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13일 로동신문

 

천리마시대 영웅의 일편단심

평양의사재교육대학 교원인 로력영웅, 박사, 부교수 최정심동무에 대한 이야기

 

평양의사재교육대학에 한 로교원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리마시대에 보건일군의 본보기로, 로력영웅으로 내세워주신 최정심동무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처럼 당과 수령에게 충직하고 의리심이 깊은 인민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는 여든살을 눈앞에 둔 고령의 몸이지만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수호자들을 키우는 성스러운 교단에서 인재육성과 과학연구, 도서집필사업에 지혜와 정력을 쏟아부으며 들끓는 시대의 숨결에 뜨거운 심장의 박동을 맞추어가는 최정심동무,

위대한 천리마시대로부터 오늘까지 그가 이룩한 하많은 성과도 귀중하다. 그러나 장장 50여년세월 어버이수령님과 맺은 정을 피줄처럼 간직하고 고결한 충정과 의리를 다해가는 그의 일편단심이야말로 우리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모범이다.

육체적한계와 로쇠를 모르는 그의 불같은 삶은 우리 시대 인간들의 무한대한 힘과 열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가를 가슴깊이 새겨준다.

 

수령님과 처녀조산원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인 1961년 여름 철령너머에 자리잡은 회양땅은 폭풍을 안은 밀림처럼 설레였다.

《평양에 회의갔던 군병원 조산원이 영웅이 되여 돌아온대요.》

《그의 토론을 들으시고 어버이수령님께서 일을 잘했다고 치하하시였답니다. 수령님께 기쁨드린 영웅조산원을 어서 마중가자구요.》

크나큰 격정속에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동구밖 큰길로 서둘러 달려나간 회양군인민들,

바로 그 시각 최정심동무는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고향땅에 들어서고있었다. 얼마전 수도 평양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전국보건부문일군열성자회에 참가하였던 그였다. 영광의 연단에서 그가 군안의 녀성들에 대한 해산방조사업과정에 얻은 소박한 경험을 이야기하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장내를 울리였다.

《만약 보건일군들이 다 이 동무와 같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동시에 군중을 인내성있게 교양한다면 모든 군중을 다 당주위에 더욱 튼튼히 묶어세울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민청원이고 나이도 어리다고, 그러나 그는 벌써 사업을 통하여 단련되였고 사상의식수준이 높다고, 자신께서는 그를 당원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하시였으며 회의마감날에는 그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군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우리 고장에 조산원영웅이 났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그를 맞이할 때 최정심동무는 기쁨보다도 걱정이 가득했다. 집울안이 터지게 모여왔던 마을사람들도 돌아가고 뒤산의 풀벌레소리 소연한 깊은 밤 그는 딸의 영웅메달을 어루쓸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어머니,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과 20대 초엽인 자기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입당을 보증해주신 당원이고 영웅이라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사람들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근심스럽기만 한 그였다.

감자골이라 불리우는 막바지산골에서 자식들을 낳아 키우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다가 해방이 되여서야 난생처음 낟알구경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로 떠나보내며 기쁨속에 눈물지었던 그의 어머니는 한동안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한뉘 깊은 산골에서 살아온 내가 뭘 알겠냐만 어버이수령님께서 회의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신대로 하면 되지 않겠니.》

군의 한 일군도 그의 남다른 고민을 알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수령님께서 동무가 한 일을 두고 얼마나 기뻐하시였는가고, 그러니 지금까지 해온것처럼 언제나 수령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일해나가느라면 당원의 본분도, 영웅의 의무도 다할수 있다고 하는 일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깨달았다. 로동당원이란 그리고 영웅이란 삶의 매 순간마다 오직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생각하고 걸음걸음 받들며 사는 사람이라는것을.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자기와 같이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조선로동당원으로, 영웅으로 자라났으며 세상에서 가장 긍지높은 삶을 꽃피워가고있다는것을.

어버이수령님, 저는 앞으로도 수령님께 기쁨만을 드리는 참된 딸이 되겠습니다.)

소박한 토론을 들으시고 만족을 금치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리며 한생의 지향과 결심을 굳힌 최정심동무,

그 시각은 외진 산골의 한 처녀조산원이 어버이수령님과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의 정, 운명의 피줄을 더욱 억세게 이으며 그이의 충직한 딸로 태여나는 뜻깊은 순간이였다.

위대한 사랑의 품에 안겨 보람찬 생의 자욱을 더 힘차게, 더 진하게 찍어간 이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최정심동무도 언제 어디서나 당과 수령의 뜻을 충직하게 받드는 당의 딸, 수령의 딸로 아름다운 삶을 빛내여왔다.

당의 은정속에 평양의학대학(당시)을 졸업한 최정심동무는 강계의학대학병원에서 10여년간 일하였다.

대학시절에도, 가정을 이루고 산과의사로 일하는 나날에도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시는 의료일군이라는 자각이 그의 마음을 늘 채찍질해주었다.

그러던 1970년대의 어느해 겨울 자강땅의 험한 령길에서 한대의 자동차가 멈춰섰다. 운전칸문이 열리더니 왕진가방을 멘 녀인이 뛰여내렸다. 도에서도 제일 외진 어느 한 군의 인민병원사업을 돕고있던 최정심동무였다. 읍에서 멀리 떨어진 림산마을의 벌목공의 안해가 해산을 앞두고 중태에 빠진 소식을 듣고 떠난 길이였는데 눈사태를 만나 자동차가 더 갈수 없게 된것이였다. 산짐승들의 발자욱이 뚜렷이 나있는 오솔길로 담차게 걸음을 내짚는 그를 운전사가 막아섰다.

《안됩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쩝니까.》

도소재지에 자리잡은 병원에서의 의료활동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달에도 몇차례씩 군과 리들을 찾아 멀고 험한 령길을 걷는 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로동당원으로, 로력영웅으로 내세워주신 어제날의 처녀조산원이라는것을 자강땅의 운전사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최정심동무의 눈가에 따뜻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걱정말아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시는 영웅이라고 사람들이 선망의 눈길을 보내고 더없이 아껴줄 때마다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였던 그날의 모습으로 살고있는가고 자신을 돌이켜보군 하는 그였다.

가파로운 산발을 오르다가는 발을 헛디디여 산비탈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눈속에 파묻혔다가는 다시 안깐힘을 다해 빠져나오고…

허리치는 생눈길을 헤쳐가는 그의 마음속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산모가 위험에서 구원되였다는 소식을 기다리고계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온몸이 얼음덩어리로 변한 그가 림산마을에 이르렀을 때 마을사람들은 반가움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작은 몸집에 아련한 얼굴, 연약해보이는 그가 자강땅에 태를 묻은 자기들도 선뜻 나서기 힘든 눈보라폭풍속을 뚫고 온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온밤을 꼬박 밝히며 긴장한 치료전투를 벌린 그에 의하여 산모는 위험에서 구원되였다. 이른새벽 밀림속의 눈덮인 산발들에 아기의 고고성이 울려퍼졌을 때 온 마을이 기쁨에 휩싸였다.

《선생님이 아니였더라면… 선생님은 이 벌목공가정의 은인입니다.》

고마움에 눈물짓는 마을사람들앞에서 최정심동무는 회양땅의 임산모들을 찾아 먼길을 걷던 처녀조산원시절처럼 동실한 얼굴에 순결한 미소를 담았다.

《다 우리 수령님 덕이예요. 수령님께서 이 좋은 보건제도를 마련해주시지 않았나요.》

겹쌓인 피로도 다 잊고 무한한 행복감에 싸여 밝게 웃는 녀의사, 그의 뜨거운 눈빛이 머나먼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르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 저는 오늘 조국땅 한끝에 있는 림산마을의 두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이렇듯 최정심동무는 애젊은 처녀조산원이였던 자기를 당앞에, 조국앞에 전적으로 보증해주신 어버이수령님께 당원으로서, 영웅으로서의 걸음걸음을 순간순간 아뢰이며 살아왔다.

그 나날 그가 걸은 길은 얼마이고 그의 정성과 헌신으로 생사기로에서 구원된 녀인들과 고고성을 터친 새 생명은 또 얼마였던가.

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수도 평양에 녀성들을 위한 종합적의료봉사기지인 평양산원이 일떠섰을 때 당에서는 최정심동무가 3산과 과장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평양산원 3산과 의료일군들은 최정심동무가 과장으로 일한 나날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아기들의 첫돌사진을 넣은 편지들이 수많이 오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3산과에 입원한 많은 녀성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시는 천리마시대 영웅인 그한테서 해산방조나 치료를 받고싶어하였다. 과의 전반사업을 돌보는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는 밤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가면서 산모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최정심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수많은 녀성들이 저를 찾고 저에게서 치료를 받고싶어한것은 결코 제가 잘나서도, 의술이 특별해서도 아니였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수령님에 대한 인민의 열렬한 흠모심, 그 품을 떠나 살수 없는 우리 인민의 고결한 진정이 담겨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 대한 의료봉사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생각하며 의료활동을 벌린 그였기에 당이 바라는 높이에 자기의 의술을 올려세우기 위해 피타게 노력하였으며 치료사업에 온넋을 바치였다.

아마도 일생에 최정심동무처럼 아기이름을 많이 지은 사람도 드물것이다. 그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된 많은 산모들이 이제 아기가 철이 들면 이 세상에 태여난 너를 제일먼저 안아준 사람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아시는 천리마시대 영웅이라는것을 말해주겠다고 하면서 이왕이면 이름까지 지어달라고 저마다 부탁하였던것이다.

산과의사로 수십년, 그 나날은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앞에 숭엄한 마음으로 자신을 세우며 조국의 미래를 위해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친 일편단심의 하루하루였다.

 

보답에는 한생도 모자란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수 없는것이여서 처녀조산원시절의 왕성한 투지와 열정으로 일하던 최정심동무에게도 인생의 황혼기가 왔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평양산원에서 일하다가 예순살이 넘어 년로보장을 받은 그가 집에 들어온 날 저녁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한생 군복을 입고있으면서도 산과의사이며 영웅인 그를 위해 가정의 많은 일을 도맡아준 인정깊은 남편과 언제 한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마음껏 부어주지 못한 아들딸들…

늘 바쁘게 살아온 어머니가 아닌가고, 이제는 집에서 편히 쉬면서 건강을 돌보라고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는 최정심동무의 눈가에 방안벽을 꽉 채운 영광의 기념사진들과 선물명세며 대회참가증 등이 추억깊이 안겨왔다. 그중에는 여러해전 2월의 가슴뜨거운 일을 되새겨주는 뜻깊은 생일날의 사진도 있었다.

바로 그날 아침 최정심동무가 치료를 앞두고 소독수에 손을 깨끗이 씻고있는데 평양산원 초급당일군이 방에 들어섰다.

《정심동무, 어서 갑시다.》

뜻밖의 말에 그가 영문을 몰라하자 일군은 오늘이 무슨 날인가고 묻는것이였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의 생일이였다. 하지만 그는 수십년전부터 이날을 례사로이 지나보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속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6월의 뜻깊은 날을 생일로 정하고 살아왔던것이다.

그가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자 일군은 흥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동무에게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시였습니다.》

돌이켜볼수록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자고 수십년세월 아글타글 애써왔지만 미처 다 보답을 못한채 일손을 놓은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남은 생의 앞날을 더듬어보았다.

(이제 10년 아니면 20년?… 보다 중요한것은 남은 생이 또 하나의 옹근생을 대신할수 있도록 더욱 줄달음쳐 사는것이다.)

자본주의나라에서는 백만장자들이 인생의 짧음을 탓하며 그 연장을 위해 별의별 모지름을 다 쓰지만 최정심동무는 당의 사랑과 은덕에 기어이 보답하기 위해 인생말년에 새 출발의 길에 나섰다.

최정심동무는 평양산원에서 일하면서 자료작업을 시작하였던 두종의 도서 《이상산과림상》과 《한 산과의사의 수기》집필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갈것을 결심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도서편집원들이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는 생의 하루하루가 귀중하였던것이다.

《나는 이 두 책의 집필을 다음해까지 무조건 끝내겠습니다.》

그의 이 말은 도서편집원들에게 한 대답이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앞에 다지는 충정의 맹세였다.

하여 문수거리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거대한 발파소리가 지심을 흔들고 쇠물폭포가 쏟아지는 대고조전투장은 결코 아니였지만 이 땅의 한 공민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켜 한초한초 생을 불태워가는 결사의 전투장으로 되였다. 머리속이 유난히 맑아지는 새벽과 같이 과학적사유가 민첩해지는 시간에는 의학과학기술도서인 《이상산과림상》집필과 관련한 사색을 하고 일에 지쳐 힘이 들 때면 절세위인들의 사랑속에 행복하고 보람찼던 나날에 대한 긍지높은 추억을 더듬으며 《한 산과의사의 수기》의 글줄을 이어나간 최정심동무,

고결한 충정이 어떤 기적을 낳는가를 그는 끝내 증명하고야말았다. 수백페지에 달하는 도서 《이상산과림상》과 《한 산과의사의 수기》집필이 예정대로 완성되였던것이다.

그후 두 도서의 발행을 앞두고 그는 철령을 넘어가 회양군인민병원의 의료사업을 도와줄 결심을 하게 되였다. 그것을 안 가족들은 펄쩍 뛰였다. 정 일을 하고싶으면 가까운 진료소에 나가 의료사업을 돕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였다.

하지만 최정심동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회양땅이 내가 태줄을 묻은 고향이래서가 아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철령을 넘으시는데 전선길을 걸으시는 그이앞에 회양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나서도록 하고싶구나.》

절세위인들의 위대성교양자료들과 계급교양자료들, 그가 이전에 집필한 도서 《임산모들을 위한 위생지식》과 산과의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산부인과전서》를 비롯한 여러종의 도서들, 가지가지의 산과의료기구와 부인병치료에 쓰이는 귀한 약들…

그가 틈틈이 마련한 물자들을 가지고 철령을 넘어 고향땅을 찾았을 때 회양군인민들은 자기 고장이 낳은 영웅조산원을 오랜 지기를 만난듯 반겨맞았다. 회양군당위원회에서는 산골군에서 천리마시대 영웅이 배출된것은 군의 자랑이라고 하면서 군인민병원 의료일군들과의 상봉모임을 마련해주었으며 그의 치료활동조건을 전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사랑하는 고향사람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그들의 건강을 돌보아주며, 군인민병원 산과의사들의 자질향상을 위한 기술학습과 론문지도로 낮과 밤을 이어가면서 그는 마치 수십년전의 처녀조산원시절로 되돌아간듯싶었다. 그는 고향사람들과 한마음한뜻이 되여 군인민병원 산부인과의 수술실과 입원실을 번듯하게 꾸려놓았으며 회양군 읍지구에 살고있는 이모네 집에서 벌도 치고 닭도 기르면서 산모들에게 더 많은 꿀과 닭알이 가닿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그의 지성이 깃든 꿀과 닭알을 받아든 한 녀성은 눈물이 글썽하여 말했다.

《전 평양산원에 가보는것이 소원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평양산원에서 오랜 기간 일한 선생님의 치료를 받고 꿀과 닭알까지 받아안으니 따뜻한 우리 집이라고 불리우는 평양산원이 여기 회양땅에 옮겨온것만 같습니다.》

그때 최정심녀성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였던가. 어제날의 처녀조산원에게는 산모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은혜로움을 가슴깊이 절감하며 눈굽을 적시는것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였다. 바로 그렇게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한줄기 빛이 되고 한줌 토양이 되라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에게 그토록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것이 아니랴.

하지만 그는 또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 자기를 따뜻이 감싸안고있는지 미처 알지 못하였다. 그가 철령을 넘나들며 회양군인민들의 건강을 위해 지성을 바쳐 일하는 모습이 새로 나온 기록영화에 실리였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장면을 보시며 저 녀성과 같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고 높이 치하하신것이였다.

절세위인의 따사로운 축복은 최정심동무에게 더 큰 생의 활력을 부어주었다.

2007년에 그는 당의 은정어린 조치로 평양의사재교육학교(당시) 교단에 섰다. 평양산원에 자리잡은 산부인과학강좌로 첫 출근을 하던 날 많은 의료일군들이 달려와 정답게 인사하였다.

《선생님은 더 젊어진것 같습니다.》

그의 《젊음》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께 충정다하리라는 남다른 희열과 랑만에서 활활 불타오르는것이였다. 림상경험은 풍부하지만 교단에 서기는 처음인 그는 하루빨리 교원의 자질을 갖추기 위하여 아글타글 애썼다. 현직의료일군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수사업의 특성에 맞게 최신의학과학기술자료를 많이 리용하기 위하여 고령의 나이에 외국어학습을 꾸준히 진행하였으며 자료발취계획을 어김없이 집행하였다. 강의를 마치면 인민대학습당과 과학기술전당으로 달려가 실무학습에 힘을 넣었으며 교수사업과 함께 과학연구사업, 도서집필도 동시에 밀고나갔다.

어느날 그는 겹쌓인 정신육체적부담으로 자리에 눕게 되였다. 며칠후 그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다시 론문집필을 하려고 책상앞으로 다가가니 거기에 무둑히 쌓여있던 과학기술자료들이 하나도 없이 반반하였다. 그때 자식들이 다문 얼마간이라도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 간청하는것이였다.

《지금도 수령님께서 나를 보고 계속 일을 잘하라고 교시하시는것만 같아 도저히 쉴수가 없구나.》

이렇게 절절히 이야기하는 그의 눈길은 또다시 영광의 기념사진들에 가닿았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들을 우러르고 선물명세들과 대회참가증들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힘과 열정으로 값높은 생의 하루하루를 이어간 최정심동무였다.

사람들이여, 천리마시대 영웅이 한생의 끝까지 보답의 길을 갈 충정의 마음을 가다듬군 하던 그 자리에 자신을 세워보시라. 이 나라의 얼마나 많은 가정들에 절세위인들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이 있고 일터와 마을들에 영원불멸할 령도의 자욱이 력력히 새겨져있는것인가. 하나의 가정용품에도 위대한 어버이의 은정깊은 사랑이 깃들어있고 외진 섬마을의 살림집에도 절세위인께서 다녀가신 집이라는 글발이 빛나고있지 않던가.

그 영광의 기념사진, 그 소중한 글발을 정녕 무심히 보아서는 안되며 한생토록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 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낳게 되는가를 천리마시대 영웅은 자기의 산모범으로 가르쳐주고있다.

평양의사재교육대학 학장 주창순동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천리마시대 영웅이 다릅니다. 그는 교수사업을 하는 바쁜 속에서도 〈아이를 총명하게 키우려면〉, 〈아픔을 모르게 해산하려면〉을 비롯하여 많은 도서들을 집필하였으며 수십건의 가치있는 론문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교수사업에서도 과학연구사업에서도 기수가 되여 나아가는 그를 따라 대학 교원들이 새 교수방법창조와 과학연구사업에 분발하여나섰습니다.》

최정심동무는 일흔일곱살에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후 10월8일모범교수자의 영예도 지니였다. 이 모든 성과들은 수령의 사랑과 믿음을 언제나 심장속에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육체적한계란 있을수 없으며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절대로 로쇠하지 않는다는 철리를 새겨주고있다.

최정심동무에 대한 뭇사람들의 존경이 열렬한것은 그가 천리마시대 영웅이여서만이 아니라 수령과 맺은 정을 한생토록 잊지 못하는 그 진정이 참으로 고결하고 아름다와서이다.

 

*    *

 

우리 공화국의 70년 력사는 수령과 인민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위대한 승리와 세기적변혁을 이룩해온 혼연일체의 력사, 일심단결의 력사이다.

최정심녀성은 영웅이기 전에 절세의 위인들과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의 관계를 이룬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중 한사람이다.

수령과 인민사이가 부모와 자식처럼 가장 친근하고 굳건한 육친의 정으로 이어져있기에 이 땅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생애가 줄기차게 흐르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실천으로 충직하게 받드는 애국자, 위훈자들의 대오가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으며 방방곡곡에서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이 끊임없이 창조되고있는것이다.

자기 수령을 절대적으로 흠모하고 받드는 인민의 일편단심,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야말로 우리 공화국의 더없는 자랑이며 크나큰 힘이다.

 

본사기자 허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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