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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4 《인터내셔널》

 

 

리명박《정부》가 출범하자 진보진영은 긴장하고 위축되기도 하였다. 리명박《정부》의 신공안탄압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을 가지고 대중투쟁이 상당기간 어려울것이라는 생각들이 많이 팽배하였으며 리명박《정부》도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며 폭주하였다.

이때 10대들의 도발적인 《리명박탄핵서명》과 《초불문화제》가 활로를 열어주었다. 10대중고생에서 시작된 초불이 거리시위로 번지고 10대에서 시작한 초불시위가 20대, 30대로 확대되였다가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폭넓은 대중투쟁으로 발전하였다. 초불시위는 시민과 리명박《정부》의 정면대결의 단계로 들어섰고 5월 31일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완전포위하는가 하면 6월 10일에는 전국에서 100만이 참가하는 대규모시위로 발전하며 《청와대》를 련이어 굴복시켜왔다.

 

2008년 초불운동의 특징을 보면

 

참여계층의 폭이 넓다.

《광우병대책회의》에 전국의 1 800여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서울을 비롯한 시, 군, 구 120군데에서 정규적으로 개최되고 빠리 등 세계각지의 동포들과 동단위 혹은 개별가정에서도 전개되였다. 10대의 초불소녀, 20대의 《하이힐부대》, 30대 《유모차부대》, 40대 《학부모부대》, 50∼80대 어른 등 유모차의 어린이부터 80대로인에 이르기까지 전세대가 참여하였다.

《소울 드레서》, 《동방신기팬클럽》, 《엠엘비클럽》, 《SLR클럽》, 《쌍코카페》, 《초불소녀》, 《82cook》, 《dvd프라임》, 《뽐뿌》, 《라이더 갤》, 《음식갤》 등 우리로서는 잘 알지도 못한 각양각색의 관심과 취미가 있는 인터네트모임과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종단이 참가하여 그야말로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운동으로 되였다.

 

《배후》를 의심할만 한 전술구사

초기 《기발부대》를 멀리하며 무조건 《준법투쟁》으로 세를 불리고 그 세가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서자 과감히 거리시위로 발전시켰다. 과잉진압을 하면 이것을 생중계로 내보내 규모를 폭발적으로 늘이고는 《청와대》로 진격하기 시작했으며 유리한 국면에서는 과감한 투쟁을 하고 불리하면 《비폭력》을 웨쳤다. 특히 그 전날까지 차벽을 바줄로 당기고 소화전을 열어 물대포를 날리던 사람들이 경찰의 원천봉쇄와 검거가 시작되자 하루아침에 천주교신자로, 불교신자로 둔갑하며 침묵시위를 하였다.

 

저마다 취미와 능력에 따라 역할

참가자들이 저마다 각자의 독특한 역할을 가지고 참여해왔다. 《예비군》과 의료진, 김밥을 공급하는 음식갤러리, 밤새 김밥과 물을 시위대로 공급하는 오토바이 라이더 갤러리, 시위대속에서 연주하는 밴드, 24시간 커피를 제공하는 네티즌모임, 쓰레기를 줏는 청소부대, 인터네트에 소식을 전하는 생중계부대 등 참여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시위에 필요한 뭔가의 역할을 자임하고 놀라운 책임감과 헌신적활동으로 보는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또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 시작하면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옷과 수건이 시위대로 전달되기 시작한다. 그외에도 경찰과 싸우는 사람, 《조》, 《중》, 《동》을 《압박》하는 사람, 《KBS》를 지키는 사람들 등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이런 역할들이 모여 광화문의 초불시위를 유지하고 리명박을 굴복시켜왔다.

처음 이 시위가 시작되였을 때 어느 누구도 이 시위가 어떻게 발전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10대들이 시작한 초불문화제는 20, 30대가 이어서 지속되였고 수그러드는듯 하다가 거리시위로 운동의 형식과 성격이 한단계 발전하면서 폭발적으로 확대되여 스스로 변화발전하는 대중투쟁으로 되였다.

《광우병》소고기수입문제로 시작한 이 운동은 교육, 언론, 민영화, 운하 등으로 의제가 스스로 확대되고 리명박《정부》의 《정책》전반을 반대하는 반《정부》운동의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민중들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속에서 주인다운 대접은커녕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마저 여지없이 파괴되는 현실속에 살고있다. 무엇때문에 주인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주인답게 살아갈수 없는가? 불평등하고 예속적인 《한》미관계가 미국의 리익을 관철하는 통로역할을 담당하고있기때문이다.

대중들은 이제 미국대기업의 경제적리익, 더 나아가 미국의 군사적리익때문에 자신의 민주적권리와 자주적삶이 파괴되고있다는것을 모두 알고있고 2008년 초불시위는 이 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인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미국눈치만 보면서 국민을 무시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다.

이번 초불시위는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과거 군부독재시절로 되돌리려는데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결집이다.

87년 6월항쟁때는 《군부독재타도와 직선제쟁취》라는 절차적민주화를 요구했다면 이번에는 《검역주권확보》, 《미친소 수입반대》, 《0교시반대, 교육시장화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공기업민영화 반대》 등 내용적민주화를 요구하고있다. 즉 지금 초불을 든 대중은 《직선이냐 아니냐》라는 형식적절차가 아니라 국민대중들의 민주적요구와 지향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라는 내용적측면이 중요한것이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국민이 정당하게 뽑았더라도 임기가 2개월밖에 되지 않았든 관계없이 《독재》라는것이 국민대중들의 인식이며 판단이다. 이번 초불운동의 지향은 국민이 주인이고 리명박은 주인을 섬기는 머슴이라는 관계를 분명히 하자는것이다.

 

대중의 정치활동방식

 

이 초불운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참가자들이 열성적으로 시작한 일이 《조》, 《중》, 《동》을 《압박》하는 일이였다. 또 《KBS》문제에 대해서도 진보운동활동가들보다 한발 먼저 행동하며 《공영방송지키기운동》을 펼치였다. 자신들이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기때문에 옳바른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활적으로 실천적으로 리해하고있는것이다. 반면 활동가들은 이런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관념적인것이다. 이 운동의 시작이 PD수첩의 《광우병》방송이 큰 영향을 준것에서 알수 있듯 대중들에 대한 언론매체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인것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언론매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돌려야 하며 장기적인 대책과 준비가 꼭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까지 그저 모니터에 보이는 가상공간이 온라인의 전부로만 사고했다. 2MB탄핵 카페 20만, 쌍코카페 12만, 소울 드레서 18만, DC인사이드의 수십개의 갤러리와 각양각색의 인터네트모임이 실제하고 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조직되고 행동한다는것을 우리는 알지 못하였다. 대중들은 온라인을 통해 스스로 조직되고 여러가지 취미와 관심으로 모여있다가 때가 되면 오프라인에서 위력적으로 활동하는것이다. 대중들은 온라인에만 존재하는것도 아니고 오프라인에만 존재하는것도 아니다. 이 두 공간을 적절히 오가며 존재하고있는것이다.

초불시위는 초를 드는 행위자체, 집단적시위로 초를 드는것만으로도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지도부의 지침이나 지시에 의해 모인것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주장이 뚜렷이 존재하고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발산한다. 운동단체의 시위참가자들이 주최측에서 준비해준 피켓선전물을 들고 준비된 연사들의 발언을 듣는것에 반해 초불시위의 참가자들은 자기만의 주장이 담긴 선전물을 직접 만들어 참여하고 자기가 직접 발언을 한다. 10대들의 발언은 참가자들의 가장 적극적인 호응을 받는다. 10대들의 발언은 론리적인 설명이나 가르치려는 교육이 아니고 참가자들이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속시원히 감성적으로 발산하기때문이다. 또 이들은 스스로가 집회를 주최하고 인터네트와 문자로 주변사람을 적극 조직한다. 이런 자발성이 련일 수만의 초불문화제를 가능하게 해온것이다.

《분노와 요구에 기초》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주장》하는것이 집회시위의 본래의 모습이다. 당위와 동원, 형식과 관성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시위문화를 오늘날 10대들과 대중들이 다시 복원한것이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10대들은 후보시절부터 리명박을 싫어했고 탄핵서명이 먼저 진행된것에서 알수 있듯 이 운동의 과녁은 처음부터 정확히 리명박으로 맞추어져있었다.

이들은 《광우병소 수입반대》라는 매우 생활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리명박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또 집회참가방식도 단순히 기발아래 모이는것이 아니라 우에서 언급한것처럼 자신의 구체적인 역할을 가지고 참여한다. 진보진영의 활동은 이들에 비해 관념적이고 피동적이다. 《조선일보 절독운동》과 《광고주 압박운동》의 차이점을 비교하면 알수 있다.

진보진영의 활동이 관성적인데 비해 대중들의 활동은 열정적이다. 이들의 열정은 숙제운동과 삼양라면먹기운동이 잘 보여준다. 자신의 활동을 바로 인터네트에 올리고 온갖 실효성있는 방안들을 만들어내고 실천을 확대하는것은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진행했던 이랜드 불매운동이나 GS주유소 불매운동과 비교해보면 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인가를 알수 있다.

이들은 한번 행진을 시작하면 다음날 해뜰 때까지 이어지고 장대비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전경들이 돌진하면 맞받아나가 《오지 마》, 《오지 마》를 련호하며 그들을 둘러싸버린다. 또 경찰이 진압을 포기하고 물러나면 《가지 마》, 《놀아줘》를 련호하며 따라간다.

물대포를 쏘면 《물절약》을 련호하고 물이 차가우니 《온수》를 쏘아라고 련호한다. 그리고 방패와 군화발의 폭력에는 쇠파이프나 짱돌대신에 카메라와 인터네트로 대응하여 다음날 시위군중을 다섯배고 열배고 부풀려버린다.

그들이 이렇게 창의적이고 거침없는 리유는 내 주장의 정당성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높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정당하니 반드시 승리한다고 확신하니 목청도 내용도 시간도 우리와는 다른것이다.

초불운동은 이미 스스로 변화발전하는 반《정부》운동의 성격으로 발전하고있으며 완전하게 대중자신의 운동으로 되여있다. 대중들은 자신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이 투쟁을 멈추지 않을것이고 자신이 지향하는바가 실현될 때까지 2년이고 3년이고 계속될것이다. 리명박《정부》가 끝나는 날까지 잠복과 분출을 되풀이하며 끝까지 갈것이다.

이번 초불시위의 대중적진출에 진보진영은 놀라기도 했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이번 초불운동은 진보운동의 산물이며 진보진영이 주도하는 운동이라는것이다. 10대의 진출은 《전교조》운동의 산물이며 광범위한 대중들의 진출 역시 여러 진보운동이 존재하기때문이다. 《민주로총》의 현재 영향력이 어떠하든 존재하는것자체로 사회와 대중들에게 주는 영향이 대단한것이다. 그리고 이번 투쟁과정도 《국민대책회의》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그 수위와 폭을 조절하며 이 운동을 주도하여왔다.

우리 진보운동가들은 이번 투쟁에서 대중들의 진출에 비해 우리의 준비정도가 너무나 부족함에 마음고생이 많다. 리명박《정부》를 퇴진시키자니 대안이 없고 이렇게 많은 대중들을 담아내자니 그릇이 없다. 우리는 광범위한 대중들이 운명을 함께 의탁할만 한 조직적인 그릇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집권할수 있는 수권세력을 만들어놓지 못했다.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과 전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보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것이다. 따라서 당과 전선을 축으로 련대를 강화하는것은 우리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당면하여 진보운동은 《정권》의 탄압을 막아내고 대중적요구를 실현시켜나가면서 운동력량을 보존하고 축성시켜나가야 한다. 특히 《한국진보련대》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잘 보존하고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획기적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가야 하며 당운동과 함께 수권할수 있는 대중력량을 축성해나가야 한다.

글쓴이 : 개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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