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4호에 실린 글

 

 ◇우 화◇

박 화 준

 

여느날보다 일찍 잠을 깬 오소리가 마을앞에 솟은 고개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고있었습니다.

(오늘은 내 볼장을 보자고 정해놓은 날인데… 하필 골라골라 오늘 딱 서까래감을 찍으러 갈건 뭐람.)

오늘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리용할 열매창고를 짓는데 쓸 서까래감을 찍으러 가기로 토론이 되였다고 어제 저녁 이웃집 청서가 알려왔던것입니다.

오소리는 고개너머 마을에 사는 곰서방에게 주고 물고기꿰미를 바꿔오기로 서로간에 흥정이 된 약초자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 굴렸습니다.

(옳지. 전번날 기둥감 찍을 때 내가 한쪽다리를 상했다는걸 모두 알고있겠으니 갑자기 상처가 쑤셔난다고 둘러쳐서라도 오늘은 기어이 볼장을 봐야 해.)

오소리는 그럴듯 한 수가 떠오른것이 너무 좋아 코노래까지 흥얼흥얼 불렀습니다.

이윽고 도끼며 바줄타래들을 든 이웃들이 마을어구에 있는 오소리네 집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난 아무래도 오늘은 빠져야 할것 같애요. 글쎄 씻은듯이 나은것 같던 다리상처가 어제밤부터 쿡쿡 쑤셔나는데 어쩐지 심상치 않아요.》

오소리가 마을의 좌상인 산양앞에서 짐짓 정갱이를 부여잡으며 둘러쳤습니다.

그러자 산양은 몹시 난처한 기색을 지었습니다.

《이거 야단났군. 허리병이 있는 깡충이가 몹시 불편해하기에 오늘 하루 빠지라고 했는데… 둘이나 빠지면 해지기 전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가 힘들겠군.》

그러나 오소리는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오죽하면 마을사정 빤히 알면서도 이러겠나요. 상처란 제때에 깨끗이 아물려야지 조심하지 않았다간 후날 곱절로 곤경을 치를수 있다는걸 다들 알지 않나요. 아무래두 난 오늘 집에서 치료를 해야 할것 같애요.》

이때 마침 마을짐승들이 일하면서 마실 물을 통에 채워가지고 그 자리에 나타난 깡충이가 오소리의 《사정》을 알게 되였습니다.

《여보게, 걱정말게. 그럼 내가 갈테니. 아무러면 나야 고질병인데 자네보다야 급하겠나. 그러니 차라리 우리 집 열쇠나 맡아주게. 외삼촌집에 심부름간 막내녀석이 돌아오거들랑 인차 요기를 할수 있게 말이네.》

그러자 곁에 있던 청서도 마침이라는듯 열쇠묶음을 허리춤에서 풀어냈습니다.

《거참 잘됐군. 요새 다래골에 사는 할머니가 며칠동안 우리 집에 와있겠다고 기별이 왔는데 어느때든 불쑥 나타날수 있으니 자네가 좀 수고해주게. 더우기 열쇠라는건 일에 정신을 파느라면 잃기가 쉬운 물건이니 맡겨두고 가는편이 썩 낫겠네.》

그 바람에 앞집 다람이도, 길건너집 수닭도 저저마다 덩달아 제 집 열쇠묶음들을 내들었습니다.

《이것까지 맡아주게.》

《이 열쇠도 좀…》

오소리는 여기서 저기서 부탁하는 갖가지 모양의 끈달린 열쇠묶음들을 울며 겨자먹기로 맡아안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열쇠묶음들이 팔목에도 걸려 절렁, 목에도 걸려 절렁, 오소리의 몸은 그대로 열쇠뭉치가 되고말았습니다.

이윽고 마을에 외토리로 남은 오소리는 벼르고벼르다가 끝내는 넘지 못하게 된 고개를 멍하니 쳐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아이쿠, 차라리 꾀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가는 길에 곰서방네 집에 들릴수 있었을걸. 신통한 속임수로 내 볼장을 보게 됐다 했더니 도리여 한시도 자리를 떠선 안될 온 마을의 <열쇠지기>가 되고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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