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6호에 실린 글

 

□수 기□

 

고마운 명작동시에 드리는 인사

                                             

                                                   김 청 일

                                                

해빛도 따사로운 4월의 어느날 아침, 나는 평양제4소학교로 찾아가고있었습니다.

길가에 나란히 서있는 살구나무와 진달래꽃망울을 보니 저저마다 방금 피여날듯 앞을 다투어가며 첫 꽃잎들을 방긋이 벌리고있었습니다. 아마도 어여쁜 봄꽃들도 내 마음처럼 이제 세밤만 자면 밝아올 태양절날을 손꼽아 기다리는것 같았습니다.

제일 기쁜 봄명절 아침에 모두 먼저 피여나 아껴두었던 꽃향기를 함뿍 풍기자고 약속이나 한듯이 말입니다.

이윽고 그 이름도 유정한 평양제4소학교의 교문이 정답게 안겨왔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소학시절을 보내신 평양제4소학교!

나는 교문으로 들어서며 마음속으로 이런 결심을 다졌습니다. 앞으로 어버이장군님께서 공부하신 학교를 노래한 동시초를 선군시대의 명작으로 기어이 써내고말리라, 그리고 왔던김에 문학수재동이들의 새싹들도 찾아내고 《꼬마시인》들이 쓴 동요동시들도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힘껏 지도해주리라.…

나는 강사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혁명사적교양실로 들어갔습니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니 나어리신 장군님의 빛나는 영상이 밝은 빛을 뿌려주며 반겨주었습니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어린시절의 장군님의 영상을 오래동안 우러러보았습니다.

강사선생님은 교양실에 놓여있는 귀중한 사적물들에 깃들어있는 가슴뜨거운 사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하얀 벽에 걸려있는 소개판에 동시 《우리 교실》이 큰 글씨로 씌여져있고 그앞에 놓여있는 유리함속에는 동시가 실린 낯익은 《아동문학》잡지가 펼쳐져있었습니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동시 《우리 교실》을 보는 순간 나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환성이 터져오르고 못 잊을 추억이 떠올라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마치 옛 《스승》을 다시 뵈옵는듯… 설레이는 가슴은 경모의 정으로 한껏 부풀어오르고 높뛰는 심장은 이렇게 속삭여주는것 같았습니다.

(이 불후의 고전적인 명작동시는 너를 아동시인으로 키워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인사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바쁘게 책상우에 원고지를 펴놓고 깊은 감회에 잠겨 이 글을 쓰게 되였습니다.

 

흘러간 추억 몇토막

 

잊지 못할 그날은 언제였던가. 그 누구인가 말하기를 사정없이 흘러가는 해와 달은 강물과 같다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엊그저께같은데 어느새 벌써 쉰하고도 다섯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때 나는 소학교학생이였습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아동문학》잡지(1954년 6호)를 주며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너는 앞으로 아동시인이 되고싶어하지. 여기에 실린 동시 <우리 교실>을 보거라. 소학교 4학년 학생이 쓴 동시인데 참 잘 썼다.…》

담임선생님은 감상문도 쓰고 다음번 글짓기시간에 동무들앞에 나가서 랑송하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드디여 기다리던 글짓기시간이 왔습니다. 나는 가슴을 쭉 펴고 교탁앞에 나가 동시를 랑송하였습니다.

시랑송이 끝나자 반동무들은 짝짜그르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야ㅡ 정말 멋지게 쓴 동시로구나.》

《어쩌면 우리 교실과 꼭같은 교실을 노래했을가.》

《우리 마음을 그대로 담고있구나.》

반동무들은 신바람이 나서 조잘대다가 약속이나 한듯이 교실앞에 모신 아버지원수님의 초상화를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날부터 중학시절에는 말할것도 없고 고급중학교시절과 대학시절에도 아니,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명작동시는 나의 아동시창작수업의 앞길을 밝혀주는 더없이 귀중한 교과서로 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습니다.

《아동문학은 마땅히 우리 어린이들의 높은 정신상태에 맞게 형상을 창조하여야 한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의 화폭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생활을 하다가 교육도서출판사에서 편집원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나는 《국어》교과서편찬위원회의 한 성원이 되여 교재를 집필하게 되였습니다.

어떤 교재를 넣을것인가? 론의가 분분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문학박사이며 후보원사인 한 로교수가 동시 《우리 교실》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두다 만장일치로 찬성하였습니다. 내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명작동시가 온 나라의 문학수재동이들을 《꼬마시인》으로 키워주는 다정한 선생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럴수록 내 마음속에는 더욱 깊어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명작동시가 《아동문학》잡지에 발표되기까지의 창작경위에 대한 혁명사적자료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싶은 소망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자세히 알수 없었습니다.

그후 작가동맹 현역작가대렬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오래전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원을 풀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제런듯… 잊지 못할 그날의 증견자들이였던 오랜 아동시인들이 눈물이 글썽하여 자주 들려주던 이야기가 세월의 언덕을 넘고 또 넘어 오늘도 귀전에 쟁쟁히 메아리쳐옵니다.

《그날은 1954년 4월 26일 오후 4시경이였습니다.》 하고 말머리를 뗀 오랜 아동시인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소년시절에 작가동맹출판사(당시) 《아동문학》편집부와 아동문학분과가 아래웃층에서 함께 사업하던 옥류교옆에 솟아있는 아담한 2층집으로 친히 찾아오시여 주체적인 아동시문학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던 이야기를 감회깊이 들려주군하였습니다.

선배작가들의 회상담을 들을 때면 나의 눈앞에는 평양제4인민학교(당시)의 소박한 교실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지고 아버지장군님의 영상이 문학예술의 거장으로 안겨왔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명작동시가 우뚝 솟아있는 아동시문학의 최고봉으로 따라오르고싶은 불타는 욕망을 안고 붓을 더욱 굳게 틀어쥐군 하였습니다.

이 명작동시가 우리 아동시문학사에 길이 남게 된 창작경위에 대해서는 주체74(1985)년에 문예출판사(당시)에서 발행한 도서 《문학예술의 영재》(1)를 비롯한 여러 덕성실기집들에 상세하게 밝혀져있기때문에 여기서는 더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듭거듭 말하고싶은것은 참으로 이 명작동시는 나의 어린시절의 푸른 꿈을 활짝 꽃피워준 한없이 고마운 옛 《스승》이라는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만일 그 누가 명작동시의 빛나는 모범을 따라배우는 《수업》시간에 너는 그 무엇을 깨닫게 되였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것입니다.

아동시창작의 기본원리를 배웠다고… 그렇습니다. 이 명작동시는 나에게 아동시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품성과 아동시작법의 여러가지 묘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아동시인의 심장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수령에 대한 충정의 감정으로 높이 고동쳐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아름다운 교실

언제나 재미나는 교실

앞에는 원수님초상화

환하게 모셔져있지요

 

이렇게 첫구를 뗀 명작동시는 마지막결구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원수님에 대한 끝없는 흠모의 정과 새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해 항상준비하자는 굳은 맹세가 담겨져있습니다.

나는 명작동시의 전반에 맥박치는 사상감정을 가슴깊이 새기며 아동시인의 심장은 무엇을 첫자리에 놓고 어떻게 고동쳐야 하는가를 잘 알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둘째로 우리 나라 어린이들의 동심세계를 재미나게 노래할수 있는 창작기량을 부단히 련마해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명작동시에는 이런 시련들이 들어있습니다.

 

오늘아침도 기쁜 마음으로

우리 교실에 들어서니

언제든지 반가운듯이

우리보고 공부 잘하라고…

 

 

우리의 교실은 알뜰한 교실

언제든지 책상에 앉으면

너그럽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네

새 나라 착한 아이들 되라고…

 

아버지원수님의 초상화를 우러러보는 나어린 서정적주인공의 동심세계를 그 얼마나 생활적이면서도 정서적으로 재미나게 노래하고있습니까!

그것은 셋째로 한편의 짧은 동시를 써도 크나큰 시대적인 사상감정이 가슴가득 물결쳐올수 있게 노래해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봄바람에 실버들 푸르렀네

우렁찬 건설의 노래와 함께

원수님을 우리는 받드네

 

노래하자! 원수님을…

우리는 승리하였네

행복한 민주의 터전은 건설되네

노래하자! 우리의 원수님을…

 

이 시련들을 읊어보면 준엄했던 전쟁의 시련을 이겨낸 승리자의 자랑을 안고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민주의 터전을 다지던 전후복구건설의 나날이 눈앞에 선히 펼쳐집니다.

그러기에 나는 아동시가 작고도 큰 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 명작동시처럼 써야 한다는것을 더욱 깊이 깨달을수 있게 되였습니다.

이 명작동시는 《아름다운 교실》, 《언제나 재미나는 교실》, 《노래하자! 우리의 원수님을…》이라는 시구들을 통하여 아동시의 중요한 표현수법들인 반복법과 생략법, 자리바꿈법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다정히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평론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명작동시의 사상예술성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분석할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점들이 명작동시를 따라배우는 과정에 내가 체득한 아동시창작의 기본원리라는것만은 자신있게 대답할수 있습니다.

 

오늘도 래일도 먼 후날에도…

 

(해와 달이 흘러갈수록 명작동시에 펼쳐져있는 평범한 교실이 어찌하여 더더욱 유정하게 안겨오는것일가?)

나는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하며 다시한번 명작동시를 마음속으로 읊어봅니다. 그러자 명작동시의 정다운 교실이 평범하게 안겨오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그 어느 소학교에 찾아가도 볼수 있는 보통교실과 꼭같기는 하였지만 명작동시의 뜻깊은 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것 같습니다.

(그 제목도 정다운 《우리 교실》은 아버지장군님께서 펼쳐주신 조국의 크나큰 교실이며 영원한 배움의 요람이란다. 너도 그날의 그 교실에서 자라난 로아동시인이 아니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선군시대의 동요를 명작으로 꼭 써야 한다.)

끝없는 추억에 잠겨 명작동시를 읊어보면 볼수록 나의 사색은 점점 더 깊어갑니다.

(이 명작동시는 지난날 그 얼마나 많은 혁명인재들을 키워주었던가. 재능있는 새 세대 아동문학작가들과 명성높은 성인문학작가들도 이 교실에서 처녀작을 썼으리라. 어찌 그들뿐이랴. 수많은 공화국의 전투영웅들과 이름난 과학자들도 이 교실에서 어린시절의 첫 꿈날개를 활짝 폈으리라.… 오늘도 래일도 먼 후날에도 명작동시는 강성대국의 큰문을 열어제낄 선군조국의 믿음직한 역군들을 키워주고 또 키워줄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한없는 고마움이 가슴가득 차오릅니다. 그러기에 나는 아버지장군님의 그 사랑, 그 은덕에 천만분의 하나라도 보답할 불타는 맹세를 안고 력사에 길이 빛날 불후의 고전적인 명작동시 《우리 교실》에 가장 뜨거운 인사를 드립니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