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5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의 그날과 더불어 새겨진 이야기들

 

밀영에 찾아온 천도교 도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36년 초겨울 조국광복회가 창건되였다는 소식에 접하고 밀영에 찾아온 천도교 도정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며 왜적을 미워하는 각계각층 동포들을 다 집결하여 거족적인 항일대전을 벌리기 위해 조국광복회를 내왔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혼자의 힘만으로는 조선독립을 이룩할수 없다고, 모든 반일애국력량을 다 묶어세워야만 승산을 내다보게 된다고 일깨워주시며 우리 서로가 민족대단결을 꼬는 단심줄이 되여 조국광복회두리에 뭉치자고 하시였다.

도정은 《조국광복회창립선언》과 강령은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재생의 대경륜인 《조국광복회10대강령》까지 마련해놓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군사로 키우는 모습만 보아도 기운이 부쩍부쩍 난다고 하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성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각계각층 인민들을 항일성전에로 부른 애국의 기치였다.

 

《하늘에서 보내준 귀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로부터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할데 대한 임무를 받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26(1937)년 4월초 도천리로 향하시였다.

먼저 도천리의 실태와 주민구성, 조직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밭머리에서 호미를 잡는것으로부터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낮에는 밭머리에서 마을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시였고 저녁에는 집집을 찾아다니며 낯을 익히시였다.

지나가던 길에 잠간 들리신 집에서도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냥 돌아서시지 않고 나무를 패주고 물도 길어주시였으며 발방아도 찧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도천리사람들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잊을수 없는 모습으로 새겨지게 된것은 지주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열병에 걸려 다 죽게 되였던 소녀를 구원해준 때부터였다.

이때부터 마을사람들은 김정숙동지를 가리켜 가난뱅이들을 위해 《하늘에서 보내준 귀인》이라고 하며 자기들의 속마음을 스스럼없이 터놓았다.

이렇게 마을사람들속에 깊이 들어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굳게 묶어세우시였다.

 

세차게 타오른 원군열풍

 

조국광복회창건후 조선인민혁명군을 적극 원호하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졌다.

서간도사람들은 결혼잔치, 환갑잔치, 생일잔치감으로 모아두었던 쌀마저 서슴없이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내주었다.

조국광복회 신의주지회 조직성원들은 압록강에 수풍발전소 언제가 준공되던 1938년경까지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구역에 짐배로 원호물자를 실어다주었다. 언제가 준공되고 배길이 막힌 후부터는 원호물자를 모아두는 장소를 정해놓고 거기에 물자를 집결시켰다가 자동차와 철도로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들과 소조들에 보내주었다.

조국광복회의 어떤 조직원은 반t이상의 화물을 실을수 있는 돛배를 한척 사서 낮에는 삯짐을 싣고 밤에는 조직성원들이 마련한 원군물자를 싣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가군 하였다.

백두산에서 1 000리이상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서울에서도 조국광복회 회원들은 혁명군의 활동에 필요한 후방물자를 구해서 보내주었다.

전인민적운동으로 타오른 원군열풍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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