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창건 60돐, 력사의 현장에서
김일성주석의 개선과 새 조국건설로선
2008. 8. 26 《민족통신》
《조선신보》 22일자는 공화국창건 60돐을 기해 《김일성주석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창건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창건으로부터 오늘까지 실로 자랑차고 영광스러운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하며 우리 식 사회주의의 건설의 력사를 돌아보는 《공화국창건 60돐, 력사의 현장에서》의 련재를 시작했다.
쏘련식도, 미국식도 아닌 조선식민주주의를
김일성주석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창건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창건으로부터 오늘까지 실로 자랑차고 영광스러운 길을 걸어왔다.
공화국창건 60돐에 즈음하여 편집부에서는 건국의 나날과 조국이 걸어온 력사를 현장에서 취재하였다. 독자들과 함께 주요사변들을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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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김일성주석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이 승리하고 마침내 조선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되였다.
주석님께서는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한 준비로 조국개선을 미루시다가 해방된 때로부터 한달이상이 지난 9월 19일 강원도 원산시에 군함으로 상륙하시였다. 오늘 원산시에는 당시의 사연을 전하는 사적관이 있다. 원산혁명사적관 문춘희강사(39살)는 주석님께서 새 조국건설에서 조선식민주주의를 구현해나가시였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사회주의나라였던 쏘베트식도 아니고 자본가를 비롯한 특권계층의 리익을 옹호하는 미국식도 아닌 《우리 식》을 지향하는 독창적인 로선이였다.
군함으로 원산상륙
원산혁명사적관은 《만경봉-92》호가 정박하는 항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있다.
사적관의 2층건물은 일제식민지시기 세관건물로 리용되였다. 주석님께서는 원산에 상륙하신 직후 이곳에 들리시였다. 오늘은 각계층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 그리고 해외동포, 외국인사들이 사적관으로 꾸려진 이곳 건물을 찾고있다.
사적관은 주석님께서 원산에 상륙하신 30돐이 되는 1975년 9월 19일에 개관되였다. 전시실은 7개 있다. 첫번째 방에는 주석님께서 군함을 타시고 원산으로 상륙하시는 장면의 작품이 전시되여있다.
주석님께서 배길로 조국에 돌아오게 되신 경위에 대하여 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당초 9월 11일 로씨야 원동지역의 하바롭스크를 떠나 목단강, 왕청, 도문을 거쳐 륙로로 조국으로 돌아올것을 계획하시였다. 그러나 일본관동군에 의해 목단강근처의 길과 비행장활주로까지 파괴되였기에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리용할수 없었다. 그래서 목단강까지 갔다가 원동으로 다시 되돌아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배를 타고 조국에 오시게 되였다.》
주석님께서는 19, 20일의 이틀간 원산에 체류하시였다. 그 기간에 원산시안의 여러 인사들을 만나시면서 새 조국건설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을 전개하시였다.
당시 원산시에서는 환영군중대회와 같은 행사는 없었다고 한다.
《주석님께서는 <김영환>이라는 가명을 쓰시였기때문에 일반시민들은 그이께서 개선하시였다는것을 몰랐다. 주석님께서는 요란한 환영을 바라지 않으시였으며 인민들속에 조용히 들어가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수행을 위한 기초작업을 하려고 하시였다.》는것이 문춘희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원산상륙당시의 영상사진자료는 단 한상도 남아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3대과업의 제시
8. 15해방의 소식은 삼천리강토를 기쁨에 설레이게 하였다. 인민들은 건국열의로 들끓었다.
이들은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의 개선을 일일천추로 기다리고있었다. 평양과 서울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가 조직되였다.
그러나 새 조국건설과 관련한 준비를 잘 갖춘 다음 조국에 들어가자는것이 주석님의 뜻이였다고 한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국내에는 38°선을 계선으로 북에는 쏘련군, 남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되여있었다. 정세는 매우 복잡했다. 조선반도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장으로 될수 있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대치된 민족의 력량이 외세의 간섭으로 애국세력과 매국세력으로 분렬될수 있는 엄혹한 환경이 조성되고있었다.
건국의 방향에 대해서도 각이한 견해들이 있었다. 어떤 세력은 봉건제도를 되살려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세력은 부르죠아제도를 세워야 한다 혹은 쏘베트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민대중은 조선이 어느 길로 어떻게 나가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조선인민자신의 손으로 부강하고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을 조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고 조직동원할수 있는 혁명의 참모부가 있어야 하고 정권이 있어야 하고 무력이 있어야 한다…
주석님께서는 이러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다가 1945년 8월 20일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회의에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핵으로 하는 새 조선건설의 리정표를 내놓으시였다.
건국문제에 있어서는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민주주의공화국의 수립을 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그 실현방도로서 로동계급의 령도밑에 광범한 농민대중과 지식인, 민족자본가 등 각계각층의 민주력량을 망라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결성과 이에 토대한 인민정권의 수립에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주석님께서 내놓으신 방침의 특징은 건국을 위한 통일전선에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 일체 반동세력들이 기여들지 못하도록 한것이다.
회의에서는 또한 3대과업을 실현하기 위한 소조들이 조직되였다. 주석님께서는 소조원들의 파견지를 확정하시고 여러날에 걸쳐 소조원들에 대한 강습도 조직하시였다고 한다. 강의는 주석님께서 몸소 하시였으며 김책, 안길동지들도 하였다고 한다.
9월 19일 원산시에 상륙하신 주석님께서는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군사정치간부 및 원산시공산당단체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 《인민대중을 묶어세워 새 조선을 건설하자》에 그 내용이 있다. 주석님께서는 담화에서 해방된 조선은 봉건제도를 복구하거나 부르죠아제도를 수립하는 길로 나아가서는 안되며 당장 사회주의길로 나아가서도 안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이며 해방된 조국땅에 세워야 할 국가는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건국로선이며 인민대중이 념원하는 길입니다. 이 길로 나아가야만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고 나라의 완전자주독립과 민족의 륭성번영을 달성할수 있습니다.》
10여만 군중의 환호
주석님께서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모방하거나 기성리론을 교조주의적으로 적용하는것으로써는 인민의 지향을 실현할수 없다고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해방된 조선의 현실에 철저히 립각한 조선식민주주의의 기치를 드시였다.
원산에 상륙하신 다음날인 20일 주석님께서는 원산역에서 평양행 기차를 타시였다.
오늘 주석님께서 타신 객차와 견인차가 옛 원산역에 보관되여있다.
문춘희강사는 주석님께서 앉으시였던 자리를 가리키며 《서해지구에서 3대과업수행을 위해 사업할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조용히 원산을 떠나시였다. 주석님께서는 1등도 2등도 아닌 3등객차를 타시였다.》고 말한다.
주석님께서는 평양에도 조용히 입성하시였다. 그리운 만경대고향집방문도 뒤로 미루시고 평양병기제조소(10월 2일), 강선제강소(10월 9일) 등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조선로동당을 창건(10월 10일)하신 이후에야 군중앞에 나서시였다. 10월 14일 모란봉기슭의 공설운동장에서 평양시환영군중대회가 열리였다.
주석님께서는 《모든 힘을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에서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며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나갈것을 호소하시였다.
대회에 참가한 10여만 군중은 하늘땅을 진감하는 박수와 환호로 전폭적인 찬동의 뜻을 표시하였다.
(해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945년 10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창립대회와 11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2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북조선중앙정권기관으로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에 따라 행정국의 강화 등 중앙정권기관을 내올수 있는 준비사업이 추진되였다.
1946년 2월 8일 평양에서 북조선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 행정국, 인민위원회대표협의회가 진행되여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의 대표들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였다. 주석님께서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사명은 친일친미파, 민족반역자, 지주, 예속자본가들에게는 독재를 실시하고 광범한 인민대중에게는 민주주의를 실시하면서 북조선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고 혁명적민주기지를 창설하며 사회주의혁명단계에로 넘어갈 조건을 마련하는것이였다.
이후 토지개혁과 로동법령, 남녀평등권법령발포 등 제반 민주개혁들이 실시되고 북조선에 인민민주주의제도가 서게 되였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완수되는데 따라 조선은 혁명의 새로운 단계인 사회주의혁명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1946년 11월의 선거를 거쳐 1947년 2월 평양에서 진행된 북조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 우리 나라 첫 사회주의정권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조직되였다. 주석님께서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강이룩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