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에 실린 글
◇ 동 화 ◇
김 박 문
옛날 어느 산골마을에 연지라고 부르는 나어린 처녀가 어머니를 모시고 오손도손 살고있었습니다.
연지는 마음이 비단결같이 고왔고 효성이 남달리 지극하였습니다. 어쩌다 빛다른 음식이 하나 생겨도 그는 자기보다 늘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군 하였습니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이면 연지는 잠에서 일찍 깨여나 마당도 쓸고 샘물도 길어오며 어머니의 일손을 부지런히 도왔습니다.
연지네 집은 비록 가난한 살림이긴 하였지만 언제나 웃음이 흘러넘쳤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연지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몸살이나 고뿔이겠거니 했는데 날을 따라 병세가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와서는 하루가 다르게 눈확이 푹푹 꺼져들고 백지장같이 하얘진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어떤 날에는 열에 떠서 헛소리까지 치면서 장밤을 꼬바기 밝힐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무슨 큰 병이 생긴가봐…)
연지는 천정이 무너져내리듯 가슴이 덜컥 하고 내려앉는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비둘기가슴처럼 호독호독 뛰였습니다.
연지는 속이 한줌만 해가지고 약을 구해보려 했지만 어머니병에 어떤 약이 좋은지 알 재간이 없었습니다.
연지가 사는 마을에는 의원이 없었습니다.
이런 때에 의원이 없는게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얼마 지나자 어머니의 병세는 더욱 나빠져 숨쉬기조차 힘들어했고 어떤 때에는 목에서 그렁그렁 담 끓는 소리까지 들려왔습니다.
옴짝달싹 못하고 눈을 감고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연지의 가슴에서 연덩어리같은것이 철렁하고 떨어져내렸습니다.
《어머니!ㅡ》
연지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눈앞이 그믐밤처럼 캄캄해지고 가슴이 미여지게 아파났습니다. 어머니없이 어떻게 살랴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두볼을 적시였습니다.
이때 마을을 지나가던 웬 백발할아버지 한분이 연지네 집에 들렸습니다.
《무슨 일때문에 그렇게 안타까이 우느냐?》
연지는 어머니의 병이 낫지 않아 그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어디 보자꾸나.》
의원인듯 한 그 백발할아버지는 연지 어머니의 맥을 조용히 짚어보고나서 말했습니다.
《이 병은 원인모르게 갑자기 생기는 병이니라. 천명에 하나도 보기 드문 병으로서 백약이 다 무효인즉 오로지 돌우에 피운 꽃만이 약으로 되느니라.》
연지의 얼굴에 한가닥 희망이 어렸습니다.
어머니를 살릴수 있는 약을 알게 된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돌우에 어떻게 꽃을 피울수 있나요?》
연지는 백발할아버지의 두루마기자락을 부여잡으며 기대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백발할아버지는 웬일인지 얼굴에 그늘을 지으며 머리를 저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여적까지 누구도 돌우에 꽃을 피워본적이 없으니 너에게 시원히 그 비방을 알려줄수가 없구나.》
백발할아버지는 속상한듯 후유ㅡ 하고 길게 한숨을 내그었습니다.
《그럼 우리 엄마 병은 어떻게 되나요, 네?》
연지는 금방 울음을 터칠것같이 울먹울먹거렸습니다.
백발할아버지는 연지를 불쌍하게 쳐다만 보며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백발할아버지가 떠나간 다음 연지는 어머니의 가슴우에 또다시 어푸러지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이 일을 어쩜 좋나요? 네, 엄마ㅡ》
연지는 조꼬만 주먹으로 땅을 쾅쾅 두드리며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의 두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시간이 어지간히 흐르자 연지는 기진하여 더 울래도 울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흑흑 하는 흐느낌소리와 함께 두어깨만이 오르내렸습니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맥놓고있으면 어머니를 영영 잃고말아. 난 어떻게 하나 돌우에 꽃을 피워야 해.)
연지는 입술을 옥물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돌우에 꽃을 피울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꽃아 꽃아, 너희들을 어떻게 하면 돌우에 피울수 있니?》
연지가 꽃들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물었으나 꽃들은 머리만 저을뿐 대답을 못했습니다.
《시내물아 시내물아, 너희들은 알테지? 어떻게 하면 돌우에 꽃을 피울수 있니?》
그러나 시내물도 모른다고 졸졸 같은 대답만 하였습니다.
연지의 가슴은 바질바질 타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가는데 약을 써드릴 길이 없으니 가슴이 미여지는듯이 아팠습니다.
어느날 연지는 낯설은 파랑새를 보고 또 물었습니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너는 알테지? 어떻게 하면 돌우에 꽃을 피울수 있니?》
뜻밖에 파랑새가 머리를 까딱거렸습니다.
《돌꽃씨앗을 가져다 차돌우에 올려놓고 움을 틔우면 된단다.》
《그래?!》
연지는 너무 기뻐 가슴이 활랑활랑 높뛰였습니다.
《그런데 돌우에 꽃을 피워서는 뭣하니?》
파랑새가 구슬알같은 눈알을 또록거리며 영문을 몰라 물었습니다.
연지는 어머니가 알지 못할 병에 걸려 그런다고 말했습니다.
《돌우에 핀 꽃이 있어야만 어머니의 병을 고칠수 있다면 내가 돌꽃씨앗을 가져다줄게.》
파랑새는 연지를 동정하며 어데론가 날아가더니 좀 있어 돌아왔습니다.
《이게 돌꽃을 피우는 돌꽃씨앗이야.》
파랑새가 부리에 물고 온 돌꽃씨앗을 연지앞에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야, 됐구나!》
연지는 너무 좋아 어린아이처럼 두손을 마주잡고 깡충 뛰였습니다.
《그런데 이 돌꽃씨앗은 움틔우기가 여간만 힘들지 않단다. 여느 샘물을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어. 이 돌꽃씨앗을 움틔우는 샘물은 따로 있단다.》
파랑새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샘물이 어데 있는지 모르니?》
《그것만은 나도 몰라. 그 샘물을 네 힘으로 찾아내겠는지 모르겠구나.》
파랑새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병만 고칠수 있다면 난 어떻게 하나 돌꽃을 피우는 샘물을 찾아내고야말겠어.》
연지의 얼굴에 결심이 한가득 어렸습니다.
그날부터 연지는 돌꽃씨앗을 움틔우기에 애썼습니다.
연지는 맑기로 유명한 종달천샘물을 떠오리라 마음먹고 길을 떠났습니다.
종달천샘물을 떠오려면 가파로운 벼랑을 톺아야 했습니다. 어린 처녀의 몸으로 벼랑우로 기여오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연지는 갖은 고생끝에 끝내 종달천 맑은 샘물을 길어왔습니다.
연지는 서둘러 돌꽃씨앗을 차돌우에 올려놓고 샘물을 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봐도 돌꽃씨앗은 움틀념을 안했습니다.
연지는 락심하지 않고 이번에는 세 고개너머에 있는 이끼바위옹달샘을 떠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 옹달샘을 떠오려면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야 했습니다.
연지가 떠나려는것을 보고 어머니가 말렸습니다.
《아서라. 누구도 아직 돌우에 꽃을 피워보지 못했단다. 이러다 낫겠지.》
연지 어머니는 딸을 고생시키는것이 가슴이 아픈듯 후ㅡ 하고 한숨을 내그었습니다.
《아니예요, 어머니. 제 어떻게 하나 돌우에 꽃을 피워 어머니의 병을 꼭 고쳐드리겠어요.》
연지가 결심품고 집을 떠나 이끼바위옹달샘을 떠왔을 때 마을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가시밭을 헤치느라 그의 옷은 갈기갈기 찢겨졌고 손과 종다리는 가시에 긁혀 말이 아니였습니다.
《어쩌면 저다지도 극성스러울가! 돌우에 기어이 꽃을 피워 어머니병을 고쳐드리려는 그 마음이 정말 갸륵하기 그지없구려!》
배나무집 할머니가 못내 감탄해했습니다.
연지는 옹달샘 맑은 물을 돌꽃씨앗에 부어주며 혼자소리로 속살거렸습니다.
《돌꽃씨앗아, 이번에는 제발 움터주렴. 응? 네가 움터야 우리 엄마 병을 고칠수 있어》
그러나 돌꽃씨앗은 야속하게도 움터나지 않았습니다.
《야, 어쩜 좋아…》
연지는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조바심으로 애간장이 바글바글 끓어났습니다.
《얘야, 제발 그만두렴. 그러다가 너까지 자리에 눕고말겠다.》
연지 어머니가 가까스로 숨을 톺아쉬며 연지를 애처롭게 쳐다봤습니다.
《아니예요. 어머니, 제 걱정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 꼭 돌우에 꽃을 피우겠어요.》
연지는 저 멀리 약수골에 가서 약샘을 떠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약샘만이 돌꽃씨앗을 움틔울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약수골로 가는 길은 험하기도 했지만 그곳에는 승냥이가 득실거려 누구도 발길 떼기를 두려워하는 곳이였습니다.
그러나 승냥이가 무섭다고 해서 가지 않을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세는 날을 따라 점점 더 심해가고있었습니다.
연지는 강심을 먹고 약수골로 떠났습니다.
사흘낮, 사흘밤을 꼬박 걸어 약수골어귀에 들어서니 저 멀리 어데선가 승냥이의 울음소리가 《어흐흐, 어흐흐ㅡ》하며 마치 도깨비울음소리와도 같이 무섭게 들려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머리칼이 쭈빗 곤두서고 몸이 떨렸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설수는 없었습니다.
불현듯 눈앞에 어머니의 얼굴모습이 떠오르자 연지는 꿈에서 깨듯 자리를 차고 일어났습니다.
승냥이한테 잡혀먹히우는 한이 있어도 약샘은 기어이 떠와야 했습니다.
연지가 모진 마음을 먹고 몇걸음을 내짚는데 누군가 뒤에서 다급한 소리를 쳤습니다.
《섯거라! 어데로 함부로 가는거냐?》
돌아다보니 산나물광주리를 든 웬 할머니였습니다.
연지는 그 할머니에게 약샘을 뜨러 가는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를 위하는 네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하지만 약수골의 약샘으로는 돌꽃을 못피울게다. 전해지는 말이 석화궁에 있는 신기한 샘물만이 돌우에 꽃을 피울수 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그곳으로 가는 길에 승냥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지키고있다더라.》
연지는 아직까지 괴물을 보지는 못했어도 괴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뱀을 보는것처럼 몸이 섬찍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석화궁으로 꼭 가야 해요. 돌우에 꽃을 못 피우면 우리 엄만…》
연지는 울먹울먹거리며 다음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산나물캐는 할머니는 물기어린 눈길로 연지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석화궁으로 가는 길을 대주었습니다.
연지는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곧 그곳을 떠났습니다.
동쪽을 향해 또 사흘낮 사흘밤을 걸어 다음날 새벽을 맞으니 안개에 휘감긴 바위산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연지가 헤염치듯 두팔로 안개를 휘휘 내저으며 바위산을 넘으려는데 자오록한 안개밭속에서 갑자기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데로 가는 길손이냐?》
연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석화궁을 찾아가는 길이예요.》
《그럼 이리로 오너라.》
연지는 기쁜 마음을 안고 소리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만 까무라치듯이 놀라며 《악!》하고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연지를 부른것은 보기에도 끔찍스러운 괴물이였습니다. 항아리만 한 대가리에 몸뚱이에는 팔다리 하나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괴물은 툭 삐여져나온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석쉼한 목소리로 뜨직뜨직 말했습니다.
《너무 무서워말아. 난 룡이 되려다가 채 못된 이무기다. 보기에는 이래뵈도 악한 놈은 아니야.》
생긴것보다는 퍼그나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연지는 꼼짝않고 겁먹은 눈길로 괴물을 쳐다만 봤습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석화궁을 찾느냐?》
이무기가 물었습니다.
연지는 자기가 석화궁을 찾아오게 된 사연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석화궁으로 들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야. 내가 너를 도와줄테니 너도 날 좀 도와주렴.》
연지는 무섬증을 가셔버리고 용기를 내여 물었습니다.
《무얼 어떻게 도와야 하나요? 석화궁의 신기한 샘물만 떠갈수 있다면 무슨 일이나 다 하겠어요.》
이무기는 눈을 뚜부럭뚜부럭거리더니 말했습니다.
《난 룡이 되여 하늘로 올라가다가 그만 실수하여 우리 룡왕이 준 여의주를 두꺼비못에 떨궈버렸어. 여의주만 잃으면 우린 꼼짝을 못하게 된단다. 그래서 이무기가 되여 이 꼴로 여직껏 여기에 있는거야. 미안하지만 그 여의주를 좀 건져다줄수 없겠니? 그런데 저…》
이무기는 웬일인지 갑자르며 다음말잇기를 꺼려했습니다.
《무엇때문에 그러나요?》
연지는 이상하게 생각되여 이무기를 쳐다봤습니다.
《이제 뭘 속이겠느냐. 사실대로 말하면 두꺼비못은 깊지 않지만 누구나 그 물에 손을 잠그면 아무리 선녀같이 고운 얼굴도 순간에 두꺼비처럼 미워지게 된단다.》
그 말에 연지는 눈앞이 아뜩해졌습니다.
가슴이 막 두근거렸습니다.
사람의 얼굴모습이 그렇게 미워지면 어떻게 머리를 들고 다니랴싶었습니다.
더구나 녀자로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걸 생각할 경황이 못되였습니다.
연지는 잠시나마 주저한 자기가 민망스럽게 생각되였습니다.
스치는 바람결에 자기를 애타게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금시 들려오는듯 했고 병고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습니다.
연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이무기보고 말했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두꺼비못을 대줘요. 저에겐 시간이 없어요.》
연지가 몇번 재촉해서야 이무기는 못내 미안해하며 두꺼비못이 있는데를 대주었습니다.
두꺼비못은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이무기가 떨궜다는 여의주는 물가녁에서도 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발을 벗지 않고도 팔만 내밀면 얼마든지 손에 잡을것 같았습니다.
연지가 여의주를 건지려고 못에 가까이 다가가니 거울같은 물면에서 웬 처녀가 자기를 빤히 마주 쳐다보고있었습니다.
두볼은 잘 익은 복숭아같이 발갛게 물들어있었고 두눈은 곱게 휘여든 눈섭아래에서 별처럼 반짝거리고있었습니다.
연지는 그것이 바로 자기의 얼굴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두번다시 볼수 없는 얼굴이였습니다.
하지만 연지는 시간을 지체하며 그 얼굴을 계속 바라볼수가 없었습니다.
연지가 정신을 차리고 못에 손을 잠그려는 순간 하늘을 날으던 따오기가 그를 발견하고 소스라쳐 놀라며 다급하게 웨쳤습니다.
《못에 가까이 가지 말어!》
그러나 연지는 벌써 못에 손을 잠그고 여의주를 잡고있었습니다.
순간에 그의 얼굴모습이 변해버렸습니다.
방금전의 그 고운 얼굴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아!》하고 새된 비명소리가 울렸습니다.
그것은 연지가 아니라 따오기의 입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였습니다.
《너 어쩌자고 그러니?! 응?》
따오기는 너무 놀라 두날개를 파르르 떨었습니다.
그러나 연지는 그 소리를 못 들은듯 여의주를 손에 쥐고 혼자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젠 석화궁에 가서 샘물을 떠오게 되였구나.》
그 말을 듣고 따오기가 물었습니다.
《그건 대체 무슨 소리니?》
연지는 영문을 몰라하는 따오기에게 이무기를 만났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위해 얼굴이 그렇게 되는걸 알면서도 물에 손을 잠궜구나!》
따오기는 연지의 말에 감동되여 몇번이나 눈을 슴벅거렸습니다.
《어서 내 등에 앉어.》
따오기의 입에서 갈린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따오기는 연지를 등에 태우고 이무기가 있는 곳까지 날아갔습니다.
이무기는 연지의 달라진 얼굴을 보더니 머리를 외로 돌리며 선뜻 여의주를 받아쥘념을 못했습니다.
《왜 그러나요? 어서 받으라요.》
연지는 이무기가까이로 다가가며 여의주를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이무기는 여의주를 받아 입에 물더니 땅우로 몇바퀴 데굴데굴 굴었습니다.
그러자 허물이 쭉 벗겨지면서 그속에서 멋지게 생긴 청룡 한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고마워. 네 덕에 난 드디여 룡이 되여 하늘로 오르게 됐구나.》
청룡이 몹시 좋아했습니다.
《이젠 어서 가보거라. 저기 보이는 저 바위산밑에 석화궁이 있다. 그러나 그냥 가서는 그속으로 들어갈수 없으니 이것을 가지고 가거라.》
청룡은 연지에게 금빛이 도는 방을 하나를 주었습니다.
《이걸 세번 흔들고나서 〈열려라, 석화궁아.〉하고 말하면 된다.》
청룡은 말을 마치고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도는 하늘가에 떠올라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연지는 청룡이 대준대로 바위산가까이에 가서 방울을 세번 흔들고나서 말했습니다.
《열려라, 석화궁아.》
그러자 바위문이 드르릉 하고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석화궁속으로 들어간 연지의 눈앞에 신비한 꽃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이름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에 울긋불긋 피여있었는데 그 모양과 색갈이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배꽃같이 하얀 꽃이 있는가 하면 산당화같이 빨간 꽃도 있었고 방울꽃같이 깜찍스러운 꽃이 있는가 하면 함박꽃같이 호함진 꽃도 있었습니다.
더우기 놀라운것은 이 모든 꽃들이 하나같이 돌에 뿌리를 박고있는것이였습니다.
연지가 흘린듯 한 눈길로 꽃들을 황홀히 바라보고있는데 얼굴이 눈덩이같이 하얀 아릿다운 웬 처녀가 그의 곁으로 아실랑아실랑 걸어나왔습니다.
《난 이곳에서 돌꽃을 가꾸는 석화궁녀란다. 어떻게 되여 우리 석화궁에 오게 됐니?》
연지가 대답하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석화궁녀는 흠칫 놀라며 주춤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네 얼굴모습이 왜 그렇니?!》
연지는 뭐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머밋머밋거리고있는데 석화궁녀가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두꺼비못에 손을 담근게 아니냐?》
연지는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이며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 넌 앓는 어머니를 위해 자기의 아름다움을 바쳤구나!》
석화궁녀로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인듯 몹시 놀라와했습니다.
연지의 행동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던 석화궁녀는 잠간 어데론가 갔다왔습니다.
그의 손에 목이 잘룩한 호로병 하나가 쥐여져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돌우에 꽃을 피우는 우리 석화궁의 신기한 샘물이란다. 어서 가져가렴.》
연지는 기뻤습니다.
호로병을 받아드니 눈굽이 쩌릿하게 젖어들고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모든것이 꿈만같이 느껴졌습니다.
《고마워요!》
연지는 석화궁녀에게 인사하고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이젠 빨리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사이 어머니가 어떻게 되셨을가?…)
연지의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따오기가 그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연지를 등에 태우고 힘껏 날개를 저었습니다.
연지가 집에 돌아와보니 마당 가득히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이 매우 위급한것 같았습니다.
《어머니ㅡ》
연지는 사람들을 비집고 문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아니, 네가 연지가 옳으냐, 엉?》
《너 어데 갔다 이제야 오느냐. 하마트면 어머니가 눈을 감는것도 못 볼번 했구나.》
배나무집할머니가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연지는 어머니가 듣기라도 하듯이 조용히 뇌이고는 급히 돌꽃씨앗을 찾아가지고 밖으로 뛰여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돌담곁에 있는 그 펑퍼짐한 차돌우에 꽃씨앗을 올려놓고 석화궁의 샘물을 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돌꽃씨앗이 숨을 쉬기라도 하듯이 꼼지락꼼지락거리며 움이 트더니 나무에 못이 박히듯이 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잎이 펴나고 줄기가 우줄우줄 자라올랐습니다. 얼마 안있어 가지마다에 탐스러운 꽃망울이 오롱조롱 맺혔습니다.
이윽고 꽃잎이 한잎두잎 펼쳐지더니 백합꽃보다도 더 소담하고 별빛보다도 더 눈이 부신 희한한 꽃이 활짝 피여났습니다.
《야!》
연지는 너무 좋아 두손을 마주잡고 콩당콩당 뛰였습니다.
그는 서둘러 샘물을 담았던 호로병에 꽃이슬을 받아가지고 집안으로 뛰여들어갔습니다.
연지는 급히 어머니의 입에 돌꽃이슬을 몇방울 떨궈넣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효험이 나타났습니다.
멎을듯멎을듯 하던 어머니의 심장이 힘차게 쿵쿵 뛰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그렇게 뛰니 백지장같던 얼굴에도 당장 피가 돌아 불깃불깃해졌습니다.
좀 있어 어머니는 잠에서 깨여나듯이 눈을 번쩍 뜨더니 언제 앓았더냐싶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 사람, 저 사람을 두릿두릿 살펴봤습니다.
연지는 너무 기뻐 《어머니!》하고 목메여 불렀습니다.
소리나는쪽으로 머리를 돌리던 어머니는 연지를 보더니 너무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
《네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엉?》
연지는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저 눈물만 솟구쳐올랐습니다.
자기의 얼굴이 미워진데서 오는 서러움보다 어머니를 살려낸 기쁨에서 솟는 눈물이였습니다.
이젠 더 바랄것이 없었습니다.
이때 언젠가 마을에 나타났던 백발할아버지가 연지네 집에 들렸습니다.
백발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난 연지 어머니를 보더니 못내 탄복해마지 않았습니다.
《네가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끝내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렸구나!》
백발할아버지는 연지의 등을 두드려주며 무척 대견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네 얼굴모습이 안됐구나.》
백발할아버지는 가슴이 아픈듯 연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놋대야에 맑은 물 한사발을 떠오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물에 돌꽃이슬을 몇방울 떨궈넣더니 《얘야, 어서 이리 와서 이 물에 손을 잠그거라.》하고 연지에게 말했습니다.
연지는 두꺼비못에 잠궜던 그 손을 이번에는 돌꽃이슬을 떨궈넣은 놋대야에 잠궜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연지의 얼굴모습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무틱틱하던 얼굴색은 백옥같이 하얘졌고 두툴두툴 보기 흉하게 내돋혔던것들은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두볼에 홍조까지 비끼니 연지의 얼굴은 이른새벽에 방금 따온 앵두알같이 탐스럽고 어여뻐보였습니다.
본래의 모습보다도 얼마나 더 고와졌는지 몰랐습니다.
백발할아버지한테서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연지 어머니는 딸에게로 달려가며 《연지야!》하고 목메여 소리쳐불렀습니다.
《어머니!》
연지 어머니는 딸을 품에 와락 그러안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와 딸은 서로 붙안고 오래동안 놓을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더니 네 효성이 하도 지극해 끝내 돌우에 꽃을 피워 어머니를 살려냈구나!》
백발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감탄에 한껏 젖어있었습니다.
《연지같은 효녀가 세상에 어데 또 있겠수!》
《그러게 말이요!》
《효성만 지극하면 정말 못해낼 일이 없구만요!》
모두가 입을 모아 연지를 칭찬했습니다.
이렇게 되여 못된 병에 걸려 하마트면 잘못될번 했던 연지 어머니는 딸의 지성에 떠받들려 병을 깨끗이 털게 되였습니다.
연지네 집에 다시 웃음꽃이 피여났습니다.
연지는 그후 어머니를 더 잘 모셔가며 아무런 근심걱정을 모르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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