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9호에 실린 글
 

 

◇동 화◇

손 류 경
 

갖가지 옷들이 줄지어 나오는 어느 한 옷공장에서 나리라고 부르는 달린옷도 태여났습니다.

나리를 지은 재봉공엄마가 그 모습이 마치도 활짝 핀 나리꽃같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달아준거예요.

《나리야, 너는 귀여운 처녀애를 예쁘게 단장시켜 봄동산을 더 아름답게 하는 고운 꽃이 되거라.》

재봉공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나리를 고운 옷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거기서는 나리와 함께 태여난 여러가지 계절옷들이 모여서 백화점으로 떠날 시각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뭐, 백화점으로 가는것도 순서가 있다나요.

온몸에 까맣고 윤기도는 털이 북실북실한 옷이 나리를 보고 물었습니다.

《넌 누구니?》

《난 나리라고 해.》

《나리? 이름처럼 참 예쁘게 생겼구나. 내 이름은 털외투야. 까만 털외투. 멋있지…》

《뭐, 까만 털외투?… 호호, 이름두 정말 별나게 부르누나. 넌?…》

나리는 얼굴에 함뿍 웃음을 짓고 그옆에 서있는 뚱뚱보옷을 향해 물었습니다.

뚱뚱보옷이 함께 줄지어 선 동무옷들을 가리키며 대답했습니다.

《우린 폭신한 솜을 두고 누볐다고 해서 솜옷이라고 부른단다. 빨간 솜옷, 노란 솜옷, 파란 솜옷…》

나리는 그만 참지 못하고 또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글쎄 몸이 하나같이 실한 솜옷들이 저저마다 먼저 서겠다고 뚱기작거리며 싱갱이질하는 모양이 우스웠던거예요.

《얘, 웃지 말아. 우린 너처럼 날씬하진 못해도 따스한 온기로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겨울옷들이란다.》

《뭐, 겨울옷?!…》

나리는 그만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겨울이란건 또 뭐니?》

《그건 나두… 잘 몰라.》

파란 솜옷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누구도 대답하는 옷이 없었습니다.

옷공장에서 갓 태여난 옷들이니 어떻게 겨울이 뭔지 알수 있겠습니까.

이때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리랑 새옷들은 노래를 들으려고 바싹 귀를 강구었습니다.

노래는 창밖에서 들려오고있었습니다.

 

나는야 눈송이 하얀 눈송이

겨울에만 내리는 고운 눈송이

 

나리는 까만 털외투며 파란 솜옷이며 동무옷들과 함께 뽀르르 창가로 달려갔습니다.

창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있었습니다.

배꽃처럼 희고 솜같이 가벼운 눈송이들이 아득히 먼 하늘나라에서 땅세상으로 날아내리며 도란도란 부르는 노래소리였습니다.

 

따뜻한 봄에만 꽃이 피나요

겨울에도 곱게곱게 눈꽃 피워요

 

창가에서 발돋움을 하던 파란 솜옷이 동무옷들을 향해 웨쳤습니다.

《얘들아, 저길 좀 봐. 사람들이 다 우리같은 솜옷들을 입었어.》

《그래그래.》

동무옷들이 짝짜그르― 손벽까지 쳤습니다.

《글쎄, 재봉공엄마가 그러지 않았니. 겨울에는 우리 솜옷들이상 없다구.》

나리는 아래입술을 꼭 깨물었습니다.

자기라고 왜 겨울에는 소용없는 옷이겠습니까.

자기도 이제 백화점으로 가면 아마 뚱뚱보솜옷이나 털부숭이털외투보다 아이들의 사랑을 더 받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야말로 화창한 봄동산의 아름다움으로 겨울의 은빛세계를 더 눈부시게 장식해줄 이 세상 제일 고운 옷들중의 옷이니까요.

빵빵― 경쾌한 경적소리를 울리며 뻐스가 달려왔습니다.

뻐스에서 내린 옷걸이아주머니가 겨울옷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어서 뻐스에 타거라. 너희들은 이제 곧 이 도시에서 제일 큰 백화점으로 가게 된단다.》

《야!》

까만 털외투, 파란 솜옷이며 겨울옷들이 환성을 올리며 뻐스에 올랐습니다.

나리는 부러웠습니다.

그들은 이제 백화점으로 가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테니까요.

그러나 자기는 아직 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린다는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지루한 일이였습니다.

나리는 그만 귀여운 처녀애를 곱게 단장시켜 봄동산을 아름답게 꽃피우라던 재봉공엄마의 당부를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뻐스에 저저마다 먼저 타겠다고 뚱기작거리는 솜옷들짬에 살짝 끼워 나들문으로 올랐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셈을 세던 옷걸이아주머니가 나리를 보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아유, 어쩌면 요리두 깜찍하게 만들었을가.…》

나리는 응석부리듯 말하였습니다.

《옷걸이아주머니, 나도 백화점으로 데려다주세요.》

《암, 데려다줘야지, 데려다주구말구. 하지만 지금은 안돼.》

《왜 안되나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니까. 만약 어떤 애가 너하구 친해보렴. 단박에 온몸이 꽁꽁 얼거다.》

《어마나, 내가 이렇게 고운데두요?》

추위가 무언지 알리 없는 나리는 춤을 추듯 두팔을 벌리며 한바퀴 돌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활짝 핀 꽃송이처럼 보였습니다.

옷걸이아주머니는 황홀한듯 나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한손을 내저었습니다.

《에라, 그럼 요 깜찍한걸 한번 백화점에 데려가볼가.…》

《야,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야. 귀여운 애들이 널 데려가지 않는다고 불평을 부리면 안돼.》

《야, 알아요. 절대 안그래요.》

나리는 너무 기뻐 손벽을 치며 뻐스 맨 앞자리에 가앉았습니다.

(아주머니두 참, 귀여운 애들이 날 제일먼저 데려갈게 뻔한데 괜한 소릴… 나야 제일 고운 나리옷인데 아무렴 저 뚱뚱보솜옷이나 털부숭이털외투와 비길가?…)

나리네 동무들이 간 백화점은 마치도 강물우에 뜬 커다란 배처럼 멋지게 생긴 집이였습니다.

층층 매장들마다에는 갖가지 옷들이며 장난감이며 없는것이 없었습니다.

계단식승강기로는 백화점을 찾는 사람들이 끝없이 오르내렸습니다.

옷걸이아주머니가 새로 온 겨울옷들을 부지런히 옷매대에 걸어주었습니다.

나리도 제일 좋은 자리에 걸어주었습니다.

겨울에 나타난 나리의 모습으로 하여 옷매대에는 화창한 봄기운이 어리는듯 하였습니다.

나리가 있는 백화점의 아동옷매대로는 날마다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아빠, 엄마의 손목을 잡고 말이예요.

아이들의 눈길을 끌려고 털부숭이털외투며 뚱뚱보솜옷들이 몸을 뚱기적거릴 때면 나리도 한발 먼저 나서며 당실당실 춤까지 추었습니다.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불렀다고요.

 

나는나는 나리옷 고운 나리옷

봄동산을 단장하는 고운 나리옷

더 예뻐지려거든 날 데려가세요

 

매대에 모여선 아이들이 짝짜그르― 손벽을 쳤습니다.

그들중 한 처녀애가 나리에게로 걸어왔습니다.

나리는 자기를 가리키는 처녀애를 쳐다보았습니다. 순간 나리는 숨이 다 막히는것 같았습니다.

야, 그 처녀애는 얼마나 예쁘게 생겼을가요.

뽀얗게 우유빛이 도는 보름달같은 얼굴에 까만 눈이 별처럼 빛나는 참으로 이쁘장한 처녀애였습니다.

그 애가 커다란 거울앞에서 나리옷을 자기 몸에 대여보며 스스로도 황홀한듯 두눈을 깜빡거릴 때 나리는 자기의 소원이 금시 이루어지는듯 하여 가슴이 다 콩당거렸습니다.

깜장눈처녀애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난 이 나리옷이 좋아요.》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안돼, 지금같은 계절엔 털깃이 달린 저 털외투나 큼직큼직한 왕단추가 달린 솜옷이 더 고와보인단다.》

깜장눈처녀애는 아쉬운듯 나리를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참 고운 옷인데… 너두 털깃이랑 왕단추랑 달고있었으면 좋았을걸. 지금은 그런 옷을 입어야 한대.》

처녀애는 파란 솜옷을 사입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아쉬운듯 몇번이나 뒤돌아보았습니다.

《나리야, 잘있어.》

예쁜 처녀애의 사랑을 받게 된 파란 솜옷이 통통한 팔을 흔들었지만 나리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때처럼 재봉공엄마를 원망한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 엄마, 엄마는 왜 날 이렇게 만들어주었나요.…》

나리는 자기를 만들어준 재봉공엄마를 원망하며 흐느껴울었습니다.

그날 밤이였습니다.

깊이 잠든 겨울옷들사이를 살그머니 빠져나온 나리는 백화점의 이 매대, 저 매대를 갸웃거리며 오래동안 돌아다녔습니다.

털이 보슬보슬한 털목도리를 옷깃에 대여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왕단추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엇인가 소곤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나리가 왜 그러는지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윽고 나리는 이상하게 변해버린 모습으로 제자리에 척 가서 섰습니다.

다음날 아침이였습니다.

옷공장에서 새로 도착한 겨울옷들을 매대에 걸어주며 부지런히 돌아가던 옷걸이아주머니는 놀랐습니다.

아니, 글쎄 이상하게 생긴 옷이 맨 앞줄에 보란듯이 걸려있었던것입니다.

옷걸이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아니, 넌 누구냐?》

이상하게 생긴 옷이 대답했습니다.

《호호… 난 나리예요.》

《에구머니, 네가 나리라구?…》

옷걸이아주머니는 덴겁한듯 놀라며 이상하게 생긴 옷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빨간 꽃잎처럼 고운 깃을 댔던 자리에는 까만 털깃을 대고 앞자락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왕단추를 세알씩이나 척 달았습니다.

어디 그뿐인줄 아세요.

나리꽃처럼 봉긋하게 부풀던 치마자락에는 알룩달룩한 레스가 물결치니 나리의 어제날 모습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옷걸이아주머니는 나리에게 황황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거짓말 말아. 나리가 얼마나 고운 애라구. 너무두 고와서 내가 제 철두 아닌 때 여기까지 데려왔댔는데… 그런데 이 애는 어딜 갔나? 도깨비같은 옷이 나타나 제 이름을 팔구 다니는데… 참.》

(도깨비같은 옷?)

나리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자기가 왜 도깨비란 말입니까. 멋진 털깃이며 왕단추를 척 달았는데요. 그리구 치마는 화려한 레스로 장식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나리는 제몸을 내려다보며 뾰로통해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도깨비일게 뭐야. 털깃을 달았으니 털외투라 해두 되구 왕단추를 달았으니 솜옷이라 해두 되겠는데. 참 아주머니두.…》

나리가 마뜩지 않아 왼새끼를 꼬고 창문밖을 내다보는데 털외투며 솜옷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습니다.

《얘, 너 좀 저리 구석에 비켜라, 어서.》

《너때문에 우리까지 망신하겠다.》

나리는 그 말에 화가 났습니다.

《뭐라구? 안돼, 내가 왜 구석에 간단 말이야?》

《얘야, 너 자리를 잘못 찾아온것 같은데 제발 좀 비켜주렴. 백화점이 문 열 때가 됐다.》

옷걸이아주머니가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왜 그래요. 난 나리예요, 나리.》

나리가 치마자락을 쳐들고 안타까이 말해도 옷걸이아주머니와 동무들은 믿을념을 안했습니다.

《얘, 그런 거짓말하면 못써.》

그러는 사이에 백화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계단식승강기를 타고 3층에 있는 옷매대에도 올라왔습니다.

옷매대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양새 곱고 철에 어울리는 계절옷을 고르느라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명절날처럼 흥성거렸습니다.

나리는 그들앞에 척 나섰습니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말이예요.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습니다.

 

나는나는 나리옷 고운 나리옷

봄동산을 단장하는 고운 나리옷

 

순간 옷매대가 떠나갈듯 폭소가 터졌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우스워서 배를 안고 돌아갔습니다. 어른들도 웃었습니다.

아마 웃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던가봐요.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건 무슨 옷이나요?》

《글쎄.… 깃은 외투깃을 달구 단추는 솜옷단추를 달았으니 통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아이들은 아버지에게도 물었습니다.

《아빠, 저건 무슨 옷이나요?》

《모르겠다. 목엔 털깃을 달았는데 치마에는 레스가 물결치니 머리가 다 빙빙 도는구나.》

나리는 그만 억이 막혀 매대안으로 뛰여들었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었습니다.

옷걸이아주머니가 다가왔습니다.

《원참, 별 도깨비같은 옷때문에 우리 옷매대가 망신을 당했구나.》

옷걸이아주머니는 막무가내로 나리를 뻐스에 태워 옷공장으로 데리고갔습니다.

나리는 공장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였습니다.

《아이참, 이런 옷은 누가 만들었을가.…》

하하하, 호호호…

재봉공엄마들은 너무도 우스워 허리를 펴지 못했습니다.

나리는 너무도 부끄러워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들해있는 나리를 찬찬히 눈여겨보는 재봉공엄마가 있었습니다.

그 엄마는 조용히 다가와 나리를 만져보더니 물었습니다.

《넌 내가 만든 나리가 옳지? 어떻게 된거냐? 그 고운 모습은 어데 가구 이건 무슨 꼴이냐?》

나리는 주먹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그동안 있은 일을 죄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댔구나.》

재봉공엄마는 나리가 마구 붙였던 털깃이랑 왕단추, 레스따위를 다 떼내고 본래의 모습대로 나리를 곱게 손질해주었습니다.

《자, 봐라. 다시 찾은 제 모습을…》

나리는 부끄러운듯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슬을 머금고 피여난 숲속의 나리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거울속에서 마주보고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운지 스스로도 눈부실 지경이였습니다.

《나리야, 넌 봄동산에서만 필수 있는 나리꽃이란다. 털깃이나 왕단추를 단다고 절대로 털외투나 솜옷이 될수 없어. 남의 흉내를 내다가는 제 신세를 망치게 된단다.》

재봉공엄마의 살뜰한 말에 나리는 푹 수그렸던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재봉공엄마는 자기를 뉘우친 나리를 품에 안으며 말했습니다.

《나리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도 다 때가 되면 빛나는 법이란다. 기다려라. 이제 봄이 오면 이 도시의 예쁜 애들이 모두 너만을 찾을게다. 너의 모습으로 하여 봄동산은 더 아름다와질거구.》

《야, 정말. 그날이 빨리 왔으면…》

나리는 두손을 꼭 마주쥐며 서리꽃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기다리던 봄이 왔습니다.

나무가지마다 새움이 트고 백화점의 매대들에서는 겨울상품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3층에 있는 옷매대에도 화창한 봄날에 맞는 새옷들이 전시되여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옷매대의 상품들중에서는 물론 나리의 모습이 제일 고왔습니다.

그후 나리는 어떻게 되였을가요?

언젠가 나리옷을 들고 거울앞에 섰던 그 처녀애가 데려갔답니다. 파란 솜옷을 입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아쉬운듯 자꾸만 뒤돌아보던 그 예쁜 처녀애가 말이예요.

여러분들속에서 혹시 나리를 보고싶은이가 있으면 봄을 맞는 도시의 거리로 나오세요.

그리고 나리옷을 입고 춤을 추듯 걸어가는 예닐곱살쯤 됐음직한 처녀애들을 눈여겨보세요.

그들중에서 제일 예쁜 처녀애가 입은 빨간 달린옷이 바로 나리랍니다.

(선교은하피복공장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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