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5호에 실린 글

 

◇동 화◇

 

           

                                                  리 순 기

             

1

 

이쪽 집에서 꼬마토끼가 노래를 부를 때면 저쪽 집에서 쌍둥이노루가 춤을 추고 샘물집에서 너구리와 곰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개울건너 집에서 수달이 손벽치기를 하는 화목한 숲속동산이 있었습니다.

고장도 아름답고 마음씨 또한 착한 그들은 서로 도우며 오손도손 재미나게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슴할아버지가 동산의 짐승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살고있는 마을을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더욱 흥하는 마을로 꾸리자고 한다. 그러니 래일에 일떠세울 꽃동산을 저마끔 생각해서 그려오너라. 그 그림들을 하나하나 심사를 해서 제일 잘된것으로 우리 동산을 새로 꾸릴 계획이다.》

그러자 짐승들은 너나없이 사기나서 그림그리기에 달라붙었습니다.

희한하고 황홀한 동산을 그리려고 저저마다 머리를 짜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얼룩곰의 욕심이 제일 컸습니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 새 마을로 일떠서도록 할 작정이였습니다.

그는 그릇마다 여러가지 색감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큼직한 붓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종이가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야 학습장만 한 종이밖에 없었습니다.

(이럴 땐 크게 늘어나는 종이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어디선가 손바닥만 한 종이 한장이 날아왔습니다.

그 종이는 눈앞에서 팔락팔락 춤추더니 마당에 척 내려앉는것이였습니다.

《챠, 이건 웬 종이야?》

그러자 그속에서 말소리가 나는게 아니겠어요.

《난 네 소원대로 늘었다줄었다 하는 종이란다. 네가 찾아서 왔지 뭐.》

《뭐? 내가?》

얼룩곰이 어리둥절해하자 그 종이가 말했습니다.

《그럼, 네가 금방 생각하지 않았니? 난 그 생각을 실물로 보여주는 종이란 말이야.》

《그래? 한번 학습장만큼 늘쿠어봐.》

그러자 정말 손바닥만 한 종이가 으쓱으쓱 키를 솟구더니 학습장만큼 커지는게 아니겠어요?

《그럼 이번엔 밥상만큼.》

그러자 그 종이는 우와 아래, 량옆으로 쭉쭉 늘어났습니다.

밥상만 한 그림종이가 마당에 펼쳐졌습니다.

그 종이가 또다시 말을 건늬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만은 잊지 말어. 난 네가 좋아하면 늘어나고 싫어하면 다시 줄어든단다.》

《그래? 아무튼 좋아.》

얼룩곰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파란색으로 하늘을 그리니 어느새 흰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가는것 같았습니다.

풀색으로 잔디밭을 그려넣으니 푸른 잔디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듯 했습니다.

고운 꽃들도 붓을 대자마자 방실방실 웃으며 향기를 풍기는것 같았습니다.

(야, 정말 사기나는데.)

그는 뒤쪽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선 뒤동산을 그려넣었습니다.

(여기다 뭘 심을가? 옳지, 밤이 좋아. 이쪽엔 도토리.)

얼룩곰은 산과 마을주변에 왕밤나무와 왕도토리나무를 채워넣었습니다.

이어 곰곰히 생각하던 얼룩곰은 가운데자리에 자기 집을 덩실하게 그렸습니다.

(그렇지, 나하구 깡충이토끼가 제일 친하니까 양지쪽에다 지어주자.)

얼룩곰은 자기 집가까이에 있는 너럭바위우에 깡충이네 집도 그려넣었습니다.

(노루랑 수달네 집은 어쩐다?)

그릴 자리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빈자리에다가 대충 그려놓고말았습니다.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던 얼룩곰은 제 머리를 탁 쳤습니다.

(아차, 샘물이 있어야지.)

그는 샘물터를 그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꿀이 솟아나는 꿀샘이 되였으면…)

언젠가 꿀통을 헤치다가 숱한 꿀벌들한테 쏘여 혼쭐이 났던 일이 생각났던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꿀향기가 풍겨오는듯 했습니다.

그는 샘물터옆에 《꿀샘》이라는 표말을 그려놓았습니다.

이어 강물을 그려나가던 그는 손을 멈추었습니다.

물고기도 잡고 가재도 잡아먹을 강물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성차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더 좋은것이 흘렀으면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에라, 넌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나 철철 흘러넘쳐라. 그러니 막걸리강이다, 막걸리강.》

그는 큰 붓을 들고 집앞으로 흐르도록 쭉 강줄기를 그려넣었습니다.

정말이지 강물이 움씰움씰 움직이는듯 하고 막걸리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것 같았습니다.

강기슭에도 《막걸리강》이라는 표말을 척 세워놓았습니다.

그는 그림을 다 그리고나서 허리를 쭉 폈습니다.

배를 뚱 내밀고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살아움직이는것 같았습니다.

(헤헤, 이런 동산을 꾸린다면야 그 무슨 걱정이 있을가.)

얼룩곰은 저 혼자 흡족해서 가슴을 슬슬 내리쓸었습니다.

 

2

 

《얼룩곰아, 너 그림이 굉장히 크구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형토끼 깡충이와 동생토끼 호물이가 등뒤에서 그림을 들여다보고있었습니다.

《오, 너희들이구나. 어때, 멋있지? 한번 그릴바에야 모두가 깜짝 놀라게 하자는거야.》

기분이 붕 뜬 얼룩곰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들의 앞을 막아나섰습니다.

《가만, 지금은 안돼.》

《왜 그래? 마저 보자마.》

깡충이와 호물이가 안달이 나서 얼룩곰의 량옆구리사이로 넘겨다보려고 보챘습니다.

《아 아, 안돼, 아직 심사도 받지 못했는데…》

얼룩곰이 두손을 벌려 그들을 막다가 서로 미는 바람에 깡충이와 호물이를 껴안은채 쿵ㅡ 하고 뒤로 자빠지고말았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그들의 눈앞에는 처음보는 새 마을이 펼쳐져있었습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다문다문 피여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새집들이 보이고 어디선가 왕도토리와 왕밤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꿀향기도 몰몰 풍겨왔습니다.

얼룩곰은 이상하여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습니다.

어디서 딱 본듯 한 마을이였습니다.

《히야, 얼룩곰아, 네 그림과 비슷하구나.》

깡충이가 먼저 환성을 올렸습니다.

《정말이야.》

호물이도 입술을 호물호물거리며 좋아했습니다.

알고보니 정말 자기가 그린 마을이였습니다.

얼룩곰은 흥이 나서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마침 잘 됐다. 우리 집구경을 해보자.》

그들은 공원처럼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은 얼룩곰네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얼마나 황홀하게 꾸렸는지 눈이 부실 지경이였습니다.

네 기둥은 진한 밤색을 칠한 아름드리나무기둥인데 벽과 천정은 보석을 뿌려놓은듯 반짝반짝 빛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알락달락한 꽃무늬장식을 한 추녀는 날아갈듯 네귀가 번듯하게 들려있었습니다.

그 처마에는 크고작은 물고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흔들거렸습니다.

덩실하게 큰 집 주위로는 활짝 핀 장미꽃울타리를 둥글게 쳐놓았습니다.

《얼룩곰아, 이런 집은 처음 보누나.》

깡충이와 호물이가 연송 감탄했습니다.

《어때, 이쯤하면 일생 잘 먹고 잘 살수 있겠지?》

얼룩곰이 흐뭇해서 뒤짐을 지고 왔다갔다 하는데 문득 호물이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없니?》

《왜 없겠니? 자, 봐라.》

얼룩곰은 밖으로 나와 새집들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산쪽엔 노루집이고 저기 바위밑엔 수달네 집이야. 아, 참, 나의 친구 깡충이네 집은 양지바른 바위우에 멋있게 지었단다.》

그들은 깡충이네 새집으로 가보았습니다.

뾰족지붕으로 된 그 집은 사다리가 높이 세워져있는 다락집이였습니다.

《야, 좋구나.》

호물이가 먼저 방안으로 뛰여들어가 폭신한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며 깔깔거렸습니다.

방안을 둘러보던 깡충이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이거 꽤나 덥구나. 뙤창도 하나 없구. 바람한점 통하지 않아.》

《뙤창?》

얼룩곰은 깡충이네 집 창문은 전혀 생각도 안했던것입니다.

침대에 누웠던 호물이도 난딱 일어났습니다.

《형, 우린 지하실이 있어야 되지 않아. 굴집말이야.》

《그렇구나. 이 너럭바위에다 굴을 뚫을수도 없구… 이 집은 영 마음에 없구나.》

깡충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뭐? 마음에 없다구? 야, 그래두 가까운 친구라구 제일 좋은 자리에 만들어주었는데…》

얼룩곰이 볼부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래두 우리야 지하실이 있어야지. 이 집에선 겨울에 얼어죽겠어.》

깡충이는 호물이의 손을 잡고 다락집에서 내려섰습니다.

(챠, 이거 저희들을 생각해준줄은 꼬물만큼도 알아 안주누나.)

얼룩곰은 《흥!》하고 코방귀를 뀌였습니다.

깡충이네가 살지 않겠다면 다른 짐승에게 넘겨줄 심산이였습니다.

 

3

 

《형, 나 목이 말라. 물 달라.》

꽃밭옆에 이른 호물이가 형에게 졸라댔습니다.

(챠, 고거 칭얼대긴.)

곱지 않게 눈을 흘기던 얼룩곰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옳지, 여기 어디에 샘물이 있을거야.)

얼룩곰은 깡충이네를 데리고 샘물터를 찾아갔습니다.

그앞에는 하얀 바탕에 빨간 글자로 《꿀샘!》이라고 쓴 표말이 서있었습니다.

꿀향기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얼룩곰은 한바가지 푹 떠서 쭉 마셔보았습니다.

얼마나 달고 시원하겠습니까.

(야, 진짜 꿀이구나.)

성수가 난 그는 서너바가지를 단숨에 마셔버렸습니다.

목젖이 다 녹아내리는것 같았습니다.

《자, 어서 마셔봐. 꿀샘이야, 꿀샘.》

깡충이가 먼저 한바가지 떠서 쫄금쫄금 맛보았습니다.

《정말 꿀물이구나.》

호물이도 한바가지 떠서 쪽쪽 소리나게 마셨습니다.

《형, 정말 달구나.》

한참 좋아서 해죽거리던 호물이가 또 발을 동동 구르는것이였습니다.

《형, 꿀을 먹었더니 물이 더 마시구싶어.》

《얘, 넌 무슨 투정이 이렇게 많아?》

얼룩곰이 으름장을 놓자 호물이는 두귀를 발쭉 세우며 말했습니다.

《체, 물 마시고싶은데 어떻게 참아?》

그러자 깡충이가 얼룩곰에게 물었습니다.

《여긴 강물이라도 없니?》

《오, 강이야 있지.》

얼룩곰은 깡충이형제를 데리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솨ㅡ 솨ㅡ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엉? 이게 뭐야?》

강기슭에는 《막걸리강!》이라고 쓴 표말이 해빛에 번쩍이고있었습니다.

얼룩곰은 얼른 강물을 한바가지 떠서 쭉 마셔보았습니다.

목이 뜨끈뜨끈한게 금방 공중으로 둥둥 떠갈듯 한 기분이였습니다.

(하, 이거 진짜 막걸리강이로구나.)

얼룩곰은 흡족해서 토끼형제에게 한바가지씩 듬뿍 떠주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한모금씩 꿀꺽 마셔보다가 《애취!》하고 재채기를 하였습니다.

《에이 시크러워. 이거 막걸리구나.》

호물이는 더 아부재기를 쳤습니다.

《형, 목이 막 타는것 같애. 빨리 맹물 달라.》

얼룩곰은 어쨌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막걸리를 서너바가지 더 마시고싶었지만 이들때문에 꾹 참았습니다.

《얼룩곰아, 다른 강은 없니?》

깡충이는 속이 상해서 콩당콩당 뛰였습니다.

《다른 강? 어… 더는 없어.》

얼룩곰은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그럼 너의 집 처마에 걸린 물고기들은 어데서 잡았니? 저 막걸리강에서 잡았니?》

깡충이가 톡 쏘아주자 얼룩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4

 

깡충이는 앞뒤를 휘둘러보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와 어쩔바를 몰랐습니다.

이때 뒤동산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이 눈에 안겨왔습니다.

《얘, 얼룩곰아, 배를 좀 따주렴.》

《배?!》

얼룩곰이 의문스러워 바라보자 깡충이는 고개를 까딱거렸습니다.

《응, 우린 물대신 배도 좋거던. 그러면 목을 추길수 있어.》

《좋아, 가자.》

그들은 배를 따러 산으로 올랐습니다.

산기슭도 훑어보고 산골짜기도 내려가보았습니다.

나중엔 산꼭대기까지도 올라가보았습니다.

그러나 배나무는 한대도 없고 밤나무와 도토리나무들만 아지가 휘도록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깡충이는 산너머에로 뛰여갔습니다.

(이거 어쩐다. 배나무는 한대도 안 그렸는데.)

그는 마을주변과 산에다가 몽땅 밤나무와 도토리나무만 그려넣었던것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얼룩곰은 나무에 올라 채 익지 않은 밤과 도토리를 한바구니 잔뜩 따서 호물이에게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싫어, 난 배를 먹을래.》

호물이는 도리머리를 저었습니다.

《얘, 아무리 찾아봐야 배는 없어. 내가 안 그렸으니깐.》

호물이는 더는 못 참겠던지 도토리 한알을 덥석 입에 물고 씹었습니다.

《에이, 떱떱하다. 이걸 어떻게 먹나?》

《자, 나도 먹지 않니? 어서 먹어봐.》

얼룩곰은 열매 한알을 입에 넣고 와삭와삭 씹어삼켰습니다.

호물이는 또다시 조금 베여넘겼지만 끝내 주먹만 한 도토리 한알을 다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깡충이가 빈손으로 뛰여오는 순간 호물이는 갑자기 배를 그러쥐고 돌아갔습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형, 나… 배가… 끊어져.》

《아니? 어찌된 일이야?》

깡충이는 동생의 배를 꾹꾹 눌러보았습니다.

《너 뭘 먹었니?》

《도… 도토리를… 아이구.》

호물이는 죽는다고 막 소리를 쳤습니다.

《이거 야단났구나. 체하지 않았을가?》

깡충이는 호물이의 배를 앞발로 꼭꼭 눌러주며 말했습니다.

《야, 넌 우리가 도토리를 먹으면 안된다는걸 모르니?…》

《그럼 어떻게 해요? 배가 고프구 목두 마른데 어디 먹을게 있나요? 아이구, 배야…》

호물이는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옆에 선 얼룩곰은 어쩔줄 몰라 서성대기만 하였습니다.

《우리 이웃에서도 식중독때문에 잘못된 애가 있었는데… 자칫하면 죽을수 있어.》

깡충이의 말에 얼룩곰은 흠칫 놀랐습니다.

가슴이 떨려났습니다.

《자, 빨리 병원으로.》

다급해난 깡충이가 동생을 업으려고 하자 얼룩곰은 제가 둘쳐업고 마을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마에선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병원은 그 어디에서도 눈에 띄우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얼룩곰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참, 내가 병원을 그리지 않았구나.》

《병원이 없다니?》

깡충이는 안타까이 마을을 휘둘러보았습니다.

괜히 이 마을에 들어왔다가 동생을 잃을것만 같았습니다.

《난 언제 한번 앓은적이 없어서 병원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어.》

얼룩곰은 진땀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그사이 호물이는 죽은듯이 축 늘어져있었습니다.

《가만, 사슴할아버지한테로 가자.》

사슴할아버지는 의술이 높아서 못 고치는 병이 없었던것입니다.

얼룩곰은 호물이를 다시 업고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나고 다리가 휘친거렸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호물이를 살려내자면 한시가 새로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집들사이를 돌아보아도 사슴할아버지네 집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하긴 사슴할아버지네 집도 그려넣지 못했으니까요.

방향없이 뛰여가던 얼룩곰은 그만 길이 끝나는 곳에 서있는 아름드리 밤나무에 《쾅!》하고 이마를 들이받았습니다.

《아이쿠!》

눈앞에서 별찌가 날아다녔습니다.

눈앞이 아뜩했습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던 얼룩곰은 그 자리에 푹 꼬꾸라지고말았습니다.

 

5

 

얼룩곰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엉뎅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자기가 그림종이밖으로 툭 튀여나온게 아니겠어요.

깡충이와 호물이는 깔깔 웃으며 마을길로 달려가고있었습니다.

(그새 다 나았나?)

머리를 기웃거리며 뒤를 돌아보던 얼룩곰의 두눈이 화등잔만큼 커졌습니다.

넓으나넓은 그림마을이 그냥 펼쳐져있었던것입니다.

망신을 시킨 이 마을을 누가 볼가봐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 어디에 감출수도 없었습니다.

남한테 보이기가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에이, 제발 작아졌으면 좋겠구나.)

그랬더니 그림마을이 움씰움씰 움직이는게 아니겠어요.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서부터 《쉭ㅡ 쉭ㅡ》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마을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 마을은 눈깜짝할 사이에 손바닥만 한 종이로 변해버렸습니다.

(후, 다행이구나.)

그는 그 종이를 주머니에 쑥 집어넣었습니다.

이때 마을길로 탐스러운 꼬리를 달싹이며 뛰여가던 청서가 소리쳤습니다.

《얼룩곰아, 사슴할아버지가 그림들을 심사하겠대. 빨리 와.》

얼룩곰은 청서의 뒤를 따라 마을앞에 자리잡은 넓은 운동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짐승들이 그린 그림들이 쭉 전시되여있었습니다.

얼룩곰이 도착했을 때는 사슴할아버지가 노루의 그림을 심사하고있었습니다.

노루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얼룩곰의 두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얼마나 멋진 동산이겠습니까.

새집들이 번쩍거리고 병원과 극장은 물론 잔물결 일렁이는 호수주변에 꽃과 나무들이 우거진 아름다운 공원도 자리잡고있었습니다.

문득 깡충이가 환성을 올렸습니다.

《노루야, 어쩜 넌 내 집을 이렇게 잘 그렸니? 창문도 환하구 방안도 시원하겠어. 지하실도 그쯘한게 나보다 더 잘 생각해냈구나.》

《뭘… 그저 너희들의 마음에 맞추어보느라구 했는데 부족되는것이 있는지 모르겠어.》

《정말 노루형이 제일이야.》

동생 호물이도 코수염을 쫑긋대며 좋아했습니다.

사슴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제 집보다 남의 집을 더 잘 그렸구나.》

뒤따르며 구경하던 얼룩곰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 없었습니다.

자기는 깡충이네 집을 뙤창 하나없이 새둥지처럼 바위꼭대기에 다락집으로만 그렸으니까요.

이번에는 수달이 그린 그림이였습니다.

그 그림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문득 호물이가 손벽을 쳤습니다.

《형, 저 샘물 봐. 그리구 사과와 배두 가득 달렸구나.》

깡충이가 수달한테 물었습니다.

《수달아, 넌 물고기를 먹고 사는데 사과나무, 배나무는 왜 그렸니?》

《난 과일을 좋아 안해도 동산의 여러 동무들이 좋아하니깐.》

수달은 짧은 다리를 탁탁 털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슴할아버지는 또다시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였습니다.

《동산의 동무들이 좋아하는 열매나무는 빠짐없이 다 심었구나.》

호물이가 또 그림을 가리켰습니다.

《곰형님집은 더 멋있구나.》

정말이지 얼룩곰의 집은 덩실하게 큰데다가 2층으로 되여있었습니다.

수달이 얼룩곰을 그림앞으로 이끌었습니다.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어. 2층은 여름철에 살구 1층은 겨울철에 살 집이야. 너야 겨울잠을 자야 되니까 이렇게 만들었어.》

얼룩곰은 얼굴이 화끈거려 뭐라고 말할수 없었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수달의 집을 개울옆이 아니라 산기슭바위밑에 지어놓은 생각이 났던것입니다.

정말 모든 그림들이 자기의 생각과는 너무도 차이났습니다.

문득 사슴할아버지가 얼룩곰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얼룩곰의 그림은 왜 없느냐?》

얼룩곰은 머리를 긁적긁적 긁었습니다.

《저… 내 그림은 이미… 심사를 받았습니다.》

《아니, 심사를 받다니. 그건 웬 말이냐?》

사슴할아버지도 여러 짐승들도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건 저… 깡충이와 호물이에게 물어보면…》

《맞아요, 벌써 심사를 받은셈이예요.》

깡충이가 샐쭉 웃으며 그림마을에 들어갔던 얘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슴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허허허, 그래서 그림을 내놓지 못했구나. 자기의 구미에만 맞는 동산을 꾸린다면 어찌 되겠느냐. 저마다 자기 리해타산을 먼저 앞세우면 그런 마을은 벌써 불행한 마을이란다. 동산의 행복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칠줄 아는 고운 마음들이 하나로 모여야 찾아오는거란다. 이웃을 먼저 위하는 뜨거운 마음들이 서로 오갈 때 무릉도원이 꽃펴나는것이지.》

얼룩곰은 두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사슴할아버지, 이젠 알았어요. 난 그림을 다시 그려서 내놓겠어요.》

다른 짐승들은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야지. 이번엔 아마 제일 훌륭한 그림이 될게다.》

사슴할아버지도 얼룩곰의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었습니다.

하늘중천의 밝은 해님은 방실방실 웃으며 갈길을 멈추고 꽃동산을 내려다보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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