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4호에 실린 글

 

◇장편동화◇

 

                 

 

(이 작품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동화로 옮긴것입니다.)

 

(제 1 회)

 

1

 

먼 옛날 어느 바다가에 달미포라고 부르는 살기 좋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선 고기를 잡고 산에선 진귀한 약초와 산열매를 따들이고 넓은 벌에선 오곡을 심고 가꾸었습니다.

해마다 집집의 고간마다엔 쌀이 그득그득 쌓이고 물고기와 과일이 넘쳐났습니다. 살림이 넉넉하고 인심들이 후하니 먼 고장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예 이사짐을 싸들고와서 이 마을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바다 멀리 돌섬에 있는 도적무리들이 이 마을을 탐내여 자주 쳐들어오군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놈들은 매번 헛물만 켜군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마을에 신기한 그림을 그리는 도사할아버지가 있기때문이였습니다.

도사할아버지의 그림재주는 얼마나 신기한지 청룡산에 사는 100년 묵은 호랑이를 그리기만 하면 그 호랑이가 그림속에서 뛰쳐나와 마을에 기여든 도적무리들을 모조리 물어메치군 하였습니다.

그런데 달미포마을사람들의 가슴속에 언제부터인가 근심의 그림자가 비껴들었습니다.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도사할아버지의 눈이 어두워져 점점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가 힘들어졌기때문이였습니다.

(아, 하늘중천에 떴던 해도 서산에 지기마련이거늘 내 명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구나.…)

땅이 꺼질듯 한 도사할아버지의 탄식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습니다.

(내 장차 누구에게 그림재주를 물려줄고…)

도사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였습니다.

도사할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마을아이들에게 그림재주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그림재주를 물려받을만 한 신동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리며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도사할아버지는 드디여 두 총각을 점찍었습니다.

바우와 해남이라는 소년이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림공부를 하는 아이들가운데서 그중 눈썰미가 있고 어지간히 재주도 엿보였습니다.

도사할아버지는 두 총각을 부른 다음 그들을 데리고 뒤산으로 올랐습니다.

산을 하나 넘고 또 다른 산을 넘으며 그들은 자꾸자꾸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홉갠지 열갠지 모르게 그냥그냥 산을 넘던 도사할아버지는 병풍처럼 생긴 어느 한 바위앞에 멈춰섰습니다.

(여긴 왜 데리고왔을가?)

바우와 해남이는 서로 의아한 눈길로 마주보며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이때 그들의 머리우에서 도사할아버지의 웅글은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병풍바위야, 문 열어라!》

그러자 병풍바위가 드르릉 땅을 울리며 두쪽으로 갈라졌습니다.

바우와 해남이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자, 굴안으로 어서 들어가자.》

도사할아버지를 따라 굴안에 들어선 바우와 해남이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해빛도 스며들지 않는 굴안은 어데서 빛이 들어오는지 대낮처럼 환한데 얼마쯤 들어가니 노을빛이 눈부시게 뿜어나왔습니다.

눈을 비비며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간 바우와 해남이는 그만 눈이 퀭해졌습니다. 밥상처럼 생긴 네모반듯한 바위우에 크고작은 여러가지 그림도구들이 주런이 놓여있었습니다.

도사할아버지는 그중에서 붓과 조롱박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 말을 명심해 듣거라. 이 붓은 보통 붓이 아니다. 이 붓으로 꽃을 잘 그리면 그 그림꽃잎에 향기가 풍기는 이슬이 맺힐게다. 그 꽃이슬을 조롱박에 담거라. 서로 다른 여러가지  꽃을 그려서 생긴 이슬이 조롱박에 가득차면 그 물을 마시도록 해라. 그러면 너희들의 눈이 밝아지고 신기한 그림재주도 생기게 될것이니라.》

《그럼 도사할아버지처럼 호랑이가 나오는 그림도 그릴수 있나이까?》

바우는 귀가 번쩍 틔여 물었습니다.

도사할아버지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나서 바우와 해남이를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옥은 닦을수록 빛이 나고 그림은 그릴수록 재주가 늘어나는 법이거늘 언제나 이것을 명심하거라.》

도사할아버지는 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바우와 해남이를 데리고 바위굴안에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도사할아버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 도사할아버지!ㅡ》

바우와 해남이는 도사할아버지를 애타게 찾고찾았으나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사할아버지가 서있던 자리에 난데없이 오동나무 한그루가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오동나무를 붙안고 도사할아버지를 찾으며 울고울던 그들은 한참만에 붓과 조롱박을 소중히 안고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바우와 해남이한테서 도사할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모두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들은 도사할아버지가 사라진 병풍바위앞에 달려가 오동나무밑에 향불을 피우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도사할아버지를 잃었으니 이젠 돌섬도적들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마을을 지킨단 말인가.)

마을사람들은 앞이 막막하여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그때 좌상할아버지가 바우와 해남이를 불렀습니다.

《이젠 마을의 운명이 너희들에게 맡겨졌은즉 도사할아버지의 말대로 그림공부를 착실하게 하여라.》

이것은 좌상할아버지의 당부이자 마을사람들의 당부였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바우가 먼저 마을사람들이 다 듣도록 힘있게 대답했습니다.

해남이도 입을 굳게 다물고 마음속으로 결심을 든든히 다지였습니다.

좌상할아버지는 한편 마을젊은이들이 무술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깨우쳐주고 마을두리에 있는 돌성도 더 높고 든든하게 쌓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장수라고 부르는 세 젊은이를 깊은 산속으로 들여보내 도술을 더 닦도록 하였습니다.

 

2

 

다음날 이른아침 바우와 해남이는 도사할아버지가 준 붓을 들고 파도가 쉬임없이 철썩이는 바다가로 나갔습니다.

구름한점없이 맑게 개인 푸른 하늘에는 둥근해가 떠올라 모래불에 핀 해당화꽃송이에 밝은 빛을 뿌려주었습니다. 바우는 해당화꽃앞에 마주앉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바우가 도사할아버지가 준 붓으로 그림을 다 그렸을 때였습니다.

그림꽃우에 흰안개가 풀썩 일더니 천천히 사라졌습니다.

무슨 영문이지 몰라 숨을 죽이고 바라보던 바우는 《엉?》 하며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림속의 해당화꽃에서 향기가 그윽히 풍겨나고 꽃잎에 맑은 이슬방울이 맺혀 구슬알같이 반짝거리고있었습니다.

《야! 그림꽃에 이슬이 생긴다!ㅡ》

바우가 좋아 환성을 올렸습니다.

저쪽에서도 해남이가 소리쳤습니다.

《꽃이슬이 생겼다!ㅡ》

바우와 해남이는 얼른 조롱박뚜껑을 열고 꽃이슬을 담았습니다.

꽃이슬이 담긴 조롱박안을 들여다보는 바우와 해남이의 가슴은 저도 모르게 쿵쿵 높뛰였습니다.

(됐어, 빨리 다른 꽃들도 그려 조롱박에 꽃이슬을 가득 채워야지.)

바우와 해남이는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느라고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을사람들은 향기가 풍기는 바우와 해남이의 조롱박을 들여다보며 여간 신기해하지 않았습니다.

바우와 해남이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열심히 꽃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리꽃을 그려도 꽃이슬이 생겨나고 들국화를 그려도 꽃이슬이 생겨났습니다.

날이 갈수록 조롱박안에는 꽃이슬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조롱박에 꽃이슬이 가득찰만큼 꽃을 그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차츰 꽃을 그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마을주변의 꽃들은 이미 다 그렸으므로 새 꽃을 찾아 그리려면 멀리 숲속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바우와 해남이는 꽃을 찾아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숲속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여있었습니다. 그들은 숲속에 핀 도라지꽃도 그리고 초롱꽃도 그렸습니다. 동자꽃도 그리고 은조롱꽃도 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습니다.

바우네 집에 해남이가 문득 찾아왔습니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생겼니?》

바우는 졸음이 실린 눈을 비비며 물었습니다.

해종일 그림을 그리느라 피곤이 몰려 방금 잠자리에 들었던참이였습니다.

《삿갓봉에 가지 않겠니?》

《뭐? 삿갓봉에?  거긴 왜 가자고 그러니?》

바우는 영문을 몰라 얼떠름해서 물었습니다.

《삿갓봉에 달맞이꽃이 있다누나. 그 꽃은 여느 달맞이꽃과는 달리 보름달이 뜰 때에만 핀대. 오늘이 보름날이 아니니. 그래서 함께 가서 그 꽃을 그리자고 그래.》

해남이의 말을 듣고난 바우는 기지개를 한껏 켜고나서 말하였습니다.

《정말 피곤해 죽겠구나. 그러나 가야지 뭐. 마을을 지키는 일인데 그냥 잘수야 없지.》

그러면서도 혼자말로 《이 어두운 밤에 그림을 꽤 그릴수 있을가?》 하며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바우는 인차 차비를 하고 해남이를 따라나섰습니다.

험한 숲속을 헤치며 삿갓봉에 오른 해남이와 바우는 저마끔 달맞이꽃앞에 앉아 이제나저제나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쟁반같은 보름달이 환한 빛을 뿌리며 솟아올랐습니다.

보름달이 떠오르자 달맞이꽃이 꽃잎을 펼치며 활짝 피여났습니다.

해남이는 제꺽 붓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러나 선뜻 종이우에 붓을 대지 못하였습니다.

달빛이 환하였지만 달맞이꽃이 똑똑히 보이지 않기때문이였습니다.

해남이는 두눈을 비비고나서 꽃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 달빛이 좀 더 환하게 비치면 얼마나 좋을가?)

해남이는 안타까운 눈길로 둥근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달빛은 조금도 더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해남이는 눈길을 돌려 다시 달맞이꽃 가까이에 눈을 바투 대고 세심히 뜯어보았습니다. 아무리 뚫어지게 들여다봐도 꽃술이며 꽃잎의 모양이 어렴풋하게만 보였습니다.

바우를 건너다보니 그는 벌써 열심히 붓을 놀리고있었습니다.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반디벌레가 해남이의 머리우로 날아왔습니다.

《반디불아, 반디불아, 달맞이꽃을 비쳐주렴.》

해남이는 초롱불을 켜들고 날아오는 반디벌레를 애타게 쳐다보며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었는지 날아가던 반디벌레가 달맞이꽃우에 살풋이 내려앉았습니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반디벌레들이 날아와 그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그러자 달맞이꽃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반디불들아, 정말 고맙구나.》

해남이는 붓을 들고 달맞이꽃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맞이꽃을 다 그리자 향기가 풍기면서 달빛에 꽃이슬이 반짝 빛을 뿌리는것이 보였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꽃이슬이 드디여 생겨난것이였습니다.

(됐구나.)

해남이는 기쁜 마음으로 달맞이꽃이슬을 조롱박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바우가 그린 달맞이꽃에는 꽃이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바우는 종시 달맞이꽃이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정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3

 

집으로 돌아온 바우는 속이 몹시 좋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그린 달맞이꽃엔 향기도 풍기지 않고 이슬도 맺히지 않을가?)

곰곰히 생각을 굴리던 바우는 《에이, 괘씸한것들.》 하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반디벌레들이 자기가 그리려는 달맞이꽃에는 내려앉지 않고 해남이의 꽃에만 모여들어 불을 켜준 생각이 났기때문이였습니다.

바우는 꽃이슬을 빨리 받으려는 욕심만 앞세우면서 꽃술의 모양도 색갈도 똑바로 보지 않고 성급히 그린 자기의 잘못을 생각지 않고 오히려 반디벌레들만 탓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뒤치락거리던 바우는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늦게야 일어난 바우는 부랴부랴 그림도구들을 둘러메고 해남이네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바삐 걸어가던 바우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해남이네 집앞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있었습니다.

사람들뿐만아니라 새들까지 무엇이 좋아 그러는지 마당가를 날아예며 지저귀였습니다.

(웬일일가?)

그쪽으로 달려가보니 해남이가 마당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창 그림을 그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아니라 새를 그리고있었습니다.

(꽃은 안 그리고 왜 새를 그릴가?…)

바우는 고개를 기웃거렸습니다.

해남이가 새를 다 그렸을 때였습니다.

그림속의 새가 녹두알같은 두눈을 깜빡거리더니 쭁쭁 쪼르릉 하고 은방울 굴리는듯 한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야!ㅡ 하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해남이가 밤낮으로 부지런히 그림공부를 하더니 끝내 신기한 그림재주를 배우고야말았구나.》

《공을 들이면 무슨 일이나 성공하는 법이라네.》

마을사람들은 모두 제일처럼 기뻐하며 입을 모아 칭찬하였습니다.

《해남아, 너한테 신기한 그림재주가 어떻게 벌써 생겼니?》

바우는 해남이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조롱박에 가득찬 꽃이슬을 마셨더니 도사할아버지 말씀대로 갑자기 눈이 밝아지더구나.

그래서 새를 그려보았는데 글쎄 그림속의 새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니. 너도 그 꽃이슬을 마셔보렴.》

《그래?! 그게 정말이야?》

《정말 아니구.》

바우는 자기도 꽃이슬을 마시려고 얼른 조롱박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조롱박안을 들여다보니 꽃이슬이 절반 조금 넘게밖에 차있지 않았습니다.

(도사할아버지는 꽃이슬이 조롱박에 가득찬 다음에 마시라고 했는데 어쩐다?…)

바우는 잠시 망설이였습니다.

모여든 마을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바우의 거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조금 곯았다고 안될가 뭐.)

이렇게 생각한 바우는 조롱박을 입에 가져다대고 꿀꺽꿀꺽 마시였습니다.

향기로운 꽃이슬을 마시자 가슴이 시원해지고 정신이 점점 더 맑아졌습니다. 눈도 새별처럼 밝아졌습니다.

《해남아, 이거 정말 신기하구나.》

《그럼 너도 어서 그림을 그려봐.》

《응, 알겠어.》

바우는 해남이의 옆에 앉아 그가 그리는 새를 같이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바우가 그린 그림속의 새도 쭁쭁 쪼르릉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야!》

바우는 너무 좋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바우가 그린 그림을 보고도 혀를 차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무렴, 내가 해남이보다 못할수가 있나.)

바우의 가슴속에는 이런 생각이 불쑥 솟구쳤습니다. 그는 해남이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리라 속으로 벼르며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떴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서 새들만이 아니라 다람쥐랑 토끼랑 눈앞에 보이는 산짐승들을 모조리 그리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야 청룡산호랑이를 해남이보다 더 잘 그릴수 있기때문이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던 바우는 마을어귀에서 웬 낯선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총각, 말 좀 묻자구.》

처음 보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누구나요?》

바우는 할머니의 차림새를 훑어보며 물었습니다.

《난 저 웃마을에 사는 중매군할미야. 이 동네에 마음 착하고 곱게 생긴 을미라는 처녀가 있다기에 중매를 서려고 찾아오는 길이야. 그 처녀가 어떻냐?》

할머니는 바우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물었습니다.

《다들 을미누난 선녀보다 더 곱다고들 해요. 그렇지만 그 누난 벌써 갑쇠형님과 약혼한 사이예요.》

바우는 사실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래? 거참 아쉬운걸.》

할머니는 퍽 섭섭해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중매군할미는 돌섬도적소굴에서 온 렴탐군이였는데 변신을 잘하는 마귀할미였습니다.

도사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돌섬의 도적괴수놈이 달미포마을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이 마귀할미를 보냈던것입니다.

이런것을 알리 없는 바우는 마을에서 있은 일을 죄다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다나니 자기와 해남이가 도사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청룡산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그림공부를 한다는 자랑까지 다하였습니다.

《그래, 너 정말 똑똑한 총각이구나. 그래야지. 그래야 마을을 지킬수 있구말구.》

마귀할미는 제법 너스레를 떨며 바우를 한참 칭찬하고나서

《그러니 해남이라는 총각보다 네가 그림을 더 잘 그려야겠구나. 암, 그래야지. 그래야 마을의 사랑을 독차지할수 있지. 떡은 나눠먹어도 사랑은 나누어가지는게 아니야.》 하고 말했습니다.

마귀할미의 말에 바우는 한껏 기분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노상 벙글벙글 웃기만 하였습니다.

《그럼 잘 있거라. 난 가겠다.》

마귀할미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몇발자국 걸어가더니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습니다.

바우는 꿈을 꾼것만 같아 어리벙벙해져 마귀할미가 사라진쪽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만에야 정신을 차린 바우는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길을 걷는 바우의 가슴속엔 그림공부를 잘해 어서 빨리 청룡산호랑이를 해남이보다 먼저 그리겠다는 욕심이 자꾸만 부풀어올랐습니다.

욕심이 커질수록 마음은 더욱더 조급해졌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저녁이였습니다.

어스름달이 산마루에 걸렸을 때 바우가 마을에 돌아오니 정자나무아래에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앉았습니다.

웬일인지 사람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묵묵히 서로 쳐다보기만 하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바우가 이렇게 묻자 좌상할아버지가 아무말도 없이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을 주었습니다. 바우가 종이장을 받아들고 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습니다.

《달미포마을에 알리노라.

도사가 죽었으니 그대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고 쓰리겠는가. 허나 하늘은 무심치 않거늘 우리 돌섬에서 달미포를 돌보라 하였은즉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겠는가.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기마련이니 이달 보름날 정자나무밑에 쌀 쉰섬과 비단 스무필을 가져다놓고 을미처녀를 곱게 단장시켜 기다리게 하라. 그래서 작은 성의나마 보여주어 우리 두령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 바라노라.》

《이건 어찌된 일입니까?》

바우가 묻는 말에 좌상할아버지는 가슴노리까지 수북이 덮인 흰수염을 말없이 내리쓸기만 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달미포마을에 끝내 화근이 미쳤구나. 이런 때 도사할아버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지만 저세상에 간 도사할아버지는 다시 되돌아올수 없으니 이제는 바우와 해남이의 재간에 기대를 거는수밖에 없게 되였구나. 헌데 너희들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재주 또한 부족하니 장차 이 달미포마을은 어찌할고…》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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