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2호에 실린 글

 

  중편소설

 

 

 

                                                     김 정

 

(제11회)

22. 더없이 기쁜 날

 

108호병실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검질긴 잠꾸러기들이였다. 멀리서 새날을 알리는 방송개시음악이 은은히 들려오고 주차장을 떠난 첫 무궤도전차의 고르로운 기관소리가 거리를 누비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들은 깊은 잠에 취해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병실에서 자취를 감추기로 결심한 금동이한테는 더 좋았다.

후날 담당의사나 간호원한테서 한자동차쯤 되는 꾸중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기어이 학교에 돌아가 시험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던것이다.

국어와 산수, 두 과목의 시험을 련달아 친다니 늦어도 11시전까지는 병원으로 돌아올수 있을것이다. 돌아와서 용서해달라고 빌자. 그러면 의사선생이나 간호원도 섭섭해하지 않을것이다. 더우기 시험에 참가하고싶어서 학교에 갔다는데야 무어라고 꾸지람하겠는가.

내가 교실에 나타나면 김향선생님도 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못할것이다. 쳇, 누구든지 욕할테면 욕하라지. 그래두 나는 책상앞에서 일어나지 않을테다. 난생처음 해보는 시험에도 참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주사나 맞고있으면 무슨 1학년생인가.

금동이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복을 벗어 사물함속에 개여넣고 침대밑에서 학생복을 꺼내입었다.

이제는 108호병실을 나서서 병동정문만 무사히 통과하면 만세를 부를수 있다.

날이 밝은 다음 《금동이가 없어졌다.》고 떠들썩할 병실아이들과 의사, 간호원들의 모습때문에 마음이 좀 켕기였지만 그는 용감하게 병동을 나섰다. 그렇다, 이것은 재수나 순일이 같은 아이들이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진짜배기 용감성이다.

금동이는 후끈후끈한 병동복도를 나서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옹송그리였다. 초겨울의 쌀쌀한 새벽공기가 바지가랭이와 팔소매속으로 기여들어와 꼭꼭 살을 찔렀던것이다. 한바탕 늘어지게 앓고난 뒤여서 그런지 여느 새벽보다 유별나게 을씨년스러워보이였다. 그는 온몸에서 일제히 보슴털이 곤두서는것을 느끼며 한참동안 병동옆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병실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어디부터 가야 할지 선뜻 발길이 떼여지지 않았던것이다. 학교로 곧추 갔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시간이 너무 일렀다.

(집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가 야단일테지. 당장 병원에 돌아가라고 내쫓을지도 몰라. 집으로는 안돼. 그럼 어떻게 할가? 재수네 집에 가서 몸을 녹이다가 시간이 되면 학교로 갈가? 재수 어머닌 아침일찍 우편국에 출근하니까 지금쯤 집에 없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재수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러바치면 쫄딱 녹는단 말이야.)

금동이는 한참동안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이 궁리 저 궁리 했지만 종시 알맞춤한 대답을 찾지 못하였다.

(에이, 그럼 여기서 평양역까지 다섯번쯤 왔다갔다하자. 그러느라면 출근시간이 되겠지.)

그는 이런 결심이 떠오르자 더 주춤거리지 않고 해방산려관쪽으로 걸어내려갔다.

길가의 아빠트들에서는 벌써 한집두집 불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는 기름에 닭알을 지지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제야 금동이는 자기가 어제 저녁에도 병원식당에서 밥을 설치고 순일이네가 가져온 귤로 끼니를 에웠다는데 생각이 미치였다. 기름냄새까지 맡으니 배가 더 출출해지는것 같았다. 그는 병원에서 빠져나올 때 호주머니에 과자나 사탕따위를 넣어가지고 나오지 못한것을 몇번이고 후회하였다.

행여나 하고 주머니를 뒤지니 꼬득꼬득 마른 낙지다리 한개가 나온다.

금동이는 입천정과 혀바닥에서 고소한 신물이 돌 때까지 내처 낙지다리를 씹었다. 그러자 시장기가 얼마쯤 덜어지는것 같았다. 그는 시간을 끄느라고 일부러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였다. 남구국수집앞에까지 와서 평양역사꼭대기를 바라보니 시계탑이 5시 47분을 가리키고있었다. 그렇게 느적느적 걸었는데도 시간은 겨우 15분이 지나간셈이다. 시간이란 왜 그렇게 굼벵이처럼 더디게만 흘러가는지…

금동이는 평양역사앞 층계에 서서 대극장쪽으로 가는 거리의 가로등들이 일제히 꺼지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오던 길로 되돌아섰다.

수도의 하늘에 삿갓처럼 덮여있던 거무스레한 장막은 점점 엷어져갔다.

그는 거리의 관리원아주머니들이 댑싸리비로 락엽을 쓸어모으는 모양과 식료상점판매원들이 이동판매차를 끌고 바삐 걸어가는 모양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발을 옮겨놓았다.

머리우에서는 《우리 나라》를 읽는 처녀애의 애된 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흥, 저 애도 오늘 시험에 참가하는 모양이구나.)

금동이는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 혼자서 히쭉 웃기까지 하였다.

온 나라가 새 로동일을 맞을 차비로 서두르는 이 시각을 그는 제일 좋아하였다. 이런 상쾌한 감정은 오로지 금동이처럼 이른아침마다 자명종소리에 깨여나 거리의 숨결을 들어보는 아이들만이 맛볼수 있는것이다.

뻐스들과 승용차들이 쉴새없이 줄을 지어 달려가고 가방을 든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며 일터로 밀려갈 때 금동이는 자기도 어서 커서 당당한 근로자가 되여 점심밥곽이 든 쟈크달린 가죽가방을 들고 직장으로 출근하고싶은 욕망을 느끼는것이였다. 출근길에 아는 친구들을 만나면 모자채양을 약간 들고 인사를 한다든가 《김동무가 참 오래간만이군!》하고 인사를 나누게 될것이다.

금동이는 이런 생각에 잠겨 같은 거리를 세번이나 걸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어느덧 아침 7시가 되였다. 그는 무엇인가 먹고싶은 생각이 자꾸 치밀었지만 꾹 참기로 하였다. 큰일을 위해서 한끼쯤 굶어본다는것은 누구에게나 차례지는 행운이 아니며 또 아무나 해볼수 있는 일이 아닌것이다.

금동이는 대동교앞에서 무궤도전차들과 뻐스들이 줄달음쳐가는 모양을 한참이나 구경하다가 7시30분이 되여서야 학교로 향하였다. 그는 중구역도서관을 지나 자기네 집이 있는 경림동의 길다란 아빠트앞에 들어섰다.

(지금 집에서는 내가 이렇게 앞으로 지나가고있다는걸 모를테지. 이 금동이가 병원침대에 누워서 약이나 받아먹으며 집생각이나 하고있는걸로 짐작하겠지.)

금동이는 머리꼭대기에 있는 집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학교로 찾아가는 자기가 더없이 장하고 용감해보이였다. 책가방도 메지 않고 빈몸으로 덜렁덜렁 가자니 좀 멋적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운수가 좋아서 그랬는지 그는 학교에 가닿을 때까지 아는 사람들과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만 재수하고 맞다들었다.

퇴원한다는 소문도 없이 불쑥 학교에 나타난 금동이를 보자 재수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리였다.

《벌써 퇴원했니?》

《아니…》

《그럼 어째서 왔니?》

《시험에 참가하려구… 난 빠지구싶지 않아. 그래서 왔어.》

《한주일이나 공부 안하구서두 자신있니?》

《자신있어. 난 집에 있을 때 늘 열흘치를 앞당겨 공부했거던.》

《허가받구 나왔니?》

《아니, 몰래 나왔어. 시험만 치고서는 다시 들어가야 해.》

《병원에서 데리러 오지 않을가?》

《올테면 오라지. 그래두 난 시험을 치고야말걸.》

《고집쟁이같은거. 이렇게 바람을 맞다가 더 세게 앓으면 어쩌자구 그러니. 참참참…》

재수는 자기가 입었던 솜옷을 벗어 금동이에게 씌워주었다.

금동이는 그냥 입어야 할지 뿌리쳐야 할지 몰라서 잠간 망설이다가 솜옷을 걸친채 현관으로 들어갔다.

첫 수업전의 복도는 그전날과 다름없이 번잡하였다. 운동장에 방금 다달은 대렬들이 줄을 지어 연방 교실로 밀려들고있었다. 분홍색리봉을 단 상급반처녀애들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밀대를 들고 층계의 때를 벗겨내고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만은 어디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금동이는 낯설은 고장에라도 온듯 별나게 서먹서먹한 생각이 들었다. 한주일이 아니라 옹근 일년을 다른데 가있다가 온것처럼 보고 느끼는 모든것이 새로와보이였다.

재수가 교실앞으로 몇걸음 재게 걸어가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히였다. 그리고는 금동이를 무작정 교실로 콱 떠밀었다.

교실안의 아이들은 창문쪽에 몰켜서서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듣는데 정신을 팔고있었다.

《…그런데 그만 간호원이 들어오지 않겠니. 그래서 우린 할수없이 금동이와 헤여졌단다.》

이런 말소리가 금동이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어제 오후 구역병원에 갔다온 이야기를 벌려놓은게 틀림없었다.

재수는 금동이를 향해 벙싯 장난기섞인 웃음을 웃고나서 온 교실이 다 듣게 코맹맹이소리를 냈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있던 그 금동이가 이렇게 불쑥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겠니!》

동학이를 둘러싸고있던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일제히 소리나는쪽을 돌아보았다.

《금동이가 왔다!》

누구인가 이렇게 소리쳤다.

아이들의 담벽은 순식간에 와시시 흩어져 금동이를 에워싸고 또아리를 틀었다. 누구인가는 금동이의 손을 잡았고 누구인가는 금동이의 어깨를 쥐여박았으며 또 누구인가는 금동이의 볼에 볼을 대고 막 비벼대였다.

이런 복새통속에서 금동이는 한동안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아이들은 마치 무슨 영웅이라도 맞듯 떠들썩하게 금동이를 추어올리고 칭찬하였다.

《그래 이제는 다 나았니?》

소음이 좀 가라앉았을 때 학급반장 영림이가 어른처럼 물었다.

자기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금동이는 그 질문을 받자 활기를 띠였다.

《응, 다 나았어. 40°나 올라갔던게 37°로 쑥 떨어졌거던.》

《뭐, 쑥 떨어졌다구?》

영림이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하였다.

그때 병원속내를 잘 아는 재수가 그의 팔을 툭 건드리였다.

《참참참, 그것도 모르니. 그건 금동이의 몸온도가 40°나 되던게 37°로 내려갔다는 소리야.》

《응, 그랬댔구나.》

영림이는 그제야 알겠다는듯 고개방아를 찧었다.

《이크, 40°나 되였으면 온몸이 저 방열기처럼 따끈따끈했겠구나.》

학급반장의 뒤에서 누구인가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금동이는 아무 대꾸도 안하고 자기 책상앞에 가 자리를 잡았다.

《금동이가 학교로 돌아왔으니 난 한번도 병원에 못 가보겠구나. 오는 일요일날 주섭이하구 같이 밤을 사가지고 금동이한테 가려고 했는데…》

교실 저쪽구석에서 누구인가 울상이 되여 중얼거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재수가 한마디 했다.

《걱정할것 없어. 금동이는 시험만 치고 다시 병원에 간단 말이야.》

금동이가 옆구리를 툭 다치자 그는 흠칫 입을 닫아맸다.

아이들은 부시럭거리며 책상우에 교과서와 필갑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재수는 자기의 필갑에서 연필 한자루와 지우개 한개를 덜어서 금동이의 책상우에 가져다놓았다.

효남이는 책받치개를 가져오고 순일이는 그 책받치개우에 난데없는 알사탕을 다섯개나 가져다놓았다.

금동이는 그 광경을 보자 눈굽이 저려났다. 넓으나넓은 이 세상에 재수나 순일이와 효남이와 같이 좋은 아이들은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는 어른이 되여서 머리가 하얘질 때까지 그 애들과 다투지도 싸우지도 않고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들중에 누구든지 앓는 아이가 있으면 병원에도 찾아가고 좋은 약도 얻어다주고 재미나는 소식도 들려주리라고 마음먹었다.

금동이는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는것을 느끼며 머리를 쳐들었다. 귀에 익은 발자국소리가 교실쪽으로 가까와오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많은 발자국소리속에서도 쉽사리 가려들을수 있는 담임선생님의 경쾌한 발자국소리가 분명하였다. 오늘은 어쩐지 그 발자국소리가 다른 때보다 별로 더 초조하게 들리였다.

출입문에는 정말 김향선생님이 나타났다. 선생님은 교실을 한바퀴 휘둘러보고나서 금동이가 앉아있는 창문쪽으로 눈길을 보내였다.

금동이는 어쩔바를 몰라서 잔뜩 목을 움츠러뜨리고 책상우에 엎드려있다가 움쭉 일어서서 절을 하였다.

순간 선생님의 눈은 밝은 빛으로 넘쳐났다.

《정말 왔구만요!》

선생님은 마치 누구한테서인가 금동이가 교실에 나타났다는것을 귀띔받기라도 한듯 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잰걸음으로 다가와 금동이의 이마를 짚어보고 손도 잡아보았다. 몸에 열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려는 모양이였다. 쪼프려졌던 선생님의 미간이 활짝 펴졌다.

아마도 선생님은 금동이의 체온이 나흘이나 닷새전에 면회갔을 때처럼 39°쯤 되는줄로만 알았던것 같았다.

《금동학생, 집에는 들렸어요?》

잠시후에 김향선생님이 물었다.

《안 들렸습니다.》

금동이의 목소리는 가늘다못해 모기소리만하게 들리였다.

《퇴원도 시키지 않았다는데 왜 마음대로 병원에서 나왔나요?》

선생님은 좀 엄한 눈매로 금동이를 지켜보았다.

아마 병원에서 오는 전화통보를 받고 곧추 교실로 달려온듯 한 눈치였다.

지금쯤은 금동이의 아버지가 일하는 식물학연구소 사무실에도 그런 전화가 갔는지 모른다.

《시험치고파서 왔답니다.》

잠자코있는 금동이를 대신해서 순일이가 대답했다.

김향선생님은 아까부터 찌프렸던 미간을 펴고 입귀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인차 웃음을 지우고 창문밖을 내다보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이들에게 묻는것이였다.

《그럼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병원에서 몰래 나온 금동이를 어떻게 할가요? 시험에 참가시킬가요? 참가시키지 말가요?》

《참가시킵시다!》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가게 옹골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김향선생님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귀밑머리를 쓸어넘기였다.

《그럼 금동학생도 시험에 참가시키기로 합시다!》

아이들이 짝자그르 박수를 쳤다.

금동이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그는 세상에 나서 이때처럼 감동되여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잠시후 김향선생님은 교원실에 가서 밥곽하나를 가져다가 금동이한테 주었다. 그것은 선생님이 점심으로 싸가지고 온 밥곽이였다. 선생님은 어느새 금동이가 식사를 두끼나 건넸다는것까지 알아냈던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김향선생님과 함께 시험준비를 하고있을 때 금동이는 눈물을 흘리며 그 밥을 먹었다.

이날 그는 두 과목시험을 잘 치르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일요일에 재수네는 그의 성적이 두 과목 다 10점이며 그들의 학급이 시적으로 채점결과가 가장 높다는 기쁜 소식을 금동이한테 전해주었다.

다음날 금동이는 정식으로 병원에서 퇴원하였다.

병원구내를 지나 번창한 도시의 소음이 밀려오는 네거리에 나서자 그는 자기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난 학교부터 갈래. 어머니 혼자 먼저 집에 가세요.》

《학교부터?》

어머니는 이 말을 무겁게 뇌이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흔연히 허락했다.

《그래, 학교부터 가야지. 그게 너희들의 집이니라!》

《가서 선생님이랑 동무들이랑 만나구 인차 올래요.》

《응, 그렇게 해라. 넌 벌써 한주일째나 아버지원수님 동상도 못 봤지.》

건늠길을 건너 아빠트앞에까지 이른 어머니는 얼굴에서 아쉬운 빛을 지으며 아들의 등을 앞으로 가볍게 떠밀었다.

금동이는 어머니와 헤여지자 발에 날개가 달린것처럼 단숨에 학교까지 가닿았다.

첫눈이 소복이 깔린 운동장에는 새까만 승용차가 한대 서있었다. 승용차주위에서는 여러명의 선생님들이 중앙현관쪽을 돌아보며 서성거리고있었다.

그래서 정문으로 들어서는 금동이한테는 누구도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이전에도 더러 승용차들이 저렇게 운동장에 나타난적은 있지만 선생님들이 나와서 지금처럼 웅성댄적은 한번도 없었다.

(무슨 굉장한 일이 생겼나보지.)

금동이는 호기심에 끌리여 교실로 들어갈 생각도 잊고 눈덩이를 빚는척 하면서 울타리앞을 왔다갔다하였다.

그때 누구인가 소리없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눈앞에서 새빨간 목도리의 한쪽끝이 번쩍하였다.

《언제 병원에서 나왔니?》

하고 그 목도리의 임자는 상냥스레 물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금동이는 고개를 쳐들었다. 아무 무늬도 없는 진분홍색세타를 입은 영실누나가 상글상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누나는 금동이의 앞에 다가와 그의 머리우에 손을 얹었다.

《몹시 앓았다면서?》

《예.》

《인제는 일없니?》

《일없어요. 지금 퇴원하는 길이예요.》

《네가 입원한줄 미리 알았으면 병원에 가보는건데… 난 오늘 아침에야 알았구나. 학교로 오던 길에 재수를 만났는데 그 애가 그러질 않겠니.》

누나의 그런 말을 듣자 금동이는 마음이 포근해졌다.

한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솜처럼 이 세상은 1학년생인 그를 언제나 감싸안고있는것이다.

마침내 김향선생님이 웬 낯선 사람과 함께 중앙현관에서 나왔다.

금동이는 눈덩이를 팽개치고 영실누나의 손을 잡은채 울타리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진한 하늘색외투를 입은 김향선생님의 몸매는 이전보다 더 날씬해보이였다. 선생님의 갸름한 얼굴에서는 이때까지 한번도 볼수 없었던 그런 따뜻하고도 자랑찬 미소가 남실거리고있었다.

(순일이가 말하던 새 외투가 저 외투로구나. 정말 멋있는데!)

금동이는 김향선생님의 얼굴에 떠도는 그 웃음때문에 눈이 저절로 부셔나는것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혹시 형편없이 빠른 저 승용차가 담임선생님을 태우고 어디로 훌쩍 떠나가면 어찌나 해서 속이 조마조마해났다.

승용차가까이에 다가선 김향선생님은 주위에 서있는 선생님들과 몇마디 말을 건네다가 금동이가 있는 울타리쪽으로 곧추 걸어왔다. 선생님은 금동이의 머리에 덮여있는 눈송이들을 털어주고나서 조용히 물었다.

《금동이가 돌아왔구만. 퇴원했나요?》

《예.》

금동이는 김향선생님의 들뜬 숨결이 자기한테도 옮아와 가슴이 갑절 활랑이는것을 느끼며 선생님의 두팔에 고스란히 어깨를 내맡기였다. 그는 선생님의 몸에서 풍기는 백묵냄새가 늘 좋았다.

《집에는 들렸나요?》

《아니, 여기로 곧추 왔습니다.》

《왜, 들리지… 그러면 어머니가 섭섭해할텐데…》

《학교가 너무 보구싶어서 어머니하고 말하고 왔습니다.》

그 말까지 듣자 김향선생님은 금동이를 더 꼭 껴안았다.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으로 한동안 금동이와 승용차쪽을 번갈아보다가 입속말처럼 말했다.

《그런데 안됐구만요. 선생님은 지금 당중앙위원회로 간답니다.》

《예?!》

금동이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김향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 1학년선생들을 만나주신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가게 되였답니다. 원수님께서 금동이네가 공부를 어떻게 하는가고 물으시면 선생님은 다 말씀드리겠어요. 우리 1학년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착한 일도 많이 하구 몸도 튼튼하다구요. 나이는 7살이지만 모두들 끌끌하게 자란다구요. 그러면 아버지원수님께서도 몹시 기뻐하실거예요.》

《선생님, 아버지원수님께서 정말 우리들에 대해서두 알아보실가요?》

《알아보시잖구요. 아버지원수님께서는 항상 1학년생때 발을 잘 떼야 일생을 곧바로 걸어갈수 있다고 가르치고계신답니다. 그렇기때문에 온 나라가 1학년생들을 살뜰히 도와주고 보살펴주는게 아니겠어요.》

《야!》

금동이는 이렇게 환성을 내지른 다음 김향선생님의 두손에서 어깨를 뽑아냈다. 이제는 선생님을 그 이상 더 이 운동장에서 지체시키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정말 우리 1학년생들을 제일 사랑해주시는구나. 선생님이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 선생님의 말씀이 옳아.)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영실누나가 조용히 김향선생님에게 부탁의 말을 하였다.

《선생님,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뵈오면 영실이의 얼굴에 있던 버짐이 다 없어졌다고 말씀드려주세요. 원수님께서 의사를 보내주신 덕분에 영실이는 앓지 않고 공부도 잘한다고 전해주세요!》

《영실이의 살결이 고와졌다고 말씀드리지요.》

《그리고 아버지원수님께서 마련해주신 11년제의무교육이 정말 좋다고 말씀드려주세요.》

《예. 내 다 전해드리지요.》

김향선생님은 약속의 표식으로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서두르며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는 곧 학교뜨락을 서서히 미끄러져나갔다.

선생님들이 일제히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금동이와 영실누나도 손을 흔들었다.

함박꽃같은 미소가 담뿍 어린 김향선생님의 기쁨에 찬 얼굴이 차창가에 어렸다가 인차 사라졌다.

두줄기의 바퀴자국이 굵직한 평행선을 그리며 대동문쪽으로 뻗어갔다.

금동이는 영실누나의 손을 잡고 그 자국을 따라 교문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누나가 손으로 눈굽을 훔치는것도 모르고 혼자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의 눈에는 아버지원수님께서 김향선생님의 손을 잡아주시는 모습이 금시 보이는듯 하였다. 금동이네 소식을 듣고 크게 웃으실 아버지원수님의 환하신 모습도 눈앞에 보이는듯 하였다. 그는 그 모습을 더욱 가까이에서 보려는듯 앞으로 자꾸만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끝없이 쏟아져내리는 눈은 어느새 또다시 행길을 두툼하게 덮어버리였다.

그러나 금동이의 눈에는 김향선생님을 태우고 당중앙청사로 달려간 승용차의 그 바퀴자국이 더욱 생생하게 보이는것 같았다.

 

ㅡ주체72(1983)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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