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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6호에 실린 글
□수 기□
사랑의 《우리 교실》에서 성장해온
리 준 길
웃방에서 손자애의 글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쓰던 글을 멈추고 그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동시 《우리 교실》을 외우는 소리였다.
아름다운 교실 언제나 재미나는 교실 앞에는 원수님초상화 환하게 모셔져있지요 …
가만히 듣고있느라니 뜨거운 감회에 가슴이 쩌릿이 젖어든다. 저만 한 나이때 내가 본 바로 그 작품이 아닌가! 그후 지난 70년대, 80년대에는 나의 아들딸들이 그것을 읽는걸 보았었는데… 그런데 오늘은 손자애가 그 작품을 읽고있다. 세월은 참으로 얼마나 많이 흘러왔는가!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우고 이 세상의 좋은것이라면 다 그들에게 돌려주고계신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와 전후복구건설시기에 걸치는 나의 소학교시절은 멀리 신해방지구인 판문군에서 흘러갔다. 그 시절이 절로 돌이켜진다. 준엄한 시기였지만 당의 따사로운 해빛아래 우리는 중단없이 학업을 계속할수 있었다. 2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온전한 교실이 따로 없이 이 마을 저 마을 옮겨다니며 공부했지만 전쟁이 끝난 이듬해 봄부터는 덩실하게 일떠선 새 학교의 해빛밝은 교실에서 배움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나갈수 있었다. 내가 새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주체43(1954)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나만은 따로 불러내가지고 교원실로 데리고갔다.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쌍태머리를 한 애젊은 처녀선생님이였는데 문학을 참으로 좋아했다. 어데서건 틈만 있으면 앉아 책을 읽었으며 책에서 읽은 소설이나 동화, 사화 같은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기를 즐겨했다. 내가 거기에 무척 호기심을 보이자 선생님은 나에게 드문히 책을 빌려주군 했다. 그래서 나는 이날도 선생님이 또 무슨 소설책을 빌려주려는게구나 짐작하고 좋아서 따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늬때 주군 하던 그런 소설책이 아니였다. 겉가위에 《아동문학》이라고 씌여진 처음 보는 잡지 대여섯권을 꺼내놓는것이였다. 그해에 나온 《아동문학》잡지들이였다. 선생님은 그가운데 들어있는 학생작품 몇편을 골라내여 보여주면서 이렇게 좋은 글을 지어보고싶은 생각이 없는가고 물었다. 나는 입만 벙끗했을뿐 대답을 못했다. 애어린 시골소년인 나로서는 엄두조차 내기 두려웠던것이다. 바로 그 작품들가운데 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히 지으신 동시 《우리 교실》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작품을 소리내여 읽어주면서 전쟁을 이겨낸 우리가 아버지원수님의 사랑과 배려로 새 교실에서 마음껏 공부하게 된 자랑과 긍지감을 얼마나 잘 그려냈는가, 글짓기를 어렵게만 생각지 말고 그처럼 자기가 보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써버릇하면 된다고, 이제 며칠안으로 동시를 한편 꼭 써가지고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날 나의 심정은 어떠했다고 해야 할지… 가슴이 마냥 울렁거렸던것 같다. 결코 두려워서 그런것이 아니였다. 아직은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조차 제대로 알고있지 못하면서도 나는 글을 지어보고싶은 욕망이 자꾸자꾸 치밀어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작품을 몇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나무밑에서》라는 동시 한편을 써가지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내가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써본 문학작품이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시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서툰 작품이였지만 선생님은 아주 잘 썼다고 칭찬하고는 학생들앞에서 읽어주기까지 했다. 그날 나는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나의 문학수업의 첫걸음은 이렇게 떼여졌다. 그무렵 나는 어느 하루도 생각없이 교실문을 열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설 때면 불후의 고전적명작 동시 《우리 교실》이 문득 생각나면서 숭엄한 마음으로 아버지대원수님의 초상화를 우러러보게 되군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대원수님께서는 우리를 반겨맞으시며 공부 잘하라고 타일러주시는듯… 새 나라의 착한 아이들이 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는듯… 그 교실에서 나는 책도 많이 읽었고 작문과 동요, 동시도 부지런히 썼다. 그것 역시 모두 서툰 작품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나마 자꾸 쓰는 과정에 재능의 싹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랐을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어찌 나 하나만이랴. 나와 한부서에서 일하는 동년배의 아동시인과 동화작가도 신통히 같은 말을 했다. 그들 역시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불후의 고전적명작 동시 《우리 교실》을 감명깊게 읽었다고, 그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창작의 첫걸음마를 뗐노라고 하는것이였다. 동년배들뿐이 아닐것이다. 그 이후에 작가로 성장한 우리 후배들도 모두 그렇게 문학창작의 첫발을 내짚었으리라.… 내가 불후의 고전적명작 동시 《우리 교실》을 처음으로 받아안고 감동속에 읽던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러 어언 쉰다섯해! 그 쉰다섯해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기나긴 그 나날 나는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위대한 대원수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해빛밝은 사랑의 《우리 교실》에서 마음껏 문학공부를 해왔구나, 마음껏 창작활동을 하면서 성장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절로 가슴이 뜨거워오른다. 그 사랑, 그 은덕에 비하면 해놓은 일이 너무나도 적은것만 같아 송구함을 금할수 없다. 하기에 나는 지금 비록 로년기에 이르기는 했지만 더 좋은 작품을 써서 다문 얼마라도 그에 꼭 보답해야겠다는 결심뿐이다.
작가동맹중앙위원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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