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9절 방북취재
강성대국건설 2012년목표에 총력
2008. 9. 17 《민족통신》
《민족통신》 편집인 로길남박사는 최근 2주동안의 방북취재를 통해 북부조국의 이모저모를 취재했다. 그는 북부조국창건 9. 9절 60돐을 전후한 이북동포들의 모습에 대해 《군사강국과 사상강국을 이룬 이북동포들은 이제 2012년을 목표로 강성대국건설에 신심을 불태우고있다.》고 전한다. 9. 9절기념 방북취재기를 소개한다.
이북동포 누구를 만나도 김일성주석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에는 반드시 강성대국을 이루고말겠다는 굳은 결심이 보인다.
그 결심은 날이 갈수록 가시화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군사강국과 사상강국을 이루어놓은 이북이 남은것은 경제강국이다.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북은 다량의 지하자원을 갖고있고 칠보산, 금강산, 백두산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소유하고있다. 또한 세계 제1의 집단예술을 개발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온것도 관광자원의 한 부분이 될수 있고 강력한 중공업과 첨단콤퓨터쏘프트웨어기술을 갖고있어 이것을 전위하게 되면 경공업은 물론 국제무역을 통하여 경제강국으로 부상할수 있다. 이북은 이미 자체기술로 지난 1998년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날린바 있다. 그리고 질높은 로동력과 두뇌를 리용한 미래상품들을 만들수 있는 저력을 갖고있다. 국제사회는 조선반도를 시작으로 씨비리로 뻗는 철도를 비롯하여 유럽련결철도, 아시아로 이어지는 철도에 의하여 세계적물류체계가 이루어질것으로 보고 조국반도에 경제적관심을 돌리고있다. 이 물류체계가 창출할 경제가치는 엄청나다는것이 경제학자들의 진단이다.
그동안 이북당국이 경공업을 개발할줄 몰라서 하지 않은것이 아니였다. 나라의 주권을 생명처럼 여기기때문에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하여온것이 바로 북부조국이다.
이북동포들은 다시는 제국주의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에 기초하여 그동안 먹을것을 줄이고 입을것을 절약하며 때로는 《고난의 행군》길을 걸어오면서도 조금도 흔들림없이 전세계가 주목하는 군사강국, 사상강국을 건설하였다. 이때문에 경공업과 함께 경제강국을 이루는 문제가 연기되여온것으로 분석되고있다.
지금 이북동포들은 정치사상적으로 혼연일체가 되여있기때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사상강국을 자랑하며 일심단결을 자부하고있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는 세계 제1의 단결된 나라로서 지도자, 당, 군대, 인민들이 강철같이 똘똘 뭉쳐있다. 그래서 이들은 일심단결된 힘이 자신들이 가진 미싸일이나 핵무기보다 더 강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북동포들은 군사강국을 이뤄냈기때문에 그 어떤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도 저지할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있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부터 경제강국을 위해 힘을 넣을수 있는 여유를 보인다. 지금 지구촌에서 이처럼 군사강국을 이룬 나라는 10개국에도 못 미치고있는 실정이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강대국》들은 자기들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미싸일이나 핵무기 등 첨단기술무기들은 절대로 만들수 없도록 강압하면서 이른바 최고의 첨단무기독점권을 행사하며 다른 나라들을 간섭하고 지배하며 자기 휘하에 두어 종속화해왔다. 그러나 이북은 절대로 이런 《강대국》들의 횡포를 용납하지 않았다. 서방국가들뿐만아니라 랭전시기에 사회주의나라들사이에서도 언제나 독자로선을 지켜온 나라가 바로 북부조국이다. 이것은 쏘련과 그 위성국들이 붕괴되였으나 북부조국의 주체사회주의가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여온 요인들중 하나로 꼽히고있다.
오늘 이북동포들이 지향하는 사상철학의 근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북부조국에서는 이에 대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치철학도 위대한 수령님의 정치철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주체사회주의나라, 북부조국의 이 정치철학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북동포들은 설명한다. 북부조국은 이미 전민주체사상화가 되였고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단결단합의 나라가 되였다.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의
성공적인 발사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도 김일성주석의 항일혁명정신과 그 업적 그리고 대미결전을 통하여 이룩한 성과에 기초하여 내세운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자신을 주석으로 내세우지 않으시고 당총비서 또는 국방위원장으로 북부조국을 령도하여오신것도 바로 김일성주석의 혁명전통을 그대로 이어가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것도 다른 사회주의나라들과의 차이점들중의 하나로 꼽힌다.
북부조국은 또한 다른 나라들과의 대외관계에서도 자주성을 기본으로 하여 평화와 친선의 원칙에서 관계하는것을 기본정책으로 삼고있다. 이것은 서방국가들뿐만아니라 중국과 로씨야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쁠럭불가담나라들사이에서 가장 모범을 보여왔다.
북부조국은 지금까지 사회주의권나라에 속했지만 중쏘분쟁시기에도 그 어떤 나라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왔고 대미외교전에서도
승승장구로 백전백승의 기백을 발휘해왔다. 이북은 빈말을 하지 않는것이 특징이다. 최고지도자가 결심하면 반드시 해내고마는것이 북부조국의 특징이라고 지적할수 있다.
돌이켜보면 《조미외교관계충돌》에서도 구체적으로 증명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1) 《푸에블로》호나포사건(1968. 1. 23)에서도 미국의 린든 비 죤슨대통령이 사죄를 해야 했고 (2) 미정찰기 《EC-121》격추사건(1969. 4. 15)으로 33명의 미군이 즉사했는데도 닉슨대통령은 항공모함 4척으로 위협하는척 하다가 끝내는 아무 실효없이 끝난 사건이 있었고 (3) 판문점도끼사건(1976. 8. 18)은 포드대통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령이 집권한지 3년째 되는 해에 미군병사 30여명이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뽀뿌라나무를 도끼로 자르려고 할 때 4명의 이북병사가 맨손으로 달려들어 못하게 하자 미군이 던진 도끼를 받아가지고 곧바로 미군을 향해 던지자 그것이 명중하여 2명의 미군장교가 즉사하고 4명의 이북병사들이 태권도로 나머지 28명의 미군들을 옆차기 등으로 물리쳐 미군들이 도망간 사건인데 이때에도 미국은 폭격기와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들이대며 위협하였으나 북을 공격하지는 못하고 끝낸 사건, (4) 조미간 최초의 핵대결(1993∼1994)에서도 클린톤대통령은 말로만 1만명 미군증파니 하며 위협하다가 결국에는 1993년 6월 2일 뉴욕교섭을 통해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합의서에 서명하게 되였다.이렇게 된 배경에는 뉴욕교섭 며칠전인 1993년 5월 29일 이북이 하루에 지대지미싸일 3발을 발사했는데 하나는 일본근해에, 나머지 두발은 괌도와 하와이근해에 명중시키는 바람에 미국측이 질겁을 하고 조미합의서에 서명하게 됐다는것이다. 지금 진행되고있는 6자회담도 부쉬가 처음에는 《악의 축》이니 뭐니 하면서 《핵을 가진 북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오만한 자세를 보여왔으나 결국에는 대화탁상에 나앉게 되였던 사실을 회고해볼수 있다.
이북동포들은 조선반도의 기본장애물로 되여온 북미관계가 더이상 문제가 될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북이 이제는 미싸일뿐만아니라 핵보유국으로서 군사강국이 되였기때문에 제국주의나라들이 함부로 침략할수 없다는것을 알고있다. 이북동포들은 또 미국이 국지전을 유발한다고 할지라도 대미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고 믿고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치지략과 선군정치를 통해 백전백승하여온 발자취를 지적하며 조미관계가 평화협정으로 될수밖에 없다고 자신하고있다.
그래서 자위력을 갖춘 이북은 이제부터는 경제건설에 힘을 넣어 김일성주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에는 기필코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여 강성대국을 이룩하겠다는 신념에 불타고있다. 기자는 2주동안의 방북취재를 통해 이것을 확인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