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9절 방북취재
북녘동포들 대부분이 《인테리》
2008. 9. 25 《자주민보》
9. 9절행사취재를 위해 북녘을 방문한 《민족통신》 로길남대표는 평양을 비롯해 개성, 삼지연, 향산 등지를 돌며 북녘동포들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로길남대표의 눈에 비친 북녘동포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북녘의 외모가 아주 달라졌다. 평양거리, 삼지연거리, 개성거리 등이 새롭게 포장되였고 건물들이 개건사업을 통해 깨끗이 단장되였으며 외벽들이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였다. 북녘동포들의 표정 또한 밝았고 신심에 가득차있었다. 만나는 북녘동포들모두가 《인테리》처럼 느껴졌다.

9. 9절을 전후하여 기자의 눈에 비친 북녘의 도시들은 가는 곳마다 변화된 모습들이다. 대동강변에 나온 남녀로소들은 모두가 평화롭게 보였고 개성과 량강도, 삼지연마을에서 본 북녘동포들도 한결같이 희망찬 표정으로 래일을 위해 오늘을 뛰는 모습들이였다. 거리의 간판들도 산뜻하고 전부 우리 글로 되였으며 그 규격도 거의 비슷하게 제작되였다.
안내원들의 해설 또한 2012년 김일성주석의 100돐 탄생을 맞이하는 해에 반드시 경제강국을 이루어 최고령도자인 김정일국방위원장께 기쁨을 드리겠다는 결의에 찬 음성이였다. 북녘의 외모도 달라졌지만 북녘동포들의 마음과 자세도 예전보다 한층더 희망에 차있었다. 령도자와 당, 군대, 인민이 모두 하나가 되여 혼연일체의 사회를 건설하여놓았다.
판문점에서 만난 인민군 김명환중좌도 북녘의 일반동포들의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섯형제가 있는데 모두 인민군대에 복무한다.》고 밝히면서 《6살때 부모와 친척들이 다 죽는 바람에 고아가 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덕분에 당당하게 살고있다.》고 말했다.
인민군군인들과 로동자, 농민, 사무원, 교직원, 학생, 예술인, 체육인 등 기자가 만난 북녘동포들은 모두가 당당하고 씩씩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리론에 밝았고 정치사상적으로 의식화된 동포들이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례외없이 사대주의를 싫어했고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적인 통일을 뜨겁게 갈망했다.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의 누구를 만나도 같은 생각들이였다.
한 농민(재미동포리산가족중 한사람)은 《하루속히 조국이 통일되여야 하겠는데 남조선에는 새 정부가 들어와서 6. 15북남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리행하지 않고 거부하고있는데 이건 불행한 일입니다.》라고 지적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방해책동을 적라라하게 꼬집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들이 소작농이였다고 돌이켜보면서 《수령님과 장군님이 계셨기에 나같은 소작농의 자식도 주인답게 살고있다.》고 회고한다.

경제학과출신인 한 북녘동포는 《우리는 경제생활의 기본이 자력갱생입니다.》라고 설명하면서 《90년대 중반 큰물피해로 경작지 75%가량이 파괴되였지만 그 이후 전인민이 일심단결하여 극심한 어려움을 이겨냈고 작년 여름 홍수로 다소 피해를 입었지만 개천-태성호물길공사와 백마-철산물길공사를 비롯하여 토지정리, 종자혁명 등의 사업을 일으켜 이제는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강국을 건설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있습니다. 석탄생산같은 지하자원개발을 다그치고 동력, 전기, 화학공업 및 경공업 등을 발전시켜 오는 2012년을 목표로 경제강국으로 일떠설것입니다. 해외동포들이 많이 걱정하고있는줄 압니다만 너무 념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위로해주기까지 한다.
한 북녘동포는 금년농사가 잘되였다고 말하면서 《작년의 홍수를 극복하고 식량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있습니다.》라고 귀띔해준다.
그래서인지 농촌의 논과 밭에는 벼와 옥수수 등의 농작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감자농사도 잘되였다고 한다. 북녘동포들은 경제강국을 이루어도 식량문제는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북녘동포들의 모습에서 여유도 발견할수 있었다. 옥류관을 포함하여 각 도시의 식당에는 손님들로 가득차있었다. 놀이터나 강변에는 사람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고 도시의 공원숲속에는 청춘남녀들이 쌍쌍이 되여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들도 보였다. 살림집주변과 거리에는 멋쟁이같이 잘 차려입은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들도 보였다. 강변에는 낚시대들을 들고 고기잡이를 하는 낚시군들과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신나게 노는 로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9. 9절행사들도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어떤이들은 음악회에 참석하고 영화관에 가고 집단체조를 관람하기도 한다. 인민대학습당(국립도서관)에서 외국어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한 독서를 하며 음악을 감상하고 콤퓨터를 비롯하여 온갖 지식을 터득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였다.
북녘동포들의 이마에 뿔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금요로동과 밖에서 일을 많이 하여 얼굴색이 검게 탄것은 분명했다. 사무직 일군들도 금요일이면 반드시 농촌이나 로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 나가 로동일을 하도록 하는 제도가 서있다는것이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습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정세분석이나 철학공부 등을 하는것이 학습시간으로 알려져있다.
북녘동포들은 또 각 단위에서 생활총화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 시간에는 자기 총화, 호상방조를 통하여 좋은 일들은 격려하고 부족한 일들은 서로 지적하여서 자발적으로 고치도록 하는 제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북녘동포들은 대부분 아는것이 많다.
심지어는 15살짜리 어린 소년, 소녀들도 미국의 선거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많은 지식들을 갖고있었다. 평양의 한 중학교에서 《줄기세포》와 인공위성원리를 공부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영어교실에서 재미동포들 못지 않게 류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도 보았다.
북녘동포들은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거의가 《인테리》처럼 느껴졌다. 이들은 지식뿐만아니라 롱담도 잘하고 때로는 육담도 잘한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도덕적으로 순결했다. 한가지는 북녘녀성들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것이다. 모두가 단정했고 례절도 밝았다. 몸가짐 하나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했다. 북녘동포들은 또한 남녀모두가 순수했다.
기자가 북녘을 방문하기 시작하여 이곳을 다닌 수자는 무려 40여차례가 넘는것 같다. 이번에는 9. 9절을 전후하여 2주동안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북녘의 남녀로소들로부터 많은것을 배웠다. 아직도 북녘동포들로부터 배울것이 많은것 같다. 이것이 이번 방북취재기간에 배우며 느낀 솔직한 고백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