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2일 로동신문

 

백두산천지호반에서 력사유적유물 새로 발굴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와 백두산천지종합탐험대, 삼지연혁명사적관의 학술연구집단이 백두산천지호반에 대한 조사사업을 심화시키는 과정에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제단유적을 발굴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백두산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더불어 민족의 슬기와 넋이 깃든 조종의 산이며 조선혁명의 시원이 열리고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입니다.》

새로 발굴된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제단은 백두산천지호반의 향도봉소분지에 자리잡고있다.

그 형태를 보면 밑면은 길이와 너비가 각각 36m정도인 4각형에 가깝고 웃면은 길이 15m, 너비 12m정도이며 높이가 9m정도이다.

제단유적에서 2개의 금석문(종, 비석, 성돌, 기와와 같은 금속이나 돌 등에 새겼거나 쓴 글)도 발굴되였다.

그중 한개를 보면 길이 140㎝, 너비 80㎝정도의 돌우에 20여자의 글이 새겨져있다. 글에는 조선봉건왕조초기에 이곳에서 힘을 비는 제를 지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다른 하나의 금석문은 길이 26㎝, 너비 20㎝크기의 납작한 돌판우에 먹으로 씌여져있는것이다. 글자는 역시 20여자로서 하늘과 땅에 공주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진행하였다는 내용을 담고있다고 한다.

학술연구집단이 진행한 백두산천지호반에서의 조사발굴과 연구사업은 백두산의 력사를 더욱 깊이 해명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 의의는 우선 우리 선조들이 먼 옛날에 벌써 백두산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진행하였다는 물질적증거를 찾아냄으로써 조선민족이 력사적으로 백두산을 조종의 산, 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왔다는것을 더욱 명백히 론증할수 있게 되였다는데 있다.

학술연구집단은 이번 조사발굴과 연구를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백두산에 올랐을뿐만아니라 천지호반에 왕실의 안녕 등을 비는 제단을 설치하고 제를 지낸 사실을 밝혀내게 되였다.

그 의의는 다음으로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백두산을 얼마나 높이 숭상하였는가를 다시금 뚜렷이 증명할수 있게 되였다는데 있다.

우리 민족이 조종의 산을 높이 숭상하였다는것은 여러가지 력사기록들과 백두산에서 이미 오래전에 알려진 《룡신비각》, 《종덕사》와 같은 유적들을 통하여 잘 인식되여있었지만 백두산에 올라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진행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량강도당위원회, 삼지연군당위원회와 군인민위원회, 삼지연혁명전적지답사숙영소의 일군들이 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갈데 대한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백두산천지호반의 제단유적을 발굴하는 학술연구성원들의 연구사업을 물심량면으로 적극 떠밀어주었다.

백두산천지호반에서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제단이 새로 발굴된 성과는 우리 인민들에게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의 발상지인 백두산을 가지고있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해주고있으며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이 높이 솟아 빛나는 이 하늘아래,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추동하고있다.

 

본사기자 오철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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