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5호에 실린 글

 

◇장편동화◇

 

 

(이 작품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동화로 옮긴것입니다.)

(제 2 회)


4

 

좌상할아버지는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세 박장수를 찾으러 옥돌총각을 보낸 다음 마을사람들과 함께 밤깊도록 도적을 막아낼 의논을 하였습니다.

청룡산호랑이가 없이도 도적무리들을 쳐물리칠수 있겠는가 하는 의논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하늘중천에 뜬 반달이 구름속에 숨었다가 천천히 얼굴을 내밀며 희미한 달빛을 뿌려주었습니다.

어디선가 찌르륵거리는 풀벌레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자, 이렇게 앉아들만 있을텐가, 어서 말들을 하게. 눈을 펀히 뜨고 돌섬의 도적들한테 재물을 뺏길수야 없지 않나. 그리고 갑쇠와 당장 잔치할 을미를 도적놈들한테 섬겨야 옳단 말인가.》

누군가가 답답한듯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하였습니다.

그 말에 뒤쪽에 앉아있던 철메총각이 일어섰습니다.

《내 생각엔 도적을 막자면 이미 쌓아놓은 돌성을 더 높이 쌓아야 할줄로 압니다.  그러니 래일부터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 달라붙어 돌성을 더 높이 쌓읍시다.》

《돌성으로 될 일이라면 백척이라도 쌓겠네. 그러나 갖은 도술을 다 쓰는 놈들을 돌성이 족칠수 있겠나?》

누군가 불만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건으로 질끈 동인 머리를 숙이고앉아 황소숨을 내쉬던 갑쇠총각이 벌컥 자리를 차고 일어났습니다.

《의논이구 뭐구 할게 없소. 모두들 창과 칼을 쥐구 죽기내기로 맞받아 싸웁시다. 그동안 우리가 무술훈련을 좀 많이 했소. 내가 맨 앞장에 서겠소. 을미를 빼앗기구 내 살아서 뭣하겠소.》

갑쇠총각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잔치를 얼마 앞두고 처녀를 빼앗기게 되였으니 오죽 속이 타랴 하는 생각을 하며 동정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좌상할아버지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 심정은 모르는바 아니네. 죽기내기로 싸워야 한다는것도 옳구… 한데 싸움에서 이기자면 주먹힘과 욕망만으로는 안되거던. 옛날에는 그런대로 힘이 세고 칼과 창만 잘 다루면 얼마든지 이길수 있었지. 그렇게 한해두해 돌섬의 도적들을 쳐물리치게 되자 놈들은 별의별 도술을 다 익혀 덤벼들었어. 그걸 이기려고 만들어낸것이 바로 청룡산호랑이일세.》

《호랑이두 만들어요?》

누군가 깜짝 놀라며 하는 물음에 좌상할아버지는 서글프게 웃었습니다.

《그랬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을 굳게 지키려는 마음과 마음들이 지혜를 낳고 재주를 빚었지. 아, 이제 내가 조상들 령전앞에서 무어라 해야 할고…》

《할아버지! 그냥 안타까워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갑쇠총각은 저고리앞섶을 움켜쥐며 좌상할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박장수들을 데리러 갔던 옥돌총각이 나타났습니다.

옥돌총각의 뒤로는 세 박장수가 따라오고있었습니다.

세 박장수의 허리춤에는 붉은 박, 푸른 박, 흰 박들이 데룽데룽 매달려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세 박장수를 반겨맞았습니다.

《우리가 도적놈들을 막을테니 너무 걱정들을 마십시오!》

붉은 박장수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때를 생각해 도술을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까. 저따위 돌섬도적들쯤은 문제없수다.》

푸른 박장수도 흰 박장수도 허리에 찬 박통을 두드리며 장담하였습니다.

세 박장수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은 기운이 부쩍 솟았습니다.

《자, 세 박장수도 왔으니 싸움준비를 잘 갖추었다가 힘을 합쳐 도적놈들을 쳐물리치세.》

좌상할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은 마을사람들은 모두 싸움준비에 떨쳐나섰습니다.

숲속에서는 싸움준비를 하느라고 왱강댕강 칼과 창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밤낮없이 들려왔습니다.

마을 한끝에 자리잡은 대장간에서는 병쟁기를 벼려내는 풀무소리와  벼림질소리가 쉼없이 울렸습니다.

 

한편 도적괴수놈이 탄 배는 돌섬을 떠나 달미포마을로 쏜살같이 미끄러져 오고있었습니다.

도적괴수놈은 배머리에 우뚝 서서 이제나저제나 달미포마을이 나타나기만 기다렸습니다.

도적괴수놈은 생김새가 신통히도 불에 그슬린 메돼지같았습니다. 나팔주둥이같이 삐죽 돋아난 보기 흉한 입에 덧이발까지 쑥 나온데다 온 상판에 시커먼 털이 부르르 덮여있었습니다.

흉물스럽게 생긴 도적괴수놈옆에는 주름살이 거미줄같이 얼기설기 덮인 늙은 할미가 허리를 새우등같이 잔뜩 꼬부리고 서있었습니다.

그는 며칠전에 바우를  속여넘긴 마귀할미였습니다.

보름날에 마을의 재물을 몽땅 모아놓고 을미를 데려갈수 있게 차비시켜놓으라는 편지를 보낸것도 이 마귀할미였습니다.

도적괴수놈의 렴탐군인 이 마귀할미를 돌섬에서는 꿍꿍할미라고 불렀습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엉뚱한 꿍꿍이를 잘 꾸며내기때문이였습니다.

《이러다 늦어지겠다. 노를 빨리 젓지들 못하겠느냐!》

도적괴수놈이 퉁방울눈을 데룩거리며 호통쳤습니다.

삐걱! 삐걱! 삐거덕!…

노젓는 소리가 잦아졌습니다.

달미포마을 뒤산에 떠오른 둥근달이 저 멀리 바라보일무렵 배는 뭍에 닿았습니다.

도적괴수놈은 뭍에 선뜻 올라서지 못하였습니다.

무서운 그림속의 호랑이가 금시 나타나 목덜미를 당장 물어메칠것 같아 겁이 났던것입니다.

《걱정말구 어서 오르시우. 이젠 도사가 없으니 어떻게 그림속에서 호랑이가 나오겠수.》

꿍꿍할미가 끌끌 혀를 차며 도적괴수놈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도적괴수놈은 그제야 안심하고 배에서 훌쩍 뛰여내렸습니다.

뒤따라 졸개들이 우르르 쓸어내렸습니다.

《자, 어서 정자나무로 안내하라!》

도적괴수놈이 꿍꿍할미보고 성급히 재촉하였습니다.

꿍꿍할미를 앞세우고 마을 한복판에 서있는 정자나무밑에 이른 도적괴수놈은 대뜸 성을 벌컥 냈습니다.

잔뜩 쌓여있을줄 알았던 재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것이였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엉?》

도적괴수놈은 꿍꿍할미를 잡아먹을듯이 쏘아보며 소리쳤습니다.

《글쎄…》

꿍꿍할미는 당장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것만 같아 목을 잔뜩 움츠렸습니다.

《이놈들이 감히 내 령을 거역해! 뭣들 하느냐. 사정보지 말고 몽땅 붙잡아오너라!》

도적괴수놈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졸개들한테 호령하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놈들아, 이 붉은 박통맛을 한번 봐라!》 하고 소리치며 붉은 박장수가 허리춤에서 날래게 붉은 박통 하나를 꺼내 도적놈들이 우글거리는 한복판에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펑!》하는 소리를 내며 붉은 박통이 터지더니 별안간 불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이크! 뜨거워!》

《아이쿠, 나 죽는다!》

도적놈들은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아니, 뭘하시우. 빨리 뿔도깨비들을 불러내지 않구!》

잔뜩 겁에 질려 사시나무떨듯 부들부들 떨며 뒤걸음치던 꿍꿍할미가 안달이 나서 소리쳤습니다.

도적괴수놈은 그제야 생각이 난듯 헤덤비며 품속에서 그림족자를 꺼내 두르르 펼쳤습니다. 흉물스럽게 생긴 뿔도깨비들이 그려져있는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도적괴수놈은 그림족자를 흔들어대며 중얼거렸습니다.

 

잠을 깨여라 뚝딱

뿔도깨비들아 뚝딱

방망이야 두들겨라

뚝딱뚝딱 뚝딱딱

 

그러자 별안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족자에 그려져있던 뿔도깨비들이 훌쩍훌쩍 땅에 뛰여내렸습니다.

뿔도깨비들의 손에는 시뻘건 방망이가 하나씩 쥐여져있었습니다.

뿔도깨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뚝딱뚝딱 방망이로 땅을 두드려댔습니다. 방망이로 땅을 두드릴 때마다 시커먼 연기가 풀썩풀썩 일어났습니다.

시커먼 연기는 느물느물 사방으로 퍼져가더니 어느새 불길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맥없이 꺼져버렸습니다.

《이놈들 봐라!》

붉은 박장수는 성이 나서 이번에는 붉은 박통 두개를 한꺼번에 터뜨렸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보다 곱절이나 시뻘건 큰 불길이 치솟아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불길도 시커먼 연기에 덮여 인차 꺼져버리고말았습니다.

《안되겠소, 이 푸른 박통맛을 보여주어야 하겠소.》

이번에는 푸른 박장수가 나섰습니다. 그는 푸른 박 한개를 번쩍 들어 도적떼들의 머리우에 터뜨렸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쏴 소리를 내며 물사태가 쏟아졌습니다.

도적놈들은 사품치는 물에 빠져 어푸ㅡ 어푸ㅡ 하고 물을 꼴깍꼴깍 먹으며 떠내려갔습니다.

《뭣들 하느냐. 빨리 방망이를 두드려라!》

도적괴수놈이 뿔도깨비들을 둘러보며 소리쳤습니다.

뿔도깨비들은 연방 뚝딱거리며 방망이를 두들겨댔습니다.

그러자 또 시커먼 연기가 풀썩풀썩 일었습니다.

시커먼 연기는 안개같이 자욱히 서리더니 물바다우에 내려앉았습니다. 시커먼 연기가 내려앉자 물은 어느새 땅바닥에 잦아들고말았습니다.

푸른 박장수는 연방 푸른 박통을 터쳐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안되겠소, 아무래도 이 흰 박통맛을 보여주어야겠소.》

이번에는 흰 박장수가 나섰습니다.

그는 흰 박통 한개를 머리우에 들고 빙빙 돌리다가 힘껏 내던졌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같이 찬 서리바람이 터져나와 도적놈들을 꽁꽁 얼쿠었습니다.

도적놈들은 말뚝처럼 뻣뻣해져 오도가도 못했습니다.

이때 또 뿔도깨비들이 뚝딱거리며 방망이를 두들겨댔습니다.

시커먼 연기가 풀썩풀썩 일어나 덮이자 얼음은 온데간데없이 녹아버렸습니다.

《흥, 우리 뿔도깨비들의 힘을 당해보겠다구. 어림없지, 어림없어!》

도적괴수놈이 퉁방울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와!ㅡ》 하고 함성을 지르며 마을사람들이 일떠섰습니다.

도적괴수놈은 덤벼드는 마을사람들을 가리키며 뿔도깨비들한테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이놈들을 모조리 붙들어라!》

뿔도깨비들은 뚝딱뚝딱 방망이를 두드려댔습니다.

그러자 시커먼 연기가 사방에서 풀썩풀썩 일어났습니다.

창과 칼을 휘두르며 도적놈들한테 달려들던 마을사람들은 연기에 목이 컥컥 막혀 연방 재채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습니다.

뿔도깨비들이 일으킨 연기를 마신 사람들의 손에서 창과 칼이 꼭지 잘린 호박처럼 맥없이 툴렁툴렁 떨어졌습니다. 어찌된셈인지 온몸의 피가 다 빠진듯 손가락하나 까딱할 힘마저 없어졌습니다.

뿔도깨비들은 땅바닥에 풀썩풀썩 주저앉은 마을사람들을 모두 바줄로 꽁꽁 묶어 도적괴수놈앞에 끌어왔습니다.

세 박장수도 꼼짝없이 붙잡히고말았습니다.

도적괴수놈은 흡족한듯 능글맞게 웃음을 짓고나서 뿔도깨비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잠들어라

뿔도깨비들아

방망이야 사라져라

 

그러자 뿔도깨비들이 훌쩍훌쩍 족자에 뛰여올라 그림으로 변했습니다.

도적괴수놈은 마술족자를 두르르 말아 품속에 집어넣으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더니 감히 나와 맞서? 앞으로는 고분고분 재물들과 예쁜 처녀들을 바치란 말야. 그러지 않았다간 마을을 아주 재가루로 만들어버릴테다!》

도적괴수놈은 마을사람들을 휘둘러보며 으름장을 놓고나서 졸개들한테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이젠 그만 돌아가야겠다. 집들을 샅샅이뒤져 쌀과 재물들과 제일 예쁘다는 을미를 붙잡아 배에 실어라. 그림속의 호랑이가 나타나지 못하니 이젠 우리 세상이란 말야, 흐흐흐…》

도적괴수놈이 히쭉벌쭉거렸습니다.

졸개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집들을 마구 뒤져 쌀과 비단, 재물들을 꺼내 배에 잔뜩 실었습니다.

을미도 꼼짝 못하고 붙잡혀 배에 실렸습니다.숱한 재물을 빼앗아 실은 배는 돛을 올리고 돌섬으로 떠났습니다.

 

5

 

도적놈들한테 재물을 몽땅 빼앗긴 마을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쌀가마니들이 가득가득 쌓여있던 고간도, 소방울소리가 왈랑절랑 울리던 외양간도 모두 텅텅 비였습니다.

《좌상할아버지, 이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갑쇠총각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좌상할아버지는 먼바다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길게 한숨을 지었습니다.

《청룡산호랑이를 그릴 사람이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고.》

그 말에 바우가 성큼 앞으로 나섰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청룡산호랑이를 그려오겠습니다.》

자신만만한 기상의 바우를 본 좌상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너희들을 믿을수밖에. 해남이는 어떻냐?》

좌상할아버지 물음에 그때까지 입술을 꼭 깨물고 생각에 잠겼던 해남이가 분연히 말했습니다.

《좌상할아버지, 우리의 재주가 아직 어리지만 기어코 청룡산호랑이를 그려오겠습니다.》

《장하다.》

좌상할아버지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해남이와 바우를 데리고 병풍바위가 있는 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험한 산을 넘고넘어 병풍바위앞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그대들은 무슨 일로 여기에 찾아왔는고.》 하는 말소리가 울리였습니다.

그들은 걸음을 뚝 멈추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리는 뜻밖에도 병풍바위앞에 서있는 오동나무에서 울려나오고있었습니다.

좌상할아버지는 얼른 오동나무앞으로 다가가 세번 절을 하고나서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바다건너 돌섬도적들이 우리 달미포마을에 쳐들어와 마음대로 로략질을 일삼고있사온데 이 화근을 막을 방도를 알고싶어 찾아왔소이다.》

그러자 오동나무가지가 우수수 흔들리더니 이런 말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북쪽으로 아흔아홉고개를 넘어가면 선녀들이 내려오는 옥계담이 있을것이니 훌륭한 그림재주를 가진 사람이 그리로 찾아가면 은별선녀를 만나 무지개연적을 구해올수 있을것이로다.

그 무지개연적에 병풍바위굴에서 가져간 붓을 담가 청룡산호랑이를 그리도록 하라. 그 다음 이 오동나무 맨 웃초리에 있는 노을빛이 나는 잎사귀를 따서 그림을 세번 쓸어주면 살아있는 호랑이가 뛰쳐나와 화근을 막아줄것이로다.》

《고맙소이다.》

《무지개연적이 있다 하여도 그림재주가 미처 따르지 못하면 랑패를 면치 못할것이니 이를 항상 명심할지어다.》

《알겠소이다. 꼭 명심하겠나이다.》

좌상할아버지는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오동나무 웃초리에서 노을빛이 나는 잎을 따가지고 바우와 해남이와 함께 마을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좌상할아버지는 웬일인지 마을로 곧장 들어서지 않고 뒤산에 있는 바위벼랑으로 갔습니다. 그 바위벽에는 《을지》라는 글발이 새겨져있었습니다.

이 바위에는 예로부터 이런 전설이 전해오고있었습니다.

 

옛날 달미포마을에 을지라고 부르는 힘장사총각이 살고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였습니다.

어느날이였습니다.

지게를 지고 숲속에 나무하러 들어갔던 그는 너럭바위옆을 지나다 깜짝 놀랐습니다. 황소만큼 큰 시커먼 곰이 웬 총각아이를 해치려고 절구통같은 앞발을 추켜들고있었습니다.

《이놈, 어따대고 사람을 해치려드느냐?》

을지총각은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곰은 주춤하고 멈춰섰습니다.

앞발을 추켜든채 을지총각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곰은 이건 또 웬놈이야 하는듯 으앙! 하고 골짜기가 드르릉 울리게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숲을 와락와락 헤치며 달려들었습니다.

을지총각은 옆으로 한발 썩 물러서며 헤덤비는 곰의 골통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습니다. 바위돌도 깨뜨릴만큼 힘이 장사인 을지총각의 주먹에 웬만한 짐승이라면 대번에 나자빠졌을것이였지만 워낙 엄청나게 큰 곰이라 한번 흠칫하고는 다시 성이 나서 달려들었습니다. 을지총각은 이번에는 윽! 하고 용을 쓰며 달려드는 곰을 허궁 들어 바위돌에 멨다꼰졌습니다.

《어흥!ㅡ》

곰은 외마디소리를 내지르며 모로 쓰러져 버들쩍거리다 잠잠해졌습니다.

곰을 요정낸 을지총각은 급히 곰이 해치려던 사람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얼굴이 동실한 총각아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습니다.

을지총각은 샘터에 내려가 맑은 샘물을 떠다 총각아이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열심히 손발을 주물러주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여 정신을 차린 총각아이는 막혔던 숨을 후 하고 내쉬였습니다.

《날 살려주어 정말 고마워요. 곰이 너무도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그만 이렇게 됐어요.》

총각아이는 고마운 눈길로 을지총각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품속을 뒤져 무엇인지 반짝거리는 물건을 꺼내놓았습니다.

《이걸 받으세요.》

총각아이는 을지총각한테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바닥우에 반짝거리는 구슬 한알이 댕그라니 놓여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을지총각은 받을념을 않고 총각아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야광주예요.》

《야광주라구?》

《그래요. 그러나 이건 보통야광주가 아니랍니다. 이 야광주는 소원을 풀어주는 보물이예요. 어서 받으세요.》

《내가 이런 귀한 보물을 어떻게 받겠느냐.》

을지총각은 뒤로 한발 물러서며 사양하였습니다.

《총각님이 아니였다면 난 벌써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고말았을거예요.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비기겠나요. 사양말고 어서 받으세요. 전 하늘나라에 사는 동자랍니다.》

하늘나라 동자는 야광주를 기어이 을지총각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이 야광주는 어떤 소원이든지 다 풀어줄수 있어요. 헌데 아쉽게도 한번밖에 소원을 풀어주지 못해요. 그러니 잘 생각해서 쓰도록 하세요.》

하늘나라 동자는 이런 말을 남기고나서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을지총각은 꿈을 꾸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분명 손에는 하늘나라 동자가 주고간 야광주가 놓여있었고 한옆에는 자기가 때려잡은 황소만 한 곰이 쓰러져있었습니다.

야광주를 품속에 간직한 을지총각은 곰을 둘러메고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곰을 잡아 마을사람들한테 골고루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야광주를 어떻게 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았으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도무지 좋은 궁냥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덩실한 기와집을 지어달라고 할가 아니면 밭갈고 농사짓는데 쓸 황소나 한마리 생겨나게 해달랠가.…

종시 결심을 하지 못한 을지총각은 야광주를 장농속에 깊이 간수하였습니다.

좀더 깊이 생각한 다음 쓸 생각이였습니다.

얼마후였습니다.

마을에 뜻하지 않게 왕가물이 들었습니다.

석달 열흘동안 꼬박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고 뜨거운 땡볕만 내리쪼였습니다.

우물이란 우물은 모두 말라버리고말았습니다.

물이 없으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였습니다.

사람들은 한모금의 물을 얻기 위해 수십리밖에 갔다와야만 했습니다.

차츰 갈증을 견디다못해 한사람, 두사람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가?)

쓰러지는 마을사람들의 정상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며 생각을 더듬던 을지총각은 문득 야광주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지, 야광주로 물이 생겨나게 해야지. 마을사람들이야 죽건말건 나 혼자나 잘 살아서야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을지총각은 장농속에 깊이 간수해두었던 야광주를 꺼내들고 물이 말라버린 우물로 나갔습니다.

열길도 넘게 깊이 판 우물바닥에는 물 한방울 없었습니다.

을지총각은 야광주를 우물에 던져넣으며 소원을 말하였습니다.

《우물아, 온 마을사람들이 마실 맑은 물을 솟구쳐주렴.》

을지총각의 말이 끝나자 별안간 우물안에서 꾸르륵꾸르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맑은 물이 콸콸 솟구쳤습니다.

《물이다!》

마을사람들은 을지총각이 드레박에 철철 넘치게 퍼주는 시원한 물을 실컷 마시며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을뒤에 솟아있는 바위벽에서 무엇이 번쩍하였습니다.

(무슨 일일가?)

사람들은 모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곳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던 그들은 더 눈들을 크게 떴습니다.

뜻밖에도 뒤산바위벽에 눈부신 빛이 번쩍거리는 글자가 새겨져있었습니다.

(저게 무슨 글인가?)

호기심이 가득찬 눈으로 글자를 읽어보던 사람들은 야! 하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바위벽에 을지총각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던것입니다.

사람들은 을지총각을 바라보며 자기 일처럼 기뻐들하였습니다.

바위벽에 새겨진 이름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지워지지 않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바위는 지금까지도 달미포마을의 자랑으로 전해오고있었습니다. 

좌상할아버지는 바우와 해남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바위에 이름이 새겨진 을지총각처럼 오직 마을을 위해 자기를 바치겠다는 그런 뜨거운 사랑을 지녀야만 무지개연적도 구해올수 있고 청룡산호랑이도 살아나게 그림을 그릴수 있느니라. 도사할아버지는 늘 마을사람들에게 을지총각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지 않았느냐. 을지총각의 마음은 바로 도사할아버지의 마음이였느니라.》

다음날 바우와 해남이는 옥계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두 총각만 보내는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좌상할아버지는 갑쇠와 철메, 옥돌총각도 함께 따라보냈습니다. 좌상할아버지와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동구밖에 나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워주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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