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6월 19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당기앞에 다진 맹세를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지키자

 

그의 삶은 충정의 200일전투기록장에 빛나고있다

함경남도대외건설자양성사업소 초급당부위원장이였던 박영국동무

 

한 평범한 당일군이 우리곁을 떠나갔다.

박영국동무가 함경남도대외건설자양성사업소에서 당사업을 한지는 불과 2년 남짓하다.

사람의 한생에 비해볼 때 순간과도 같은 짧은 나날이였지만 충정의 200일전투와 더불어 그의 삶은 빛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가는 생의 마무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품어안아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불같이 살아온 그의 한생에 대하여 다는 적을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동맹일군으로, 조선로동당원으로 성장하던 나날들, 최전연초소에서 군사복무시절을 보람차게 보내던 이야기와 제대후 당선전일군이 되여 618건설돌격대에 달려나가 헌신의 구슬땀을 바치던 일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당의 사상관철전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온 그의 참된 삶을 다 추억하자면 끝이 없다.

우리는 여기에 그의 한생의 마지막시기의 나날들만을 전하려고 한다.

그는 평시에 시를 즐겨 지었다.

    …

    당이여 어머니당이여

    그대 품에 자란 이 아들은 기어이

    그대의 기둥되고 주추돌되려니

    아 언제나 이 몸 정열로 불태우며

    영원한 충정의 궤도를 달려가리

 

이것은 그가 최전연초소로 탄원입대하던 날 심장으로 다진 맹세였다. 박영국동무는 그날의 맹세를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지켰다.

지난해 9월 사업소에서 맡은 함흥과학자살림집건설을 당적으로 책임지고나갔던 그는 사업소의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개건사업을 스스로 당적분공으로 맡아안았다.

과학자살림집건설장에서 살다싶이 하는 그에게 사업소일은 걱정말라며 그를 몇번이고 병원으로 떠밀었지만 우리 당의 유일사상교양의 거점을 더욱 훌륭하게 꾸리는 사업을 미룰수 없다며 불같은 열정을 바쳐가는 그앞에서는 초급당위원장도 어쩔수가 없었다.

어느날 연구실바닥에 새 화강석을 까는 작업이 금방 끝났을 때였다. 그곳을 돌아보던 박영국동무가 한자리에 멈춰섰다. 바닥에 깔린 화강석들의 색갈이 약간 차이났던것이다. 많지 않은 부분이 알릴듯말듯 했지만 그는 서슴없이 곡괭이를 들었다.

위대한 수령님들을 높이 모시는 사업에 한줄기의 흐린 빛도 섞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였던것이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개건에 련이어 사업소의 구내에 당의 구호들을 모실 때에도 그랬다. 병마는 끝내 그를 침상에 눕히고야말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는 전화종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방금 기초공사를 끝냈습니다.》

《구호의 글발들이 정중하게 새겨졌습니다.》

비록 침상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사업소에 얹고있는 그를 위해 로동자들이 이렇게 전화를 걸어줄 때면 병마로 컴컴해있던 얼굴이 금시 밝아지며 침상을 차고일어날듯 힘을 얻군 하던 그였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정이 불같은 인간, 언제나 로동자들속에 있으면서 숨결을 같이한 당일군, 이것이 그에 대한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하나같은 평가이다.

한개 단위의 사상사업을 책임진 그에게는 일감이 많았고 시간은 모자랐다.

밤에는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개건전투장에서 그리고 낮에는 과학자살림집건설장에서 늘 수수한 작업복을 입고 바쁜 걸음을 걷군 하던 그는 당선전일군이기 전에 평범한 돌격대원이였다.

집에서는 과묵한 그였지만 로동자들속에서는 얼마나 락천적이였던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일하던 건설자들도 초급당부위원장이 일욕심과 인정미가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깊어질대로 깊어진 병을 안고있는줄은 미처 알지 못하였다.

기술자들과 건설자들이 힘들어할세라 맞들이도 남먼저 들며 앞장에서 달렸고 후방사업을 자기의 몫으로 맡아안고 늘 로동자들과 한가마밥을 먹으며 생사고락을 같이하였다.

그는 종업원들의 가정사정과 건강상태도 속속들이 알아보며 밤길도 서슴없이 걷군 하였다.

그런 뜨거운 마음은 제대군관과 평범한 로동자의 살림집에도 어려있고 성의있는 생일상과 지원물자들에도, 생기와 활력에 넘쳐 당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아글타글하는 녀성종업원의 사업과 생활에도 스며있다.

박영국동무의 뜨거운 인정미와 원칙적교양은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기적창조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하였다.

하기에 남성철, 김광옥동무를 비롯한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자기들과 함께 건설장에서 일하다가 쓰러지는것을 보고서야 그가 난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그토록 헌신의 길을 걸어왔다는것을 알고 오열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지난해 10월말, 박영국동무는 혼미해지는 의식을 가다듬으며 전화로 초급당위원장에게 말했다.

《래일이 개건된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에…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상사진문헌을 모시는 날인데… 제가 꼭… 나가겠습니다.》

집안에 흐르는 고요한 정적속에서 가쁘게 말마디를 이어가는 그를 지켜보는 안해와 딸 그리고 년로보장나이가 지나도록 직외강연강사로 일한 그의 아버지의 주름깊은 얼굴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로 그 심장의 목소리가 한 당원이 조직에 마지막으로 한 당생활보고였으며 당을 따라 곧바로 걸어온 당선전일군의 신념의 메아리였다.

그의 삶은 이렇게 충정의 200일전투기록장에 새겨지였다.

 

본사기자 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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