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7일 로동신문

 

어버이 그 사랑을 길이 전하며 더욱더 흥하는 고장

길주군 봉암리를 찾아서

 

얼마전 함경북도에서 취재길을 이어가던 우리는 도의 일군들로부터 길주군 봉암협동농장이 선진영농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농사를 과학화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알고보니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수행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여 2중3대혁명붉은기를 수여받았다는 이 자랑많은 농장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사적이 뜨겁게 깃들어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이 땅우에 일떠선 불패의 사회주의강국과 승승장구하는 주체혁명위업은 수령님께서 인민이라는 대지우에 씨앗을 뿌리고 한평생 가꾸어 마련하신 고귀한 결실이다.》

길주청년역에 내려서 십리가량 가느라면 유유히 흐르는 남대천을 옆에 끼고 오붓하게 자리잡은 봉암리에 닿게 된다. 날아가던 새들이 하도 경치가 좋아 바위우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는 전설과 더불어 봉암으로 불리운 이 고장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오신것은 주체48(1959)년 3월 8일이였다.

아직 흰눈도 채 녹지 않은 추운 날씨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을 찾아오시였다고 하면서 못 잊을 그날을 더듬어보는 박동호리당위원장의 목소리는 숭엄한 감회에 젖어있었다.

리에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일먼저 들리신 곳은 조국을 위해 한목숨을 바친 전사자유가족들의 집이였다. 어느 한 전사자유가족의 집에 들리시여서는 가을에 분배는 얼마나 탔는가, 아이들은 몇인가 하나하나 물어주시고 장독까지 열어보시면서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또 어느 전사자유가족의 집에 오시여서는 세 아이를 데리고 어렵게 살고있는 녀인의 고충을 헤아리시면서 두 딸자식은 학원에 보내고 아들 하나는 데리고살라고 따뜻한 은정을 베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

그때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은 유가족의 철부지막내아들이 바로 자기였다고 하면서 박동호리당위원장은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속에 흘러온 한생을 뜨거움에 젖어 돌이켜보는것이였다.

진정 어버이수령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아들딸들이 그처럼 고귀한 축복을 받아안은것인가.

이윽고 관리위원회를 나서 얼마쯤 걸으니 한채의 사적건물이 눈앞에 어려왔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이곳 농장관리위원장 김수일동무는 근 60년전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시 당력사연구실로 불리우던 저 건물에서 리가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고 이야기하였다.

맑은 물결 출렁이는 남대천을 앞에 두고도 해마다 가물피해를 받는 리의 실태를 보고받으시고서는 저수지를 건설하고 밭관수를 잘하는데서 나서는 방도들을 가르쳐주시고 농민들이 물온도도 재여보지 않고 모내기를 한다는것을 아시고서는 농사를 과학적리치에 맞게 지을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당시 이곳에 기사, 기수가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앞으로 기사, 기수들을 많이 양성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축산을 발전시켜 인민들이 그 덕을 보게 할데 대한 문제, 당원들과 조합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실속있게 벌릴데 대한 문제 등 구체적인 과업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봉암리가 걸어온 길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념원을 꽃피우며 나날이 강화발전되여온 긍지높은 행로였다. 김수일관리위원장은 이곳 농장이 오늘 도적으로도 손꼽히는 본보기단위로 자랑떨치게 된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날에 주신 과업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하나하나 어김없이 관철하여왔기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남대천상류를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관수체계를 그쯘히 세워놓으니 봉암리는 수십년간 가물이란 말을 모르고 농사를 지어왔다고 한다.

농사를 과학적으로 지을데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항상 명심하고 원그루큰모에 의한 논벼소식재배방법, 논벼긴싹모재배방법을 비롯한 선진영농방법과 기술을 적극 도입하여 2014년에 이어 지난해 또다시 최고수확년도수준을 돌파했다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흐뭇한가. 못 잊을 력사의 그날 단 한명의 기사, 기수도 없던 봉암리에 이제는 백수십명의 기사, 기수들이 자라나 농장작업반마다 자체의 기술력량이 튼튼히 꾸려졌다고 한다. 또한 염소를 많이 길러 덕을 보는 농장에서는 매일 우유를 실은 차가 다니며 농장원세대들과 탁아소, 유치원, 학교에까지 염소젖을 공급하고있다고 한다.

옷수리와 신발수리, 리발, 미용, 목욕 등 갖가지 봉사를 진행할수 있도록 번듯하게 일떠선 편의봉사기지에 들려보아도 우리 수령님께서 옷수리소를 내오고 어린이들의 옷을 기워주면 녀성들의 부담을 훨씬 덜어줄수 있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고 아담하고 깨끗하며 도시부럽지 않게 상품들이 가득찬 봉암상점에 가보아도 수십년전 이곳 인민들이 춥고 낡은 건물에서 상품을 사가는것을 두고 그리도 심려하시면서 빨리 상점을 새로 짓고 옮길데 대하여 당부하신 사연을 알수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점심식사시간도 미루어가시며 찾아주시였던 길주군 2중영예의 붉은기 봉암기술고급중학교에도 들려보았다. 몸소 학생들에 대한 교육교양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해서와 교육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대로 이 학교는 2층짜리 멋쟁이교사와 체육관, 수영장 등 여러 교육시설들을 그쯘히 갖춘 학생교육교양기지로 훌륭히 전변되여있었다. 대를 이어가며 크나큰 은덕속에 자라나는 이곳 리의 새 세대들을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만나보고난 우리는 리문화회관에서도 자랑넘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봉암리문화회관 관장인 리성업동무는 이곳 리기동예술선동대 대장이기도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당원들과 농업근로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실속있게 벌릴데 대하여 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함에 있어서 이곳 리당위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기동예술선동대활동을 통한 교양사업에 큰 힘을 넣어왔다고 한다.

20여년전 리당위원회에서 자력갱생은 우리의 생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경제선동공연을 품들여 준비하도록 하였는데 그 공연활동이 농장이 오늘까지 자체로 농사를 짓는 단위로 자랑떨치는데서 출발의 계기로 되였다고 한다. 그때 경제선동공연활동이 얼마나 감화력이 컸던지 평양에까지 가서 10여차례나 공연을 하였는데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곳 농장에서 진행하는 경제선동활동을 료해하시고 은정어린 감사와 함께 수많은 악기들을 선물로 보내주시였으며 농업부문 경제선동활동의 본보기로 내세워주시였다고 한다.

그 사랑, 그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농장에서는 오늘도 심금을 울리는 경제선동활동으로 당원들과 농업근로자들을 힘있게 고무추동하여 당의 농업정책관철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있었다.

참으로 봉암리의 자랑찬 전변과 이곳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한 생활의 갈피갈피는 그대로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을 노래하는 가슴뜨거운 화폭이고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소리높이 노래하는 장중한 서사시와도 같은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과 념원을 빛나게 실현해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어버이로 높이 모시였기에 봉암리의 어제와 오늘도 좋지만 래일도 더욱 눈부시게 창창하리라는것을 굳게 믿으며 우리는 이 영광의 땅을 떠났다.

 

본사기자 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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