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봄의 부활》
문익환목사 시비제막식 열려
각계 인사 400여명 참석, 수유리 한신대 모교 교정에 건립
2008. 11. 11 《통일뉴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이 땅의 민중을 섬기기 위해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일생을 바쳤던 늦봄 문익환목사. 그 념원이 겨울 초입, 고인의 모교 교정에서 다시 부활했다. 《늦봄》을 부르고있다.
《늦봄 문익환목사 시비(詩碑)건립추진위원회》(건추위)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정에서 《늦봄의 부활, 민족의 부활, 민중의 부활 늦봄 문익환목사 시비제막식》을 열었다. 시비는 《6월항쟁》 2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 건립이 결정돼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날 제막식을 갖게 됐다.
《늦봄의 부활, 민족의 부활, 민중의 부활》
이번에 세워지는 시비는 일반적인 기념비형태가 아니라 문익환목사가 통일의 념원을 노래한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 글자 하나하나가 가로 1m 80cm, 세로 2m 40cm의 놋쇠조형물로 형상화된 점이 특징이다. 전태일의 동상을 제작하기도 했던 민중미술가 임옥상작가의 작품으로 시비기단에는 시비건립에 참여한 1 420명의 이름도 새겨져있다.
임옥상작가는 《목사님의 열정과 랑만적이고 예술가적인 상상력을 배울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였다.》며 《어떤 작가도 누리지 못한 저에게만 주어졌던 소중한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건추위는 건립배경에 대해 《87년 6월항쟁의 함성이 20년의 세월을 넘어 민주화와 통일시대로 접어들었고 민족화해, 평화통일의 념원을 문익환목사님의 시비를 건립함으로 실천하고저 한다.》면서 《단순한 시비건립을 넘어 다양한 대중들이 참가하는 국민참여형통일맞이 어울림을 통해 <평화로 한마음, 통일로 한걸음>의 념원을 하나로 만들어가고저 한다.》고 소개했다.
장영달 건추위 상임추진위원장은 《문익환목사님은 저희들에게 <통일은 다 됐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라가 차디차게 갈라져있는데 무슨 말씀인지 알수가 없었다.》며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분단이 있는것이지 이 분단만 넘어서면 통일은 어려운것이 아니다. 이런 말씀을 던졌던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는 남북을 다시 막아서 기득권을 유지하는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겠다고 하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 엄연히 버티고있구나 하는것을 다시한번 확인한다.》며 《이런 시점에서 시비건립은 우리 사회를 가로막고있는 철조망처럼 이런 문제들을 시비건립을 통해서 모든 부스레기를 휩쓸어 떠내려가게 만드는 물결이 있듯이 모든 민족의 가슴에 분단을 밀어내고 통일을 다시 밀어올릴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통일맞이리사회는 2007년 1월 26일 1987년 6월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경의선 남쪽지역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에 늦봄시비를 세우는 사업을 위해 《한국민족예술인총련합》, 《6. 15남측위》, 한신대학교 등과 협의해 공동추진위 구성을 합의하고 4월 17일 《늦봄 문익환목사 시비건립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당초 시비건립을 희망했던 도라산역의 경우 《통일부》에 장소사용승인요청을 하여 《통일부》로부터 허가공문을 받았지만 그해 5월 25일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법》 등을 리유로 불허립장을 《통일부》에 전달했고 이에 따라 건추위는 대체부지를 물색하게 됐다.
이후 차선책으로 림진각 평화누리를 선정, 2008년 상반기 경기도에 협력을 요청했으나 이도 승인이 나오지 않아 최종적으로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교 교정에 설치하기로 결정된것. 이에 따라 지난 9월 19일 한신대학교에서 시비건립 장소사용승인을 통보, 시비제막식 최종장소로 선정됐다.
《난 올해안으로 평양으로 갈거야,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거라고》
무대에 올라선 민주화운동의 《대부》 박형규목사는 지난 89년 문익환목사의 방북에 대해 《(문익환목사가) 이북에 간다는것을 전혀 몰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로상례배를 한지 3년쯤 될것이다. (문익환목사가 찾아와서는) 그거 그만두고 내 후계자 좀 되라 그래요. 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것을 그만두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란 말이요. 난 못합니다. 그리고 형님의 후계자는 제가 아닙니다. 저보다 더 용기있는 사람이여야지 저같이 나약한 사람은 할수 없습니다. 그래? 다음주에 자네 교회에서 설교해도 되겠나? 설교하십시오. (문익환목사는) 설교를 하시고 그 다음날 이북으로 가셨다. 정경모선생님과 함께.》
1989년 문익환목사와 함께 통일의 기운을 북녘땅에 전한 정경모 일본 《씨알의 힘》 대표는 일본 요꼬하마에서 고국땅으로 돌아올수 없는 립장을 밝히며 문익환목사에게 마음을 담은 시를 보내왔다. 두 《벗》의 이야기는 장내를 숙연케 만들었다.
《그 아름다운 꿈을 꾸고저 형님과 제가 손을 맞잡고 평양땅을 밟았을 때 형님이나 저나 얼마나 야비한 욕을 얻어먹고 얼마나 혹심한 규탄의 돌팔매를 받았습니까.
그때 형님을 매도하고 돌팔매질을 하던 그 무리들은 지금 희미하게나마 륜곽을 드러내고있는 꿈의 실체를 어떤 눈초리로 보고있는것일가요. 아직은 형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그 커다란 싸움이 끝난것은 아니며 자나깨나 같은 맘으로 빌던 그 꿈이 완전한 현실로서 우리를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계속 싸움터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저 합니다.》 .
《초불, 문목사님의 부활과 같은 성질의것이다.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다.》
축사를 위해 자리를 함께 한 백락청 《6. 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요즘 6. 15공동선언실천이 주춤거리고있어서 면목이 없고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객관적으로 판단하건대 가장 큰 직접적인 책임은 우리 한국의 새 정부가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실천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있는것이 가장 큰 리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럴 때 문익환목사님 같은 지도자가 계셔서 우리 남측위원회를 이끌어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된다.》며 《문목사님께 배워야 할것이 그분들의 열렬한 투쟁정신과 투쟁경력만이 아니고 그런 가파론 싸움을 하시는 도중에도 항상 여유를 갖고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셨다는 점이다. 우리 상황도 조금만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락담할 일은 아니다.》고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는 또 《초불이 잠잠해지면서 리정권이 남북관계뿐만아니라 민주주의나 기타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마치 자기들이 승리한것인양 기고만장해서 날뛰고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초불같은 그런 사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성질의것이다.》며 《문목사님과 관련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활, 그 부활이 이 사건에 해당하는것인데 그것을 몰라보고 잠시 사그라들었다고 기고만장해하는것은 두려워할 일도 아니고 어리석다. 딱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알게 될것이다.》고 개탄했다.
북미관계에 있어서도 《새로 당선된 오바마가 미국내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큰 움직임을 타고 당선되였기때문에 한반도정세에 큰 변화가 있게 될것이다.》며 《문목사님이 보여주신 여유를 잃지 않고 그분이 보여주신 헌신성과 열정을 이어받아서 계속 노력해나간다면 머지않아 온갖 장애를 뚫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통일은 됐네.>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고 《변화》와 《노력》을 강조했다.
박순경 《한국진보련대》 고문은 《그는 기독교와 남한의 고질적인 <반공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채 분단의 철옹성을 단번에 뛰여넘었다.》며 《바로 그의 시적인 상상력과 예언자적상상력이 그의 그러한 비약적인 행위예술을 감행하게 한것》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문인환목사 시비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있는 참가자들
그러면서 박고문은 《통일은 다됐어? 아니다. 분단의 질긴 멍에는 아직도 우리의 운명을 짓누르고있다.》며 《통일을 다 이루어내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문익환목사 시비건립을 축하하는 10여개의 각계 인사들이 보낸 화환들이 눈에 띄였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희호녀사가 화환을 보내왔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로동당》 대표, 고은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리사장 등도 마음을 전해왔다.
문익환목사의 가족을 비롯해 정계, 시민사회진영 등의 활동가 및 원로 400여명도 참석해 시대의 큰 《스승》의 정신을 기렸다. 문목사의 부인인 봄길 박용길장로와 차남인 문성근씨 등 가족내외는 앞자리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뒤로는 김근태 전 장관, 권영길 《민주로동당》 의원, 우상호 《민주당》 전 의원, 정범구 전 의원 등 정계인사들과 백락청 《6. 15남측위》 상임대표, 리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박중기 《추모련대》 의장, 권오헌 《량심수후원회》 회장, 리소선녀사, 임기란 《민가협》 전 상임의장도 모습을 보였다. 《전대협》 초대의장이였던 리인영 전 의원이 사회를 맡았고 윤응진 한신대학교 총장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안으로 평양으로 갈거야
기어코 가고말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롱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가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거지
… … …
동무라는 좋은 우리 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때로
돌아가는거지
아 얼마나 좋을가
그땐 일본제국주의사슬에서 벗어나려고
2천만이 한마음이였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7천만이 한겨레라는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거리를 뒹굴겠지
… … …
배속 편한 소리 하고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다구
객적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력사이야기를 하고있는거야
력사를 말하는게 아니라 산다는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력사를 산다는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기발로 드높이
나붓기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력사를 산다는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량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력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테니까
림진강을 헤염쳐서라도 갈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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