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1(2012)년 제7호에 실린 글
수 필
그리움의 7월
김 철 혁
7월, 7월은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에 대한 온 나라 인민들의 그리움이 사무치게 넘쳐나는 달이지만 우리 고장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욱 겹쳐지는 달이다. 한것은 어버이장군님께서 우리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을 마지막으로 찾아주신것이 지난해 7월이였기때문이였다.
지금도 어버이장군님께서 찾아오셨던 7월의 그날, 온 마을에 넘쳐났던 감격과 기쁨이 그대로 안겨오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일요일에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그날 우리 집엔 강동에서 살고있는 외할머니와 사촌동생 영수가 함께 왔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우리 대동강과수종합농장과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을 찾아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던것이다.
《형, 저 공장에서 단물이랑 사이다랑 쨤이랑 가득가득 만든다지?》
영수는 우리 집앞에 우뚝 솟아난 파란 지붕들을 씌운 멋쟁이공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디 그뿐인줄 아니. 술이랑 식초랑 누나들이 좋아하는 여러가지 고급화장품들까지도 많이많이 만들어. 저 공장에선 한해에 수만톤의 과일가공품들이 쏟아져나오게 된단 말이야.》
《히야― 그렇게 많이!… 참 사과로 화장품까지 만드는 정도이니 사과가 정말 많다는 소리구나.》
《그렇지 않구. 그리구 저 고개를 넘어가면 과일말린편공장까지 있는데 뭐.》
이때 우리가 얘기하는것을 재미있게 바라보던 외할머니가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과일들로 오가리를 만들어먹는단 말이냐?》
《네, 그래요.》
《정말 꿈같은 일이로구나! 이때껏 살아오면서 무우나 호박으로 오가리를 만들어먹어두 사과로 오가리를 만들어먹게 될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말끝을 채 맺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금시 가슴이 찡해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것은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생무우쪼각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때문이였다.
해방된 이듬해 봄, 여기 원흥지구를 찾으시였던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부르는 마을사람들속에서 한 어린애의 손에서 눈길을 선뜻 떼시지 못하시였다. 그것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있는 그 애의 여윈 손에는 바람이 든 생무우쪼각이 들려있었던것이다.
그 애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바라보시던 대원수님께서는 앞으로 농사도 잘 지으면서 집오래나 야산들에 과일나무를 많이 심어 우리 아이들의 손에 생무우쪼각이 아니라 향기롭고 맛좋은 사과를 쥐여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날의 그 아이 모습을 그토록 잊지 못하신 우리의 대원수님 온 나라에 과수의 바다를 펼치시기 위하여 바치신 로고 그 얼마였던가.
구슬땀을 흘리시며 북청땅의 경사급한 산발을 오르기도 하시였고 새벽이슬에 옷자락을 흠뻑 적시며 과일군의 과수원속을 헤쳐가신 위대한 대원수님 아니셨던가.
위대한 대원수님의 그토록 높으신 뜻을 더욱 활짝 꽃피우고 우리 인민들에게 맛있는 과일을 더 많이 안겨주시려 우리의 어버이장군님께서 바치신 사랑이 그 얼마나 큰지 우리 어찌 몇마디의 말이나 글로써 다 전할수 있으랴.
그 사랑, 그 은덕으로 하여 북청과 덕성, 과일군만 아니라 여기 원흥지구와 고산을 비롯하여 온 나라 곳곳에 과수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제는 온갖 과일들만 아니라 여러가지 과일가공품들까지 쏟아져나오고있지 않는가.
그러니 사과라는건 구경조차 할수 없어 생무우쪼각이나 무우오가리를 빨던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신선한 과일을 먹기도 하고 여러가지 가공식품들까지 많이많이 만들어먹게 되였으니 우리의 생활이 그 얼마나 유족해졌는가.
그러니 오늘의 이 행복, 이 기쁨을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과 어버이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을 생각할 때마다 고마움에 목이 메여오고 그럴수록 그리움의 마음은 날로 커만 가는것이 아닌가.
아, 7월, 진정 여기 원흥지구의 7월은 절세의 위인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껏 넘쳐나는 계절이거니 우리는 이 그리움의 7월을 언제나, 그 언제나 가슴속에 길이길이 안고살리라.
평양도덕중학교 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