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1호에 실린 글

 

                  

동 화

 

 

김 명 철

 

옛날이였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산골길로 열댓살난 총각애가 걸어가고있었습니다.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씻으며 부지런히 걸음을 다그치는 그는 옥돌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의 손에는 사과 한알이 쥐여져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드릴 사과였습니다.

앓는 아버지를 위해 고개고개 세 고개를 넘고 굽이굽이 열두굽이를 지나 먼곳까지 찾아온 옥돌이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되여 마음씨 무던한 어느 할머니가 움속에서 꺼내준것이랍니다.

옥돌이는 사과가 얼가봐 걱정스러워 손으로 꼭 감싸쥐였습니다.

사과를 쥔 두손을 입김으로 불며 걸어가던 옥돌이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얼마 멀지 않은 숲속에서 새들의 자지러진 우짖음소리가 들려왔기때문이였습니다.

(무슨 일일가?)

옥돌이가 발볌발볌 그곳에 가보니 누가 피워놓은것인지 연기만 몰몰 날리며 사그러져가는 모닥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거기에 뿌리채로 뽑히운 애기나무 한그루가 불에 타고있는것이였습니다.

새들은 애기나무주위를 맴돌다가는 내려앉고 내려앉아서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시 날아올라 안타까이 지저귀고있었습니다.

《누가 애기나무를 뿌리채로 뽑아넣었을가?》

옥돌이가 불무지에서 애기나무를 꺼냈습니다. 줄기가 금빛이 나는 처음 보는 나무였습니다.

불에 타서 겨우 두세뽐밖에 안되는 애기나무의 줄기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우는것 같았습니다.

옥돌이의 가슴은 아팠습니다.

《아, 불쌍하구나. 하마트면 죽을번 했구나.》

옥돌이는 불에 그슬린 애기나무의 줄기를 입김으로 호호 불어주고 손으로 뿌리를 살살 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덧저고리를 벗어 애기나무에 씌워주었습니다.

초봄이라지만 아직은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여기저기 음달진 곳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허옇게 보였습니다.

《애기나무야, 나와 함께 가자꾸나. 너를 우리 집 마당에 심어줄게.》

옥돌이가 살뜰하게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새들은 마음이 놓인다는듯 그의 머리우를 빙빙 돌다가 어데론가 날아갔습니다.

옥돌이는 애기나무를 품에 꼭 껴안고 집으로 줄달음쳤습니다.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온 옥돌이가 아버지에게 사과를 드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누가 글쎄 애기나무를 뿌리채로 뽑아서 불에 넣은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안고왔어요, 살리려고말이예요.》

옥돌이가 저고리를 풀어 애기나무를 꺼냈습니다.

《네가 생각을 잘했구나. 그런데 정말 애기나무를 살려낼수 있겠느냐?》

《걱정마세요, 꼭 살려내겠어요.》

생긋 웃고난 옥돌이는 마당가에 정성껏 애기나무를 심었습니다.

《애기나무야, 밤엔 몹시 춥단다. 내가 이불을 두툼히 덮어줄게.》

옥돌이는 마른 짚을 한아름 가져다 애기나무를 덮어주었습니다.

다음날이였습니다.

시내가엔 버들강아지가 망울을 터치고 깨꼬하며 밖을 내다봅니다.

양지쪽언덕엔 냉이들이 파릇파릇 돋아났습니다.

(오늘은 달래를 캐야지. 그래서 구수한 토장을 넣고 보골보골 끓여서 아버지에게 드릴테야.)

앓는 아버지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옥돌이입니다.

한겻이 훨씬 지나서야 햇달래를 캐가지고 집에 들어서던 옥돌이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글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앓던 아버지가 베개를 허리에 고이고 밖을 내다보고있는것이였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이예요?》

꿈같은 일에 의아해하는 옥돌이에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옥돌아, 저길 봐라. 네가 심은 애기나무에 벌써 움이 트는구나.》

《?!》

옥돌이가 눈길을 돌려보니 정말 애기나무에서 새싹이 뾰조롬히 터오르고있었습니다.

《야! 애기나무가 살았구나.》

옥돌이는 너무 기뻐 환성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어제 심은 애기나무에 벌써 움이 트다니? 게다가 아버지도 일어나시구?…)

정말 모를 일이였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일어나게 된것은 불에 타서 다 죽어가던 애기나무가 새싹을 움틔우며 살아난것을 보고 생의 기쁨을 찾았기때문이였습니다.

새싹은 보는 사이에 쏘옥 쏘옥 움터오르면서 잎새를 한잎, 두잎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애기나무줄기에서는 밝은 빛이 반짝거렸고 반들반들 윤기가 도는 잎에서는 향기가 솔솔 풍겼습니다.

(이 애기나무는 신기한 나무로구나.)

옥돌이는 애기나무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 향기를 맡은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여느때는 겨우 한두숟가락 뜨시던 미음을 다 들었습니다.

다음날 옥돌이가 강에서 잉어를 몇마리 잡아들고 집에 오니 아버지가 벽에 등을 기대고 반쯤 일어나 애기나무를 기쁘게 바라보고있었습니다.

빙그레 웃음까지 지으면서 말이예요.

《야, 아버지가 오늘은 더 일어나셨네.》

옥돌이는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애기나무야, 새싹이 터올라 푸른 잎을 흔드는 너를 보며 아버지가 일어나셨단다. 기뻐서 웃고있어. 그러니 빨리빨리 크거라. 네가 크면 아버지도 일어나실거야.》

그러자 이것 보세요.

옥돌이의 말을 들었는지 애기나무가 한뽐두뽐 자라면서 아지를 펼치는것이였습니다.

그러자 반쯤 일어났던 아버지가 아예 일어나앉는것이였습니다.

(애기나무가 빨리 크면 아버지의 병도 낫고 일어나시는구나. 이제부터 애기나무를 더 잘 돌볼테야.)

옥돌이는 알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다음날부터 옥돌이는 사기가 나서 애기나무를 애지중지 보살폈습니다.

맑고맑은 샘물도 솔솔 부어주고 거름도 듬뿍이 주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릴세라 받침대도 든든히 해주고 둘레엔 하얀 차돌도 곱게 깔아주었습니다.

애기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자 미음만 들던 아버지가 이제는 밥을 반그릇 드시고 반그릇 비우시던 아버지가 한그릇 다 내시였습니다.

늘 짙게 비껴있던 병색은 차츰 가셔지고 얼굴엔 혈색이 돌았습니다.

방안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마루에 나와앉더니 이젠 마당에까지 나왔습니다.

옥돌이의 동그스름한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떠날줄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 애기나무는 신기한 나무예요. 며칠사이에 내 키보다 더 컸어요. 그러니 이젠 애기나무가 아니예요. 그렇지요, 아버지.》

옥돌이가 애기나무와 키돋움을 해보며 하는 말이였습니다.

사랑스런 그의 모습을 정답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옥돌아, 우리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구나.》

《식구라니요?》

옥돌이가 의아해하며 두눈만 깜빡거렸습니다.

《난 어쩐지 이 나무가 우리 집 식구처럼 생각되는구나. 내 자식처럼 말이다.》

(우리 집 식구?)

입속으로 조용히 불러보는 옥돌이의 마음은 기뻤습니다.

(이젠 아버지의 병이 많이 나으셨어. 아버지에게 지팽이도 해드리고 요즘처럼 무더울 때 꿀물도 타드리면 무척 좋아하실거야.)

옥돌이는 산에 올라가 멋있게 생긴 다래나무로 지팽이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넘어 이웃마을의 벌치는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가 꿀도 얻어왔습니다.

《아버지, 시원한 꿀물을 드세요.》

옥돌이가 샘물에 꿀을 타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버지가 꿀물을 받아들고 한숨만 내쉬는것이였습니다.

《아버지, 또 몸이 편치 않으세요?》

옥돌이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옥돌아, 저 나무가 잎이 시드는걸 보니 분명 앓는게 틀림없구나. 나무란 한번 옮겨심으면 처음에는 살아나는듯 하다가도 꼭 앓는 법이란다. 그러다가 아예 죽기도 한단다. 그러니 어서 이 꿀물을 나무에게 부어주거라. 앓는 나무에게도 꿀물이 보약일게다.》

《예?! 나무가 앓는다구요?》

옥돌이가 놀라서 바라보니 정말 나무잎들이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고있었습니다.

《아버지, 꿀물이 또 있으니 걱정마세요.》

옥돌이는 부엌에 들어가 꿀물을 한바가지 들고 나와 나무에 부어주었습니다.

쭈욱 쭈욱

나무가 제법 소리까지 내며 꿀물을 달게 먹었습니다.

얼마쯤 있느라니 시들어가던 잎사귀들이 다시 새파랗게 살아났습니다. 그리고는 으쓱으쓱 자라나 아지를 쭉쭉 펼쳤습니다. 키도 지붕보다 더 컸습니다.

옥돌이는 사기가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옥돌이네 마을에 급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을에서 퍼그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성벽이 지난번 장마비에 허물어져 사람들의 일손이 필요하다는것이였습니다.

바다와 가까운 그곳 성벽을 빨리 쌓지 못하면 오랑캐놈들의 침입을 막기가 힘들게 될것입니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저저마다 떨쳐나섰습니다.

앓고있던 옥돌이 아버지도 옥돌이를 불러앉히고 말했습니다.

《옥돌아, 너도 성벽 쌓는데 가거라, 이 아비걱정은 하지 말고. 나라가 있구야 집두 있구 부모두 있는게 아니겠니.》

《아버지소원이 정 그러하시다면 래일 떠나겠어요.》

옥돌이의 눈가엔 눈물이 고여올랐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옥돌이는 나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나무야, 난 래일 성 쌓으러 집을 떠난단다. 넌 날마다 푸르싱싱 자라서 너를 이 아들처럼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언제나 기쁨을 드리거라. 네가 앓으면 아버지도 앓으시거던. 그러니 앓지 말아. 알겠지, 나무야. 꼭 부탁해.》

옥돌이는 나무를 꼭 부둥켜안고 속삭였습니다.

다음날 먼길을 떠날 차비를 한 옥돌이는 아버지에게 인사드렸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부디 앓지 마세요.》

《오냐, 걱정말고 어서 떠나거라.》

옥돌이는 아버지의 바래움속에 집을 나섰습니다.

바람은 불지 않건만 나무는 옥돌이를 향해 잘 가라는듯이 푸른 잎을 살랑살랑 흔들어주었습니다.

집을 떠난 그날부터 옥돌이는 하루빨리 성을 쌓기 위해 직심스레 일했습니다.

바다물속에 들어가 성돌도 건져오고 산에서 날라온 큰 돌을 다듬기도 하면서 밤새워 일하는 옥돌이에게 사람들은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성 쌓는 일터에 주변마을사람들이 잘 익은 과일이며 음식들을 해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자, 좀 쉬구들 하시라구요.》

주변마을사람들은 성을 쌓느라 밤낮없이 일하는 옥돌이네들에게 음식들을 권하였습니다.

《에그, 어린 총각이 고생하누만.》

땀흘리며 성돌을 지고온 옥돌이에게 한 아주머니가 잘 익은 돌배를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달큰한 돌배향기가 옥돌이의 코를 간지럽혔습니다. 하지만 옥돌이는 선뜻 배를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이런 배를 한알이라도 아버지한테 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아마 아버지의 병이 말끔히 나을지도 몰라. 요즘 아버지의 건강은 어떠하실가.…)

이렇게 생각하는 옥돌이의 눈앞에는 배를 잡숫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옥돌이에게는 그저 생각뿐이였지 어찌할수가 없었습니다. 집은 멀리에 있으니 말이예요.

그날부터 옥돌이의 머리속엔 《야, 아버지에게 배를 드렸으면 좋겠네.》하는 생각이 간절했고 잘 익은 복숭아를 보며는 《잘 익은 복숭아를 아버지가 드시면 기운이 나고 젊어지시겠는데.》하는 생각이 때없이 갈마들군 했습니다.

한편 집에 계시는 아버지는 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드문히 이웃집에 마실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옥돌이가 힘들어하지 않을가?)

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였습니다.

어데선가 코를 찌를듯 한 향기가 방안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어데서 풍겨오는 향기일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아버지의 두눈이 갑자기 휘둥그래졌습니다.

아니, 글쎄 나무에 수박만 한 큰 배 한알이 달려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윽한 과일향기가 마당에 가득찼습니다.

《아니?! 원, 세상에?…》

아버지는 너무도 신기한 일이여서 말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나무가 키를 쑥쑥 낮추더니 아버지앞에 아지를 척 드리우는것이였습니다. 배가 손에 잡히도록 말이예요. 그리고는 어서 따라는듯이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은 뭉클했습니다.

《고맙다, 나무야.》

아버지는 그 배를 따서 맛보았습니다.

순간 아버지는 다시한번 또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배가 또 있을가요.

배맛이 얼마나 달고 시원했는지 몰랐습니다. 꿀이라면 이보다 더 달고 얼음이라면 이보다 더 차겠습니까.

입안에서 배가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답답하던 가슴이 활 열린듯 시원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기운이 솟아났습니다.

《과연 신기한 배로구나.》

아버지는 연방 감탄만 했습니다.

신기한 일은 그이후에도 가끔 생겨났습니다.

어떤 날에는 나무에 사과가 열렸고 또 어떤 날에는 잘 익은 복숭아가 주렁졌습니다.

그 과일들의 덕이였는지 아버지의 얼굴은 벌깃벌깃해지고 주름살이 하나, 둘 없어졌습니다.

굽었던 허리가 점점 펴지고 희여가던 머리카락은 다시 검어졌습니다.

그러나 집에 이런 신기한 일이 생겨나는줄을 옥돌이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명절날이였습니다.

성쌓는 일터에서도 그날만은 꽹과리며 북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옥돌이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앓고계실 아버지 생각이 떠날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실가? 요즘 더 앓지는 않으실가? 오늘같은 명절날 홀로 계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적적해하실가? 내가 있었으면 노래도 부르고 피리도 불어드렸겠는데…)

늘 앓는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달밝은 밤이면 조용히 피리도 불군 하던 옥돌이였습니다.

그럴 때면 자기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지여 아픔도 잊고 단잠에 들던 아버지였고 은은한 피리소리에 지나간 날들이 떠올라 못잊을 모습들을 그리며 가슴을 설레이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같은 명절날 홀로 적적해할걸 생각하니 옥돌이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어데선가 날아온 고운 새 한마리가 창밖에서 우짖었습니다.

옥돌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고운 새야, 지금 앓는 아버지가 홀로 집에 계신단다. 네가 우리 집으로 날아가 아버지에게 노래를 불러줄순 없겠니? 그러면 아버지도 네 노래소리를 들으시며 흥이 나서 좋아하실거야.… 하긴 꿈같은 생각이지.》

옥돌이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아버지는 명절날이라 이집저집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를 들으며 쓸쓸히 누워있었습니다.

이때 밖에서 별스레 우짖는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들렸습니다.

(웬 새들이 우짖는걸가?)

무심결에 방문을 열던 아버지는 그만 의아해하였습니다.

나무가지우에 많은 새들이 날아와앉아있었던것이였습니다.

《아니? 무슨 새들이 저리도 많이 날아와앉았을고.》

아버지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숱한 새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꾀꼴 꾀꼴 꾀꼴롱

꾀꼴새가 은방울 굴리는듯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종 지종 지종종

종달새가 청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삣쫑 삣쫑 삣쪼르르

온갖 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소리에 맞추어 이름모를 새들이 포르릉포르릉 날아예며 춤을 추었습니다.

나무도 기뻐서 이리저리 가지를 흔들며 설레였습니다.

꿈만 같은 광경을 놀랍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습니다.

흥타령이 흘러나왔습니다.

《좋구나! 얼씨구 절씨구 좋을시구. 지화자자 좋구좋다.》

마당가엔 어데서도 볼수 없는 흥겨운 춤판이 펼쳐졌습니다.

쓸쓸하던 기분은 어느새 가뭇없이 날아갔습니다.

《오늘은 정말 마음이 즐겁구나. 나에게 이런 기쁜 날이 찾아올줄이야.》

아버지는 기분이 붕 떠올라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오래동안 남아있던 적적함이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새들은 날마다 나무가지에 날아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끝없이 즐거웠습니다. 날마다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흥이 난 아버지는 나날이 젊어졌습니다.

집에서 이런 희한한 일이 있는줄을 옥돌이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날은 빨리도 흘러갔습니다.

어느덧 성을 거의 다 쌓게 되였습니다. 이제 하루이틀만 더 일하면 성벽은 본래보다 더 훌륭하게 완성되게 됩니다.

그러면 옥돌이도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성벽을 이렇게 훌륭하게 쌓은걸 아시면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실가…)

옥돌이는 기쁜 생각을 굴리며 일손을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맑던 하늘에 검은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폭풍이 분대요.》

《폭풍? 어휴, 그럼 무슨 변이 나겠군.》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뭐?! 폭풍이 분다구? 이걸 어쩌면 좋을가. 우리 집 이영이 몽땅 바람에 날려가겠구나. 내가 있으면 지붕에 돌이라도 짓눌러놓겠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근심하며 속상해할가. 바람아, 하루이틀만 참았다 불려무나. 집엔 앓는 아버지가 홀로 계신단다. 아니, 제발 우리 마을엔 불지 말려마.)

옥돌이의 가슴속엔 걱정과 불안이 무겁게 깃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장 집으로 달려갈수가 없으니 말이예요.

아닌게아니라 그 시각 옥돌이네 마을에도 구름이 덮여 컴컴해지더니 바람이 불었습니다.

솨솨 소리를 내며 세차게 불던 바람이 해질녘부터는 윙 윙 소리를 치며 더 무섭게 불었습니다.

《허, 하늘에 바람구멍이 터졌나. 변이 나겠군. 몇년째 갈아얹지 못한 낡은 이영이 말짱 날려가겠는데 이 일을 어찌할고.》

아버지의 가슴속에 걱정과 근심이 쌓였습니다.

세찬 바람소리를 들으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은 무섭게 태질했습니다.

정말 몇십년만에 보는 무서운 바람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온밤 잠들지 못했습니다.

바람은 새벽녘에야 점차 뜸해지더니 날이 훤히 밝은 썩 후에야 잦았습니다.

(바람이 이제야 멎었는가보군.)

문을 열어보니 마을은 벅적 끓었습니다.

이영이 훌 벗겨진 집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지붕까지 날려간 집들도 있었습니다. 하긴 그 세찬 바람에 마을에 성한 집이라고는 한 집도 있을것 같질 않았습니다.

《우리 집 이영도 말이 아니겠군.》

밖에 나와 지붕을 올려다보던 아버지는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나무가 사방으로 향했던 가지를 모두 지붕쪽으로 돌려대고 집을 통채로 덮고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온밤 태질하던 세찬 바람이 초가이영의 어느 한 귀퉁이도 날려보낼수 없었던것이였습니다.

그 모습은 꼭 집을 그러안고있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어쩌면… 온밤 잠 못들고 걱정하는 나를 위해 네가 집을 지켜주었구나. 무서운 재난을 네가 막았구나.》

아버지는 나무를 꽉 부둥켜안았습니다.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습니다.

이때 마을사람들이 홀로 있는 옥돌이 아버지가 걱정되여 찾아왔습니다.

《이 집 이영도 다 날아갔겠군.》

마당가에 들어서던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아니, 나무가 집을 덮고있구만.》

너무도 희한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지금까지 있었던 신기한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나무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아지들을 천천히 들더니 제 자리로 돌려세웠습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일세.》

《옛말같은 이야기로구만.》

《그러니 이 나무는 신기한 나무가 틀림없네.》

마을사람들은 저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 다음날, 옥돌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그간 앓지 않으셨나요?》

《오냐, 네가 돌아왔구나. 용타, 정말 용타.》

아버지가 마당으로 달려나가 옥돌이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옥돌이는 무척 젊어지고 건강해진 아버지의 환한 모습을 보며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이때 마을사람들이 《옥돌이가 더 어엿해져서 돌아왔구만.》

《옥돌아, 용타, 용해.》하며 옥돌이네 집으로 모여왔습니다.

《그 사이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잘 돌봐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옥돌이는 마을사람들이 아버지를 잘 돌봐주었으리라는 생각을 안고 진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손을 내저었습니다.

《옥돌아, 아버지를 잘 돌봐준것은 우리가 아니라 네가 심고 가꾼 이 나무란다.》

《예? 나무가 아버지를 돌봐주었다구요?》

옥돌이는 영문을 몰라 두눈만 깜빡거렸습니다.

마을사람들이 그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습니다.

《그럼 내가 생각했던것을 이 나무가… 어쩌면.》

옥돌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고여올랐습니다.

《옥돌아,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옥돌이는 성쌓으러 가서 아버지를 그리며 생각했던 사실들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마을사람들은 어떻게 되여 이런 희한한 일들이 생겨나게 되였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였습니다.

《옳거니. 속담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거늘 옥돌이가 집에 있을 때나 멀리 떠나서도 앓는 아버지를 위해 효성이 지극하더니 나무도 감동되여 아들의 생각대로 해주었구만. 그러니 아버지가 이렇게 건강해지고 젊어진게 아니겠나. 이것이 옥돌이가 바라던것이였으니 그렇게 된것일세.》

《정말 그래요. 언제나 부모를 위한 마음이 뜨겁고 효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땅도 감동되는거예요. 그런 집엔 늘 복이 찾아오구요. 그래서 이런 꿈같은 신기하고 희한한 일들이 날마다 생겨난단 말이예요.》

마을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나무야, 네가 이 아들을 대신해주었구나. 난 멀리서 생각만 했을뿐인데 네가 아버지를 돌봐드렸으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옥돌이는 나무를 꼭 그러안고 볼을 비볐습니다.

아버지가 옥돌이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옥돌아, 이런 나무가 집집마다 한두그루씩 있었으면 좋겠구나.》

《나도 지금 그 생각을 했어요.》

옥돌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옥돌이는 그 나무에 사과가 열리면 사과씨를 받아서 집들에 주었고 배와 복숭아, 살구가 열리면 또 그 씨들을 받아서 집집마다 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집들마다에 그 씨들을 심어 열그루, 스무그루씩 자라나 봄이면 꽃속에 묻히고 가을이면 열매속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은 온갖 과일들이 무르익는 살기 좋은 과일동산으로 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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