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15일 로동신문

 

방문기

 기록장에 비낀 애국의 마음

모란봉구역 긴마을1동 63인민반 강영기로인의 가정을 찾아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의 마음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실천활동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얼마전 모란봉구역 일용품수매상점 긴마을 1동 1수매분점을 찾았던 우리는 자그마한 속보판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63인민반 영예군인 강영기아버님 지난해 파철 3 013kg 수매!》

3 013kg이라는 수자도 놀라왔지만 그 주인공이 한팔에 심한 부상을 입은 영예군인이며 제대군관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놀라게 했다. 하여 우리는 강영기로인의 집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동의 일군은 이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아이들까지도 좋은 일을 하는 할아버지라고 정담아 부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강영기로인은 길을 갈 때 그냥 걸어다니는적이 없고 항상 어디에 파철이나 유휴자재가 있지 않겠는가를 살펴보면서 다니는것이 특징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강영기로인의 집에 이르렀다.

어떻게 그 많은 파철을 수집할수 있었는지 알고싶어 왔다고 하자 한동안 말이 없던 로인이 한권의 크지 않은 기록장을 내미는것이였다. 기록장의 표지에는 《삶과 투쟁의 길》이라는 제목이 씌여있었다.

우리는 기록장을 무심히 번질수 없었다. 이 기록장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한생을 살았을 로인의 체취가 어려와서였다.

강영기로인은 40대의 한창나이에 조국보위의 길에서 부상을 당한 제대군관이였다.

총대로 조국을 지키는 길에 자기의 한생을 다 바치리라 맹세다졌던 그에게 있어서 불구의 몸이 되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온몸을 파고드는 육체적아픔보다도 당과 수령을 위한 보답의 한길에서 락오자가 된것만 같은 정신적아픔이 그를 더 괴롭혔다.

그러던 주체84(1995)년 1월 그는 텔레비죤화면에서 다박솔초소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을 뵈옵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를수록 한순간 나약했던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그때부터 원군길을 이어가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어느 한 주변농장에 나가 농장원들의 일을 도와주던 강영기로인의 눈에 우연히 못쓰게 된 삽날과 호미날이 띄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강영기로인의 머리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렇게 못쓰게 된 삽날과 호미날과 같은 파철들을 모아 바친다면 나라에 보탬이 될것이 아닌가.)

이때부터 자나깨나 강영기로인의 생각은 파철에 가있었다.

불편한 몸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과 같이 파철수집의 길에 나선 로인, 철근이나 쇠쪼각들이 배낭을 채울 때면 온몸을 쑤시는 모진 아픔마저 가뭇없이 잊은듯 강영기로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리군 했다.

이렇듯 그는 20여년세월 누가 보건말건, 평가해주건말건 량심의 길을 걸어 해마다 나라에 보탬을 주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참된 인생길이 어려와 쉬이 기록장을 덮을수가 없었다.

제대군관의 기록장,

평범한 가정마다에서 씌여지는 이런 애국의 기록들이 합쳐져 부강조국건설의 위대한 력사가 창조되는것이 아니던가.

날이 저물어갈무렵 이런 생각을 안고 강영기로인의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는 수많은 살림집들의 불밝은 창가들이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애국의 기록장을 번지며 묵묵히 헌신하고있을 참된 공민, 애국자들의 모습이 안겨왔기에.

 

박주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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