탄부의 마음속엔 하늘이 있다고, 탄부는 땅속에서도 어둠을 모른다는 그 구절구절이.

전세대들이 이룩한 승리를 더 큰 승리로 이어가며 후대들을 위하여 성실한 피땀을 바쳐 자기 세대의 몫을 다하는 우리 당의 충직한 청년전위들의 선두에서 이처럼 믿음직한 청년일군들이 기관차가 되여 달린다는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         *

 

자력갱생대진군의 척후에 우리의 미더운 청년전위들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주의 우리 조국이 언제나 젊음과 활력에 넘쳐 광명한 미래에로 비약해나갈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귀중한 전략적자원, 무궁무진한 힘이 아니겠는가.

우리 혁명앞에 시련과 난관이 막아설 때마다 우리 당의 마음의 기둥, 억척의 지지점이 되여준 주체조선의 청년들이여,

위대한 당중앙이 가리키는 조선혁명의 침로따라 언제나 곧바로 폭풍쳐나아가며 영광스러운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기발을 더 높이, 더 힘있게 휘날리라!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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