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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순신(1545-1598)은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더불어 우리 나라 력사에 널리 알려진 리조시기의 애국명장이다.

뛰여난 군사적재능을 지닌 리순신은 이미 1587년 조산보만호로 있을 때 두만강어구의 록둔도에 침입한 녀진인들을 물리쳤으며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기 전해인 1591년(선조 24년)에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파견되여 수군을 꾸리는데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는 인민들과 지혜를 합쳐 거북선을 비롯한 전함들을 여러척 만들어냈으며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자 조선함대를 이끌고 왜적격멸에 나섰다.

1592년 5월초 리순신은 옥포해전에서 적선 26척, 사천해전에서 12척, 당포에서 21척, 당항포에서 30여척, 부산부근에서 8척을 요정낸데 이어 7월 8일에 벌어진 한산대첩에서는 적선 73척가운데서 도망친 14척을 제외하고 포위에 든 59척을 모조리 격침시켰으며 수천명의 적을 살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수군은 바다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게 되였으며 왜적들의 《수륙병진》계획은 여지없이 파탄되고말았다.그후에도 리순신은 조선함대를 지휘하여 안골포해전에서 40여척의 적선을 격침시켰으며 부산앞바다에서도 일본수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전쟁의 첫 시기에 거둔 공로로 하여 1593년(선조 26년)에 3도수군통제사로 승진한 리순신은 임진조국전쟁이 일시 중단상태에 들어간 1593년 중기이후에도 적의 재침을 예견하고 수군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진해,고성 등의 앞바다에서 준동하는 적선을 격침시키는 단호한 전투행동도 벌리였다.

전쟁후기인 1597년에 리조봉건통치배들의 부당한 처사로 병사로 강직되였다가 그해 가을 다시 3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리순신은 12척밖에 안되는 배와 약 120명의 군사를 물려받았으나 명량해전에서 또다시 30여척의 적선과 4 000여명의 적병을 격멸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그후 적수군을 최종적으로 격파하기 위해 함대를 재건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다그쳐 1598년 11월 로량앞바다에서 총퇴각하는 왜적의 마지막 주력함대와 해전을 벌려 적선 200여척을 소탕하는 커다란 전과를 거둠으로써 임진조국전쟁이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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