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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4호에 실린 글
◇동 화◇
윤 학 복 1
아가야 어서 크렴 크거들랑 장수되렴 룡천검 뽑아들고 기린성 찾아주렴
청돌이는 아주 어렸을적부터 이 노래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불러주었던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룡천검이 어떤 칼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기린성이 어데 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지요. 《이다음 네가 좀더 큰 다음에 모든걸 죄다 얘기해주마. 아무튼 빨리 크거라.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훌륭한 장수가 되여야 한다.》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군 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안아서인지 청돌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열살이 넘어서부터는 마당의 망아지바위에 올라 나무칼을 휘두르며 하루해를 지우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구절을 제 결심을 담은 말들로 고쳐 곧잘 부르군 하였습니다.
나는야 크게 되면 용감한 장수되지 룡천검 뽑아들고 기린성 찾아가지
어느 늦은 봄날. 신나게 노래부르며 나무칼을 휘둘러대던 청돌이는 《너 그 노래를 어디서 배웠니?》하는 귀에 선 목소리에 노래를 뚝 멈추었습니다. 집옆에 있는 우물가에서 웬 사람이 자기를 유심히 지켜보고있었습니다. 오른쪽입귀에 밤알만큼 크고 시꺼먼 사마귀가 척 매달려있는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였습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웠어요.》 그 사람은 청돌이의 대답에 흠칫 놀라며 물었습니다. 《그럼 너 혹시 바위장수의 아들이 아니냐?》 《우리 아버지를 아시나요?》 청돌이도 호기심이 나서 되물었습니다. 《그럼.》 낯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그러자 크고 검은 사마귀도 덩달아 푸들푸들 떨었습니다. 《알다뿐이겠니. 너의 아버지 바위장수랑 함께 싸웠지. 그래 어머닌?》 《보리밭에 김매러 가셨는데… 인차 돌아오실거예요.》 《그래?》 낯선 사람은 매우 기쁜듯이 웃음을 짓고 외따로 떨어져있는 청돌이네 집과 조용한 산골길을 번갈아 살펴보았습니다. 《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바위장수의 아들녀석이 벌써 이렇게 컸을줄이야.… 자, 어디 한번 안아볼가.》 사나이는 반가운듯 청돌이를 덥석 안아들고는 한바퀴 빙그르르ㅡ 돌았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에익ㅡ》하고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며 청돌이를 우물속에 집어던졌습니다. 《흥! 장수의 아들새끼, 애비처럼 룡천검의 주인이 되겠다구… 어푸어푸하다가 꼬르륵ㅡ 잠겨서 우물귀신이나 되여버려라!》 그놈은 씹어뱉듯 이렇게 뇌까리고는 황급히 꽁무니를 뺐습니다. 깊은 우물속에 곤두박혀 다 죽게 되였던 청돌이는 때마침 돌아온 어머니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몸의 여기저기에 험한 상처를 입긴 했지만… 《청돌아, 이게 웬일이냐?》 너무도 기가 막혀 통곡하던 청돌이 어머니는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청돌이는 낯선 사람이 나타나던 일부터 자초지종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 낯선 사람의 얼굴에 시꺼먼 사마귀가 있더라는 청돌이의 말에 어머니는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뭐라구? 그놈이 너까지?》 청돌이는 영문을 몰라 어머니만 쳐다보았습니다.
2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듯 말꼭지를 뗐습니다. 《청돌아, 잘 들어두어라. 그리고 기억해둬라. 너의 아버지 바위장수에게는 룡천검이라는 보배칼이 있었단다. 한다 하는 장정 두셋도 쳐들지 못할만큼 무거운 칼이지만 아버지는 깃털처럼 가볍게 휘두르군 하셨지. 아버지가 지키던 성은 나라의 북쪽 한끝에 있었단다. 오랑캐놈들은 그 성을 삼키려고 몇년째 악을 썼지만 끝내 떼죽음만 당하고 도망쳤지. 아버지가 휘두르는 신기한 룡천검은 오랑캐놈들의 투구나 갑옷도 수박통 쪼개버리듯 했으니까. 그러던 얼마후, 금은보물을 가득 실은 수레와 물소며 락타 같은 희귀한 짐승들까지 앞세운 오랑캐사신놈이 성문앞에 다시 나타났다누나. 혼쌀나서 쫓겨간 추장놈이 우리 임금님께 드리는 례물이라면서 말이야. 바로 그 사신놈의 볼따귀에 크고 검은 사마귀가 매달려있어 흑사마귀라고 불렀단다. 나라에선 임금님께 드리는 례물을 받아오라고 한 벼슬아치를 내려보냈단다. 일은 바로 그때부터 생겼지. 흑사마귀놈이 끌고온 짐승들중에는 기린이란 진귀한 짐승도 있었는데 키가 어찌나 큰지 성벽도 넘겨다보는 정도였단다. 그러니 낮은 성문으로야 어떻게 들어올수 있었겠니. 기린만은 들여놓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벼슬아치는 펄쩍 뛰였단다. <뭐라구? 성문이 낮아서 안된다면 성벽을 까서라도 길을 내여라.> 벼슬아치의 불호령에 <그건 안되오이다.>하고 너의 아버지가 나섰단다. <오랑캐놈들이란 흉악하면서도 간특하기 그지없는 무리들입니다. 나라지경을 지켜선 성벽을 어찌 한갖 짐승때문에 무너뜨리겠나이까.> 그러자 곁에 있던 오랑캐사신 흑사마귀놈이 슬쩍 끼여들었단다. <기린이란 상서로운 동물이니… 여기에는 삼가 임금님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사죄와 화친만을 청하는 우리 추장님의 뜻이 담겨있소이다. 헌데 저 무지한 장수가 함부로 길을 가로막으니… 이야말로 임금님의 존엄마저 짓밟는 방자한짓인줄로 아옵니다.> 대뜸 얼굴이 시뻘개진 벼슬아치는 발을 탕 구르며 호통쳤단다. <네 이놈! 감히 임금님께 올리는 례물행차에 훼방질을 해? 저 역적놈을 당장 묶어라!> 이렇게 되여 아버지는 억울하게도 형틀에 묶인 몸이 되였단다. 살이 찢기고 피가 터지는 모진 매가 연거퍼 떨어졌지만 아버지는 조금도 굴하지 않으셨지. <성벽을 무너뜨리면 안되오. 그건 오랑캐들에게 나라 대문을 열어주는짓이요!> 그러다가 끝내 <청돌아!>하고 한마디 웨치시고는 그대로 숨을 거두셨단다. 그러자 아버지가 쓰시던 룡천검이 갑자기 허공중에 떠오르며 우르릉ㅡ 소리를 질렀다누나. 겁에 질린 오랑캐사신놈과 벼슬아치는 허둥지둥 대가리를 틀어박았지. 룡천검은 숨을 거둔 아버지의 머리우를 두어번 빙빙 날아돌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말았단다. 그뒤의 일은 너도 짐작할게다. 눈뜬 소경같은 벼슬아치가 끝내 성벽을 무너뜨리자 숨어있던 오랑캐놈들이 사태처럼 쓸어들었단다. 군사들은 하나, 둘 쓰러져버리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벼슬아치도 흑사마귀놈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누나. 오랑캐놈들은 그때부터 성을 타고앉아 주인행세를 하면서 다른 고을들까지 넘본단다. 이젠 그 성을 <기린성>이라고 부르지. 바로 그 악착한 원쑤놈이 예까지 나타나 너마저 죽이려고 날칠줄이야.… 청돌아, 잊지 말아. 지금도 저 기린성에서 원통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하루빨리 성을 되찾고 원쑤를 갚아주기만을 기다린다는것을…》
3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청돌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니, 룡천검은 지금 어데 있나요? 당장 그 칼을 잡고 기린성을 찾으러 가겠어요. 저야 장수의 아들이 아닌가요.》 어머니는 대답대신 청돌이를 망아지바위앞에 데리고갔습니다. 망아지바위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염소보다 작은 바위였습니다. 신통히도 고개를 수그린 말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였지요. 《네가 룡천검의 주인이 되겠다니… 어디 이 바위부터 한번 들어보렴.》 청돌이는 끙ㅡ 하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한귀퉁이도 쳐들지 못한채 주저앉고말았습니다. 그 바위는 쌀가마니 서너개를 합친만큼이나 무거웠던것입니다. 《장수의 아들이면 저절로 장수가 되는줄 알았니. 이제부터 매일 이 바위를 서른번씩 추켜들어야겠다. 머리우로 번쩍 쳐들게 되면 룡천검이 있는 곳을 알려주마.》 《아니, 마흔번, 쉰번씩 들겠어요.》 청돌이가 만만치 않게 대답했습니다. 《한시바삐 룡천검을 잡아야 할텐데… 꾸물거릴수 없으니까요.》 대끝에서 대가 돋기마련이라더니 역시 청돌이는 장수의 아들이 틀림없었습니다. 첫날에는 움쩍 못한 망아지바위를 일년만에 허리까지 안아올렸던것입니다. 다시 또 반년이 지나서는 가슴팍까지, 마침내는 눈앞에까지 닁큼 들어올리게 되였습니다. 《헹! 이만하면야… 이젠 룡천검의 주인이 될날도 멀지 않았어.》 우쭐해서 땀을 씻던 청돌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방금 떨어뜨린 망아지바위가 펄떡펄떡 재주를 부리더니 진짜망아지만큼 커졌던것입니다. 꿈을 꾸는가싶어 한번 들어보았더니 발등까지 쳐들기도 어려웠습니다. 안깐힘을 쓰던 청돌이는 그만에야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말았습니다. 에익! 화가 난 청돌이가 부르짖었습니다. 《어머니, 룡천검은 대체 어디 있나요? 이만해도 어떤 칼이든 문제가 없을텐데… 어서 저에게…》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벌써 잊었니? 이걸 번쩍 쳐들기 전엔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니?》 《엥이 참!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안다는데…》 《뭐라구?》 어머니는 노한듯 서늘한 눈길로 쏘아보았습니다. 《좋다, 오늘이 마침 보름날이니… 그럼 어서 날 따라오너라.》 어머니와 청돌이는 두말없이 집을 나서 고개길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헐떡헐떡 숨가쁘게 한 고개를 넘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땀에 뜬채 또 한 고개를 넘으니 높고 험한 검산령이 나타났습니다. 그사이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요. 령중턱에 오르니 집채같이 크고 펑퍼짐한 바위가 앞에 나타났습니다. 어머니는 두텁게 쌓인 락엽과 이끼들을 모두 쓸어내게 했습니다. 그러자 바위등에 새겨진 사발만 한 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검바위란다. 읽어보아라.》 청돌이는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글자들을 더듬어나갔습니다.
룡천검 이 칼을 어이 쓰지 않느뇨? 룡천검 이 칼이 주인을 만날적에 오랑캐무리는 끝장나리 강토에 안녕은 깃들리라
《아니, 이건?》 청돌이는 놀라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미처 대답할수 없었습니다. 쟁반같이 둥글고 싯누런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한것입니다. 그 휘영청 밝은 달빛은 신기하게도 우중충한 숲그늘에 묻힌 검바위부터 먼저 비쳐주었습니다. 검바위는 마치 거울쪼각처럼 반짝 빛을 뿌렸습니다. 뒤이어 떡판같은 돌뚜껑이 스르르ㅡ 한옆으로 젖혀지더니 번쩍번쩍 눈부신 빛을 뿌리는 칼 한자루가 서서히 솟아나다 뚝 멈춰섰습니다. 숲속은 삽시간에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왜 보고만 있는거냐?》 어머니가 일깨워주었습니다. 《보름달이 스러지면 룡천검도 다시 바위속에 박히고마느니라.》 청돌이는 펄쩍 정신을 차리고 바위우에 뛰여올랐습니다. 《으음ㅡ》 있는 힘껏 칼자루를 잡아당겼지만 룡천검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바위속에 녹아붙기라도 한듯 한치도 뽑혀나오지 않았지요. 두손으로 움켜잡고 젖먹던 힘까지 다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찬란한 금빛을 뿌리며 주인을 기다리던 룡천검은 이윽고 우르릉ㅡ 소리와 함께 바위속으로 사라지고말았습니다. 《그래 알만하냐?》 어머니의 꾸지람이 풀이 죽은 청돌이를 채찍처럼 후려쳤습니다. 《흉악한 원쑤들과의 싸움은 이겨도 되고 져도 일없는 씨름이 아니다.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지켜선 군사는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자면 꾸준히 힘을 키워 아버지처럼 룡천검의 주인이 되여야 할게 아니냐.》 어머니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준절하게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넌 고작 조그마한 힘을 믿고 벌써부터 우쭐렁거리고있으니… 어떻게 훌륭한 장수로 되여 아버지의 뜻을 이을수 있겠느냐?》 청돌이는 풀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비록 장수의 아들이라도 땀을 아끼면 장수는커녕 군사구실도 할수 없다는걸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뼈를 깎고 살을 태우는 한이 있어도 기어이…》 이렇게 청돌이는 새로운 결심을 품고 달라붙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룡천검의 주인이 되고저 청돌이가 기울인 땀과 노력을 무슨 말로 다 전할수 있겠습니까. 언듯번듯 한해가 또 지나고 다시 아홉달째에 잡히던 어느날. 청돌이는 드디여 망아지바위를 번쩍 추켜들고야말았습니다. 보짱같은 두다리로 떡 버티고선채 기둥같은 두팔로 망아지바위를 빙빙 돌리다가 공기돌마냥 내던졌습니다. 저만치 나가 떨어진 망아지바위가 꽝ㅡ 하고 산산쪼박이 났습니다.
오호홍ㅡ 백마는 기운차게 걸어와 청돌이와 어머니주위를 몇바퀴 돌더니 청돌이앞에 서서 어서 타라는듯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진 청돌이를 덥석 그러안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장수가 나면 룡마도 나기마련이라더니… 망아지바위가 진짜준마로 된걸 보니 이젠 너도 의젓한 장수로 자랐구나.》 청돌이도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답니다. 어머니의 두손을 꼭 부여잡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제 닷새후이면 이달 보름날이니… 그날에는 반드시… 기어코!》
4
기다리던 보름날 아침. 청돌이네 집으로는 웬 늙은이가 찾아들었습니다. 고슴도치털가죽을 뒤집어쓴것처럼 텁수룩한 수염이 온 얼굴을 가리운 늙은이였습니다. 마침 마당에서는 청돌이가 혼자서 준마의 갈기를 빗어주고있었습니다. 텁석부리늙은이는 준마를 보더니 저혼자 고개를 기웃거렸습니다. 《으흠, 과시 소문대로 한달음에 천리를 달릴만 한 준마로군. 헌데… 때를 잘못 만났어.》 《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늙은이는 수염투성이얼굴을 돌리지도 않은채 건성으로 대꾸했습니다. 《준마는 있지만 이 준마를 다룰만 한 장수는 아직 없다 그 말일세.》 청돌이는 아무말없이 준마를 번쩍 쳐들었다가 슬쩍 내려놓았습니다. 《아이쿠.》 깜짝 놀란 늙은이가 풀썩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내가 누… 눈이 멀었댔군. 이런 힘장수를 진작 알아보지 못하다니… 임자야말로 이 준마의 주인이 틀림없네그려. 헌데 준마에 편자는 신겼나?》 《아니요. 이건 신기한 준마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가요?》 늙은이는 어처구니없다는듯 허ㅡ 하고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두말없이 망태기를 벗어놓더니 집게며 망치따위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았습니다. 《그런즉 내가 바로 온셈이군. 장수라도 보검이 있어야 하듯 준마도 편자를 잘 신겨야만 제구실을 하는 법이라네. 이렇게 신기한 준마에 편자까지 알맞추 잘 신기면야… 호랑이에 날개가 돋치는 격이지.》 《그래요? 그럼 부디 편자를 잘 신겨주세요. 사실은 오늘 저녁 검산령으로 룡천검을 가지러 가야 한답니다.》 《아하 그런가? 걱정말라구. 난 한평생 말편자만 신겨온 늙은이라네. 신기한 준마에게 내손으로 편자를 신겨주고싶어서 우정 찾아왔지.》 과연 늙은이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였습니다. 뚝딱뚝딱 잠간사이에 편자를 다 신긴 늙은이는 자기도 못내 만족한지 벙글벙글 웃으며 떠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오자 청돌이와 어머니는 준마를 타고 검산령으로 떠났습니다. 준마는 크고 힘도 세서 두사람을 태우고도 잘 달렸습니다. 나는듯이 첫 고개를 넘고 바람같이 재빠르게 또 한 고개… 그런데 둘째 고개를 내려서던 준마의 걸음이 차차 떠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룩절룩하며 가까스로 한걸음씩 떼놓았습니다. 살펴보니 준마의 네 발통이 모두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일이 심상치 않구나.》 어머니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듯 청돌이를 다그쳤습니다. 《좀 있으면 달이 뜨기 시작할텐데… 넌 어서 검바위로 뛰여가거라. 난 인차 뒤쫓아갈테니…》 다급해진 청돌이는 지체없이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내리막길이여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단숨에 고개를 내려 검산령오솔길로 접어들던 청돌이는 흠칫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어둠속에서 뛰쳐나온 누군가가 앞길을 딱 가로막은것입니다. 《얘야, 이 늙은게 일부러 찾아가 편자까지 잘 신겨주었는데… 준마는 어떡하고 뛰여오는거냐?》 뜻밖에도 텁석부리늙은이였습니다. 《아니? 준마가 다리를 절기에…》 청돌이가 얼결에 대꾸했습니다. 늙은이는 의례 그럴줄 알았다는듯 징그럽게 이죽거렸습니다. 《흐흐, 그야 그럴수밖에… 내가 그 말편자못들에 독을 발랐으니까. 준마가 꺼꾸러지면 돌아갈줄 알았는데 죽으려고 예까지 뛰여온단 말이냐?》 《뭐라구? 그럼 네놈이?》 청돌이가 주먹을 틀어쥐며 다가섰습니다. 냉큼 뒤로 물러선 늙은이는 얼굴을 가리웠던 수염마저 휙ㅡ 뜯어던졌습니다. 《아직 못 알아보았느냐. 내가 바로 흑사마귀다. 널 우물속에 처넣구 후환을 미리 없앤줄 알았는데… 하지만 오늘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게다.》 흑사마귀놈이 획ㅡ 하고 휘파람을 불자 한무리의 오랑캐놈들이 숲속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청돌이는 어쩔수없이 놈들과의 싸움에 말려들었습니다. 무서운 장수힘을 지닌 청돌이였지만 창칼을 겨누고 대드는 놈들을 당하기는 헐치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산중턱에서 쩌렁! 쩌렁! 날카로운 쇠소리가 메아리쳐왔습니다. 청돌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달이 뜨기 시작했던것입니다. 검바위엔 룡천검이 우뚝 솟아올랐는데 두억시니같은 오랑캐놈들이 달라붙어 철퇴로 룡천검을 후려치고있었습니다. 룡천검을 아예 꺾어버릴 잡도리였습니다. 《앗, 저놈들이.》 청돌이는 검바위로 한달음에 달려가고싶었으나 무리로 달려드는 놈들에게 포위되여 몸을 뺄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준마때문에 떨어졌던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청돌아, 어서 검바위로 달려가 룡천검부터 뽑아들어라. 때를 놓치지 말구 어서!》 어머니는 이렇게 웨치며 너부러진 오랑캐놈의 손에서 칼을 앗아들고 싸움판에 뛰여들었습니다. 청돌이를 뒤쫓는 놈들을 한몸으로 막아나섰던것입니다. 그틈에 청돌이는 룡천검을 향해 냅다 달렸습니다. 앞을 막는 몇놈을 검불처럼 잡아 휘뿌리고 한달음에 검바위에 이른 청돌이는 룡천검을 후려치던 오랑캐놈의 철퇴를 빼앗아 번개같이 휘둘렀습니다. 세놈의 대가리가 닭알처럼 박산나고 대여섯놈이 단번에 허리를 꼬며 꼬꾸라졌지요. 겁에 질린 오랑캐놈들이 새무리 풍겨나듯 흩어졌습니다. 오랑캐놈들을 쓸어버린 청돌이는 다급하게 룡천검에 다가섰습니다. 그 찰나 달빛이 스러졌습니다. 룡천검은 집채같은 검바위속으로 흔적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뒤미처 육중한 돌뚜껑마저 닫기자 숲은 짙은 어둠속에 파묻혔습니다. 한순간이 모자라 때를 놓친것이지요. 그 어둠속에서 어머니를 쓰러뜨린 오랑캐들이 너털웃음을 치며 조여들었습니다. 《찔러라! 어서 사정없이 베여죽여라!》 흑사마귀놈의 목소리였습니다. 청돌이는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여 주르르ㅡ 눈물을 쏟았습니다. 피흘리며 쓰러진 어머니와 다가드는 원쑤놈들을 번갈아보며 피나게 입술을 깨물던 청돌이는 검바위를 쾅쾅 두드렸습니다. 《검바위야, 무정하구나. 너도 이 나라의 한쪼각일텐데… 오랑캐무리를 눈앞에 보면서도 어찌 보검을 감춘단 말이냐. 어서 나에게 돌뚜껑을 열어다오. 아버지가 쓰시던 룡천검을 내여다오.》 청돌이는 목청껏 웨치며 있는 힘껏 돌뚜껑을 와락 안아 쳐들었습니다. 그러자 우르릉ㅡ 소리와 함께 번쩍번쩍 눈부신 빛발이 뿜어나왔습니다. 청돌이가 돌뚜껑을 추켜들기 바쁘게 룡천검이 불쑥 솟아오른것입니다. 《아, 룡천검!》 청돌이는 돌뚜껑을 한옆에 제껴놓고 단번에 룡천검을 쑥 뽑아 쳐들었습니다. 숲속은 다시금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룡천검이 휘뿌리는 서슬푸른 빛발에 넋을 잃은 오랑캐놈들이 갈팡질팡했습니다. 해볕아래 끌려나온 쥐무리처럼 숨을 곳만 찾느라 헤덤벼쳤지요. 《받아라!》 청돌이가 룡천검을 휘둘렀습니다. 흑사마귀놈의 더러운 몸뚱이가 단번에 두동강났습니다. 도망치던 오랑캐놈들도 아이쿠지쿠하며 모조리 너부러졌습니다. 청돌이는 그제야 쓰러진 어머니를 안아일으켰습니다. 온몸이 피에 젖은 어머니가 가까스로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는 청돌이와 룡천검을 번갈아보더니 간신히 웃음을 지었습니다. 《장하다. 네가 아버지의 뜻을 잇게 되였으니… 이젠 마음놓고… 눈을 감으련다.》 《어머니ㅡ》 청돌이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바라시던대로 아버지의 룡천검을 비껴들고 기린성을 기어이 찾고야말겠어요.》 청돌이는 쓰러진 어머니앞에서 굳은 맹세를 다지였습니다. 얼마후, 드디여 빼앗겼던 기린성을 되찾는 장쾌한 싸움이 시작되였습니다. 기세높이 출전하는 군사들의 앞장에는 준마에 올라 룡천검을 비껴든 청돌장수가 서있었습니다. 기어이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떨쳐나서 바래주는 백성들속에 어머니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청돌장수의 마음속에는 어머니가 늘 불러주시던 노래가 울리고있었습니다.
아가야 어서 크렴 크거들랑 장수되렴 룡천검 뽑아들고 기린성 찾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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