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에 실린 글
◇ 동화 ◇
박 성 옥
어린 동무들.
우리 함께 달빛이 내려앉은 고요한 숲속길을 거닐어봅시다.
그리고 조용히 귀기울여보자요.
그러면 동무들은 부엉이의 노래소리를 듣게 될것입니다.
무엇을 속삭이는것만 같은 은은한 노래소리.
남 다 자는 깊은 밤 저 하늘의 별들을 동무삼아 숲을 지켜가는 부엉이의 착한 마음이 기특해서인지 달님도 갈길을 멈추고 환한 빛을 아낌없이 뿌려줍니다.
부엉이는 밤마다 무슨 노래를 부를가요?
×
새들이 사는 동산에는 큰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었습니다.
온 동산의 새들이 새벽이면 잎사귀마다 맺히는 맑은 이슬로 목을 추기고 저녁이면 모두 모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 느티나무는 정말 동산의 자랑이요 또 둘도 없는 새들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부엉이는 까나서부터 바로 이 느티나무의 이슬을 받아마시며 목소리를 틔웠고 느티나무의 가지사이를 날아다니며 날개힘을 키운 새동산의 멋쟁이가수였습니다.
어느날 부엉이는 이웃동산에서 열린 노래축전에서 1등한 기쁨을 안고 돌아오고있었습니다.
화려한 꽃목걸이를 걸고 상으로 받은 기타까지 척 멘 부엉이의 모습은 정말 볼만 했습니다.
부엉이의 눈앞에는 축하의 꽃보라를 뿌리며 반갑게 맞아줄 동산동무들의 정다운 모습이며 무성한 잎새를 흔들며 달디단 이슬을 뿌려줄 느티나무의 어머니같은 모습이 선히 안겨왔습니다.
(빨리 가자. 날 키워 내세워준 느티나무랑 동산 이웃들에게 내가 제일 잘 부르는 노래를 불러줄테야.)
부엉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동산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동산에서 기다리는것은 축하의 꽃보라가 아니라 무거운 한숨소리였습니다.
동산의 보배인 느티나무가 그만 큰 병에 걸렸던것입니다.
언제나 푸르싱싱하던 잎사귀들은 생기를 잃고 축 늘어져있었으며 벌써 어떤 잎들은 누렇게 황이 들어 뚝뚝 떨어져내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새들은 모두 느티나무에 모여들어 걱정과 불안속에 잠겨있었습니다.
《어떻게 된거니?》
부엉이가 뻐꾸기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습니다.
《글쎄, 어찌된 일인지 어제부터… 방금 숲의사인 딱따구리를 데리러 갔어.》
뻐꾸기의 걱정어린 대답에 부엉이의 얼굴에도 짙게 그늘이 어렸습니다.
사나운 바람속에서도 비속에서도 새들의 보금자리를 품어주던 느티나무, 새들에게 맑은 이슬을 아낌없이 안겨주어 고운 목소리를 키워주던 느티나무가 없는 새동산은 정말 생각할수도 없었습니다.
이때 딱따구리가 황황히 날아왔습니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똑똑 두드려보며 한참이나 느티나무를 진찰해보고나서 한숨을 후 하고 내쉬였습니다.
《밤벌레들이 느티나무에 기여들어 병을 일으켰구만. 자네들이 아무리 벌레를 잡아주며 정성을 기울여도 밤에 달려드는것들이야 어쩔 방법이 없질 않나. 그런즉 이 병은 자네들 힘만으로는 어쩔수 없는 병일세.》
딱따구리가 말을 마치자 박새가 다시금 안타까이 물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느티나무는 어떻게 되나요, 예?》
《글쎄 뭐라고 말해줘야 하겠는지, 자네들중에 밤에 볼수 있는 새들이 없는 한 느티나무는 필경 죽고말거네.》
《뭐라구요? 우리 느티나무가 죽는다구요? 안돼요. 절대로 그렇게는 안돼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가요?》
박새의 간절한 목소리에 딱따구리는 안타까운듯 느티나무주위만 빙빙 날아돌다가 날개를 홰홰 내저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나에겐 병을 고칠만 한 힘이 없구만. 이거 참 안됐네.》
딱따구리는 슬픔에 잠겨있는 새들을 보기가 딱했던지 조용히 날아가버렸습니다.
《다 내 잘못이예요. 내가 벌레를 좀더 많이 잡아주지 못해 느티나무가 병에 걸렸어요.》
박새의 슬피우는 그 소리는 새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주었습니다.
《박새야, 그만해. 느티나무가 병에 걸린것이 어떻게 네탓이겠니. 우리모두의 잘못이야.》
그때까지 말없이 서있던 부엉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좋아요? 이제 당장 풍년가을음악회가 열리겠는데 느티나무가 병에 걸렸으니. 풍년가을음악회 독창가수로 뽑힌 부엉이형님이랑 꾀꼬리랑 그 이슬을 많이 마셔야 목소리도 더 맑아질텐데.》
《그만해, 박새야. 이렇게 하소연만 한다고 느티나무가 병을 털고 살아나겠니. 어떻게든 느티나무를 살릴 방도를 생각해봐야 해.…》
뻐꾸기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엉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맥을 놓고 앉아만 있을수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느티나무를 꼭 살려내야 해.)
부엉이는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꼭 느티나무를 살릴 방도를 찾아내리라 굳게굳게 결심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고개를 넘고 넘실넘실 넓은 강을 건너가던 부엉이는 강물에게 안타까이 물었습니다.
《강물아! 강물아! 너 우리 느티나무를 살릴 명약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수 없겠니?》
뭉게뭉게 떠가는 흰구름을 보고도 부엉이는 안타까이 웨쳤습니다.
《흰구름아! 흰구름아! 너 우리 느티나무를 살릴 방법이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듣지 못했니?》
그러나 강물도 흰구름도 안타까와할뿐이였습니다.
부엉이는 가고 또 갔습니다.
푸른 숲 우거진 밤동산에서 부엉이는 날다람이를 만나게 되였습니다.
《날다람이야, 너 우리 느티나무를 살릴 명약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니?》
《나도 느티나무가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무척 걱정하던중이야. 그런데 부엉아, 내 어디선가 밤눈을 밝게 해주는 약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
날다람이의 말에 부엉이는 눈이 번쩍 틔였습니다.
《뭐, 밤눈을 밝게 해주는 약?》
세상에 그런 약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부엉이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먹으면 밤에도 낮처럼 환히 볼수 있단 말이지.》
《그럼, 그까짓 밤벌레들은 얼마든지 잡아치울수 있어.》
부엉이는 환성을 올렸습니다.
《날다람이야, 어디에 가면 그 약을 얻을수 있니?》
날다람이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글쎄, 나도 그건 잘 모르겠어.》
날다람이는 몹시 미안해하였습니다.
(그 약을 꼭 찾아내고야말리라.)
부엉이는 굳게굳게 결심을 다지며 또다시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오자 부엉이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심조심 숲속을 날아가던 부엉이는 그만 나무가지에 날개를 호되게 부딪치며 땅에 떨어졌습니다.
온몸이 얼얼해났습니다.
그런것쯤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태우는것은 이밤도 느티나무에 달려들어 병을 일으키고 온몸을 갉아먹고있을 밤벌레들을 잡아치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였습니다.
부엉이는 힘을 가다듬으며 어두운 숲속을 날아오르려 했습니다.
바로 그때 부엉이의 눈앞에서 땅바닥이 옴씰옴씰 솟아올랐습니다.
부엉이는 너무도 무서워 온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아니, 너 부엉이 아니냐?》
《누구예요?》
부엉이는 더듬거리며 물었습니다.
《난 두더지야.》
그제서야 부엉이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야참 두더지아저씨. 난 막 무서워 혼났어요.》
《그런데 밤에 잘 보지도 못하는 네가 웬일이냐?》
부엉이는 두더지에게 느티나무가 병에 걸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두더지는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나도 느티나무가 병에 걸렸다기에 찾아가서 뿌리랑 살펴봤단다. 그런데 뿌리는 일없더구나.》
《그럴거예요. 딱따구리가 그러는데 느티나무는 밤벌레들때문에 병이 왔대요. 두더지아저씨, 밤에도 눈을 밝게 해주는 약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나요?》
《밤눈이 밝아지는 약?》
두더지가 대뜸 반색을 했습니다.
《딱따구리에게 그 약이 있단다. 하두 땅속에서만 살다나니 나두 눈앞이 어두워 가끔 딱따구리에게서 그 약을 지어먹군 하지.…》
부엉이는 도리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예요, 그럴수 없어요. 딱따구리도 느티나무의 병을 보러 왔댔는데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딱따구리한테 정말 그런 약이 있다면 왜 그때 말하지 않았겠어요?》
《정말이라니까.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네 눈으로 직접 그 약을 보려무나. 나에게 조금 남아있는것이 있다. 잠간만 기다리렴.》
두더지는 땅굴속으로 들어가더니 인츰 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 어서 먹어보렴.》
두더지가 부엉이에게 약을 내밀었습니다.
《정말 이 약을 먹으면 밤눈이 밝아질가요?》
부엉이는 정말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였어요.
그렇게도 캄캄하기만 하던 눈앞이 희뿌옇게 밝아지는것이였습니다.
아직 밤벌레들까지 가려보기는 어려웠지만 앞을 가려볼수는 있었습니다.
부엉이는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느티나무를 살릴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넘실넘실 차넘쳤습니다.
《두더지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우리 느티나무가 살아나는 날 아저씰 꼭 초청하겠어요.》
부엉이는 두더지를 뒤에 남기고 딱따구리네 집으로 부지런히 날아갔습니다.
깊은 밤 뜻밖에 찾아온 부엉이를 맞이하며 딱따구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부엉이가 어떻게 이 밤중에…》
부엉이는 숨돌릴 사이도 없이 딱따구리에게 말했습니다.
《딱따구리야, 나에게 그 약을 지어주렴. 밤눈이 밝아지는 약말이야.》
딱따구리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부엉이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정말 영문을 알수 없었습니다.
그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기에 박새의 눈물앞에서도 끝내 말을 꺼낼수 없었던 딱따구리였습니다.
《어서 주렴. 두더지형님에게서 말을 들었다. 네가 그 약을 만든다는데, 어서.》
부엉이는 딱따구리에게 재촉했습니다.
《참, 너두. 그 약은 날개달린 짐승들이 먹으면 안된단 말이야. 그 약을 먹으면 밤눈은 밝아지지만 대신 낮눈은 보지 못해. 그렇게 되면 풍년가을음악회에는 어떻게 참가하고 또 이름난 독창가수로 되겠다던 너의 그 꿈은 어쩐단 말이냐. 난 아직 눈먼 가수를 본적이 없어. 넌 그 약을 먹으면 안돼.》
부엉이는 흠칫 놀랐습니다.
낮눈을 보지 못한다는 딱따구리의 그 말이 자꾸만 귀전에 울렸습니다.
풍년가을음악회에서 노래를 잘 불러 동산의 명예를 떨치리라 마음다지며 낮에 밤을 이어가며 노래련습을 해오던 그 나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다정한 동무들과 손잡고 노래부르며 정성다해 가꾸어오던 그 푸른 숲도 눈앞에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문득 부엉이는 자기가 앓아누웠을 때 정성을 다하여 간호해주던 다정한 이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이 지금 병에 걸린 느티나무를 두고 괴로와하고 안타까와하고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부엉이는 결심어린 얼굴을 번쩍 쳐들고 말했습니다.
《딱따구리야. 그래도 난 그 약을 먹어야 해. 그 느티나무는 우리 새동산의 보배야. 느티나무가 없는 새동산을 어떻게 생각할수 있겠니? 내가 그 약을 먹지 않으면 다른 동무들이 대신 먹어야 해. 이제 느티나무를 구원하지 못하면 밤벌레놈들이 온 동산을 요정낼거야. 나를 키워준 동산, 나를 내세워준 그 고마운 이웃들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것이란 이것밖에 없구나. 딱따구리야, 내 마음을 리해해주렴.》
《부엉아!》
딱따구리는 부엉이의 그 진정어린 목소리에 목이 꽉 메여올라 울고 또 울었습니다.
부엉이는 그러는 딱따구리를 달래며 말했습니다.
《동산이 있어야 내 꿈도 있는거란다. 딱따구리야, 어서 그 약을 주렴.》
딱따구리는 떨리는 손으로 약을 내밀었습니다.
부엉이가 그 약을 먹는 순간 아니 글쎄 두눈에서 환한 불빛이 세차게 내뿜어지며 어둠에 잠겼던 모든것이 똑똑히 보였습니다.
《야! 눈이 보인다. 나도 밤에 볼수 있다.》
부엉이는 목청껏 환성을 터쳤습니다.
딱따구리는 부엉이의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부엉아! 동산을 위하는 너의 그 고운 마음이 느티나무를 살리는 명약이 될거야.)
부엉이는 그밤으로 자기 동산에 날아가 느티나무를 향해 기여들던 밤벌레들을 모조리 잡아치웠습니다.
이렇게 되여 느티나무는 새동산의 자랑으로 다시금 푸르러 설레이게 되였답니다.
×
이해 풍년가을음악회는 참으로 뜻깊게 진행되였습니다.
동무들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오른 부엉이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숲의 노래, 행복의 노래를 말입니다.
해님의 빛살이 포근히도 비쳐오는 동산의 밝은 모습을 부엉이는 볼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엉이는 마음속으로 푸른 잎 설레는 느티나무와 행복에 넘친 동산의 모습을 보고있었습니다.
부엉이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동산을 위하는 착한 마음, 그 마음들이 있어 더욱더 행복넘칠 래일의 노래이기도 하였습니다.
(개성시 만월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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