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12월 9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혁명설화

미루던 길을 떠나신 사연

 

새 조국건설의 나날 미루던 길을 급히 떠나신 사연깊은 이야기는 백두산녀장군의 고결한 풍모를 전하는 하많은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끝없는 충실성으로 빛나는 김정숙동지의 한생을 뜨겁게 추억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가 일생동안 해놓은 그 모든것은 다 동지들을 위하고 인민을 위하고 혁명을 위한것이였지 자신을 위한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체36(1947)년 가을이였다.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성으로 급히 떠나시였다. 그길은 이미전에 어버이수령님께서 백두산녀장군의 등을 떠미시였던 길이였다. 항일혁명투사들, 일군들도 김정숙동지께서 함경북도에 어서 빨리 꼭 다녀오실것을 간절히 바라고있었다.

허나 굳이 사양만 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 서둘러 길을 떠나시니 일군들은 그제서야 일이 제대로 되여간다고 생각하였다. 일군들의 그런 생각은 순간에 불과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함경북도의 사업을 두고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하루빨리 덜어드릴 오직 한마음을 안으시고 그곳으로 떠나시였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렬차를 타고가시면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문을 학습하시였다. 불편하신 몸으로 오랜 시간 렬차를 타고 먼 길을 달리시느라 백두산녀장군께서 얼마나 피로하시였으랴.

허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성에 도착하시여 함경북도안의 각급 기관들과 공장, 기업소, 농촌, 어촌들을 쉬임없이 찾으시였다. 일군들을 만나시여서는 새 조선의 일군으로서의 높은 책임감을 안고 살며 일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공장과 농어촌들에 나가시여서는 직접 그곳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그곳 인민들을 새 조선건설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그즈음 위대한 수령님께서 함경북도를 찾으시였다. 병치료를 뒤로 미루시고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곧 그곳의 구체적인 실태와 그동안의 사업정형을 보고드리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감동되시였다.

사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는 몹시 불편하신 몸이였다. 간고한 항일의 나날 남성들도 힘들어하던 혈전의 천만고비를 솔선 앞장에서 헤치시느라 김정숙동지의 건강은 몹시 나빠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혈전의 나날에 입으신 어혈로 하여 몹시 불편해하시는 김정숙동지께 온천치료를 받아보라고 여러번 말씀하시였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밤낮이 따로없이 일하시는데 어떻게 집을 떠나겠는가고 하시며 굳이 사양하군 하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실 계획이라는것을 아시였을 때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로소 온천치료를 받아보겠다고 하시며 그곳으로 먼저 떠나시였다. 허나 자신의 병치료를 위해서가 아니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날의 사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님께서 그때 함경북도에 먼저 내려가신것은 병치료보다도 그곳 실정을 알아보시고 수령님께서 아무 불편도 없이 현지지도를 하실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벌써 1947년초에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이곳 일군들의 결함을 빨리 고칠데 대한 과업을 주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이해 가을에 또다시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계획하고계시였다고 구체적인 사연을 이야기하시였다.

바로 그래서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미루시던 길을 떠나신것은 바로 어버이수령님의 건국로선을 하루빨리 빛나게 실현하시려는 숭고한 념원에서였다.

본사기자 백 영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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