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5호에 실린 글

 

◇동 화◇

 

                                             

                                                   지 홍 길

 

아득한 옛날에 이 세상의 모든 짐승들과 새들, 곤충들을 다스리는 할아버지가 살고있었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도토리골에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살고있는 꿀꿀서방이 되는대로 살고있다는 소문을 듣고 단단히 타일러서 고쳐주려고 마음먹었던것입니다.

정말 도토리골에 살고있는 꿀꿀서방은 이미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보며 교훈과 경험을 찾는 일도 없고 앞날을 내다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를 생각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오직 코밑에 일만 생각하면서 그날그날을 그럭저럭 보냈습니다.

그저 쿨쿨 잠을 자다가는 깨여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도토리를 주어먹고 그러다가는 또 아무데나 벌렁 드러누워서 쿨쿨 잠을 잤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방안에 들어가 마음놓고 지낼수 있도록 집을 짓거나 고간을 지어놓고 앞으로 먹을것, 쓸것들을 마련해놓는 일같은건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나니 먹을것이 흔한 가을에는 배가 터지도록 질탕치듯 먹다가도 먹을것이 귀해진 겨울에는 배를 촐촐 굶으면서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찾아온 그날도 도토리를 실컷 주어먹은 꿀꿀서방은 아무데나 벌렁 드러누워서 쿨쿨 낮잠을 자고있었습니다.

《냉큼 일어나지 못할가? 남들은 겨울량식을 마련한다, 집을 꾸린다 콩당콩당 뛰여다니며 부지런히 일하는데 낮잠만 쿨쿨 자느냐?》

할아버지는 꿀꿀서방의 엉뎅이를 철썩 갈겼습니다.

《아이쿠!》

꿀꿀서방은 깜짝 놀라서 깨여나기는 했지만 잠에 취해서 한참이나 눈을 비볐습니다.

할아버지는 꿀꿀서방을 앞세우고 도토리골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살림이 정말 말이 아니였습니다.

먹을것이 있나, 입을것이 있나, 덮고 잘것이 있나… 정말 꿀꿀서방의 살림은 하늘이 지붕이요 땅이 구들이고 굴러다니는 열매가 량식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한동안 말을 못했습니다.

《살아가는 꼴이 이게 뭐냐? 정신을 좀 차려라!》

할아버지는 꿀꿀서방을 엄하게 나무랬습니다.

꿀꿀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인채 꾸중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모양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품속에서 구슬 세알을 꺼냈습니다.

하나는 앵두알처럼 빨간 구슬이고 또 한알은 눈처럼 하얀 구슬이고 세번째것은 하늘처럼 파란 구슬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구슬들을 꿀꿀서방에게 주면서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이건 아주 귀중한 보물이다. 품속에 잘 간수하고 다니면서 이것들의 말대로 해라. 그러면 한생을 보람있게 살수 있을게다. 절대로 이걸 버려선 안돼. 네 인생을 망칠수 있어.》

할아버지는 이렇게 당부하고 도토리골을 떠나갔습니다.

《도대체 이 구슬들이 하라는대로 하면 어떻게 한생을 보람있게 살수 있다는걸가?》

꿀꿀서방은 할아버지한테 호되게 꾸중을 들은것이 내려가지 않아서 볼부은 소리를 하며 손에 쥐여져있는 구슬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쎄 구슬알들이 반짝반짝 빛을 뿌리면서 은쟁반을 두드리는듯 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겠습니까!

제일먼저 빨간 구슬이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잊지 않으면

귀중한 경험도 교훈도 얻으리

귀중한 경험과 교훈 있으면

누구나 현명해진다네 현명해진다네

 

빨간 구슬이 노래를 끝내자 이번엔 파란 구슬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가오는 앞날을 바라다보면

새로운 희망과 힘을 얻으리

새로운 희망과 힘을 얻으면

웃음속에 기쁨속에 살수 있으리

 

파란 구슬이 노래를 그치자 하얀 구슬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 고것들이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걸.… 그런데 하루하루를 잘살아야 한다는 하얀 구슬의 노래가 제일 마음에 들어.》

꿀꿀서방은 하얀 구슬의 노래를 제멋대로 되받아 외웠습니다.

《아무렴, 그날그날 잘 먹고 잘살아야 하구말구. 그런데 보람있게 살라는건 또 뭘가?…》

이렇게 한참 흥얼거리다나니 문득 배고픈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지. 아까 뭘 좀 먹고는 지금까지 낮잠을 자다가 깨여났지.…》

꿀꿀서방은 서둘러 먹을것을 찾아 떠났습니다.

도토리나무들이 빽빽한 산기슭에 이른 꿀꿀서방은 이 나무 저 나무를 쳐다보며 돌아다니다가 드디여 도토리가 가득 달린 참나무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옳지, 이 나무 하나만 털어놓으면 실컷 먹을수 있겠군.… 흐흐…》

꿀꿀서방은 두손에 침을 튀튀 뱉아가지고 나무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미끈하게 자란 나무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몇번이나 오르려다가 실패한 꿀꿀서방은 망짝만 한 돌을 주어다가 나무밑둥을 쿵쿵 울렸습니다.

도토리알들이 후두둑, 툭탁 떨어져내렸습니다.

《좋구나! 좋아! 허허허…》

꿀꿀서방은 신이 나서 돌로 나무를 때렸습니다. 그때마다 도토리나무에는 상처가 생겼지만 꿀꿀서방은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도토리가 더는 떨어져내리지 않을 때까지 돌질을 하던 꿀꿀서방은 땅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게걸스레 주어먹었습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말끔히 주어먹었는데도 배가 절반도 차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을 금치 못하여 참나무를 올려다보니 나무에는 아직도 도토리들이 가득 달려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몽땅 따먹을수 있을가?)

잠시 생각을 굴리던 꿀꿀서방은 씽 달려가서 도끼를 가져다가 쩡쩡 나무를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꿀꿀서방이 힘껏 도끼질을 할 때마다 손바닥같은 도끼밥들이 사방으로 튀여나가고 나무가지들이 와수수 흔들렸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왜 나무를 찍는거냐? 왜 나무를 찍는거냐? 오늘만 이 나무신세를 지고 앞으로는 신세를 안질테냐? 래년에도 따먹고 또 그 다음해에도 따먹고… 두고두고 따먹을 나무인데 왜 찍는거냐? 오늘만 배부르면 다냐?》

어데선가 이런 말소리가 날아와 야무지게 귀청을 때렸습니다.

(아니, 누가 지껄이는 소리야?)

꿀꿀서방은 도끼질을 뚝 멈추고 두눈을 떼굴떼굴 굴리며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알고보니 호주머니에 있는 파란 구슬이 나무라는 소리였습니다.

《뭐뭐, 어쨌다구? 쪼꼬만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이 산판에 흔해빠진게 도토리나문데 한그루 찍는다고 자리나겠니? 지금 배가 고프단 말이야.》

꿀꿀서방은 파란 구슬의 말 같은건 들은둥만둥 계속 도끼질을 하였습니다.

《제발 나무를 찍지 말아다오.》

파란 구슬이 몇번이나 안타까이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와지끈, 지끈 쾅!》

마침내 도토리나무는 쓰러지고말았습니다.

땅바닥에는 도토리알들이 한벌 쫙 깔렸습니다.

《헤헤… 이거면 한밥 실컷 먹을수 있겠구나!》

꿀꿀서방은 도토리알들을 주어모으지도 않고 바닥에 널려있는채로 마구 주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와작와작 쩝쩝쩝 와작와작 쩝쩝쩝…

《에ㅡ 맛있다!…》

손에 잡히는대로 주어먹고 발에 밟히는것은 짓밟고…

파란 구슬이 보다 못해 또 소리쳤습니다.

《오늘만 먹구 후날엔 안 먹을테냐? 아까운 도토리들을 짓밟지 말구 모아두었다가 겨울이나 봄에 가서 먹으면 좀 좋으냐?》

그래도 꿀꿀서방은 들은둥만둥이였습니다.

《정말 그럴 내기냐?》

파란 구슬이 더는 참을수 없어 가시돋힌 소리로 웨쳤습니다. 그 바람에 꿀꿀서방이 손을 우뚝 멈추었습니다.

《그래, 어쩔테냐?》

꿀꿀서방은 입에 넣은것을 씹으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코밑에 먹을것밖에 모르는 너하구는 같이 있을수 없다.》

파란 구슬은 야무지게 내쏘았습니다.

《어랍쇼, 배꼽에서 눈물나겠다.… 어서 가고싶은데로 가보시지요.》

꿀꿀서방은 이렇게 빈정거리면서 파란 구슬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서 휙 던져버렸습니다.

배꼽이 쑥 나오도록 도토리를 실컷 주어먹고난 꿀꿀서방은 연거퍼 하품을 하였습니다.

힘들게 도끼질을 한탓에 피곤이 몰린데다가 배불리 먹고났기때문에 식곤증까지 겹쳐 졸음이 왔던것입니다.

《에라, 이젠 한잠 푹 자야지.》

꿀꿀서방은 아무데나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씩ㅡ푹, 씩ㅡ푹… 얼마나 잤는지.…

네활개를 벌리고 한잠 푹 자고 깨여난 꿀꿀서방은 몸이 오스스 떨렸습니다.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한데다가 날씨가 찌뿌둥하게 흐리고 쌀쌀한 가을바람까지 솔솔 불어왔던것입니다.

《엣, 추워라. 불을 피우고 쪼여야지.》

꿀꿀서방은 도끼를 들고 이 나무, 저 나무를 돌아보다가 늙은 도토리나무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왜 나무를 찍는거냐? 왜 나무를 찍는거냐?》

이번엔 빨간 구슬이 소리쳤습니다.

《무슨 상관이냐? 열매가 한알도 달리지 않은 나무를 골라서 찍는데…》

꿀꿀서방은 제편에서 큰소리를 쳤습니다.

《어마나! 벌써 잊었니? 지난해에 이 나무신세를 얼마나 졌니? 나무가 지금 아파서 그러는데 조금만 가꾸어주면 작년처럼 열매가 달릴수 있어.》

《뭐뭐, 지난해? 그때 일은 그때 일이구 지금 당장은 추워죽겠다.》

꿀꿀서방은 참견말라고 소리치고는 계속 도끼질을 하였습니다.

《정 그럴 내기냐? 제가 신세를 진 지난날을 감감 잊어버리구 눈앞에 일만 생각하는 너하구는 함께 있을수 없다!》

빨간 구슬은 야무지게 소리쳤습니다.

《에구머니,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빨간 구슬님…》

꿀꿀서방은 빈정거리기까지 하면서 빨간 구슬을 휙 던져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나무를 마저 찍어 커다랗게 불무지를 만들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무지앞에 앉아서 얼굴이 벌개지도록 몸을 녹이며 꿀꿀서방은 헤벌쭉 웃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지금 당장 뜨끈하니 좋기만 하구나. 헤헤…》

온몸이 후끈해지니 소릇이 졸음이 왔습니다.

《에라ㅡ 불무지곁에서 늘어지게 또 한잠 잘가.》

꿀꿀서방은 방금전에 찍어넘긴 나무등걸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저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꿀꿀서방은 온몸이 나른해지고 하늘이 빙빙 돌았습니다.

(참나무연기에 취했을가?)

꿀꿀서방은 어데 가서 시원한 샘물이라도 마시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걸어가다가 전번날 구슬을 주었던 할아버지와 딱 마주쳤습니다.

사뭇 엄엄한 눈길로 꿀꿀서방을 쏘아보는 할아버지의 손에는 빨간 구슬과 파란 구슬이 쥐여있었습니다.

그것은 꿀꿀서방이 버린것이였습니다.

《참 가련한 녀석이로군! 지난날도 앞날도 다 버리고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다니… 이녀석아, 오늘 하루라도 바로 살아야 할게 아니냐.》

할아버지는 기가 막힌듯 길게 한숨을 쉬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말뜻을 미처 깨닫지 못한 꿀꿀서방은 오히려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할아버지, 뭘 그러십니까? 난 오늘 괜찮게 살았는데요.》

《뭐뭐? 실컷 먹구 쿨쿨 잠만 자구두 괜찮게 살았다구? 네 한생이 오늘로 끝나는데도 좋단 말이냐?》

할아버지는 꿀꿀서방이 불쌍한듯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뭐뭐… 뭐라구요? 오늘로 내 한생이 끝난다구요?》

꿀꿀서방은 그때에야 자기가 왜 녹작지근해지고 하늘이 빙빙 도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어쩌면 좋아요?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꿀꿀서방은 자기 목숨이 오늘로 끝난다는 바람에 대번에 울상이 되여 애걸하였습니다.

《불쌍한 녀석이로군. 너같은 녀석은 하루밖에 살수 없는 보잘것 없는 날벌레로 변하게 될게다.》

《예? 하루밖에 살수 없는 작은 날벌레로요?》

꿀꿀서방은 자기의 몸을 얼른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뚱뚱하던 몸뚱이가 주먹만큼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자꾸자꾸 작아지고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깨알같은 작은 날벌레로 변해버렸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작은 날벌레로 변한 꿀꿀서방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졸라댔습니다.

《이젠 아무리 그래도 때가 늦었어!》

할아버지는 손을 홰홰 저으며 시끄럽게 구는 날벌레를 쫓아버렸습니다.

지금도 해저물녘이면 하루살이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구는것은 그때문이랍니다.

그리고 하루살이들이 돼지우리곁에 많이 모여들어 아물거리는것도 그런 인연이 있기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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