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3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불같은 사랑과 헌신으로 당의 보건정책을 받들어가는 참된 간호원

은천군인민병원 간호원 안경실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30여년간 누가 알아주건말건 티끌만 한 사심도 없이 환자치료에 뜨거운 사랑과 정성을 기울이고 사회와 집단, 나라를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있는 한 평범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한두해도 아니고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세월을 세번씩이나 맞고보내며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는 은천군인민병원 간호원 안경실동무, 그의 고결한 삶은 당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지켜가는 우리 인민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숭고한가를 다시한번 깊이 새겨주고있다.

 

자기를 아낌없이 바친다는것은…

 

안경실동무는 평범한 로동자가정에서 나서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한생을 농기계작업소에서 성실하게 일한 공로자였다.

하기에 어릴적 그의 눈동자에 맨 처음 비낀것은 아버지의 기름묻은 손이였으며 그의 동심에 제일먼저 자리잡은것도 군적인 로력혁신자로 떠받들리우는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자랑이였다. 긴장한 생산전투로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가 꾸려준 밤참을 들고 일터를 찾을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로동자들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군 했다.

《우리 경실이가 또 이동봉사를 나왔구나. 정말 용타. 경실이도 이제 크거들랑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

그후 안경실동무의 아버지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받았다. 그리고 전국농업대회를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여러 대회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였다. 어느해인가 안경실동무는 방안에 정중히 모신 영광의 기념사진앞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뜨락또르랑 모내는기계를 수리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나요?》

그때 아버지는 철없는 어린 딸에게 말했다.

《경실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것보다 어떻게 일하는가가 더 중요하단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평범한 일터여도 그곳을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로 여기고 한생을 아낌없이 바치는것, 바로 거기에 삶의 보람과 영예가 있다는것을 아직은 다 알수 없는 나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바쁘게 살 때, 비록 수수한 작업복차림으로 늘 손에 기계기름을 묻히고 살지만 나라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면 그런 사람은 대중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사람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그는 알았다.

그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보건간부학교(당시)를 나온 안경실동무는 은천군인민병원 외과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첫 출근을 하는 날 안경실동무는 산뜻한 위생복을 입은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며 마음다졌다.

(나도 아버지처럼 자기 일터, 자기 초소를 지켜 한생을 성실하게 살리라.)

그러나 맹세가 곧 실천으로 이어지는것은 아니였다. 그가 군인민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며칠후 첫 야간근무를 설 때였다.

어느덧 밤도 이슥해지고 새벽녘이 가까와올무렵 별안간 다급한 발걸음소리와 함께 담가를 든 여러명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들어섰다. 담가에는 뜻하지 않은 일로 사경에 처한 환자가 실려있었는데 많은 피를 흘린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시급히 수혈대책을 세워야 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안경실동무는 서둘러 환자의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간 흘렀지만 안경실동무는 끝내 수혈에 필요한 혈관을 찾지 못했다.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거의나 알리지 않기때문이였다. 안경실동무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불안한 눈길로 환자와 간호원을 번갈아보았다.

숨막힐듯 한 긴장과 침묵, 시시각각으로 떨어지는 환자의 생명지표…

부득이 병원에서는 피부절개의 방법으로 수혈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날 안경실동무는 뼈저린 자책속에 모대기였다. 자기가 선 초소가 얼마나 중요하며 간호원의 임무가 어느만큼 무거운가를 실지체험으로 느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것을 가지고도 림상실천에서 얼마든지 자기 할바를 다할수 있다고 자부해온 자기가 못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후 안경실동무는 전혀 딴 사람이 된듯싶었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지어 잠자리에 들어서도 어떻게 하면 맡은 임무를 더 잘 수행할수 있겠는가에 대해 사색과 탐구를 멈추지 않았고 짬시간만 있으면 자기의 실기수준을 높이기 위해 아글타글 애썼다. 그는 매일이다싶이 야간근무를 섰고 중환자가 들어오는 때면 자진하여 환자를 맡아나섰다.

언제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안경실동무가 저녁상을 물리자 바람으로 느닷없이 전등불을 끄는것이였다.

《아니, 초저녁에 불은 왜 갑자기 끄는거냐?》

식구들모두가 어둠속에서 어안이 벙벙한채로 있는 속에 미안한 어조가 비낀 둘째딸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오늘부터 눈을 감고서도 감각만으로 혈관을 찾는 능력을 키우려고 해요.》

안경실동무는 나이와 성별이 각각인 집식구들처럼 좋은 실습대상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군인민병원 간호원으로 일하는 나날 그는 단순히 자기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는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외과에서 일하던 그가 수술장간호원으로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후였다. 위급한 환자에 대한 수술도중 뜻밖에도 많은 피가 요구되였다. 이때 환자와 피형이 같은 안경실동무가 서슴없이 자기의 팔에 수혈침을 꽂았다.

환자의 얼굴에서 혈색이 돌고 가족들이 달려와 너도나도 고마움의 인사를 할 때 안경실동무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진 보건일군의 한사람이라는 긍지와 자부심, 간호원된 영예와 보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날 아버지는 안경실동무에게 말했다.

《이제야 우리 둘째가 사는 멋을 알게 된가부다. 경실아, 전화의 나날 동지를 위해 자기의 피도 서슴없이 바친 안영애간호원의 이야기를 한갖 지나간 일로만 여기지 말거라. 인간의 생명을 책임진 보건일군에게는 비록 평화로운 시기라 할지라도 더운 피와 땀 지어 목숨까지 기꺼이 바쳐야 할 시각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생명의 기사인 보건일군이 사회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더운 피와 땀 지어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안경실동무가 한생 심장속에 간직하고 사는 삶의 지론, 좌우명으로 되였다.

지난 30여년세월 안경실동무는 언제나 자기를 잊고 살았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피와 살을 서슴없이 바쳤고 가정을 이룬 후 참기 어려운 고난과 시련이 닥쳐왔을 때에도 한가정의 살림살이를 돌보기에 앞서 자기가 맡은 환자들의 건강과 회복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였다.

어느덧 쉰고개를 넘긴지도 오랜 그의 몸 여러 군데에는 아직도 사연깊은 허물자리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화상당한 한 평범한 농장원에게 자기의 피부를 이식한 때로부터 오늘까지 안경실동무가 환자들에게 바친 피와 살을 어찌 그 면적과 량을 표시하는 수자로만 헤아릴수 있겠는가.

《수십년간의 간호원생활을 통하여 저는 환자들을 친혈육으로 대할 때, 자기의 부모나 형제, 자기의 친자식처럼 여길 때 그러한 정성과 헌신으로는 고치지 못할 병이란 없다는것을 심장으로 깨달았고 불같은 인간애는 죽음도 이긴다는것을 진리로 새겨안았습니다.》

그는 34년이라는 기나긴 나날을 이런 자세와 각오로 헌신해왔다. 그에게는 수시로 입원하고 퇴원하는 환자들모두가 부모형제이고 자식이였으며 더없이 귀중한 혁명동지였다.

우리는 한 평범한 간호원의 30여년세월을 통하여 심장으로 새겨안게 된다. 사회와 집단을 위해,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친다는것은 자기의 귀중한 모든것 지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사심없는 희생이고 무한한 헌신이라는것을.

 

《우리 어머니》

 

오늘 은천군인민병원 산부인과 간호원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이채로운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방안이 좁다하게 차곡차곡 쌓아져있는 새 이불들과 애기옷, 미역과 산꿀을 비롯하여 산모들의 건강에 좋은 영양식품들…

비록 어디서나 볼수 있는 수수하고 평범한것들이지만 거기에는 군인민병원과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에서 온 산모들과 부모가 없는 산모들을 위해 친어머니의 정을 기울이는 안경실동무의 뜨거운 마음이 소중히 깃들어있다.

군인민병원의 외과와 수술실에서 일하던 안경실동무가 산부인과에 옮겨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퇴근을 앞두고 어느 한 입원호실에 들어서던 그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방금 몸을 푼 한 환자가 두눈에 눈물이 그렁한채 흐느끼고있었던것이다.

안경실동무는 별다른 생각없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울지 말아요. 해산후에 눈물을 흘리면 젖이 잘 나오지 않는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산모가 우는 사연을 알게 된 그는 마음이 무거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들이를 떠났던 그 산모가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는 바람에 군인민병원으로 급히 실려오다나니 해산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던것이다. 그의 친정집은 읍으로부터 50여리나 떨어져있었다.

안경실동무는 더 다른 생각을 할새없이 종주먹을 부르쥐고 집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그리고는 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이불장에서 며칠전에 새로 꾸민 이불을 통채로 꺼내놓았다. 안해의 경황없는 행동에 한동안 얼떠름해있던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요? 엊그제 꾸민 새 이불은 왜 와락와락 잡아뜯으면서 그러오?》

그날 자기 손으로 직접 애기포단을 비롯하여 갓난아이에게 필요한것들을 마련해가지고 다시 병원을 찾은 안경실동무는 가지고온것을 산모에게 안겨주며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애기엄마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채 입원한걸 담당간호원인 제가 미처 몰랐구만요.》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집뜨락에 수십마리도 능히 키울수 있도록 돼지우리를 큼직하게 지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이 갑자기 간호원으로부터 사양공으로 직업을 바꾸려는가고 우스개소리로 물었을 때 그는 정색하여 대답했다.

《이제부터 집짐승을 길러 애기어머니들에게 필요한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놓아야겠어요. 어머니를 일찍 잃고 혼자서 몸을 푼 제가 오히려 산모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거든요.》

그때부터 안경실동무는 한가정의 주부, 나어린 오누이의 어머니이기 전에 병원으로 몸을 풀기 위해 오는 수많은 환자들의 친정어머니라는 자각을 안고 살았다. 산모와 애기의 건강에 좋은 영양식품을 마련하기 위해 명절날이나 휴식일에도 수십리 먼길을 주저없이 떠나군 했고 몸상태가 나쁜 환자들에 대한 간호로 한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으며 퇴근후이면 많은 돼지를 돌보느라 미처 다리쉼을 할새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환자들에 대한 정성과 헌신으로 하루가 언제 지나고 한주일, 한달이 어떻게 흐르는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속에 어느날 밤늦게야 집으로 들어서던 안경실동무가 풋잠에 든 아버지의 손가락을 물고있는 돌도 채 되지 못한 막내딸 은경이의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일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늘 출장길에 있는 아버지와 병원에서 살다싶이 하는 어머니를 기다려 자물쇠가 걸려있는 출입문곁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어린 오누이를 옆집아주머니가 데려다 저녁밥을 먹여주고 잠까지 재워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고 어쩌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있는 날이면 자식들은 《오늘은 우리 집 명절이지요?》라고 하며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했다.

그가 지금껏 산모들에게 안겨준 애기이불과 애기옷이 셀수 없다고 하니 거기에 스며있는 정성과 헌신을 어찌 한두마디 말로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산모들뿐이 아니였다. 안경실동무는 부모잃은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그들의 친어머니가 되여 온갖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몸이 허약한 아이를 위해 품들여 영양식품을 마련해가지고 병원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부엌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에 줄곧 문턱에 앉아 어머니의 거동을 지켜보던 일곱살 잡힌 맏이 금성이가 느닷없이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엄만 나나 은경이보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이 더 곱나?》

나어린 아들의 뜻밖의 물음에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안경실동무는 그를 꼭 그러안으며 속삭였다.

《금성아, 너나 은경이에게는 아버지, 엄마가 있지 않느냐. 병원에서는 지금 부모가 없는 네또래의 아이가 심하게 앓고있단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은천군인민병원으로 군사임무수행중 뜻밖의 일로 심한 부상을 입은 한 군인이 실려왔다. 안경실동무는 병사의 침상곁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치료의 나날 환자의 소생을 위해 피와 살도 아낌없이 바친 그는 진정 병사의 고향집어머니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여 안경실동무는 초소의 군인들과 뗄래야 뗄수 없는 정을 맺게 되였다. 몸에 좋은 보약이 생겨도, 색다른 음식이 생겨도 그는 병사들을 먼저 생각하였고 국가적명절과 기념일이면 가정에서 원호물자를 성의껏 마련하여 초소에 보내주군 하였다.

군안의 영예군인들에게 바쳐진 그의 지성은 또 얼마나 뜨겁고도 진실한것인가. 조국보위초소에서 청춘을 빛내인 녀성영예군인들은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해야 한다며 그들을 위해 기울인 사랑과 정성을 다 전하자면 끝이 없다.

유치원어린이로부터 나이지숙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를 아는 군안의 사람들모두가 친근하고 스스럼없이 《우리 어머니》, 《우리 간호원》으로 부르는 안경실동무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화목한 대가정으로 사는 사회주의 내 조국이 왜 그토록 소중하며 사회주의보건제도가 어찌하여 그렇듯 훌륭한가를 다시한번 심장으로 새겨보게 된다.

 

*     *

 

우리 당은 수십년세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켜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온 은천군인민병원 간호원 안경실동무에게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우리》라는 정다운 부름과 더불어, 어머니조국을 위해 더 많은 땀을 바칠 각오를 안고 병원문을 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밝은 모습과 더불어 오늘도 인간사랑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엮어가고있는 안경실동무, 조국과 인민은 바로 이런 삶을 시대의 자랑으로 값높이 내세워주는것이다.

 

안경실동무 (왼쪽에서 두번째)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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