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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2호에 실린 글
□중편소설□
(제9회) 김 정
19. 뜻밖에 이루어진 상봉
급하게 두드리는 손기척소리가 들리였다. 김향선생님은 문을 열었다. 키가 늘씬한 마은순교장선생님이 문가에 반쯤 몸을 디밀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눈매가 좀 엄하고 광대뼈가 약간 두드러진 선생님의 길쑴한 얼굴엔 웃음이 돌았다. 첫마디들은 아이들한테도 잘 들리였다. 《뭘합니까?》 《매바위골학생들한테서 온 편지를 읽어주던중입니다.》 《방금 시작했습니까?》 《아니, 곧 끝납니다.》 그다음 두 선생님은 낮은 소리로 소곤소곤했는데 귀가 고양이처럼 밝은 금동이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수 없었다. 금동이는 교탁앞으로 돌아온 김향선생님의 얼굴이 류다르게 빨개진것을 보았다. 까만 혼방직저고리깃우에서 눈처럼 빛나는 동정때문에 그 홍조는 더 두드러져보였다. (우리 선생님한테 무슨 좋은 일이 생긴게지. 그래두 편지는 마저 읽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금동이는 방금전에 김향선생님이 읽어주다가 만 편지의 사연을 머리속으로 되그려보았다. (우리가 만들어보낸 만경대사판을 보려고 온 학교가 다 모여들었다지. 어서 빨리 자라서 진짜 만경대에 가보구싶다구? 참, 기차가 많았음 좋겠네. 그럼 만경대를 보구싶어하는 아이들을 평양에 몽땅 실어오게.) 열다섯명 아이들이 이음식으로 쓴 그 편지는 지금 교탁우에 놓여있다. 아직 세 아이의 편지가 남아있다. 김향선생님은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이 만들어보낸 사판은 말이지 진짜 만경대같애. 참 멋있게 만들었어. 우리는 이 사판을 받고 아버지원수님의 어린시절을 더 잘 따라배우자고 약속했어. 고마와. 강을삼.》 《…우린 말이야 벌써 너희들의 이름을 다 외웠단다. 금동아, 영림아, 재수야, 순일아… 너희들이 막 보구싶다. 어떻게 하면 볼수 있을가? 삼득.》 김향선생님은 삼득이의 편지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벙싯 웃었다. 《선생님, 그 동무들에게 사진찍어 보내줍시다!》 금동이의 등뒤에서 순일이가 기관차처럼 빽 소리를 질렀다. 기적소리처럼 급작스레 터지는 그의 웨침소리에 금동이는 놀라서 목을 움츠러뜨리였다. 김향선생님은 웃음을 참느라고 손으로 입을 가리웠다. 《그래, 사진을 찍읍시다. 선생님도 방금 그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원수님의 동상앞에서 찍은 사진을 매바위골동무들에게 보내줍시다. 그러면 매바위골의 동무들도 사진을 보내줄거예요. 우리 서로 정든 동무들의 얼굴을 사진에서 보기로 합시다.》 김향선생님의 그 말에 온 교실이 술렁술렁 설레였다. 《선생님, 용삼이네 아버진 사진삽니다. 멋있게 찍습니다. 쓱쓱 하구선 잘칵 합니다.》 순일이는 일어서서 초점 맞추는 시늉과 샤타누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사진사가 아니라 사진기자지요.》 《예예, 카라멜이 있습니다.》 《카라멜》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와ㅡ 하고 웃었다. 《카라멜이 아니라 카메라지요.》 《예. 이만큼 큰 퉁눈이 있는 카메랍니다.》 순일이는 렌즈를 퉁눈이라고 불렀다. 재수가 팔을 끌어당기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신바람이 나서 연방 웨쳤다. 발등에 송곳이 떨어져도 하고싶은 말은 다하고서야 입을 다무는 순일이였다. 《선생님, 용삼이 아버진 색사진도 만듭니다.》 《그럼 색사진을 찍어보냅시다.》 《야, 만세!》 순일이는 손벽을 마주 치며 걸상우에서 껑충껑충 어깨춤을 추었다. 이때 교장선생님이 다시 문을 열었다. 떠들던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눈빛이 긴장해져서 앉음새들을 고치였다.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생길 때면 의례히 교장선생님이 나타난다. 기쁜 소식이 있어도 책망할 일이 있어도 그랬다. 금동이의 머리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동학이를 혼내우려고 오지 않았을가? 동학인 요전날 경상골 청년공원에서 어떤 유치원아이의 고무풍선을 빼앗아 날려보냈거던. 그러다 중학생형님들한테 이름을 적혔지뭐. 이크 저것 보지, 교장선생님이 동학이쪽을 돌아보는걸. 우리 말을 안듣고 우쭐렁거리다가 단단히 혼쌀나게 됐지.) 《동학아, 교장선생님이 응? 널 혼내려구 응? 네가 유치원아이의 응?…》 두손을 입에 모아붙인 금동이가 동학이의 뒤통수에 대고 《응? 응?》하며 연송 방송질을 해대는데 교장선생님이 교탁앞에 나섰다. 동학이는 골을 싸쥐고 가슴에 턱을 박았다. 《동무들, 1학년 7반 학생들과 우리들모두에게 크나큰 기쁨과 영광이 차례졌습니다!…》 부드럽고도 웅글진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가수의 목소리처럼 잘 울리였다. 동학이는 눈이 뎅그래서 움츠렸던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는 금동이를 돌아보며 《참 잘 맞혔는데!》하고 빈정거리기나 하듯 한쪽눈을 끔뻑해보이였다. 《…수도에서 공부하는 1학년생들을 위해 매바위골의 동무들은 무엇을 보내주었던가요?》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물으면서 교실을 빙 둘러보았다. 《솔방울과 수수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귀청이 떨어지게 챙챙한 소리로 일제히 대답하였다. 《…동무들은 매바위골동무들에게 무엇을 보냈습니까?》 《만경대사판을 만들어보냈습니다.》 《옳습니다. 두 학교의 1학년생들이 다 아주 좋은 일을 했습니다. <소년신문>에 실린 기사를 친히 읽으시고 이 사실을 아시게 된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어린 학생들이 참 기특한 일을 했다고 치하하시면서 수도와 산골에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두 학교의 1학년생들을 평양에서 만나게 하고 그들로써 텔레비죤좌담회를 조직하라고 교시하시였답니다!》 교장선생님이 말을 매듭짓고 머리를 쳐들기 전에 소나기같은 박수소리가 교실을 휩쓸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다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향선생님도 일어서서 아버지원수님의 초상화가 모셔진 쪽으로 돌아섰다. 눈물이 쭈르르ㅡ 선생님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였다. (선생님도 우실 때가 있구나. 기쁜 일인데두 우시는구나.) 난생처음 금동이는 선생님이 눈물짓는것을 본다. 그리고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기쁜 일이 있어도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이라는것이 생긴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런 눈물이 금동이의 눈에서도 흘러내리였다. 눈물이 고여서 뿌예진 눈으로 그는 아버지원수님의 자애로우신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금동이랑 재수랑 순일이랑 다들 한품에 안아주시며 환히 웃으시는 얼굴로 《착한 일을 한 너희들을 보니 기쁘다!》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것 같았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을 다 보고계시는구나. 서로서로 보고싶어하는 우리들의 마음까지 죄다 알아맞추시는구나!) 금동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불쑥 키를 돋구었다. 《아버지원수님, 고맙습니다!》 목청껏 소리치며 그는 원수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고개를 숙이였다. 그러자 온 교실이 따라일어서서 《아버지원수님,고맙습니다!》 하고 그 말을 받아외웠다. 누가 먼저 뗐는지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이 나간 다음 학급에서는 텔레비죤좌담회에 참가할 아이들을 뽑았다. 금동이가 뽑히고 영림이가 뽑히고 재수, 순일이, 용삼이들이 《대표》로 뽑히였다. 그들은 만경대사판을 만드는 일에서 제일 땀을 많이 흘린 아이들이였다. 훌륭한 사판을 만들수 있도록 동생들을 잘 도와준 순철이, 금석이들도 좌담회에 참가시키도록 하였다. 좌담회에 참가할 아이들이 김향선생님을 따라서 분과실에 착 들어섰을 때 중앙텔레비죤에서 녀기자가 그들을 찾아왔다.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에 의해 우리는 텔레비죤이 생긴 후 처음으로 인민학교(당시) 1학년생들과의 좌담회를 가지게 됩니다. 텔레비죤전문가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좌담회입니다.…》 녀기자는 손가방에서 취재수첩을 분주히 꺼냈다. 름름한 몸매에 비해서는 동작이 매우 재빠른 처녀였다. 《우리 일곱살내기들을 제일 크게 믿어주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설계하실수 있는 좌담회이지요. 그런데 담임교원인 저로서는 사실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이애들이 말이나 제대로 번지겠는지…》 김향선생님은 꺽두룩한 교원용의자에 인형처럼 옹크리고 앉은 아이들을 웃음을 머금고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다리는 너무 짧아서 마루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거들거리였다. 김향선생님의 말이 옳기는 옳다. 텔레비죤무대에 나서면 갑자기 입이 얼어붙지나 않겠는지? 그리고 반벙어리처럼 《이ㅡ 그ㅡ 저ㅡ 그래서ㅡ》하고 말을 더듬거리지나 않겠는지? 금동이도 아까부터 속구구가 분주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생님들도 도와주고 우리 연출부에서도 힘껏 돕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아이들이 잘해낼겁니다.》 김향선생님의 주장대로 원고는 아이들이 제손으로 직접 쓰기로 하였다. 금동이더러는 좌담회에 참가하게 된 감격과 매바위골동무들을 만나게 된 기쁨을 쓰라고 하였다. 온종일 금동이는 아동도서관에 들어박혀 글을 썼다. 그는 될수록 많은 아이들이 자기가 쓰는 글을 훔쳐봤으면 했다. 그런데 글뒤주같은 아이들은 금동이가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는것도 모르고 중얼중얼 책만 읽고있었다. (내가 텔레비죤에 나타나기만 하면 이제 저치들이 모두 깜짝 놀랄거야!) 열다섯줄의 글을 쓰는데 옹근 학습장 한권이 다 달아났다. 그리고 시간은 얼마나 획획 빨리도 지나가는지… 저녁녘에 금동이는 다 쓴 글을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어깨가 으쓱해서 재수네 집에 갔다. 다른 아이들이 글을 어떻게 썼나 보고싶어서였다. 재수네 집에는 순일이가 와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순일이는 웃방구석에 들어박혀 코를 킁킁거리고있었다. 웃동을 벗어내친 재수가 방 한가운데에 큼직한 두리상을 펴놓고 무슨 《공사》를 벌리고있었다. 앞끝을 칼로 반듯이 도려내고 국수분틀처럼 구멍을 숭숭 뚫은 순일이의 머리통만 한 김장용무우가 상우에서 나딩굴었다. 재수는 그 무우허리에 뾰족한 막대기를 꽂아가지고 입언저리에 바싹 가져다댔다. 《아아, 마이크시험중입니다. 마이크시험중입니다.》 금동이는 눈을 껌벅껌벅하며 《마이크》가 신통치 못하다는듯 고개를 기웃기웃해보는 재수의 꼴이 너무도 우스워서 허파가 늘어나게 깔깔거리였다. 이 세상에 재수만큼 어른의 흉내를 잘 내는 아이는 없을것이다. 그는 건축가가 된다고 덤벙거리지만 교예단의 어리광대가 되는것이 더 좋을것이다. 《<마이크>가 어때?》 재수는 상옆에 금동이를 끌어다 앉히면서 뽐내였다. 《멋있다. 어쩌자구 만들었니?》 《말하는 련습을 하려구… 한번 들어볼래?》 재수는 손에 감아쥔 종이장을 펴들고 글을 말로 옮기기 시작했다. 《…순일이는 물감을 가져오고 영림이는 나이론실을 가져오고 용삼이는 가는 구리쇠줄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모두는 만경대농장마을에 가서 흙을 가져왔습니다. 사판의 흙은 진짜 만경대흙입니다.…》 《…그리구 재수는 유치원때부터 가지고있는 <보물통>을 가져왔습니다. 베아링, 나사못, 접철, 문걸쇠, 모표, 꽁다리크레용, 만년필혀, 가죽쪼각… 재수의 <보물통>안에는 정말 없는것이 없었습니다. 재수는 이걸 다 사판을 만드는데 쓰라고 바치였습니다. 하나두 아까와하지 않았습니다.》 저쪽구석에서 순일이가 뜬금으로 《연설》을 엮어댔다. 그는 벌써 좌담회에서 이야기할 원고를 끝장낸 모양이였다. 두 아이의 《연설》이 다 그럴듯 하였다. 그만하면 좌담회라는것이 아주 멋들어지게 될것 같았다. 《너두 한번 해봐라.》 재수는 《마이크》를 금동이한테 넘겨주었다. 엉터리《마이크》였지만 그래도 퐁퐁 뚫어진 구멍을 보니 말소리가 떨리였다. 《…수수대소포까지 받으니 그애들이 더 보고싶어졌습니다. 재수는 망원경이 있으면 그애들을 볼수 있다고 우기였지만 그건 <대포>였습니다. <중학생이 된 다음에야 너희들이 서로 만나게 되겠는지.>하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쎄 아버지원수님께서 그애들을 평양에 부르셨다는게 아닙니까!…》 《참 잘 썼구나. 그런데 망원경이야기는 하지 말어.》 재수는 《마이크》를 받아쥐며 벌쭉 웃었다. 《왜?》 《아이들이 날 대포쟁이라구 놀려주면 어쩌니? 참참참… 순일아, 그렇지 않니?》 《응, 수수대대포는 영림이가 만들었어. 고사포야.》 순일이는 재수가 무얼 물었는지도 모르고 뚱딴지같은 대답을 했다. 두 아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하하》하고 웃었다. 《순일아, 넌 아까부터 뭘하니?》 궁금증을 참지 못한 금동이가 마침내 순일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 이발을 만들어보느라구.》 순일이는 《아》하고 입을 함박만큼 벌렸다. 《만수》라는 담배곽에서 얻어낸 새하얀 은지가 웃이틀에 한입가득 물려있었다. 은지는 순일이가 입을 약간 움직거리자 장판바닥에 뚝 떨어졌다. 그러자 이발이 빠져서 허궁창처럼 펑 뚫린 앞이자리가 보기 싫게 드러났다. 《참, 야단났는데.》 순일이는 떨어진 은지를 주어들고 걱정스레 중얼거리였다. 그는 앞이가 빠진 자기를 좌담회에서 빼놓을가봐 아까부터 끙끙 근심하고있었다. 《그러지 말구 병원에 가보자는데두. 의사의 가방안에는 이발이 가득할지두 몰라.》 재수는 순일이를 안심시키느라고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팡팡 했다. 남의 말을 잘 곧이 듣는 순일이가 병원으로 가려고 엉뎅이를 움쭉거리고있을 때 학생아이 한명이 김향선생님이 보내는 쪽지를 가지고왔다. 《한시간후에 매바위골의 동무들이 기차로 평양역에 도착합니다. 모두 역으로 나오세요.》 쪽지를 읽은 세 아이는 모두 환성을 올리며 문밖으로 막 뛰여나갔다. 아빠트마당에서는 공작시간에 만든 수수대안경을 끼고 동학이가 서성거리고있었다. 아이들은 떠들썩하며 뻐스정류소로 밀려갔다. 역에는 벌써 숱한 아이들이 와있었다. 옥작복작하는 졸망구니들의 틈바구니에는 중학생인 순철이와 금석이가 왁새처럼 껑뚱하게 서있었다. 그옆에서 김향선생님이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온 녀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아이들이 있는데서부터 좀 떨어진 곳에는 《중앙텔레비죤》이라고 쓴 파란 승용차 두대가 서있는것이 보이였다. 그 차가 매바위골의 아이들을 학생소년려관으로 실어간다고 한다. 잠시후 마중나온 사람들은 홈으로 나갔다. 정거장이라는것을 처음 보는 금동이는 단박에 정신이 뻥뻥해졌다. 수십갈래의 철길이 남북으로, 서쪽으로 쭉쭉 뻗어간 정거장에는 우람찬 기관차들이 간단없이 고동을 울리고있었다.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방울을 굴리는 종달새처럼 구내를 날아다니고 신호기들이 사방에서 펄럭거리였다. (저 철길을 따라가면 우리 나라 한끝까지 다 갈수 있겠지! 백두산에도 가고 반달령에도 갈수 있겠지.) 넓고넓은 조국땅을 마음껏 밟아보고싶은 금동이의 마음은 번쩍이는 철길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훨훨 나래쳐갔다. 혜산서 떠난 급행렬차가 드디여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홈에 들어섰다. 녀기자는 김향선생님과 또 다른 한명의 어른(안경을 낀 부장)을 데리고 침대칸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까만 겨울외투를 입고 책가방을 든 아이 셋이 스무나문살쯤 되는 애된 처녀교원과 함께 승강대에서 내려왔다. 《매바위골에서 오지요?》하고 녀기자는 그 처녀에게 직방치기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처녀의 대답이였다.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왔습니다. 먼길을 오시느라고 수고많으셨습니다. 인사하십시오. 1학년 7반 담임교원 김향선생입니다. 그리구 이 애들은 만경대사판의 주인공들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꼬마들이 마중까지 나왔구만요.》 매바위골의 처녀교원은 김향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다음 두팔을 벌려 평양아이들을 안아주었다. 금동이는 누가 차돌이고 누가 삼득이고 누가 인범이일것인가를 가늠하면서 세 아이들을 차례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20. 반소매
평양역사의 시계탑이 오전 11시 30분을 가리킬 때 텔레비죤좌담회록화는 끝났다. 재수는 동무들앞에서 한 맹세를 훌륭히 지켰다. 마이크앞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말을 더듬거린다면 세상에 있는 별명을 다 붙여도 좋다고 그는 짝패들에게 장담했던것이다. 사흘동안 꼬바기 재수에게 말련습을 시켜준 그 무우《마이크》가 은을 낸셈이다. 말끝마다 밥에 반찬처럼 오르군 하던 《에… 참참참…》하는 군더더기도 한두번밖에는 없었다. 좀처럼 손건사를 할줄 모르는 삼득이가 이따금씩 손가락으로 귀방울을 잡아뜯어 금동이의 신발끝이 여러번 그애의 발등에 쿡쿡 《주의!》신호를 주었지만 그런것쯤은 크게 흉을 볼것도 없었다. 아직도 젖내가 몰몰 나는 7살내기들이 그처럼 어마어마한 촬영장에서 무슨 실수인들 안하겠는가. 앞이가 두대나 빠진 순일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꺼리낌없이 웃었다고 해서 혀를 차거나 눈을 흘길 사람도 없었다. 왕별을 달고 훈장을 12개씩이나 단 영웅들도 순일이만 한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 이갈이라는걸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출가도 아이들이 실수한다고 하여 촬영을 별로 멈추게 하지 않았다. 텔레비죤록화는 참말 멋있게 끝났다. 이제 며칠후이면 온 나라 수천수만명의 1학년생들이 텔레비죤수상기앞에 앉아있게 될것이다. 1년이나 2년, 3년 또 그보다 더 까마득한 옛날옛적에 1학년시절을 마친 상급생들과 교원들, 학부형들도 텔레비죤앞으로 모여들것이다. 좌담회의 주인공들인 금동이네자신은 물론 두말할것도 없다. 록화가 끝난 다음 아이들은 옥류관에 가서 국수를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헤여졌다. 인범이, 삼득이, 차돌이네들은 려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단 한명 입이 헤픈 재수만은 집으로 가지 않고 구역체신소로 찾아갔다. 록화촬영하던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한시바삐 자랑하고싶은 모양이였다. 하긴 어머니가 퇴근하는 저녁때까지 입을 닫아매고있다는것이 그애에게 있어서는 상상조차 할수없이 괴로운 일일테니까. 금동이는 곧바로 집에까지 돌아와 침대우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늘은 어째서 그런지 몸이 별나게 녹작지근했던것이다. 마치 누구인가 침대밑에서 그를 자꾸 끌어당겨 움쩍달싹못하게 비끄러매기라도 하는것 같았다. 게다가 목안이 갑자기 부어나서 침을 제대로 넘길수 없었다. 혹시 언제인가 형도 한번 걸렸다 난적이 있는 그 편도선염이라는 병에 걸려든건 아닌지. 금동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침을 삼키기가 힘들어져서 상을 찡그렸지만 자기와 같은 쪼꼬맹이도 형이 앓는것과 꼭같은 그런 병을 앓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흐뭇해졌다. 그까짓 몸이 녹작지근하다든가 침을 삼키지 못한다든가 얼굴에 울기가 오른다든가 하는따위의 괴로움쯤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었다. 문제는 그도 중학생들처럼 편도선염이나 페염과 같은 대단한 병을 앓을수 있다는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순일이 같은 아이는 입원을 하고싶어서 막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순일이가 나만큼 아프면 벌써 병원으로 달려갔을지도 몰라.) 금동이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면서 하품을 세번 하고는 인차 잠에 곯아떨어졌다. 얼마쯤 자고 깨나니 몸이 좀 거뜬해진것 같았다. 그는 무엇인가 하고싶은 생각이 들어 침대우에서 벌떡 튕겨일어났다. 난생처음 텔레비죤록화라는걸 해본 이런 날 텅빈 집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는건 참으로 멋적은 일이다. (무슨 일을 하면 좋을가?) 금동이는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어항속의 물을 갈아넣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베란다의 화분들에 물을 주고 손발을 씻고 연필을 깎고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평양신문》 4면에 실린 어느 체육명수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마음은 이상스레 가라앉지 못하고 풍선처럼 둥둥 뜨기만 하였다. 책상우에 정히 놓여있는 사진엽서묶음이 문득 금동이의 눈에 비쳐들었다. 매바위골에서 온 차돌이네들에게 기념으로 주라고 아버지가 사다준 천연색사진엽서들이였다. 사실은 래일밤 평양역에서 헤여질 때 차돌이네한테 주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려내지 못할것 같았다. 금동이는 이 엽서묶음들과 자기자신의 몫으로 준비한 한통의 탁구공을 가지고 학생소년려관으로 향하였다. 어째서인지 그애들이 또 보고싶어 마음이 간질간질해났다. 오늘은 뻐스로가 아니라 걸어서 가보고싶었다. 뻐스를 타고 려관까지 가는건 세살짜리 애기들도 할수 있다. 그리고 이 좋은 평양의 거리를 무엇때문에 차를 타고 휙휙 지나다닌단 말인가. 좀 다리가 아프더라도 걸어서 가면 숱한것을 구경할수 있을텐데… 이건 물론 아슬아슬한 모험인것만은 틀림없다. 생판모르는 거리를 가다가 길을 헛갈릴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금동이는 자기 힘으로 이 모험을 치르고싶었다. 그래서 어머니나 금석이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은 1학년생도 그만한 일쯤은 쉽사리 해낼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싶었다. 한낮이 지나면서부터 날씨는 한결 차거워졌다. 하늘에는 눅눅한 매지구름이 낮추 드리워있었다. 마가을의 매운바람이 가로수의 우듬지들에서 마지막락엽들을 훑어내리고있었다. 그 바람은 얇은 여름옷에 런닝샤쯔만 껴입은 금동이의 겨드랑이밑으로도 사정없이 기여들었다. 진눈까비라도 한바탕 내릴 차비인가보다. 거리에는 어느새 두툼하고 푹신푹신한 겨울옷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처녀들은 기장이 한발도 넘는 털수건까지 머리에 둘렀다. 이 거리에서 추위를 제일 심하게 타는것은 바로 그 처녀들이다. 그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열흘이나 스무날쯤 앞당겨 겨울을 맞이한다. 그래서 금동이는 그 처녀들의 살은 특별히 엷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추위를 타면서도 어른이라구? 흥, 덩지큰 누나들이 나보다도 더 용감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추위를 심하게 타는 누나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잘할것 같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금동이는 외투도 입지 않고 머리수건도 두르지 않은 그런 처녀들에게 몇갑절 더 존경이 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나무잎이 와스스 설레여도 이발을 마주 쫏거나 털내의를 꺼내입는 효남이 같은 아이들이 일을 하면 얼마나 큰일을 하겠는가. 11월도 다 가는 이 음산한 마가을날 금동이가 철에 어울리지 않게 한여름에 입는 반소매를 입고 당당하게 거리에 나선것도 다 추위라면 기를 펴지 못하는 이런 엄살쟁이들을 깜짝 놀래우자는데 있다. 그리고 어지간한 추위에는 끄떡도 하지 않게 몸을 단련해보자는데 있다. 자기 머리만큼이나 큰 고무공이 들어있는 비닐구럭을 멘 아이가 갑자기 그의 옆에 불쑥 나타났다. 재수였다. 《금동아, 어디 가니?》 하고 그애는 기관차처럼 씩씩거리며 물었다. 《나? 학생소년려관에… 넌?》 《나두…》 《그럼 잘됐구나. 혼자서 가면 심심해서 어찌나 했는데…》 《그래서 내 널 찾아왔댔어. 그런데 학생소년려관에 간다면서 왜 김일성광장쪽으로 가니? 너 혹시 뻐스정류소를 헛갈린게 아니야?》 재수는 고개를 찌붓하고 서서 못미더운 눈길로 금동이를 바라보았다. 금동이는 재수에게 방싯 웃으며 서문거리쪽을 손짓하였다. 《저기 가면 정류소가 또 있어. 예술인려관앞을 지나다니는 뻐스보다 훨씬 더 빠르고… 그 뻐스를 타면 단번에 씽ㅡ하고 학생소년려관까지 실어다주지 뭐.》 재수는 금동이의 이 엉터리없는 거짓말에 귀가 항아리만큼 커졌다. 《그런걸 알면서두 넌 왜 이제야 말하니! 참참참…》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문려관앞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재수는 뻐스정류소가 어디에 있나 하여 연방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전쟁후 지금까지 스물두해동안 이 거리에는 뻐스길이 한번도 지나가본적이 없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참참참, 여기 뻐스정류소는 왜 이렇게 머니?》 주위에서 아무런 표식판도 찾지 못한 그는 불안스레 금동이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금동이는 웃음을 탁 터치였다. 《하하하… 넌 그래 우리 평양을 제일 잘 안다구 밤낮 뻐기면서두 여기에 뻐스정류소가 없다는걸 여태 몰랐니?》 《아이구 꽝포쟁이! 그만 너한테 깜빡 속았댔구나.》 재수는 몹시 억울할 때면 늘 하는 버릇대로 량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움켜쥐였다. 그러다가 그렇게 속아넘어간것이 못견디게 재미나는듯 어깨를 들까불며 깔깔거리였다. 이런 때 트집을 걸기가 일쑤인 동학이나 골을 잘 내는 효남이나 징징거리기를 좋아하는 순일이와는 달리 그는 오히려 더 신바람이 나했다. 금동이는 자기 짝패가 그렇게 유쾌히 《대포》질에 넘어간것이 즐거웠지만 미안한 생각도 좀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뻐스를 타면 재미없어. 획ㅡ 하고 려관앞까지 실어다주거던. 오늘은 우리 발로 가보잔말이야. 어른들처럼 버젓이 걸어서.》 《그래, 걸어서 가자꾸나. 우린 애기가 아니니깐 멋있게 걸을수 있어. 이렇게… 이렇게 활개를 치면서 걸어가지 뭐…》 재수는 금동이보다 한발 앞서 나서서 활개질을 해보였다. 금동이는 재수처럼 기운차게 팔을 흔들었다. 신암동에서 잠간 지체한 그들은 다시 천리마거리 대통로를 건너서 서성교쪽으로 향하였다. 그사이 두 아이는 가고오는 사람들에게 학생소년려관이 어디 있는가고 열번도 더 물었다. 물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보통강건너편을 가리켜보이였다. (그렇지, 저 다리만 넘으면 눈을 감고서도 학생소년려관까지 갈수 있다. 우리가 오늘 대단한 일을 하는데!…) 금동이는 흡족한 생각이 들어 입을 오무리고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뚝 서버리였다. 다리란간옆에 나딩구는 인형아기가 그의 발을 비끄러매놓았던것이다. 분홍색비닐로 만든 매끈매끈한 그 인형아기는 입술이 앵두빛같고 속눈섭도 길다랗고 볼도 통통한데다가 고깔모자까지 쓰고있어 여간만 귀염상스럽지 않았다. 《이크, 누가 여기다가 이걸 떨궜을가?》 금동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인형아기앞에 무릎을 쭈그리고 앉았다. 임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물건을 제것처럼 함부로 집어들기는 싫었다. 재수는 인형아기를 집으려다가 금동이의 눈치를 보고는 얼른 손을 움츠러뜨렸다. 그리고는 온 보통강반이 다 듣게 큰소리로 떠들었다. 《야, 곱다. 순일이네 애기같네.》 《탁아소에 다니는 그 울보딱지? 응, 정말 비슷해. 그애도 눈섭이 이렇게 한뽐이나 되니깐.》 《볼도 요렇게 사과처럼 빨개. 내가 손가락으로 코등을 살짝 튕겨주자 그 앤 앵ㅡ 하고 울더구나.》 《거짓부리. 어디 앵 하고 우는 애가 있니?》 《정말이야. 다른 애기들은 다 음마 음마 우는데 그 앤 앵ㅡ 하더란 말이야. 해금소리같애.》 재수의 입에서 점점 더 엉터리없는 소리가 나오는 바람에 금동이는 얼른 다른 말을 꺼내였다. 《재수야, 이 인형아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가?》 《어떻게 하긴. 가만 내버려둬야지. 임자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라지. 그리구 우린 려관으로 가야지.》 《넌 정말 한심하구나. 길가에 떨어진 물건을 보고서도 모르는체 하면 되니?》 《그럼 어떡하자니?》 《임자를 찾아야지. 임자를 찾아서 물건을 돌려줘야지.》 《저렇게 많은 사람들속에서 어떻게 물건임자를 찾는다구 그러니.…》 재수는 보통문쪽과 체육관쪽, 대타령네거리쪽을 번갈아 돌아보면서 입술을 쑥 내밀었다. 금동이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말 재수의 말이 옳은것 같기도 하였다. 넓으나넓은 이 평양바닥에서 누가 인형아기를 떨구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인형을 다리우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버릴수도 없는노릇이였다. 그렇게 하면 금동이가 훌륭한 사람이 될것을 간절하게 바라는 김향선생님이 섭섭해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섭섭해하고 순일이나 동학이, 효남이들이 섭섭해하고 매바위골에서 온 차돌이네가 섭섭해할것 같았다. 그는 인형아기를 들고 벌떡 일어서서 사방을 둘레둘레 살피다가 보통문쪽으로 냅다 뛰여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인형아기가 떨어졌어요!… 인형아기가 떨어졌어요.ㅡ》 천리마거리쪽으로 걸어가던 몇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손에서 유난히 빛나는 인형아기를 보자 그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가던 걸음을 재촉하였다. 《봐라. 모두 그냥 지나가지 않니.》 다리목에 서있던 재수가 때를 만났다는듯이 한마디 했다. 금동이는 못 들은체 하고 그애의 곁을 씽하니 지나 반대편으로 뛰여가며 대타령쪽을 향해 또다시 소리쳤다. 《이 인형아기가 누구거나요?… 인형아기.ㅡ》 이 거리의 행인들속에도 역시 인형아기의 임자는 없는것 같았다. 《그것 봐라. 못 찾는다고 하지 않았니. 빨리 려관에나 가자!》 재수는 일이 자기 말대로 되여가는것이 고소하고 흡족하여 의기양양해졌다. 그는 지금 매바위골아이들을 보고싶어서 그리고 그들에게 고무공을 선물하는 기쁨을 한시바삐 맛보고싶어서 막 안달아났다. 금동이는 자기 짝패가 그렇게 할수록 임자를 찾고싶은 마음이 더 북받쳐올랐다. 《거리에서도 임자를 못 찾으면 안전부에 갈테다.》 그는 재수가 깜짝 놀라서 입을 하ㅡ 벌리게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리고는 안전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대타령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무하고나 물으면 안전부가 어디 있는지 선뜻 대줄것이다. 그러면 별을 세알쯤이나 네알쯤 단 안전원이 정문에서 나를 맞이할런지도 모른다. 안전원이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면 《금동동무!》라고 불러줄수도 있지. 그쯤되면 재수는 자기도 《동무》라고 불리우고싶어서 침을 막 삼킬거야. 《재수동무!》라고 불리우고싶어서 안달아할거야. 흥, 실컷 부러워해보라지. 금동이가 이런 달콤한 생각에 잠겨있는데 뒤따르던 재수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참참참, 답답하구나. 안전부가 뭐 그따위 인형이나 받아두는덴줄 아니.》 《받아.》 금동이는 재수가 그냥 자기 일을 훼방하려고 드는것이 괘씸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담했다. 《안 받을거야. 너같은건 정문에서 쫓아버릴거야.》 《왜 쫓아?》 《안전원들은 하는 일이 따로 있으니까.》 《무슨 일?》 《많지. 어른들이 잔치하면 공민증에 도장도 찍어주구 건늠길로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타일러주구…》 재수는 안전원들이 하는 일을 이밖에도 수두룩이 늘어놓았다. 재수의 말이 옳기는 옳았다. 안전원들이 교통질서를 위반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타일러주는건 금동이도 여러번 보았으니깐. 하여튼 재수는 별의별것을 다 안다. (저앤 모르는게 없구나. 안전원이 나를 코흘리개라구 정문에 들여놓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기어이 안전부로 갈테다. 안전원이 나를 쫓아버리면 안전부마당에 인형아기를 두고오지 뭐.) 금동이는 오리고기식당문을 나서는 아주머니한테서 가까이에 있는 안전부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알아내고는 그리로 직방 발길을 돌리였다. 《피, 고집쟁이같은게. 정말 가는구나. 갈테면 가라. 난 혼자서 려관으로 갈테야.》 재수는 금동이가 들으라는듯 우정 코노래를 부르며 려관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금동이는 뒤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재수가 그렇게 엄포를 놓았지만 오분도 못 지나 자기뒤로 졸졸 따라오게 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경림동아빠트보다는 좀 짧은 낯설은 안전부에서는 과연 어깨에 별을 세개 단 안전원이 금동이를 맞이하였다. 그는 대기실 의자에 금동이를 끌어다앉히고 그가 가져온 인형아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는것이였다.
《김금동입니다.》 《음, 금동이… 김금동이… 그런데 친구, 오늘같은 날은 이런 반소매를 입는게 아닌데… 날씨가 여간 아니다. 뭐, 감기에 안 걸린다구? 허허… 녀석두. 그건 장담할수 없다. 그럼 잘 가거라.》 상위는 일어서며 구면친구처럼 금동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다가 《네 손이 왜 이렇게 뜨겁니?》하면서 금동이의 얼굴을 불안스레 살펴보았다. 금동이는 대답대신 씩 웃어보였다. 그까짓 손이 뜨거운것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였다. 직일실앞에 나와 서성거리던 다른 두명의 안전원이 상위와 함께 그를 바래워주었다. 난생처음 안전원들의 바래움을 받는 금동이는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것처럼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러나 그는 이 시각에 자기의 몸으로 악성감기가 침습해들어오고있다는것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ㅡ주체72(1983)년ㅡ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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