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7일 로동신문

 

    수 기

 그 품속에서 영웅으로 자랐습니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0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는 이즈음 나의 가슴은 한없이 은혜로운 삶의 품에 안겨사는 무한한 행복감으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때마다 력사적인 리현리당총회와 더불어 평범한 선동원이였던 나의 한생을 빛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어려와 눈물이 나오는것을 금할수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인간애로 우리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주시고 우리들 한사람한사람을 따뜻이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주체50(1961)년 1월 23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현리당조직이 청산리교시정신에 립각하여 자기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였는가를 료해하고 지도하여주시기 위하여 몸소 리를 찾으시였다.

이때 나는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진행하는 리당총회에 참가하는 무한한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보고와 토론을 통하여 리당조직이 당원들과의 사업, 군중들과의 사업을 잘한 결과 농사도 잘되고 농장원들의 생활도 유족해졌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내를 둘러보시다가 녀성당원들도 토론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작업반선동원이였던 나는 토론을 하게 되였다.

나는 우리들을 잘살게 하여주신 어버이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를 드리였다. 그리고 미숙하게나마 선동원으로서 사업한 내용들을 스스럼없이 말씀드리였다.

그때 농장원들속에는 사상적수양이 높고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낡은 습성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들을 교양하자고 하니 그들자신이 선동원이 찾아오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는것이 문제였다. 어떤 때에는 화김에 어성을 높여 책망해주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청산리에서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다시한번 되새기였다. 그러는 과정에 천리마기수들의 모범을 본받아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모든 사업에 앞세웠다. 땔나무가 없어하는 집에는 관리위원회에 말하여 땔나무를 마련해주었고 집을 알뜰히 꾸리지 못하고 사는 집에는 청년들과 함께 가서 꾸려주기도 하면서 당정책과 농장의 전망도 해설해주었다. …

나의 이런 토론내용을 들어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신자동무는 리현리의 길확실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나는 목이 꽉 메여 더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그러는 나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동무는 훌륭한 당원이라고, 우리 당에는 이 동무와 같은 당원이 많다고 하시면서 그렇기때문에 우리 당은 강하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를 로력영웅으로까지 내세워주시고 걸음걸음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면서 끝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은 평범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값높고 빛나는 영광과 행복을 안겨주신 운명의 위대한 태양이시며 삶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를 옆에 세우시고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찍으신 사랑의 기념사진들이 있다. 나는 그앞에 늘 자신을 세워보며 비록 나이는 80고개를 가까이하고있어도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를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충정으로 받들어갈 결의를 가다듬는다.

이것이 어찌 나 하나만의 심장의 맹세이겠는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대해같은 은덕을 천만년 잊지 못하는 위대한 수령님의 후손,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들인 우리 인민모두의 일편단심이 아니겠는가.

 

평양시농촌경리위원회 고문 로력영웅 리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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