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1호에 실린 글
◇ 동 화◇
리 희 건
옛날옛적 어느 한곳에 마음착한 짐승들이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웃음소리, 노래소리 높던 이 동산에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얼룩곰네 창고에 있던 물고기꾸레미들이 하루밤사이에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한동산에서 사는 너구리가 거기에 손을 댔다는것이였습니다. 얼룩곰이 주먹을 내흔들며 너구리에게 불그락푸르락 하는통에 온 동산에 소문이 나게 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동산의 짐승들은 영문을 알수없어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더구나 이 동산에서 오래전부터 너구리와 가까이 지내온 산양은 너무도 기가 막혀 한동안 정신이 얼떨떨했습니다. (정말 너구리가 그런짓을 했을가?)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결코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산양은 참다못해 얼룩곰을 찾아갔습니다. 《얼룩곰아, 물고기를 잃은 네 마음이야 오죽하겠니. 하지만 무턱대고 너구릴 몰아대는건 잘못된 행동이야.》 그러자 얼룩곰은 성을 벌컥 냈습니다. 《그거야 뻔하지 않니. 그래 노루가 고기를 먹니? 토끼가 고기를 먹니?》 《그 애들은 풀이나 열매를 먹지 뭐.》 《염소는?》 《염소도 풀이나 열매!》 《청서나 다람이는 무엇을 먹니?》 《밤이나 도토리.》 《그러니 너구리지 뭐야. 우리 동산에서 고기를 먹는건 너구리하구 나밖에 더 있니? 동산을 울타리로 빙ㅡ둘러쳤으니 여우나 이리는 이 근방에 얼씬도 못할거구.》 산양은 더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너구리가 조금도 의심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동산에서 함께 살면서 남에게 해되는 일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것입니다. 오히려 너구리는 동산에서 나무우에 올라가야 할 일이 제기될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슬하게 높은 나무에 손과 발에 피가 지도록 오르내리며 진심으로 열성껏 이웃을 위해 일해주군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토끼네가 잣을 먹고싶어하는것을 알고 잣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상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마음씨 고운 너구리가 정말 그런짓을 했을가? 아니야, 너구린 절대로 아니야!) 산양은 제가 루명을 쓴것처럼 가슴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얼룩곰아, 어쨌든 보지도 못하고 함부로 너구리라고 말하는건 잘못이야.》 《뭐, 뭐라구? 넌 왜 중뿔나게 나서서 너구릴 두둔하니? 내 너하구 다신 마주서지 않겠다.》 얼룩곰은 획ㅡ 돌아섰습니다. 산양은 동산을 위해 일을 많이 한 너구리가 좋지 못한 루명을 쓰고있는것을 강건너 불보듯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동산의 좌상인 사슴할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할아버지,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네?》 《산양아,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전 너구리를 믿어요. 고기를 좋아한다고 너구릴 의심하면 어떻게 되겠나요. 만약 밤이나 도토리가 없어졌다면 다람이나 청서를 의심할거구 또 과일이 없어지면 토끼나 나를 의심할게 아닙니까. 아마 꿀단지가 없어지면 온 동산이 서로 의심을 하며 믿지 못하게 될거예요.》 《산양아, 네 말이 옳다. 이건 너구리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동산의 운명문제와도 관련되는 아주 심각한 일이다. 망탕 믿어두 안되지만 무턱대고 의심을 해서두 안되느니라.》 사슴할아버지는 매우 심중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너구리가 지금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있겠나요. 내가 가서 직접 만나보겠어요.》 사슴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그래라. 참 좋은 생각이다.》 이리하여 산양은 너구리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노루네 집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틀림없이 이건 너구리의 작간이야.》하는 째지는듯 한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산양은 그냥 지나갈수가 없어 노루네 집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노루야, 무슨 일이 생겼니?》 《산양아, 오늘 새벽에 글쎄 내가 샘물터에 갔다오는 사이에 과일이 한바구니 없어졌어. 내 참, 보나마나 곰네 창고에 손을 댔다는 그 너구리가 한짓일거야.》 산양은 노루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잘 알아보지도 않구 너구릴 의심하면 되니?》 《아니, 그래 고기를 훔쳐간 너구리가 과일이라구 눈독을 안 들이겠니. 너구린 과일두 좋아해.》 《그렇지만 너구린 굶어죽으면 죽었지 남의 물건에는 티끌만큼도 손을 대지 않아. 함부로 그한테 바가지를 씌우지 말아.》 《뭐, 뭐? 넌 어째서 너구리편을 들면서 그러니? 혹시 너구리와 짝자꿍이를 한게 아니냐?》 노루는 톡 내쏘았습니다. 《아니 뭐라구? 그럼 나까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말로만 해서 풀릴 일이 아니였습니다. 빨리 너구리를 만나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너구리네 집은 텅 비여있었습니다. 산양은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옆집에서 사는 토끼에게 사연을 물어보았습니다. 토끼가 하는 말이 성미급한 얼룩곰이 훔쳐온 고기를 당장 자기 집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집을 들부셔놓겠다고 윽윽 벼르는 통에 겁이 나는지 너구리는 앓는 동생을 데리고 오늘 아침 어디론가 가버리고말았다는것이였습니다. 산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만 같았습니다. 남들앞에 나서기가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으면 정든 동산을 떠났으랴 하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다 났습니다. 산양은 너구리도 찾아오고 또 그에게 들씌워진 애매한 루명도 꼭 벗겨주리라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산양은 그길로 너구리를 찾아떠났습니다. 나무숲이 무성한 골짜기를 지나 가파로운 고개를 넘으면서 다녀보았지만 너구리가 있는곳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양지쪽 우묵한 곳에도 가보고 높고험한 벼랑턱에 올라가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루해가 저물자 산양은 큰 너럭바위밑에서 마가을의 긴긴 밤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도 너구리를 찾아 여기저기로 헤매였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동산을 울면서 떠났다더니 혹시 독한 마음을 먹은건 아닐가?) 산양은 그 자리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때 머리우에서 《왜 그렇게 한숨만 쉬나요?》하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올려다보니 산비둘기가 나무가지에 앉아 하는 말이였습니다. 《산비둘기로구나!》 산양은 너구리를 찾아 떠나게 된 눈물겨운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산비둘기는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그러면 혹시 저 어둠골에 있는 이리네 패거리들이 한짓이 아닐가요? 어제도 그쪽으로 날아가면서 보니 고기굽는 냄새가 풍기더군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뭔가 짚이는데가 있었습니다. 동산을 울타리로 둘러치긴 했지만 이리네 패거리들은 못하는짓이 없는 아주 교활한 놈들이였습니다. 《어둠골이 어디쯤이냐?》 《여기서 산등성이 두개는 더 넘어가야 해요.》 《그래, 고맙다. 산비둘기야.》 산양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가려고 그래요? 그러다가 놈들한테 붙잡히면 어쩔려구.》 산비둘기는 깜짝 놀라며 큰일이나 난듯이 산양을 말렸습니다. 《그래도 난 가야 한단다, 내 동무를 위해서 말이야.》 산양은 곧 어둠골로 향했습니다. 이리네 패거리들이 있는 곳으로 혼자 가는것이 사실 위험하긴 했지만 모두가 너구리를 믿게 하려면 꼭 가야 할 길이였습니다. 산등성이 둘을 넘어서자 아닌게아니라 고기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습니다. 냄새가 풍겨오는 쪽을 가늠해보며 조심조심 다가가니 검푸른 바위 두개가 맞붙은 곳에 자그마한 동굴이 나졌습니다. 동굴주변에는 엉겅퀴며 가시덤불이 뒤덮여있었기때문에 얼핏 보아서는 잘 알수가 없는 곳이였습니다. 산양은 살그머니 동굴앞으로 다가가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동굴안 저쪽에서는 모닥불이 피여오르고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이리와 삵, 여우가 둘러앉아있었습니다. 구운 고기를 먹어대며 지껄이는 소리가 산양의 귀에까지 들려왔습니다. 《꿀까지 발라서 드려야 하는건데.》 삵이 물고기 한마리를 이리앞으로 내밀면서 아양을 떨었습니다. 《어디 꿀단지를 봐둔 곳이 있나?》 《실은 얼룩곰네 창고에 꿀단지가 여러개나 있었지요. 전번엔 물고기 생각만 하다나니… 그래서 오늘 밤엔 물고기들을 마저 가져오면서 꿀단지까지 들고와야지요.》 《좋다, 그렇게 하자.》 이리는 너털웃음을 쳤습니다. 그러자 삵은 헤벌쭉거리며 옆에 앉은 여우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그러고보면 이 여우가 령리하거던. 높은 울타리 한곳에 비물이 고이면 빠질수 있게 만든 자그마한 구멍이 있는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참.》 그 바람에 이리는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혀를 작작 놀려. 담벽에두 귀가 있다는걸 몰라. 우리 비밀통로가 동산에 알려지는 날엔 이 놀음도 끝장이란 말이야.》 《예, 예, 알겠사와요.》 삵은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거렸습니다. (뭐, 비물퇴수구멍?! 아, 그랬댔구나! 그런걸 너구리가 애매하게 더러운 루명을 썼구나!) 산양은 당장 달려가 놈들을 쳐갈기고싶었지만 우선 이 사실을 동산에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해가 벌써 서산으로 기울어져가고있었습니다. 산양은 동산으로 달렸습니다. 고개를 넘고 언덕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은 더디게만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산비탈을 타고 때로는 벼랑길을 타기도 하면서 동산으로 곧추 내달렸습니다. 그러던 산양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그만 아찔한 벼랑아래로 떨어지고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보니 온몸이 쑤시고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중으로 동산에 꼭 가야겠는데.…) 움쭉 몸을 일으키던 산양은 다시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습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걸어갈수도 기여갈수도 없는 몸이 되였습니다. (아ㅡ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누구한테라도 부탁을 해야겠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동산으로 보낼만 한 대상은 없었습니다. 구름이 말을 한다면 구름한테라도 부탁하고싶었습니다. 바람이 자기의 이 심정을 알아준다면 바람한테라도 도움을 청하고싶었습니다. (새들처럼 동산으로 훨훨 날아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너구리의 루명도 벗겨주지 못하고 동산의 위험도 알려줄수가 없으니 정말 통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해는 지고 사위는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이때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옆으로 지나가고있었습니다. 숨을 죽이고 살펴보니 뜻밖에도 너구리였습니다. 《너굴아!》 산양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아니, 산양이?) 너구리는 허둥거리며 달려왔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였니?》 너구리는 피투성이가 된 산양을 부둥켜안았습니다. 산양은 너구리를 만난것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산양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습니다. 《너굴아, 얼룩곰네 창고에 누가 들어왔댔는지 알아냈어.》 산양은 이리네 소굴에서 있은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그럼 날 위해 그 위험한 어둠골에 혼자 갔댔니. 잡히면 어쩔려구, 응!》 그러나 산양은 조용히 웃었습니다. 《너굴아, 난 기뻐!》 산양을 부둥켜안은 너구리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난 비겁하게 동산을 떠났으니…》 산양은 너구리의 손을 다정히 잡았습니다. 《너굴아, 빨리 동산으로 가다오. 오늘 밤에 이리네 패거리들이 울타리 퇴수구멍으로 기여든단다, 시간이 급해.》 하지만 산양을 외진 곳에 홀로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릴 하니? 함께 가야 해.》 《너굴아, 지금은 나보다 동산을 생각해야 해. 어서.》 산양은 또다시 재촉했습니다. 너구리는 하는수없이 마른 새초와 가랑잎으로 산양이 남의 눈에 띄우지 않게 잘 덮어주고는 동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너구리가 언제쯤 동산에 가닿게 될가?) 어느덧 하루해는 지고 사위는 어두워졌습니다. 한편 산양과 헤여져 동산으로 나는듯이 달려가던 너구리는 불쑥 동생 생각이 났습니다. 동산을 떠난 후 대충 꾸린 집에서는 지금 동생이 배를 그러쥐고 몹시 앓고있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약초를 캐러 다니다가 산양을 만났던것입니다. (잠간만이라도 들렸다 갈가? 아니야, 한시바삐 동산으로 가야 해.) 이마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내렸습니다. 동산이 점점 가까와올수록 주먹을 쳐들고 무섭게 다가들던 얼룩곰의 서슬푸른 모습이 눈앞에 안겨왔습니다. 산양도 없이 동산에 가면 누가 날 믿어주기나 할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구리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비록 억울한 루명을 쓰긴 했지만 오직 정든 동산만을 생각하며 달리고 또 달려갔습니다. 사슴할아버지를 만난 너구리는 산양이 한 말들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밤 동산에서는 모두가 떨쳐나 얼룩곰네 집으로 기여들던 놈들을 몽땅 쳐없앨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아왔습니다. 너구리를 비롯한 동산의 짐승들은 산양이 쓰러져있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산양은 마가을의 찬이슬을 맞으면서 누워있었습니다. 《산양아!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동산의 짐승들은 모두가 눈굽을 훔치였습니다. 사슴할아버지는 동산에서 가져온 약샘물을 산양의 마른 입에 떠넣어주기도 하고 험상한 그의 상처에도 발라주었습니다. 《할아버지, 동산은 어떻게 되였나요?》 《너구리가 제때에 알려주어서 동산은 무사하단다, 정말 장하다! 우리가 무턱대고 서로 의심하면 좋아하는건 원쑤놈들뿐이다. 동무의 루명을 벗겨주자고 네가 자기 몸을 내댔구나!》 《할아버지, 저보다도 너구리가 더 마음고생을 했어요. 참, 노루네 잃어진 과일은 어떻게 된거예요?》 그러자 사슴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세상에 별일두 다 있지. 아 글쎄 제집 막내녀석이 외가집에 가져간줄도 모르고…》 심한 자책에 잠겨있던 얼룩곰은 산양과 너구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너굴아, 산양아, 날 용서해다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심이 얼마나 해로운가 하는것을 난 오늘에야 뼈저리게 깨달았어.》 그러자 사슴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깨달았으면 됐다. 다들 알아두거라, 동무에 대한 믿음은 말로 되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으로 담보되여야 한다는것을!》 《예, 잘 알았어요.》 동산의 짐승들은 모두 사랑스러운 눈길로 산양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산양의 얼굴에도 웃음이 한껏 어려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