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2호에 실린 글

 

  ◇동 화

 

                                                          

                          김 현 미

 

따뜻한 어느 봄날이였습니다.

실버들 늘어진 강변에 조그마한 애기씨앗 하나가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애기씨앗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길다란 눈섭아래 반짝이는 두눈은 밤하늘의 새별같이 빛을 뿌렸습니다.

따뜻이 내려쪼이는 봄해빛이 좋아서 애기씨앗은 콩당콩당 뜀박질하며 즐겁게 뛰여놀았습니다.

어느덧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자 애기씨앗은 해묵은 오동나무잎사귀를 침대삼아 소르르 꿈나라로 빠져들었습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밝은 빛을 뿌리기 시작하자 달님이 새각시 눈섭같이 고운 모양을 하고 살며시 나타났습니다.

달님은 잔디이불을 덮고 쌔근쌔근 잠자고있는 애기씨앗이 너무 귀여워 살며시 입바람을 불었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귀가를 간지럽히자 애기씨앗은 잠에서 깨여났습니다.

《호호호. 귀여운 애야, 너 가만 보니 달맞이꽃씨앗이로구나.》

애기씨앗은 잠자던 눈을 비비며 달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마나? 나를 어떻게 아나요?》

달님은 은방울 굴리는것 같은 고운 목소리로 다정히 말했습니다.

《나의 눈빛을 받아야 꽃을 피운다고 해서 달맞이꽃이라고 부르는 너를 내가 왜 모르겠니?》

달맞이꽃씨앗은 달님이 자기를 알아보는것이 기뻐서 환성을 올렸습니다.

《아, 우리 엄마도 그 말을 했어요. 나는 달빛을 받아 피여나는 달님의 꽃이라구요.》

《그래 옳단다. 이제 며칠이 지나 보름달로 되는 날 나의 눈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단다. 그 보름달이 되기 전에 어서 빨리 싹터자라 꽃망울을 맺아라. 그 보름날만 놓치면 꽃망울이 시들어버려 다시 꽃을 피울수 없으니 꼭 명심하거라.》

《달님, 고마워요. 그럼 보름날을 기다리겠어요.》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긴 달님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구름문을 지나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애기씨앗은 모든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애기씨앗의 귀가에는 보름날을 기다리라고 달님이 남기고 간 말이 노래처럼 귀가에 남아 울렸습니다.

정이 가득 넘치는 달님의 그윽한 눈빛을 순간도 잊을수 없었습니다.

애기씨앗은 달님의 눈빛을 받아 꽃을 피우려면 우선 자리를 잘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서 뿌리내릴가 하고 궁리하는데 솔솔바람이 솔솔 지나갔습니다.

《바람아, 솔솔바람아ㅡ》

애기씨앗은 쪼꼬만 손을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애개, 대체 넌 누구니?》

솔솔바람은 자그마한 씨앗이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응, 내 이름은 달맞이씨… 아니, 아니 달맞이꽃이라고 해.》

애기씨앗은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해해해. 웃기지 말아. 아직 푸른 옷도 입지 못한게 무슨 꽃이라구…》

솔솔바람은 재미있다는듯 해죽거리며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얘 솔솔바람아, 가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보렴. 나도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고운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돼. 헌데 여긴 나 혼자뿐이니 너무 적적해. 날 다른 꽃들이 많이 살고있는 꽃동산으로 좀 데려다줘, 응?》

애기씨앗은 애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에라, 그게 정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그럼 날 꼭 잡아.》

《응, 정말 고마워.》

애기씨앗은 너무 좋아 짝짜그르 손벽까지 치며 솔솔바람의 옷자락을 꼭 잡았습니다.

애기씨앗은 솔솔바람을 따라 하이얀 구름송이들이 손에 잡힐듯 둥둥 떠있는 하늘을 높이높이 날았습니다.

그러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을빛이 피여오르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침노을도 아니고 저녁노을도 아니고 무슨 노을일가? 야, 참 멋있네.)

조금 더 가면서 보니 푸른 강줄기를 따라 웅장하게 자리잡은 공장이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노을은 바로 그 공장에서 피여나고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솟아나는 노을빛으로 강물까지 붉게 물들어 희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야, 정말 멋진데… 저기야말로 노을동산이로구나.》

애기씨앗은 노을피는 공장이 바라보이는 강가에 울긋불긋 펼쳐진 꽃밭을 가리켰습니다.

《그래, 저기에 내리고싶니?》

솔솔바람이 물었습니다.

《날 저기 멋있는 꽃밭에 내려놔줘.》

붉게 피는 노을빛을 받아 붉은 꽃은 더욱 붉고 노란 꽃은 더욱더 빛나는 황금색갈을 띠였습니다. 희디흰 장미꽃마저도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꽃이 고와 노을이 아름다운것일가요, 노을이 아름다와 꽃이 그리도 고운것일가요.

꽃밭에 살며시 내려앉은 애기씨앗은 솔솔바람과 인사를 했습니다.

《정말 고마워, 솔솔바람아.》

《자, 여기서 그럼 고운 꽃을 피우기 바래.》

가지각색의 어여쁜 꽃들이 새로 이사온 애기씨앗을 신기해서 바라보았습니다. 애기씨앗은 그 많고많은 꽃들중에서 빨간 꽃송이를 가득 안고있는 봉선화를 알게 되였습니다.

애기씨앗은 봉선화의 말을 듣고서야 붉고붉은 노을빛이 바로 공장의 큰 전기로에서 나오는 빛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을빛은 뛰뛰빵빵 자동차랑 기관차도 만들어내는 아주 귀중한 빛이라는것도 알았습니다. 봉선화꽃은 바로 그 노을빛에 자기들의 한줄기 아름다운 붉은 빛갈을 보태주고싶어하는 고운 마음을 가슴가득히 안고사는 꽃이였습니다.

애기씨앗은 참 좋은 곳에서 좋은 동무를 만나게 된것이 기뻤습니다.

애기씨앗은 어서 자기도 예쁜 꽃을 피우리라는 희망에 넘쳐 소르르 잠에 들었습니다.

이른아침이 되였습니다.

《야, 정말 잘 잤네. 벌써 아침해님이 떠올랐구나.》

애기씨앗은 힘껏 기지개를 켜다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야! 내 옷이?…》

가뭇가뭇한 색갈의 볼품없던 원래옷이 파아란 색갈의 고운 옷으로 변한게 아니겠습니까.

《어마나? 난 이젠, 난 이젠 꽃나무가 되였어.》

달맞이꽃은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달맞이꽃은 해님이 아침세면하다 흘린 이슬방울을 거울삼아 자기의 예쁜 모습을 비쳐보며 새 옷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았습니다.

(나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말로 예쁜 꽃나무가 될거야.)

달맞이꽃은 어서 보름날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자그마한 애기손가락까지 꼽아가며 애타게 보름날을 기다렸습니다.

(야, 보름날 밤에 달님의 눈빛을 받으면 고운 꽃을 피울수 있다지.…)

달맞이꽃은 달님의 그 정다운 눈빛을 잊을수가 없어 밤에도 낮에도 그려보았습니다.

절절한 기다림속에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초생달은 점점 반달로, 반달은 또 환한 보름달로 하루하루 커갔습니다.

그사이 애기씨앗에 불과했던 달맞이꽃씨앗은 한뽐 자라고 두뽐 자라나 이제는 다 자란 꽃나무로 되여 아지를 펼쳤습니다.

어느덧 달맞이꽃의 꿈많은 가슴에서 엄마모습을 그대로 쏙 빼닮은 귀여운 꽃망울 하나가 솟아났습니다.

(야, 꽃망울!)

달맞이꽃의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빨리 보름달이 떴으면… 그땐 나도 이 꽃을 활짝 피울수 있겠지.)

달맞이꽃은 두근거리는 맘으로 보름날을 기다렸습니다.

달맞이꽃은 애기꽃망울이 상할가 걱정하면서 포근히 감싸안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드디여 기다리고기다리던 보름날이 왔습니다.

달맞이꽃은 설레이는 마음을 좀처럼 진정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갑자기 뜻하지 않던 일이 생겨났습니다.

다정한 동무인 봉선화가 웬일인지 숨쉬기조차 가빠하며 몹시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잎사귀를 척 늘어뜨린 봉선화의 모습을 보는 달맞이꽃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저 애의 아픔을 내가 대신할수 있다면 좋으련만…)

달맞이꽃이 안타까와 발을 구르는데 마침 잠자리의사가 날아지나갔습니다.

달맞이꽃은 잠자리의사를 소리쳐불렀습니다.

잠자리의사는 커다란 눈을 굴리며 진찰해보더니 봉선화가 더위를 먹어 앓는다고 말했습니다.

잠자리의사가 하는 말이 더위를 먹은데는 달빛, 별빛을 받지 않은 이슬방울만이 약이라는것이였습니다.

(야, 오늘 밤은 맑게 개여서 별이 총총할것 같은데 달빛, 별빛을 받지 않은 이슬방울을 어디서 얻을가?)

시간이 흐를수록 봉선화는 더욱더 시들어만갔습니다.

《이 일을 어쩌나?》

어느덧 하늘에서 곱게 웃던 해님아씨는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고 어슬어슬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보름달이 떠오를텐데 어떻게 할가?)

이 아름다운 노을동산에 붉은 빛을 더해주고싶어 그리도 붉게붉게 꽃을 피워가던 봉선화! 소중한 동무를 잃을수는 없었습니다.

달맞이꽃은 드디여 결심을 내렸습니다.

(내가 꽃을 피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봉선화를 꼭 살려낼테야.)

달맞이꽃은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찬 접중화잎사귀밑에 몸을 숨겼습니다.

달빛, 별빛을 받지 않은 이슬방울을 자기가 만들어내리라 마음먹었던것입니다.

바로 몇시간전까지만 해도 이 키큰 접중화가 자기 몸을 가리워 달님의 눈빛을 받지 못하게 될가봐 가슴조이던 달맞이꽃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제는 이 접중화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달맞이꽃은 달빛, 별빛이 스며들지 못하는 그늘속에서 이슬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파아란 잎사귀에 후후 입김을 불고부느라니 마침내 이슬방울이 한알 생겨났습니다.

달맞이꽃은 그 이슬방울에 별빛이 비칠세라 얼른 봉선화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어느덧 하늘에 환한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하였으나 달맞이꽃은 달님의 눈빛을 마주볼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그리고그리던 달님의 눈빛! 아, 그러나 오늘만은 오늘만은, 그 정다운 눈빛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달맞이꽃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달맞이꽃은 입속으로 속삭였습니다.

《보고싶던 보름달님, 달님의 눈빛을 마주할수 없는 나의 마음을 리해해주세요!》

달맞이꽃은 입술을 깨물며 또 한개의 이슬방울을 빚어내여 봉선화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이 사연을 알리 없는 달님은 애타게 달맞이꽃을 찾았습니다.

《달맞이꽃아, 너 어디 있느냐?》

그 부름에 선뜻 대답하며 나서지 못하는 달맞이꽃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습니다.

달맞이꽃은 괴로움을 참으며 이슬방울을 계속 빚어나갔습니다.

안깐힘을 쓰며 입김을 불고불어 한방울 또 한방울…

달맞이꽃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빚어진 아홉번째 이슬을 마시고난 봉선화의 입가에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봉선화야, 정신이 좀 드니?》

가느스름히 눈을 뜬 봉선화는 달맞이꽃을 향해 고운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이젠 됐구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정신을 차린 봉선화를 바라보는 달맞이꽃의 고운 눈에는 뜨거운것이 가득 고였습니다.

어느덧 푸릿푸릿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이제 잠간만이라도 보름달님을 마주 볼수만 있다면…)

달맞이꽃은 눈길을 돌려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았습니다.

보름달님은 벌써 구름문을 지나 사라져가고있었습니다.

달맞이꽃은 쓸쓸한 마음으로 피우지 못한 애기꽃망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보름날이 지나도 꽃을 피우지 못하면 꽃망울이 시든다고 했지.)

달맞이꽃은 타드는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습니다.

공장하늘가에서는 여전히 아침노을보다 먼저 감빛노을이 피여오르고있었습니다.

어쩐지 이 새벽에 피여나는 노을은 더욱 붉은듯 하였습니다.

다시 태여난 봉선화꽃잎의 붉은빛이 어려서인듯싶었습니다.

달맞이꽃은 붉은 노을빛이 자기의 마음을 따뜻이 어루쓸어주는것만 같아 노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이때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글쎄 애기꽃망울이 공장에서 피여오르는 노을빛을 받아 한잎한잎 꽃잎들을 펼치는것이 아니겠어요.

《어마나?! 이게 혹시 꿈은 아닐가?》

달맞이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두눈을 꼭 감았습니다.

그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바라던 소원입니까.

달맞이꽃의 마음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없이 행복하였습니다.

달맞이꽃은 푸른 잎손으로 애기꽃송이를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달맞이꽃이 자기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한 일을 두고 몹시 마음쓰고있던 봉선화도 함께 기뻐하며 울고 웃었습니다.

봉선화는 달맞이꽃을 얼싸안으며 말하였습니다.

《동무를 위해 자기의 모든 지성을 바쳐가는 너의 그 마음이 이런 희한한 기적을 낳았구나!》

달맞이꽃도 봉선화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애두 참, 그건 언제나 붉게 타오르는 제강소의 노을빛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려는 우리의 마음이 뜨거웠기때문이 아니겠니.》

《그래그래. 우리 이 아름다운 노을동산을 위해 더 예쁜 꽃들을 많이많이 피워나가자.》

하늘가에 두둥실 떠오른 둥근 해님도 그들을 축복하는듯 밝은 금빛을 뿌려주었습니다.

그 밝은 빛으로 하여 노을피는 동산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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