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9호에 실린 글
 

 

◇동 화◇


 

저 푸른 하늘에 둥실둥실 떠있는 구름들은 어머니고향땅을 위해 착한 일을 많이 한답니다.

땅이 왜 구름들의 고향이 되는가구요?

그것은 땅에 무성한 나무잎새들과 돌돌 흐르는 시내물, 푸른 강, 바다에서 고운 물방울들이 따스한 해빛에 물김이 되여 하늘로 올라가 뭉치고뭉쳐서 햇솜같은 구름이 되기때문이랍니다.

하기에 구름들은 땅에 푸른 숲이 더 무성해지고 오곡이 무르익게 하기 위해 늘 쉬지 않고 일한답니다.

어느날 구름나라에서는 고운 애기구름이 또 태여났습니다.

구름형제들은 막냉이애기구름에게 보슬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보슬이는 달디단 보슬비를 싣고 자기처럼 어린 애기나무들과 애기꽃모들을 찾아가 단비를 뿌려주군 하였습니다.

애기나무들과 애기꽃모들도 착한 보슬구름을 《우리 보슬이》라고 정답게 불렀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보슬이가 오빠, 언니들만큼 커지자 구름나라의 좌상할아버지는 보슬이에게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고 푸르다고 해서 《푸른 산천》이라 부르는 산과 들을 맡겨주었습니다.

애기구름들은 어른이 되면 각기 산과 들을 맡아가지고 가꾸군 한답니다.

(야, 《푸른 산천》은 보기만 해도 기쁘구나. 난 저 산과 들을 더 아름답고 기름지게 가꿀테야.)

보슬이는 자기가 처음으로 맡은 산과 들을 굽어보며 결심했습니다.

그날부터 보슬이는 단비를 싣고다니며 옷자락이 마를새없이 일하였습니다.

새로 씨뿌린 애기나무밭이며 산기슭 진달래동산, 풍년밭…

정말이지 《푸른 산천》은 보슬이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더 이쁘게 달라져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보슬이는 금방 새싹이 움튼 애기나무며 애기풀싹들에게 단비를 뿌려주고 돌아오다가 구름고개에 걸터앉아 빼곡이 들어찬 수림바다를 기쁘게 바라보고있었습니다.

하르르한 구름날개를 미풍에 하느적거리며 다리쉼을 하던 보슬이는 서쪽켠의 눈뿌리 아득한 곳에서 날아오르는 누런 먼지를 보게 되였습니다.

(아니, 저게 뭘가?)

보슬이는 서둘러 그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거기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없는 벌거숭이산이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그 산은 여름에는 불볕에 고생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신음하고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산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보슬이는 조금 남았던 단비로 산할아버지의 말라터진 입술을 추겨주었습니다.

눈을 감은채 끙끙 앓음소리를 내던 산할아버지가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고맙다, 너 단비구름이구나. 그래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산할아버지, 어쩌다 이렇게 되였어요?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요?》

할아버지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나도 얼마전까지 푸른 옷을 입고있었단다. 그런데 그 몹쓸 놈의 불바람때문에…》

《불바람놈이요?!》

산할아버지는 불바람놈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불바람놈은 깔깔한 모래만 흩날리고 사철 불볕만 내리쪼이는 사막나라에서 살고있었습니다.

불바람놈에게는 마술같은 힘을 내는 불채찍이 있는데 그놈은 쩍하면 채찍을 휘둘러 뜨거운 사막모래를 사방으로 휘뿌리군 하였습니다.

불바람놈의 심술궂은 장난으로 사막나라는 점점 넓어져갔습니다.

어느날 《푸른 산천》에 대한 말을 들은 불바람놈은 불채찍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습니다.

《난 세상에서 푸른빛이 제일 싫단 말이야! 모두 메마른 모래밭으로 만들어놓을테다!》

그러나 기름진 《푸른 산천》을 지키는 성벽처럼 우뚝 서있는 산할아버지때문에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냥 물러갈줄 아느냐? 내 기어이 이 산을 넘어가 산과 들의 푸른빛을 싹 없애버릴테다!》

불바람놈은 이를 갈면서 산할아버지의 허리를 물어뜯고 푸른 숲을 말리웠습니다.

산할아버지도 불바람놈을 꾸짖으며 쫓아버리려 했지만 불을 가지고 달려드는 놈에게 어쩌는 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이제 좀 있으면 그놈이 나를 타고넘어 저기 나무숲이랑 그리고 돌돌 시내물, 풍년밭들을 해치려들텐데…》

산할아버지는 너무도 안타까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불바람놈이 우리들이 태여난 땅을 빼앗으려 드는구나.)

산할아버지의 상처입은 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던 보슬이는 비장한 결심을 품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불바람놈과 맞서싸우자요. 다시 푸른 옷을 입고말이예요.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그건 힘들게다. 어린 네가 무슨 힘으로… 그놈에겐 무서운 불채찍이 있단다.》

그러나 보슬이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난 기어이 이 산에 푸른 숲을 가꾸고말테야. 여기서 물러서면 《푸른 산천》을 영영 잃게 될거야.)

 

×

 

보슬이는 송골송골 내돋는 땀방울을 훔치며 날고 또 날았습니다.

보슬이의 눈앞에는 메마른 흙속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입술을 감빨던 애기이깔나무며 애기아카시아나무싹들이 자꾸만 얼른거렸습니다.

심술쟁이 불바람놈은 보슬이가 아글타글 씨앗들을 싹틔워놓기만 하면 불쑥 나타나 불채찍을 휘둘러 애어린 싹들을 흙모래에 묻어버리군 하였습니다.

(불바람놈이 또 나타나기 전에 단비를 한번 더 먹이면 애기싹들이 부쩍 클거야.)

보슬이는 억센 이깔나무며 참나무, 아카시아나무들로 무성해질 산을 그려보며 걸음을 다그쳤습니다. 그 나무들이 모진 불채찍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나 숲을 이루게 되면 불바람놈도 기겁해서 도망쳐버릴것입니다.

하지만 보슬이의 꿈은 또 깨져버리고말았습니다.

불바람놈이 어느새 나타나 새싹이 움터나 파릿해지기 시작하던 산을 벌거숭이 흙산으로 만들어버렸던것입니다.

단비를 더 달라고 졸라대던 새싹들은 흙모래에 모두 묻혀버리고 산할아버지의 얼굴은 더 컴컴하게 질려있었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너무도 안타까와 눈물을 흘리는 보슬이에게 산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보슬아, 울지 말아. 그 불바람놈이 네가 없는 틈에 나타나 또 심술을 부렸단다. 그놈이 불채찍을 휘두르며 지껄이는 소리를 들으니 자기는 네가 말라죽은 애기싹들을 붙안고 안타까와 눈물 흘리는게 제일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놈은 네가 애가 타 죽으라고 우정 먼곳에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나 애기싹들을 못살게 굴었단다, 악독한 놈.》

산할아버지는 컴컴해진 얼굴로 보슬이를 바라보며 치를 떨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어떻게 해요?》

보슬이는 산할아버지를 흔들며 안타까이 웨쳤습니다.

《보슬아, 내 말을 잘 들어라. 저기 북쪽으로 높은 산을 서른개 넘어가면 사철 흰눈이 덮여있는 얼음강산이 있단다. 거기에는 내 먼 친척벌되는 얼음산할아버지가 있다. 전번날 거기에 다녀온 수리개가 말하던데 불바람놈이 얼음산에 달려들었다가 얼음산할아버지의 얼음칼에 혼찌검이 났다는구나.》

《얼음칼이요?! 할아버지, 내 당장 그 얼음칼을 구하러 떠나겠어요.》

보슬이는 당장이라도 떠나갈 자세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가만, 내 말을 마저 듣고 결심하거라. 거긴 사철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어 몹시 추운데다 길이 멀어서 가기가 힘들단다. 아니,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지. 연한 물방울들로 된 네 몸은 아마 꽁꽁 얼어버리고말거다.》

할아버지의 말에 보슬이는 머리를 저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이렇게 신음하고있는데 가만 앉아있을수야 없지 않나요. 난 기어이 얼음산할아버지를 찾아가 얼음칼을 얻어오고야말겠어요.》

보슬이는 비장한 결심을 품고 얼음강산을 향해 떠났습니다. 하루해를 꼬박 톺아야 오를수 있는 높은 산들을 넘고 또 넘고 며칠을 날아야 건늘수 있는 바다도 지나면서 보슬이는 이를 악물고 가고 또 갔습니다.

보슬이의 하르르하던 고운 날개옷은 다 해져 너덜너덜해지고 곱던 얼굴은 파리해졌습니다.

되돌아갈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보슬이는 불바람에 신음하는 산할아버지와 정든 고향 《푸른 산천》을 생각하며 용감히 앞으로 걸음을 내짚었습니다.

보슬이는 끝내 얼음강산에 가닿았습니다.

얼음강산은 정말 추웠습니다.

보슬이는 곱아드는 손가락을 호호 불며 얼음산할아버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산할아버지―》

보슬이의 목소리는 멀리로 울려가지 못했습니다.

먼길을 오느라 지칠대로 지친데다 얼음덩이들이 온통 달라붙어 보슬이의 온몸을 얼구고있었던것입니다.

보슬이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으로 여기저기 헤매다가 끝내 어느 한 산중턱에 쓰러지고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보슬이는 웅글고 찌렁찌렁한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얘들아, 그 애를 풀어줘라.》

그러자 보슬이에게 붙어 몸을 얼구던 얼음덩이들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보슬이가 너무도 신기해서 눈이 둥그래있는데 온몸이 은빛으로 번쩍이는 큰 산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넌 어디서 왔느냐?》

《난 저 멀리 〈푸른 산천〉에서 온 단비구름 보슬이예요. 혹시 얼음산할아버지가 아니세요?》

보슬이는 큰 산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여기선 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네가 어떻게 나를 아느냐? 그리구 어린 네가 어떻게 예까지 왔느냐?》

보슬이는 불바람놈과 산할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얼음나라까지 오면서 겪은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네가 불바람놈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놈이 전번에 내 몸을 깎아내려구 나타났던걸 쫓아버렸더니 거기에 가서 못된짓을 했구나. 내 그때 그놈을 아예 없애버렸어야 하는걸…》

보슬이의 이야기를 들은 얼음산할아버지는 크게 노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눈사태가 쏟아져내렸습니다.

《얼음산할아버지, 지금 그 불바람놈때문에 산할아버지가 마지막숨을 몰아쉬고있어요.

아마 지금쯤 우리 〈푸른 산천〉이 불바람놈의 불채찍에 맞아 불타고있을지도 몰라요. 저에게 할아버지의 얼음칼을 주세요. 불바람놈과 싸우겠어요.》

보슬이의 간절한 말에 얼음산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춤에 찼던 칼집에서 커다란 얼음칼을 쭉 뽑아 집채같은 얼음바위에 썩썩 갈았습니다.

《이 칼은 내게도 하나밖에 없는것이지만 가져가거라. 남의 행복을 빼앗는 그런 악독한 놈은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없애버려야 한다.…》

얼음산할아버지는 선득선득 날이 선 얼음칼과 얼음방패까지 보슬이에게 주었습니다.

《보슬아,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게 있다. 이 칼이 신기한 힘을 내기는 한다만 어쨌든 얼음이니만치 녹아버리기 전에 불바람놈을 족쳐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어요, 할아버지.》

보슬이는 얼음칼을 가슴에 꼭 안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어서 가봐라. 〈푸른 산천〉을 꼭 지켜다오.》

얼음산할아버지는 하늬바람을 불러 보슬이가 한시바삐 《푸른 산천》에 가닿도록 도와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얼음산할아버지에게 깊이 고개숙여 인사를 한 보슬이는 하늬바람의 도움으로 단숨에 《푸른 산천》에 가닿을수 있었습니다.

《푸른 산천》은 불바람놈의 불채찍에 신음하고있었습니다.

돌돌 시내물들은 땅속에 숨어버리고 곡식들은 노랗게 말라갔습니다. 등판에 활짝 피여 웃던 고운 꽃들이 다 쓰러져버렸습니다.

지종지종 고운 노래를 부르던 새들이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가고있었습니다.

《이 원쑤놈아, 우리 〈푸른 산천〉을 다치지 말아.》

보슬이는 이렇게 웨치며 불바람놈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불바람놈은 보슬이를 보자 코웃음을 쳤습니다.

《흥! 네놈이 기진맥진해서 어디 가 숨었는가 했는데 또 나타났구나. 내 불채찍맛을 어디 한번 봐라.》

불바람놈이 불채찍으로 보슬이를 내리쳤습니다.

보슬이는 제꺽 얼음방패로 불채찍을 막았습니다.

칙―꽈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바람놈의 불채찍이 단번에 산산쪼각이 났습니다. 보슬이의 얼음방패도 두동강이 났습니다.

《아이쿠, 이게 뭐야?》

깜짝 놀란 불바람놈이 그제야 눈이 왕사발만해서 보슬이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얼음칼을 들고 달려오는 보슬이가 보였습니다.

《악, 얼음칼.》

불바람놈은 얼음칼도 무서웠지만 보슬이의 기상이 더 무서워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산할아버지가 걸음아 날 살려라 뺑소니치는 불바람놈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놈, 못 간다.》

어디로든지 빠져보려고 요동치던 놈은 도망칠 길이 더 없다는걸 알자 더욱 사납게 발악하며 보슬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시뻘건 입으로 불을 토하고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보슬이가 오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먼길을 다녀오느라 지칠대로 지친 보슬이는 몇번이나 땅에 떨어질번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보슬이는 말라드는 《푸른 산천》을 내려다보며 다시 솟구치군 하였습니다.

《지독한 놈, 암만 그래봐라. 아무리 신기한 칼이라 해도 얼음이야 얼음이겠지. 내 그 칼을 녹여버리고 네놈까지 아예 물김으로 만들어버릴테다, 으하하하.》

얼음산할아버지가 준 얼음칼이 한방울, 두방울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슬이의 가슴은 바질바질 타들었습니다.

얼음칼이 녹기 전에 불바람놈을 쳐야 한다던 얼음산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 울려왔습니다.

(절대로 네놈이 원하는대로 안될거다. 내 고향 어머니 〈푸른 산천〉을 네놈에게 순순히 내줄수 없다.)

보슬이는 한몸이 그대로 칼이 되여 불바람놈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보슬이는 너털웃음을 치는 불바람놈의 가슴에 복수의 얼음칼을 푹 박았습니다.

꽝 꽈르릉― 물과 불이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었습니다.

뒤이어 불바람놈이 피워올렸던 흙모래먼지를 씻어내며 시원한 단비가 《푸른 산천》에 내렸습니다.

보슬이는 자기 한몸을 바쳐 끝끝내 원쑤놈을 쳐없앴던것입니다.

단비를 먹은 《푸른 산천》은 다시금 자기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습니다.

산천은 예전처럼 젊어지고 푸른 들에는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꽃이 활짝 피였습니다.

떠나가던 꾀꼴새며 종달새들이 다시 모여와 고향을 지켜 한몸 바친 보슬이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구름나라에는 귀엽게 생긴 단비구름이 또 태여났습니다.

그 구름은 《푸른 산천》이 보낸 고운 물방울들이 모여서 생긴것인데 신통히도 보슬이처럼 귀엽고 마음 또한 보슬이처럼 아름다와서 산과 들, 강과 바다모두가 《우리 보슬이》라고 정답게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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