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12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증송의 배고동소리와 더불어 빛내여온 값높은 삶

송림항 항장 김영기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일군들은 당과 혁명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대오의 앞장에서 대중을 이끌어나가는 기관차가 되여야 합니다.》

여기에 한 참된 애국자, 우리 당이 바라고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지난 17년간 나라의 항만운수부문의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당에 대한 불타는 충정심과 열렬한 애국심을 지니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해마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도록 하였을뿐아니라 일터의 면모를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일신시키고 종업원들에 대한 후방공급사업에서 전변을 이룩한 송림항 항장 김영기동무,

좋은 날에도, 시련의 나날에도 언제나 령도자와 뜻과 숨결을 같이할 드팀없는 신념을 지니고 자기 단위 사업을 당이 바라는 높이에 올려세우기 위해 끝없는 사색과 탐구,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바쳐온 그의 삶은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진지하게 사색하고 완강하게 실천하라

 

여러해전 소슬한 강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송림항 부두를 오래도록 거니는 사람이 있었다. 송림항 항장 김영기동무였다.

그의 뇌리에서는 며칠전 단천항건설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항건설을 비롯한 하부구조망공사는 후손만대의 행복과 나라의 륭성번영을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신 뜻깊은 말씀이 좀처럼 사라질줄 몰랐다. 그럴수록 항활성화를 위해 날과 달을 주름잡아온 나날들이 삼삼히 떠오르고 항을 당에서 바라는 높이에 올려세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각오가 불타올랐다.

항만운수부문과는 전혀 다른 단위에서 일하던 김영기동무가 송림항 항장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나라가 아직 고난과 시련의 흔적을 채 털어버리지 못하고있던 시기였다.

그때 김영기동무는 당의 신임과 기대에 높은 사업실적으로 보답할 열의를 안고 자기 사업의 첫걸음을 뗐지만 눈앞에 보이는 항실태는 그의 마음을 자못 무겁게 했다.

변변치 못한 건물들이며 오래된 항만기중기들…

더우기 가슴아픈것은 모진 시련을 겪는 과정에 유능한 기술자, 기능공을 비롯한 적지 않은 종업원들이 정든 일터를 떠나간 사실이였다. 그날 저녁 김영기동무는 자기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사업을 시작한 초급당일군과 마주앉아 항의 활성화방도를 토론했다. 그들이 찾은 방도는 명백했다.

대중운동을 통해 종업원들의 사상관점과 일본새에서 전변을 가져오자. 사상, 기술,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킴으로써 가까운 앞날에 단위를 대중운동의 앞장에 선 선구자집단, 항만운수부문의 모범단위로 전변시키자.

수십년동안 동면하고있던 송림항을 부글부글 끓어번지게 한 활성화의 불길은 이렇게 지펴졌다.

그는 초급당위원회의 지도밑에 먼저 당의 유일사상교양의 거점인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을 최상의 수준에서 꾸리고 항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한 사업을 통이 크게 밀고나갔다.

어느날 김영기동무가 육중한 함마를 들고 구내에 나서자 사람들은 놀라움에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있던 창고를 비롯하여 낡은 건물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사업이 아예 건물을 헐어버리는것으로부터 시작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일부 일군들이 자재와 로력타산이 서지 않는다고 우는소리를 할 때 김영기동무는 단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자재가 없고 사람이 없다고 헐어버린 건물잔해를 그냥 두고 지내는 일은 없는 법이요.》

일군의 단호한 결심과 이신작칙은 곧 대중에게 말없는 고무와 힘으로 되였다. 건설전투로 새날이 밝고 하루해가 저무는 나날 김영기동무는 평범한 전투원이고 시공주였으며 자재일군이였다.

공사의 제일 힘들고 어려운 모퉁이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고 긴요한 건설자재를 해결하기 위해 수백리 먼길을 주저없이 떠나는 사람도 그였으며 건물 하나를 일떠세워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손색없이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는 사색과 탐구를 이어가는 사람도 김영기동무였다.

일터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한 간고한 전투로 날이 흐르고 달이 바뀌는 속에 어느덧 송림항은 옛 모습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고난의 흔적을 하나둘 털어버리게 되였다. 그러나 보다 어려운 일은 앞에 있었다.

생산을 활성화하고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원만히 수행하자면 결정적으로 항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그쯘히 갖추는것이 중요했다. 그는 이 사업도 단순히 있는 설비를 개건보수하는것으로 굼때려 하지 않았다. 언제인가 기술자들과 마주앉아 생산활성화의 방도를 토론할 때였다. 김영기동무가 책상우에 종이두루마리 한장을 펼쳐놓았다.

《이것은 어느 한 참고서에 짤막하게 소개된 공기방석식벨트콘베아입니다.》

공기방석식벨트콘베아, 보기에도 듣기에도 처음인 설비였다. 회의참가자들모두가 호기심과 기대가 엇갈린 눈빛으로 항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보지 못한것이지만 우리 실정에 꼭 맞는 설비입니다. 초보적으로 타산해보아도 설비제작에 드는 품에 비해 작업능력은 대단히 높습니다.》

순간 회의장 여기저기에서 가벼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는 알수 없었다. 김영기동무가 항의 실정에 맞는 생산활성화방도를 찾기 위해 낮에 밤을 이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인 사실이며 시와 도의 해당 기관은 물론 인민대학습당을 수십번이나 오고간 사연에 대하여…

항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한 건설전투를 일정대로 밀고나가면서 설비제작전투를 동시에 벌린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더우기 눈에는 익고 손에는 설다는 말이 있듯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어려울것 같지 않은 설비제작이 설계로부터 시작하여 그야말로 간고한 초행길의 련속이였다. 그들을 돕기 위해 내려온 중앙의 어느 한 대학 연구사와 항기술자들이 서로의 지혜와 힘을 합쳐 새 설비를 제작하기 위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였으나 시험과정에 실패가 거듭되였다. 그러나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일떠서려는 김영기동무의 결심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설비제작의 나날 최전연초소에서의 군사복무시절 훈련도중에 입은 상처가 자꾸 도져 운신조차 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현장에서 주사까지 맞으며 새 설비제작을 위해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여 그처럼 어렵다고 하던 공기방석식벨트콘베아가 자기의 첫 동음을 우렁차게 울릴 때 김영기동무와 기술자들을 비롯한 송림항 종업원들의 가슴은 자기 힘에 대한 확신과 긍지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후날 송림항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현대적인 항만설비를 보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 일을 계기로 항의 기술자, 기능공들은 항만기중기들을 개건보수하고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을 줄기차게 내밀어 항의 짐통과능력을 훨씬 높였고 당창건 60돐을 맞으며 수상운수부문에서 하나의 혁신이라고 말할수 있는 능력이 큰 자동차운반선을 만들어 대동강에 띄움으로써 나라에 막대한 리익을 주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 과정에 송림항은 2004년 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였고 련이어 2중, 3중3대혁명붉은기단위의 영예를 떨칠수 있었다.

당앞에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이라면 시련과 난관앞에서 주저앉을 권리가 없다. 사색은 진지하게, 결심은 단호하게, 실천은 완강하게!

오늘도 김영기동무는 이런 드팀없는 신조를 지니고 자기 단위를 당정책결사관철의 선구자집단, 대중운동의 모범단위로 더욱 빛내이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언제나 필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될 단위

 

오늘 송림항은 맡은 혁명임무는 물론 시적으로 제기되는 크고작은 일들을 도맡아해제끼는 힘있는 단위,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자랑떨치고있다.

지금으로부터 여러해전 김영기동무는 시에서 진행하고있는 학생소년회관건설이 일정대로 진척되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학생소년회관건설은 우리 당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이 어려있는 중요한 공사가 아닌가.

며칠후 그는 학생소년회관건설을 항에서 전적으로 맡아 진행할것을 당조직에 제기했다. 사실 현행생산을 내밀면서 그런 방대한 공사를 자체의 힘으로 진행한다는것은 쉽게 결심할 문제가 아니였다.

연건평만 해도 수천㎡에 달하는 반면에 공사기일은 불과 일여덟달에 불과했던것이다. 그러나 김영기동무는 당에서 그토록 관심하는 문제, 귀여운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에서는 네일내일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결심은 종업원모두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회관건설을 다그쳐 끝내기 위한 돌격대가 무어지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립체전이 벌어졌다. 그 나날 김영기동무는 공사속도와 함께 건설물의 질을 언제나 첫자리에 놓았다. 회관의 요소요소가 다 아이들의 동심에 맞고 교양적의의가 있게 건설되도록 마음을 썼고 회관홀과 복도를 손색없게 꾸리기 위해 만경대학생소년궁전과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를 비롯한 전국의 이름높은 청소년과외교양기지들을 찾기도 했다.

김영기동무를 비롯한 송림항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해 송림시학생소년회관이 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건설되여 준공을 앞둔 때였다. 모두가 후대들을 위한 보람찬 일을 해놓은 기쁨과 긍지로 가슴부풀었지만 김영기동무만은 그렇지 못했다.

포장하지 못한 회관마당과 앞도로가 그의 심중을 무겁게 했던것이다. 그러나 진눈까비가 쏟아지는 겨울철에 그것도 단 며칠이라는 짧은 시일안에 콩크리트포장공사를 진행한다는것은 쉽게 결심할 일이 아니였다.

어느날 아침일찍 주변농촌으로 떠났던 김영기동무가 저녁어스름이 깃들무렵 벼겨가 가득 실린 뜨락또르를 타고 공사장에 들어섰다. 사람들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들에게 김영기동무는 말했다.

《이제 며칠후면 새해인데 설맞이공연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진창길을 걷게 할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학생소년회관건설에 참가한 돌격대원들은 섣달그믐날까지 회관마당과 도로포장공사를 완공함으로써 학생소년들의 새해설맞이공연을 성과적으로 보장할수 있었다. 다음해 현대적으로 일떠선 송림시학생소년회관에서는 전국적인 보여주기사업이 진행되였다.

송림항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애국헌신의 마음과 전투력을 보여주는것은 비단 시학생소년회관뿐이 아니다. 시내중심부를 꿰질러나간 번듯한 포장도로에도, 미래원과 어린이교통공원, 황해북도김치공장에도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한 일에 앞장서려는 이들의 순결한 지향이 깃들어있으며 자기 일터에 대한 긍지와 애착, 집단의 명예를 위해 한몸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소중한 마음이 뜨겁게 어려있다.

하다면 송림항이 시에서 없어서는 안될 단위, 전투력있고 내밀성있는 집단으로 자랑떨칠수 있는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7년전 여름 쏟아지는 폭염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이다싶이 송림시내와 교외길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김영기동무였다.

그는 항장으로 임명된 후 유능한 기술자, 기능공들의 가정을 찾는것으로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퇴근후이거나 짬시간이 있으면 고난의 시기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터를 떠난 기술자, 기능공들을 찾아 온 시내를 메주밟듯 했고 살림집문제를 비롯하여 그들의 생활상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품을 아끼지 않았다.

종업원이 있고야 일군이 있다, 언제나 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들이 바라는 일, 그들이 아파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속속들이 꿰들고있어야 한다는것은 그의 드팀없는 사업준칙이였다.

언제인가 송림항에는 맡은 일에 전념하지 않고 늘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는 한 종업원이 있었다. 그는 기계속내에 밝은 유능한 기능공이였다.

김영기동무가 몇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그가 다른 단위로 뜰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이였다. 그는 생각이 깊었다. 기술기능이 높아 얼마든지 혁신자로 떠받들리울수 있는 그가 왜 굳이 일터를 떠나려 하는가.

김영기동무는 종업원의 사업과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렸다. 휴식일이나 명절날이면 그의 가정을 찾기도 했고 작업의 쉴참에는 그와 허물없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그를 대담하게 믿고 중요한 기술혁신과제를 맡기기도 했다. 그리하여 종업원에게 말 못할 가슴속아픔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며칠후 이른아침 평양으로 뻗은 고속도로로 승용차 한대가 뽀얀 눈발을 헤치며 달리고있었다. 차에는 김영기동무와 함께 종업원내외가 타고있었다.

그날 김영기동무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그들부부는 중앙의 이름있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였고 몇달후에는 여러해를 두고 고심하던 소원이 풀려 온 가정에 웃음꽃이 활짝 피여나게 되였다. 그후 종업원은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항의 혁신자로 자랑떨치게 되였으며 오늘은 항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 귀중한 인재로 집단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다.

인민경제계획수행으로 바쁜 속에서도 김영기동무는 언제나 종업원들의 생활상편의를 위한 사업, 그들에 대한 후방공급사업을 첫자리에 놓군 했다.

아래에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김영기동무가 지닌 고결한 군중관과 인민적인 사업작풍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지난 시기 기술자, 기능공들을 비롯한 수십명 종업원들의 살림집을 개건보수하거나 새로 지어주도록 하고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늘 알아보고 제때에 풀어주며 수백명의 종업원들에게 매달 많은 량의 후방물자를 정상적으로 공급…

비록 한문장밖에 안되는 짧은 글줄이지만 여기에는 자기 단위 종업원들을 한식솔로 여기고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친부모, 친형제의 정으로 따뜻이 돌봐주는것을 어길수 없는 사업준칙으로 삼고있는 그의 참모습이 그대로 비껴있다.

송림항에서 로동자정양소를 건설하는 문제가 토의될 때였다. 적지 않은 일군들이 현행생산이 급한 때에 정양소건설은 후날로 미루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는 일군들에게 김영기동무는 엄한 어조로 말했다.

대중의 리익과 편의를 위해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여야 한다는것은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이다. 그리고 로동자들에 대한 후방공급사업에서는 절대로 만족이란 있을수 없다.

그리하여 몇달후 송림항구내에는 아담하고 현대적인 정양소가 번듯하게 일떠서게 되였고 첫기 정양을 시작한 때로부터 오늘까지 연 천수백명의 로동자들이 즐거운 정양의 나날을 보낼수 있게 되였다.

축산을 잘할데 대한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돼지와 토끼, 오리와 닭을 기를수 있는 수백㎡의 집짐승우리와 무난방태양열온실, 버섯재배장을 실리가 나게 건설하여 달마다 그 덕을 보고있는 사실에서도, 그토록 어렵다고 하던 메기양어에서 성공하여 한해에만도 여러t의 메기를 생산공급하고있는 현실에서도 종업원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늘 머리를 쓰고 이악하게 노력하는 김영기동무의 뜨거운 진정을 느낄수 있다.

이렇듯 시련과 난관을 뚫고 헤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나날 종업원들의 눈에 비낀 김영기동무의 모습, 그것은 언제나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며 대중의 리익을 위하여 자기의 진정을 다 바치는 참된 일군의 모습이였다.

하기에 송림항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자기의 일터와 초소가 제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집단의 단합된 힘으로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속에서도 시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대상건설을 도맡아해제끼는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    *

 

지난 17년간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일터의 면모를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일신시키고 항의 물질기술적토대를 높은 수준에 올려세움으로써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대중의 심부름군, 참된 충복이 되여 그들의 편의와 리익을 위해 멸사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온 김영기동무는 얼마전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였다.

오늘도 그는 당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높은 실적으로 보답할 불타는 지향을 안고 항이 3중3대혁명붉은기, 26호모범기대영예상, 모범체육단위칭호를 쟁취한 선구자집단의 영예를 더욱 빛내이도록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대중을 이끌어가고있다.

 

김영기동무(가운데)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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