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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7호에 실린 글
◇장편동화◇
(이 작품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동화로 옮긴것입니다.)
그림 전학철, 량수일 7
으리으리한 물나라궁전앞에 이르자 번쩍거리는 궁전대문이 찌쿠덩ㅡ 하고 열리며 기다리고있었던듯 물나라할머니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물나라할머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우에 올려놓은 커다란 족두리와 옷에서 진귀한 진주보석들이 별빛처럼 번쩍거리였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물나라할머니는 손녀한테로 다가오며 물었습니다. 물나라소녀는 고개를 숙여 사뿐 인사를 하고나서 해남이를 가리키며 늦어진 사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실은 이 동자가 아니였다면 영영 물나라로 돌아오지 못할번 했어요.》 《아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냐?》 물나라할머니는 저으기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해남이한테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물나라소녀는 물밖에 나갔다가 있었던 일을 할머니에게 죄다 말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물나라할머니는 해남이한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습니다. 《음, 그러니까 옥가락지를 찾아준 은혜를 갚자고 이 동자를 데리고왔나보구나.》 그 말에 물나라소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아니예요. 옥가락지를 찾아준 일도 고마운 일이지만 알고보니 이 동자가 화공이기에 데려왔어요.》 《뭐, 화공이라구?》 물나라할머니는 화공이라는 말에 대뜸 반색을 지었습니다. 해남이는 자기를 두고 동자니 화공이니 하고 불러주니 어쩐지 쑥스러운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빨리 도와주고싶은 생각이 나서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싶습니다.》 《음, 보아하니 아주 착한 마음을 지닌 동자같구나.》 물나라할머니는 정깊은 눈길로 해남이를 바라보더니 넓다란 궁전안으로 데리고갔습니다. 정원에는 이름모를 갖가지 나무들과 꽃들이 수없이 피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원 한가운데 꽃도 피지 않고 잎도 없이 마른 삭정이처럼 가지만 앙상한 나무가 한그루 있었습니다. 물나라할머니는 곧바로 그 나무앞으로 다가가 걸음을 멈추더니 해남이를 돌아보며 말하였습니다. 《이 나무는 천수화라고 부르는 아주 진귀한 꽃나무라네.》 (이 나무가 바로 천수화였구나.) 해남이는 호수가에서 물나라소녀한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나 유심히 꽃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꽃나무를 살펴보는 그의 귀가에 물나라할머니가 하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지금 하늘나라 임금이 아주 중한 병에 걸려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이니 큰일이 아니겠나. 그런데 용한 의원들을 불러다 알아보니 글쎄 우리 물나라에만 있는 이 천수화꽃향기를 맡아야만 고칠수 있다는것이 아니겠나. 그래 이 천수화에 꽃을 피워야겠기에 동자를 데려온거라네.》 물나라할머니는 기대어린 눈길로 해남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꽃을 피우겠습니까?》 해남이는 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물나라할머니는 해남이의 속마음을 알아차린듯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말하였습니다. 《이 천수화는 천년에 한번씩 꽃이 핀다네. 그래서 이름을 천수화라고 부르지. 그러나 천년이 되기 전에도 꽃을 피울수 있는 방도가 있다네.》 《그래요? 어떻게 하면 꽃을 피울수 있나요?》 《동자는 수평선우로 불덩이같은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본적이 있겠지?》 《예.》 해남이는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고향마을인 달미포에서 자주 보아왔던것입니다. 《그럼 됐네. 그 모습을 그려주게. 이 천수화꽃나무는 이상하게도 수평선우로 솟아오르는 불덩이같은 둥근해를 신통히 꼭같이 그린 그림을 가까이 가져가야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여난다네. 정말 이상한 꽃나무일세.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그저 그림속에 그려진 불덩이같은 해가 조화를 부려 그렇게 된다고 전해오고있을뿐이라네.》 물나라할머니의 말에 해남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습니다. 《물나라엔 그걸 그릴만 한 화공이 없습니까?》 물나라할머니는 낯색을 흐리며 한숨을 내쉬고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우리 물나라엔 오랜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아주 신기한 무지개연적이 있었다네. 그건 하늘나라에서 가져온것이였는데 보물중에서도 제일 으뜸가는 보물이였지. 그 연적에 붓을 담그어 꽃을 그리면 그림속의 꽃이 향기가 풍기는 진짜꽃으로 변했다네. 꽃뿐이겠나. 무엇이든지 마음먹은대로 생겨나게 할수 있었지. 그 신기한 연적을 도미화공이 가지고있었다네. 도미화공의 그림재주는 정말 뛰여났었다네. 그림을 신통히도 꼭같이 그렸으니까. 아마 도미화공이 아니였다면 신기한 연적이 은을 내지 못했을거네. 도미화공은 우리 물나라에서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 그런데 도미화공이 가지고있는 신기한 연적을 탐내는 흉측한 놈이 생겨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글쎄 그림그리는 재주도 변변치 못한 자라놈이 아닌밤중에 누구도 몰래 도미화공한테 있는 신기한 연적을 훔쳐갔다네. 얼마후 신기한 연적을 잃고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던 도미화공이 마침내 자라가 훔쳐갔다는걸 알게 되였다네. 싸움이 벌어졌지. 내라거니 없다거니 하며 처음엔 둘이서 옥신각신하던것이 무시무시한 싸움으로 번져졌다네. 도미란 도미는 모두 모여들어 한편이 되고 자라네는 자라네대로 지지 않겠다고 몽땅 떨쳐나 싸움판에 뛰여들었네. 어찌나 싸움이 크게 번져졌는지 궁전이 통채로 흔들거리는 판이였네. 하늘나라 임금이 이 일을 알게 되였네. 대노한 임금님은 큰벌을 내렸네. 자라놈이 훔쳐갔던 신기한 연적은 다시 하늘나라로 가져가고 그것을 훔쳐갔던 흉측한 자라놈과 그 족속들은 모두 곤장 백대씩 쳐서 물나라지경밖으로 내쫓았다네. 그때 어찌나 혼쌀이 났는지 그후부터는 누구도 화공이 될 엄두를 내지 못한다네.》 물나라할머니는 사연을 말하고나서 《그래, 그림을 그려주겠나?》 하고 기대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썩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해남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정말 고맙네.》 물나라할머니는 해남이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흰 비단천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붓을 손에 잡은 해남이는 비단천을 앞에 놓고 두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 멀리 수평선우로 솟아오르는 불덩이같은 해가 손에 잡힐듯 방불하게 떠올랐습니다. 눈을 번쩍 뜬 해남이는 힘있게 붓을 놀리였습니다. 달미포앞바다에 솟아오르군 하는 해와 신통히도 꼭같은 그림이 비단천우에 그려졌습니다. 그림을 다 그렸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그림속의 불덩이같은 해에서 눈부신 빛발이 사방으로 뿜어져나왔습니다. 물나라할머니는 해남이가 그린 그림을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눈부신 빛발은 천수화꽃나무를 환하게 비치였습니다. 그러자 가지만 앙상하던 천수화꽃나무에 어느새 푸른 잎이 돋아나 무성해지더니 탐스러운 꽃이 활짝 피여났습니다. 그 꽃은 함박꽃보다도 더 곱고 장미꽃보다도 더 그윽한 향기를 풍기였습니다. 《얘야, 천수화나무에 꽃이 피는구나! 이것 참 경사로다! 어서 은별선녀한테 알려라!》 물나라할머니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고 옆에 있는 물나라소녀한테 말하였습니다. 물나라소녀는 날듯이 달려가 은별선녀를 데려왔습니다. 천수화나무에 핀 꽃을 가져가려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던 은별선녀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천수화나무에 꽃이 피였나요?》 천수화나무에 핀 꽃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던 은별선녀가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 물나라할머니한테 물었습니다. 《이 동자덕이라네. 참 고맙기란 이를데 없지!》 물나라할머니는 한옆에 말없이 얌전히 서있는 해남이를 가리키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울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요?》 은별선녀는 감동어린 눈길로 해남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참, 동자는 어디로 가던 길이였나?》 물나라할머니는 그제야 생각이 난듯 해남이한테 물었습니다. 《옥계담으로 가던 길이였습니다.》 《옥계담에? 거긴 무슨 일로 가려 했나요?》 은별선녀가 고운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호기심이 동해 물었습니다. 해남이는 지금까지 마을에서 벌어진 일과 옥계담으로 찾아가게 된 사연을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은별선녀를 찾아가는 길이였군. 이거 정말 마침일세. 동자가 찾는 선녀가 바로 이 은별선녀라네.》 물나라할머니는 하마트면 길이 엇날번했다고 하면서 해남이에게 은별선녀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해남이는 물나라에서 선녀를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몰랐습니다. 《은별선녀야, 이 동자한테 하늘나라에 있는 그 신기한 연적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네 생각은 어떠냐? 이자 보니 정말 그림재주가 뛰여난 화공이구나.》 물나라할머니가 은별선녀한테 자기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글쎄 그랬으면 좋겠는데 하늘나라 임금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니 제 마음대로 할수가 없군요. 제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임금님께 여쭈어보겠어요. 임금님도 천수화에 꽃을 피운 동자인줄 알면 꼭 주실거예요.》 은별선녀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품에서 자그마한 뿔나팔을 꺼내 해남이한테 주었습니다. 《옥계담에 가면 이 뿔나팔을 부세요. 그럼 제가 내려가겠어요.》 해남이는 은별선녀가 주는 뿔나팔을 소중히 간수하였습니다. 그때 물나라할머니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물나라소녀를 불렀습니다. 《얘야, 얼른 가서 보물함에 있는 보석신발을 가져오너라.》 《알겠어요.》 물나라소녀는 보물함이 있는 방으로 사뿐사뿐 걸어갔습니다. 얼마후 물나라소녀는 보석신발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물나라할머니는 보석신발을 해남이한테 주며 말하였습니다. 《이 보석신발을 받게. 옥계담으로 가려면 반드시 얼음산을 넘어야 한다네. 그 얼음산은 이 보석신발이 없인 도저히 넘을수 없다네.》 《고맙습니다.》 해남이는 물나라할머니가 주는 보석신발을 받아 소중히 간수하였습니다. 얼마후 해남이는 뿔나팔과 보석신발을 가지고 물나라할머니와 은별선녀, 물나라소녀의 바래움을 받으며 물나라궁전을 떠났습니다. 물나라에서 밖으로 나온 해남이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도는 하늘가에서 노고지리의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있었습니다. 엷은 구름에 가리웠던 둥근해가 머리를 갸웃이 내밀자 금빛해살을 받은 보석신발이 눈부신 빛을 뿜었습니다. 보석신발에 정신이 팔렸던 해남이는 뿔나팔로 눈길을 옮겼습니다. 활등처럼 비스듬히 휘여든 뿔나팔을 보자 입에 가져다대고 한번 불어보고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그러나 꾹 참았습니다. 은별선녀가 한 말이 생각났던것입니다. (빨리 옥계담으로 가야지.) 해남이는 보석신발과 뿔나팔을 보자기에 돌돌 말아 등에 걸머지고 옥계담을 찾아 떠났습니다. 고개를 넘고 떨기나무숲을 지나 산마루에 오르니 머리에 흰눈을 가득 떠인 얼음산이 바라보였습니다. 그 얼음산을 넘어야 옥계담으로 갈수가 있었습니다. 해남이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으며 부지런히 얼음산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8
해남이와 헤여져 옥계담으로 가는 바우의 걸음은 날개라도 돋친듯 하였습니다. 그는 한시바삐 은별선녀를 만나 신기한 무지개연적을 얻고싶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청룡산의 호랑이를 얼마든지 그릴것 같았습니다. 《얘야, 좀 천천히 가자꾸나. 이거야 어디 힘들어 따라가겠니.》 뒤따라오던 꿍꿍할미가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도 참…》 바우는 꿍꿍할미를 안타까운 눈길로 뒤돌아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안되겠어요. 그래가지구서야 어떻게 저 얼음산을 넘겠어요.》 바우는 저 멀리에 솟아있는 얼음산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연적인지 뭔지 얻기가 조련치 않구나.) 꿍꿍할미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허청허청 걸음을 내짚었습니다. 얼마후 얼음산밑에 이른 바우는 숨돌릴사이없이 얼음산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나 매끄러운지 도무지 발을 붙일수가 없었습니다. 몇번이나 오르다 미끄러져 궁둥방아만 찧었습니다. 《무슨 망할 놈의 산이 이렇게 얼음만 덮였담.》 꿍꿍할미가 골살을 찌프리며 두덜거렸습니다. 《이대로는 얼음산을 못 넘겠어요. 어데 다른 길은 없나요?》 바우가 맥이 풀려 얼음산을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꿍꿍할미는 《그걸 내가 알게 뭐냐?》 하고 소리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습니다. 자기가 길을 잘 안다고 하면서 길안내를 나선 일이 생각났던것입니다. 꿍꿍할미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말하는걸 귀동냥해들었을뿐이였습니다. 꿍꿍할미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머리를 저었습니다. 바우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얼음산을 올려다보면 볼수록 하늘높이 까마득하게만 보였습니다. 이런 때 해남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싶었습니다. 바우는 해남이 생각이 간절하게 났습니다. 물나라에 간 해남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이때 어디선가 바람결에 《바우야.》하고 찾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를 강구니 《바우야!ㅡ》하는 소리가 산울림하며 또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분명 해남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니, 해남이가?…》 바우는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물나라소녀를 따라갔던 해남이가 이렇게 빨리 따라올줄은 생각도 못했던것입니다. 얼마후 정말 해남이가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바우와 꿍꿍할미앞에 나타났습니다. 《바우야!》 《해남아!》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떨어질줄을 몰랐습니다. 불과 며칠 안되였지만 몇달만에 만난듯 기뻤습니다. 해남이는 숨을 돌리고나서 바우와 꿍꿍할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다 말해주고나서 등에 지고있던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보자기를 풀자 눈부신 빛발이 뿜어나왔습니다. 보석신발에서 뿜어나오는 빛이였습니다. 《그게 뭐냐?》 꿍꿍할미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습니다.
《이 보석신발은 물나라할머니가 준거예요. 그리고 이 뿔나팔은 은별선녀가 준거구. 이것만 있으면 얼음산도 얼마든지 넘을수 있고 옥계담에 가서 하늘의 선녀도 만날수 있어요.》 바우와 꿍꿍할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듯이 해남이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해남이한테서 사연을 듣고난 바우와 꿍꿍할미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좋아했습니다. 《이걸 신으면 저 얼음산을 넘을수 있단 말이지.》 바우는 보석신발을 집어들며 당장 얼음산을 넘자고 했습니다. 《참 애두. 우물을 들고 마시겠구나. 그렇게 덤비는게 아니다.》 꿍꿍할미가 곁에서 끌끌 혀를 차며 바우를 나무람했습니다. 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무엇인가 생각하고난 꿍꿍할미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저 해를 봐라. 벌써 서산에 가서 걸리지 않았느냐. 옛날부터 지는해를 등에 지고 길을 떠나지 말랬다. 넘어진김에 쉬여간다구 이왕 늦어진바에는 여기서 하루밤 쉬구 래일 아침에 떠나도록 하자꾸나.》 해남이는 《약초캐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보니 그 말이 틀리는것 같지 않아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애요. 바우야, 덤비지 말고 할아버지의 말대로 하자.》 바우는 머리를 들어 하늘에 뜬 해를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해는 벌써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있었습니다. 그는 떠나자고 더 고집을 부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있는 동굴에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느덧 서쪽하늘가에 비꼈던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뜬 쪼각달이 희미한 빛을 뿌려주고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꿍꿍할미는 바우와 해남이가 어서 잠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골똘히 생각을 굴리였습니다. (저 애가 거짓말은 안할테지. 이제 저 보물들을 훔쳐가지고 얼음산을 넘어가야지. 하늘의 선녀를 옥계담에 내리게 하고는 흐흐흐…) 꿍꿍할미는 하마트면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낼번 했습니다. 황급히 입을 싸쥔 꿍꿍할미는 머리를 가만히 들고 바우네쪽을 흘깃 훔쳐보았습니다. 잠이 들었는지 둘 다 잠잠했습니다. 꿍꿍할미는 다시 생각을 굴리였습니다. (이제 신기한 무지개연적을 손에 넣으면 그걸 어떡한다? 고분고분 두령한테 가져다바쳐?… 아니야, 무지개연적에 붓을 담갔다가 그림을 그리면 진짜로 변한다니 그걸로 금은보화를 가득 솟게 해야지. 금은보화만 있으면야 뭣때문에 두령밑에서 괄세를 받으며 졸개노릇을 할고. 마술지팽이를 잃었으니 죽을지도 모를판에…) 꿍꿍할미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저, 할아버지.》 하고 찾는 해남이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꿍꿍할미는 무얼 훔치다가 들킨 때처럼 와뜰 놀라며 해남이쪽으로 머리를 돌리였습니다. 《왜 그러느냐?》 《갑쇠형님이랑 모두 마을에 무사히 돌아갔을가요? 곰한테 다친 상처는 어떻게 됐을가요?》 《어떻게 되긴, 다 나았겠지. 공연한 걱정을 말고 어서 자거라. 래일 얼음산을 넘으려면 푹 쉬여야 하느니라.》 꿍꿍할미는 속생각이 드러날가봐 태연한 기색을 지으며 해남이를 타일렀습니다. 한동안 잠자코있던 해남이가 또 물었습니다. 《저, 곰한테 다친 갑쇠형님의 상처가 정말 다 나았을가요?》 《아, 낫구말구. 그런데 넌 왜 잘 생각을 하지 않느냐. 그러다가 꼬박 밤을 밝히겠구나. 어서 자거라.》 꿍꿍할미가 큰 생각이나 해주듯이 말했습니다. 《네, 자겠어요.》 좀 있어 가랑가랑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남이도 바우도 인차 굳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이 잠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꿍꿍할미는 자리에서 움쭉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해남이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해남이는 보석신발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품에 꼭 안고있었습니다. 꿍꿍할미는 살그머니 해남이의 품에서 보따리를 빼냈습니다. (흐흐흐, 이젠 됐구나.) 보석신발과 뿔나팔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손에 넣은 꿍꿍할미는 입이 터진 팥자루처럼 벌어졌습니다. 꿍꿍할미는 보따리를 움켜쥐고 서둘러 동굴을 빠져나왔습니다. 동굴밖에 나온 꿍꿍할미는 보자기를 풀고 보석신발을 꺼내신었습니다. 좀 작은감은 있어도 발가락을 꼬부리고 억지로 밀어넣으니 그런대로 들어갔습니다. 좀 아파도 참을만 했습니다. 보석신발을 신은 꿍꿍할미는 선자리에서 팽그르르 맴돌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약초캐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대신 해남이의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꿍꿍할미는 샘터로 내려가 자기 모습을 비쳐보았습니다. 신통히도 해남이와 꼭같았습니다. (흐흐, 이만하면 하늘나라 선녀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가겠지.)
얼음산은 산세가 매우 험했습니다. 깎아지른듯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바위들은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있었습니다. 얼음산을 쳐다보니 바우와 함께 얼음산을 넘으려고 발을 들여놨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기만 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보석신발을 신고 얼음산을 오르니 조금도 미끄럽지 않았습니다. 더우기 신기한것은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지는것이였습니다.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몰랐습니다. 꿍꿍할미는 어느사이에 얼음산정수리에 올라섰습니다. 얼음산을 넘어 얼마쯤 가자 옥계담이 나타났습니다. 옥계담은 한폭의 그림마냥 아름다운 못이였습니다. 실바람을 타고 찰싹찰싹 잔파도이는 물결우에서 젖빛안개가 비단필 날리듯이 하느적하느적 춤을 추고있었습니다. 연초록빛으로 물들여진 못은 얼마나 맑고 정갈한지 손을 잠그면 금시 손톱에 파아란 물이 들것 같았습니다. 꿍꿍할미는 이처럼 아름다운 못은 난생처음 봤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경치에 취해있을수가 없었습니다. (빨리 선녀를 찾아야지.) 꿍꿍할미는 부랴부랴 뿔나팔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입에 대고 힘껏 불었습니다. 《뿌웅ㅡ》 은은한 뿔나팔소리가 멀리 하늘가로 울려갔습니다. 그러자 문득 동녘하늘가에 칠색빛이 어리더니 령롱한 무지개다리가 옥계담으로 쭉 뻗어내려왔습니다. 그 무지개다리를 타고 은별선녀가 하르르한 날개옷을 펄럭이며 날아내려왔습니다. 은별선녀의 손에 쥐여진 복숭아모양의 동실한 연적에서는 눈부신 무지개빛발이 뿜어져나오고있었습니다. 꿍꿍할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저게 바로 신기하다는 무지개연적이로구나.) 꿍꿍할미는 얼른 은별선녀앞에 나서며 깍듯이 인사를 차렸습니다. 《그동안 잘있었나요?》 꿍꿍할미는 샐쭉 웃으며 은별선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은별선녀는 꿍꿍할미를 보자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날 모르겠나요. 물나라궁전에서 천수화에 꽃이 피도록 한 해남이예요. 그때 나한테 신기한 무지개연적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자, 어서 그 무지개연적을 주세요.》 꿍꿍할미는 은별선녀앞으로 한발 나서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해남이라구요?》 은별선녀는 쓴웃음을 짓더니 쌀쌀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내앞에서 그런 거짓말은 그만둬요. 아무리 변신술을 써도 하늘나라에 사는 우리 선녀들의 눈은 못 속여요. 내 눈에는 당신이 해남이가 아니라 파파늙은 마술쟁이할미로 보여요.》 (엉?!) 은별선녀의 말에 꿍꿍할미는 와뜰 놀라며 내밀었던 손을 움츠렸습니다. 은별선녀는 오금을 박아 말하였습니다. 《명심해요. 훔친 뿔나팔을 돌려주지 않으면 하늘에서 무서운 벌이 내릴거예요.》 말을 마친 은별선녀는 날개옷을 펄럭이며 무지개다리를 타고 하늘나라로 사라졌습니다. 《배라먹을년 같으니!…》 꿍꿍할미는 분통이 터져올라 하늘나라로 사라지는 은별선녀를 올려다보며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마구 퍼부었습니다. 신기한 무지개연적을 눈앞에 보면서도 손에 넣지 못한걸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꿍꿍할미는 쉽게 물러설 할미가 아니였습니다. 꿍꿍할미는 이발을 사려물고 옥계담에서 되돌아섰습니다. 그의 눈에 싸늘한 바람이 일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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