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9절 방북취재
백두산은 역시 혁명의 성산
2008. 9. 22 《민족통신》
백두산은 과연 위엄있게 보였고 장엄한 자태를 하고있었다. 《민족통신》 편집인 로길남박사는 최근 2주동안의 방북취재기간 재미동포 30여명과 백두산과 삼지연 등을 참관하며 이에 깃든 이러저러한 발자취들을 취재했다. 편집인은 9. 9절기념 방북취재기에서 《백두산은 역시 혁명의 성산》임을 확인한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재미동포들을 포함하여 일부 해외동포들과 외국인관광객들은 북부조국의 창건일(9. 9절) 60주년을 맞는 행사들을 참관하고있는 기간인 지난 9월 11일 오전 8시 평양비행장에서 백두산으로 향하는 고려민항기에 올랐다. 108석의 자리는 꽉 차있었다.
각 일행들은 백두산기슭에서 1백여리 떨어진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대기하고있던 뻐스에 올라 백두산을 향해 굽이굽이 길을 따라 한시간이상 올라갔다. 이깔나무, 전나무 등 사철나무숲을 지나고 또 지나자 확 트인 하늘에 위엄을 자랑하는 장엄한 백두산이 보인다. 1백만년전 화산이 분출하여 형성된 화산암들이 희게 보인다고 하여 《백》을 썼고 높은 곳 머리우에 있다고 하여 《머리 두》를 써 백두산이라고 이름하였다고 안내원이 설명한다.
백두산주변 10리정도의 거리에는 고목이 없다. 잔디처럼 보이는 풀들과 희귀한 식물들뿐이다. 겨울에도 피는 만병초가 보이고 이름모를 노란 꽃, 파란 꽃들이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목에 깔려있다. 군데군데 《만병초 꺾지 맙시다.》라고 쓴 나무패말이 눈에 띈다. 그 저쪽 하늘에는 위엄과 장엄함을 자랑하듯 백두산정상이 보이고 새털구름 바로 아래에 높고낮은 릉선의 백두산기슭이 우람한 자태로 버티고있다.
뻐스가 산정에 도착하자 서둘러 내린 일부 참관자들은 《야, 백두산천지가 보인다!》고 소리치며 감탄을 련발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저렇게 큰 호수가 있다는것이 놀랍기만 하다. 너도나도 달려가 그 천지를 바라본다. 천지가운데는 짙푸른색, 가장자리로 올수록 그 색갈은 점점 연해진다. 천지연 가운데깊이는 전세계에서 두번째라고 한다. 로씨야의 바이깔호가 385m이고 이곳 천지연 가운데깊이가 384m. 안내원은 이 천지연의 물은 고인물이 아니고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있어 살아있는 물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 나라쪽으로는 그 물줄기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련결되고 중국쪽으로는 송화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고 해설한다. 천지연의 둘레는 14. 4km이고 그 넓이는 9 165㎡로 기록되여있다. 그리고 물고기가 살수 있는가를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천지연물이 솟는 샘물에 의하여 이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 1984년 여름 백만마리의 산천어새끼를 이곳에 집어넣어 길러왔다고 한다.
재미동포일행들중 대부분은 삭도를 타고 백두산정상에서 천지연 물가로 내려갔다. 가슴설레이던 동포들 몇명은 신발을 벗고 천지연 물속으로 걸어들어갔고 일부는 바지와 웃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여들어 헤염을 치고나서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를 웨치기도 했다. 이것을 본 외국인참관자들 몇명도 천지연에 뛰여들어 해외동포들과 어울렸다.
백두산과 천지연은 세계적명물이다. 가슴이 펴지고 심장이 열린다. 해외동포들도 경탄하고 외국인형제들도 감탄한다.
특히 백두산산정 어깨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친필을 새긴 글발이 선명하게 보인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란 글이 유난히 눈에 띄는 위치의 돌산에 새겨져있다.
《혁명의 성산》이라는 글귀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것 같다.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인 백두산은 항일투쟁을 통한 백절불굴의 애국정신이 스며있는 성산이며 우리 민족의 미래를 환하게 비쳐주는 희망의 성산이다. 일찌기 남북에 널리 알려진 혁명시인 조기천은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통해 이 산이야말로 《혁명의 성산》이라고 노래한바 있다.
분단이후 북녘문학사가 《평화적건설시기》(1945. 8-1950. 6)의 걸작으로 꼽고있는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은 1947년 작품으로 제주 4. 3사건을 다룬 강승한의 서사시 《한나산》과 함께 남북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비단 이 시기의 걸작일뿐만아니라 이북문학 전시기를 통털어서도 걸작으로 평가받고있다. 이 작품은 1947년에 창작된것으로서 피어린 항일투쟁력사와 함께 조국해방을 맞아 새 나라를 건설하게 된 력사의 과정과정을 시로 형상화하면서 8. 15해방을 맞아 새 나라를 건설하여온것은 혁명의 수령 김일성주석의 지도력과 혁명적동지애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하였다는 사실을 심금을 울려주며 페부로 다가오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혁명의 수령과 그분의 주체혁명사상을 담고있으면서도 예술작품이 지닌 뛰여난 기법과 누구나 리해할수 있는 어휘와 내용으로 읽는이들에게 감동을 주고있다. 그의 시는 백두산의 민족정기를 리해하는데 있어서도 추천할만 한 걸작품이다. 조기천시인(1913-1951)은 불과 38살로 타계하였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것이다. 남녘에서도 많이 알려진 이북노래 《휘파람》의 작사자이며 유작으로 《수양버들》이 있다.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머리시》를 포함하여 1장(7절), 2장(7절), 3장(8절), 4장(6절), 5장(6절), 6장(7절), 7장(6절)과 마지막 《맺음시》로 구성되여있다. 이 장편서사시 《백두산》 전문을 읽으면 백두산의 위용과 위엄을 더 깊게 느끼게 된다.
이날 청명한 날씨였기에 백두산과 천지연을 선명하게 감상할수 있었다. 안내원은 《1년에 고작 한달정도가 이렇게 맑은 날씨》라고 설명한다. 이곳을 구경하고 내려오면서 《혁명의 성산》으로 자리매김한 현장을 답사했다. 백두밀림에 자리잡았던 항일유격대의 사령부에서 활약하신 김일성주석의 항일혁명투쟁발자취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생가, 귀틀집을 구경하면서 이북의 지도자가정은 모두가 항일혁명의 애국자들이였다는 사실도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었다. 이곳의 귀틀집의 문고리를 노루발쪽으로 만들어 추운 겨울에 손이 차지 않도록 한것을 보면서도 항일투쟁시기의 뜨거운 동지애를 엿볼수 있었다.
한 재미동포는 수년전 겨울 이곳에 와서 백설이 쌓인 숲속에서 꿩 한마리가 절뚝거리는 광경을 보고 그것을 잡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애어린 인민군군인이 나타나 《잡아가면 안됩니다. 이것은 인민들의 재산입니다.》라고 하면서 다리를 치료한 다음 다시 날려보내겠다고 말했다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볼수 없는 체험을 들려주었다.
삼지연은 지역단위로 량강도(도소재지는 혜산시)에 속한다. 백두산산정으로부터 1백여리 떨어진 곳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갈라지는 지역이라고 하여 량강도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에 속하는 삼지연군에는 로동자들과 농민들의 휴양소로 지은 대리석건물들도 있었지만 지난 몇년동안 새 주택들이 많이 늘어났다. 뻐스를 타고 내려오는 도로 량옆의 숲속에는 형형색색의 주택들로 가득차있었다.
일행들은 삼지연비행장에서 고려민항기를 타고 평양비행장에 7시 15분께 도착했다. 비행장에서 평양시로 들어오자 거리의 풍경은 마치도 크리스마스트리들처럼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있었다. 길거리나무들도 장식등으로 장식해 은하수별처럼 빛났고 《공화국창건 60돐》이라고 쓴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등불로 비쳐지고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