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9(2010)년 1월 22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혁명설화

한홉의 강낭쌀이 곱으로 불어난 사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대성산혁명렬사릉으로 사람들의 물결이 끝없이 굽이쳐흐른다.

한생을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동지들과 인민들과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김정숙동지.

경건한 마음을 안고 그이의 동상을 삼가 우러르느라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 하신 말씀이 되새겨져 눈굽이 뜨겁게 젖어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김정숙의 관념속에는 자기라는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굶어도 좋고 얼어도 좋고 아파도 좋다, 그러나 동지들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내가 죽는 대가로 동지들을 살릴수 있다면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웃으면서 죽음의 길을 택할것이다 하는것이 바로 김정숙의 인생관이였습니다.》

동지들을 위하시는 김정숙동지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고 열렬했는가를 말해주는 하많은 이야기가운데는 이런 사실도 있다.

일제의 야만적인 봉쇄와 《토벌》로 하여 처창즈유격근거지인민들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있던 주체24(1935)년 6월 말경의 어느날이였다. 렬차습격전투에 참가하고 처창즈유격근거지로 돌아왔던 박성철동지는 길가에서 작식대원인 김명화동지를 만나게 되였다. 공청사업을 하시는 김정숙동지께서 김명화동지와 한방에 거처하고계시는 사실을 안 박성철동지는 대뜸 그이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김명화동지는 요즘 김정숙동지가 입술이 다 터지고 몸이 허약해져서 보기가 막 딱하다고 여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허기져 쓰러지면서도 동무들이 풀죽이나마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글타글 애쓰시는데 자기는 그이를 도울 방도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하소연하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박성철동지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배낭속의 비상량식을 꺼내여 김명화동지에게 주면서 김정숙동지께 대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후 부대가 새로운 전투임무를 받고 한 지점을 향해 떠나던 날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박성철동지를 부르시여 다짜고짜로 배낭을 벗기시더니 그안에 쌀주머니를 넣으시였다. 그것은 얼마전에 그가 김명화동지에게 주었던 비상량식주머니였다. 박성철동지가 후닥닥 놀라 그 량식주머니를 다시 꺼내려 하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색하시여 아무리 처창즈식량사정이 어렵다고 한들 내가 비상량식이야 어떻게 축내겠나요, 이제 떠나면 끼니를 번져야 하겠지요? 그러니 무슨 힘으로 행군하고 싸움을 하겠나요, 또 내 마음은 어찌 편하겠나요, 나는 배가 고픈것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지만 동무들이 배곯는걸 보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아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더 사양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였다.

박성철동지는 더는 어쩔수 없었다.

부대가 행군하다 어느 한 곳에 이르러 휴식하면서 저녁차비를 할 때였다. 비상량식주머니를 꺼내였던 박성철동지는 깜짝 놀랐다. 강냉이를 쏟아보니 한홉이 될가말가 했던것이 곡상으로 한홉이 되고도 남았던것이다. 게다가 통강냉이가 아니라 절구에 찧은 강낭쌀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통강냉이 한알조차도 얻어보기 어려운 처창즈의 형편에서 어떻게 그 비상량식주머니를 불구어주시였을가.

박성철동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문을 풀수 없었다.

그 의문은 해방후에 조국에 돌아 와서야 풀리였다.

어느날 박성철동지는 김일동지를 만난 자리에서 처창즈에서 고생하던 이야기를 하게 되였는데 김일동지가 뜻밖에도 김정숙동지께 강냉이를 드린 일을 회고하는것이였다.

어느날 깊은 수림속에 있는 김일동지네 정치공작소조 귀틀집에 소나무껍질을 벗기려고 들어왔다가 울창한 원시림속에서 방향을 잃은 처창즈녀성들이 찾아왔다. 그들가운데 김정숙동지도 계시였다. 그들의 정상은 말이 아니였다. 허기지다못해 얼굴이 다 창백하였다. 김일동지는 부랴부랴 귀틀집으로 달려들어가 얼마간의 강낭쌀과 소랭이를 가지고나왔다. 그러자 허기증을 가까스로 참던 녀성들은 강낭쌀을 끓이려고 헤덤비였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 소랭이에 담은 강낭쌀을 매만지며 뭔가 생각하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오래간만에 쌀을 보는군요. 이걸 보니 굶어서 일어 못나는 처창즈사람들이 생각나요.》

그러시고는 소랭이에 두어줌가량의 강낭쌀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배낭에 넣으시였다. …

김일동지의 이야기를 들은 박성철동지는 얼핏 생각나는것이 있어 그때가 1935년 여름 어느달쯤이 아닌가고 물었다. 그러자 김일동지는 그걸 어떻게 알아맞추는가고 매우 신통스러워하였다.

박성철동지는 그제서야 십년세월을 두고 풀지 못했던 강낭쌀이 불어난 사연을 알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자신은 허기져 쓰러지면서도 그때에 건사했던 강냉이를 한알도 축내지 않고 아껴두시였다가 전투임무를 받고 떠나는 동지들의 배낭에 넣어주군 하시였던것이다.

우리 인민이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노래불러 칭송하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참으로 그이의 한생은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동지들과 인민,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참다운 혁명가의 고귀한 한생이였다.

 

본사기자 리 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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